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장


아무래도 상황이 생각보다 더 복잡해진 모양이다.
아니, 복잡해졌다기보다는.
‘얻을 게 더 많아졌다고 해야 하나?’
본래 요툰의 땅으로 가서 얻을 보상이 더 늘어난 셈이니까.
처리할 일도 늘어났지만, 어쨌건 얻어 낼 것 역시 늘어났다.
여의주.
내가 아는 정보 그대로라면, 동대륙에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다.
자그마치 신수를 탄생시키는 매개이니 말이다.
‘동대륙의 전란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주된 이유기도 하고.’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다만 현재 동대륙이 초월적 존재들의 폭주로 인해 균형이 무너진 상황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폭주를 잠재울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 여의주다.
“여의주가 있으면 초월적 존재들의 폭주를 억제할 ‘왕’이 탄생한다고 했던가?”
“예. 정확히 말하자면 신수들 중 하나가 왕으로서 거듭나는 것입니다만.”
남궁주순이 말을 이었다.
“그것만으로 끝이 아닙니다. 만약 예전에 보셨던 구미호 같은 요귀가 왕으로 거듭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테지요.”
“즉, 여의주를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아무 신수에게나 줘서도 안 된다는 것이로군.”
“예, 일단 저희 남궁은 바리국의 수호수, 이무기 소하를 적격자로 보고 있습니다.”
“흐음…….”
“가장 온건하고,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분이시지요.”
대충 이해했다.
물론 남궁주순의 말만 믿고 그 ‘소하’라는 이무기를 무작정 신뢰해서는 안 되겠지만.
“참고는 해 두지.”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주순은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것도 여의주를 찾은 뒤에 생각할 일이지요. 그 니다벨리르 또한 ‘후보지’ 중 하나일 뿐인지라.”
“그래도 확인은 해 보마.”
확인 정도야 어렵진 않을 터.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남궁주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수고했어.”
“아, 그리고 전하.”
“음?”
바로 나가려는 나를 남궁주순이 붙잡았다. 그는 조심스레 날 향해 마지막 정보를 입에 담았다.
“뒤늦게 떠오른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이건 니다벨리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만…….”
“말해 봐.”
“최근 드워프제 무기들 중 부쩍 ‘불량품’이 늘었다는 말들이 많더군요.”
“불량품?”
이상한 일이다.
드워프라는 종족은 확고한 장인 정신을 지니고 있기에, 불량품은 그 자리에서 폐기할 터.
그러한 룰이 지금껏 쌓이고 쌓여, 지금의 ‘드워프제 무기’의 가치를 만든 것이 아니던가. 그건 지금도 다를 게 없을 텐데?
“정확히 말하면, 무기로서 결함이 있다기보다는…… 불길한 게 붙어 있다고 해야 할지.”
남궁주순은 뭐라 설명할지 말을 고르다가 내 어비스 슬레이어를 가리켰다.
“지금 전하께서 차고 계시는 그것과 정반대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망할.”
남궁주순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다.
혼돈 교단.
이번에도 놈들이 엮였다.

* * *

다음 행선지는 니다벨리르로 확정되었다. 덤으로 여의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고.
“일단 얻을 것들이 많아서 좋기는 한데…….”
그만큼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남궁주순이 마지막에 전한 정보로 보자면, 니다벨리르의 상태도 정상은 아닌 것으로 보이니까.
그렇다면 준비를 어떻게 하는가. 일단 니다벨리르로 함께 갈 인원을 편성해야 할 터다.
일단 내 손발이 되어 내 계획에 척척 맞춰 줄 인재가 필요하니까.
게다가 추가적으로 공방에 물건을 보급할 필요도 있겠고.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가.
당연히 내가 공작이니 내가 하면 되기야 하겠지만…….
‘귀찮아.’
내가 공작인 건 맞는데, 혼돈 교단을 때려잡기도 바쁘다. 그래서 이런 일의 ‘적임자’를 따로 두지 않았던가.
그런고로 결정했다.
“베리엘, 친애하는 내 숙부님.”
“아, 꺼져.”
집무실에서 오늘도 열심히 갈려 나가는 우리의 숙부님께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축객령을 내렸다.
“조카인지 뭔지 아무튼 얼굴 보기 싫으니, 자랑스러운 공작 전하께서는 이만 좀 나가 주시지.”
“또 정신병 도졌습니까?”
“…….”
내 말에 베리엘이 조용히 날 쳐다보았다.
혼돈 교단과 얽혀 오래전, 가문에서 쫓겨난 내 숙부.
물론 입양아다.
능력도 좋고 가문에 대한 충성도도 높은…… 참으로 완벽한 사람인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정신병이 있다는 거?’
심한 정도는 아니고, 사람이 고독하게 살다 보니 쬐끔 돌아 버린 수준이다.
물론 영주 대리로서 영지를 운영하는 그 모습에서는 정신병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개소리 말고. 지금 내 분노는 그 누가 내 입장이어도 그렇게 했을 합당한 분노다.”
“흠.”
“내가 처음에 영주 대리 직함을 받아들였을 때만 해도 괜찮았을 줄 알았지.”
베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런데…… 받고 봤더니, 도대체 어떻게 여태까지 영지가 유지된 건지 신기한 수준이더군. 처음에는 그냥 손댈 게 많다 수준인 줄 알았는데.”
“그 수준이 아니죠?”
“…….”
베리엘이 핏발이 선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그럼, 그럼. 그 마음 알지.
내가 다 알고 떠넘긴 건데.
무려 가장 오래된 전통의 공작가문이다.
그런데 그런 명문가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겉으로는 좀 괜찮아 보였어도, 속은 곪을 대로 곪았단 것.
그래서 베리엘을 찾았던 거다.
그 곪은 부분을 도려내고, 새살을 채워 넣을 수 있는 능력자는 베리엘밖에 없었으니까.
“혼돈 교단이라는 그 사이비들이 오고 갈 ‘창구’도 몇몇 보였고, 도시 내의 재력가라는 놈들의 비리는 곪고 곪은 상황에, 게다가…….”
쿵!
베리엘이 한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더미를 내 앞에 내려놨다.
“대륙에서 폭풍의 눈이나 다름이 없는 마탑, ‘바벨’을 우리 영지로 이전시킨다고?”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 좋겠지.”
베리엘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을 무사히 처리할 수만 있다면야 최고의 기회지, 조카야.”
“허허.”
뭘 그리 당연한 소리를.
“제가 그거 하라고 즉석에서 면죄하고, 숙부님께 불리한 기록은 죄다 삭제시켜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걸 알기에 불만이 있어도 이렇게 일하고 있는 거다.”
베리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고, 왜 온 거냐. 한동안 올 일은 없다더니?”
“사람 일이 그렇게 생각처럼 쉽게 됩니까.”
난 그렇게 말하며 깔끔하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쉽지 않을 겁니다.”
“이유는?”
“혼돈 교단. 놈들이 명확하게 제 존재를 인지했거든요.”
난리를 많이 피워서 그런가, 이제 그놈들도 날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을 터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지.
“문제는 놈들 입장에서 굳이 절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이미 많이 당하기도 했고.”
“그래서 영지를 건드린다?”
“예. 뭐, 영지가 됐건 가문이 됐건 그렇겠지요.”
다른 놈도 아니고, ‘대제사장’이 날 확실하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조치를 취하겠지.
하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놈이 공격해 올지는 확신할 수 없다.
“……혼돈 교단이라.”
“숙부께서도 그놈들의 손에 한번 당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대책도 마련했을 것 같은데.”
“아니라고는 안 하겠다.”
베리엘이 피식 웃었다. 그런 그의 미소에는 선명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