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수양딸이 되었습니다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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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수양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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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아나함
늑대의 수양딸이 되었습니다 1권
· 차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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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수양딸이 되었습니다 1권
01
‘여긴 어디지?’
이상했다. 분명 보육원 부원장님한테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빗자루로 두들겨 맞은 뒤 울다가 잠이 들었다. 차가운 방바닥에서 낡고 얇은 이불을 덮고 몸을 웅크린 채로.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고 일어나니 몸이 물에 잠겨 있는 상태로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왠지 편안했다. 숨 쉬는 데 이상도 없었고.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짐작하자면 누군가의 뱃속인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전의 나는 너무 많이 맞아서 죽은 게 아닐까? 그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질을 당했으니까.
단 하루도 안 아픈 적이 없었어.
딱히 이전 생에 아쉬울 게 없어서였을까. 죽은 것이든 잠든 것이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라면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생엔 꼭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어. 서로 아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이전엔 부럽게 바라만 보아야 했던 그런 가족.’
처음 나와 엄마를 알아차리기 시작했을 때 그곳은 참 아늑하고 따듯했다.
그리고 바깥에서 들리는 엄마의 말로 예상하자면 우리는 그냥 인간은 아닌 듯했다. 대충 생각하자면 털이 있는 동물과 사람을 넘나드는 사람? 동물? 엄마 말에 따르면 수인? 이라던데.
에이, 몰라. 아무려면 어때.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 편안함에 젖어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몸이 자주, 심하게 흔들렸다. 정확히는 엄마가 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그날도 그랬다.
엄마는 숨이 모자랄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엄마의 몸이 엄청나게 흔들렸고 나는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흔들림이 멈췄을 무렵 나는 달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와야 했다.
억지로 무언가가 나를 엄마 배 속에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세상으로 나왔을 땐 너무 추웠다. 아무리 태어나자마자 털이 있어도 갓 태어난 내가 처음 느끼는 추위는 매서웠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페로몬이라는 것을 쥐어 짜내 나에게 보호막을 쳐 주고 숨을 거뒀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채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더는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끼잉, 낑…….”
나는 점점 굳어 가는 엄마의 몸을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 * *
대륙의 북쪽. 그칠 줄 모르는 눈과 바람이 몰아치는 그곳엔 늑대들이 살고 있다.
헤이즐라는 오늘도 산책을 나서기 위해 옷을 꺼내 입었다.
늑대 수인이지만 몸이 약한 헤이즐라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두꺼운 코트를 입어야만 한다.
“마님, 조금 더 따듯하게 입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눈은 그쳤지만 기온이 낮습니다.”
산책 준비를 돕던 란제라가 헤이즐라에게 걱정스러운 기색을 비치며 말했다.
“괜찮아. 그 정도로 몸이 약하진 않아. 너무 춥다 싶으면 바로 들어올게.”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숄을 챙겨 가겠습니다.”
“그래.”
준비를 마친 헤이즐라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사박사박.
제법 쌓인 눈길 위를 걷던 헤이즐라는 어디에선가 미약하게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잠시만, 이 소리 안 들려?”
“어떤 소리요…? 아, 어디에선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뒤따라오던 란제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헤이즐라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멀지 않은 나무 뒤편에서 하얀 눈 위에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는 어미 친칠라와 그 품을 계속 파고들며 낑낑대는 새끼 친칠라가 보였다.
“저런. 어미가 죽은 모양이구나. 불쌍하기도 하지.”
헤이즐라는 아직 눈도 못 뜬 핏덩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고는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어미 친칠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미는 이미 확실하게 죽어 있었다.
“데려가실 생각이신가요?”
“응. 아무래도 조산 같은데 너무 가엽잖아. 이대로 놔두면 얼어 죽든 굶어 죽든 잡아먹히든 할 테니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습니다. 멀쩡한 어린 수인을 데려다가 키워도 문제가 되는데 출처가 불분명한 갓 태어난 수인이라니요. 게다가 맹수 수인도 아니지 않습니까.”
란제라는 희미한 페로몬을 감지하여 수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분명 문제가 될 사안이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어미가 죽었잖아. 몸을 보아하니 쫓기다 숨어서 아이를 낳고 죽은 거 같은데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니까요. 그 알 수 없는 사정에 휘말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골치가 아파질 겁니다.”
“그건 내가 감당하지. 난 우선 이 아이를 살려야겠어.”
그렇게 말한 헤이즐라는 란제라에게서 숄을 받아 새끼 친칠라를 감싸 안았다.
아주 작고 작은 미세한 꼬물거림이 느껴졌다.
“조금만 참으렴. 금방 따듯한 곳에서 편안하게 해 줄게.”
헤이즐라는 아이에게 작게 속삭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친칠라를 안고 돌아갔다.
작은 바구니에 폭신한 솜과 천 조각을 넣어 친칠라의 자리를 만든 헤이즐라는 곧 자신의 페로몬을 아이에게 조금씩 불어넣기 시작했다.
맹수 수인임에도 불구하고 헤이즐라는 매우 희귀하게 치유 계열의 페로몬을 가지고 있었다.
헤이즐라의 페로몬은 곧 새끼 친칠라에게 들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떨던 아이의 기력을 채워 주었다.
아이가 곧 편안하게 잠이 들자 헤이즐라는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 * *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자 무언가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분명 엄마가 마지막으로 보호막을 쳐 주고 돌아가셨는데……. 여긴 어디지? 낯설지만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다.
“어머, 눈을 떴네? 예쁘기도 해라. 배고프진 않니?”
눈 빼고는 온통 하얀 여자가 나를 향해 눈을 곱게 접으며 상냥하게 물어왔다.
“삑삑…….”
누구세요?
나, 납치당한 거야?
“저런…. 낯선가 보구나. 겁낼 필요 없단다. 널 우연히 발견해서 내가 데리고 왔어. 안타깝게도 네 어머니는 도와주기에 너무 늦었었단다.”
그러니까 날 납치했다는 게 맞다는 거잖아? 아니, 사실은 납치가 아니라 구해 줬다는 게 맞는 거겠지만.
“자는 동안에 먹을 걸 준비했단다. 먹어 보렴.”
검푸른 눈을 제외하고 온통 하얀 여자는 내게 작은 주사기를 내밀었다.
안에는 우유로 보이는 하얀 물이 들어 있었다.
조심조심 다가간 후.
할짝.
독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잠시 머뭇거렸으나 날 구한 사람이 날 죽일 이유가 뭐가 있겠나 싶었다.
일단 죽더라도 배불리 먹고 죽자. 굶어 죽는 것보단 낫잖아?
나는 주사기를 연신 할짝대며 먹기 시작했다.
배불리 먹고 나자 다시 잠이 쏟아졌다.
길게 하품을 하자 여자는 작게 웃더니 내게 작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아가는 잘 먹고 잘 자야 쑥쑥 크는 법이지.”
여자의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봐야겠다.
* * *
“헤이즐라, 밖에서 쥐를 한 마리 주워 왔다던데.”
잿빛 색깔의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잘생긴 남자가 말했다. 헤이즐라를 보는 그의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다.
“쥐라니요. 친칠라예요, 엘로이.”
“친칠라인 게 확실한가? 수인이 맞다면 이미 멸문해 없어진 소수 민족 아니었나?”
“맞아요. 이미 몇 해 전에 멸문했다고 알려져 있죠. 아마 내 짐작엔 살아남은 몇몇이 숨어 살면서 쫓겨 다닌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아이의 엄마는 상처투성이인 채로 죽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 텐데. 헤이즐라, 어쩔 셈인 거지?”
“내가 이 아이를 키우고 싶어요.”
“우린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어. 루카스가 후계자로 부족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아이를 더 키울 필요가 있나?”
“죽을 운명이었던 아이를 데려와서 살렸으니 남은 생도 책임져 줘야죠. 저 아이가 원해서 내가 살린 게 아니니까요.”
“그러길래 왜 굳이 저런 어린애를 주워 온 거야.”
엘로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애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요. 그러다 벌 받아요. 그리고…….”
잠깐 머뭇대던 헤이즐라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애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먼저 간 우리 애가 생각나요.”
“헤이즐라, 저 아이랑 우리 아이는 달라.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그 애를 잊지 못할 거라는 건 알지만 저 애가 그 아이를 대신할 수는 없어.”
“알아요. 하지만 그냥,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비록 우리 애는 살리지 못했지만 저 아이는 살렸잖아요. 혹시 먼저 간 우리 애가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요.”
헤이즐라는 먼저 간 아이가 생각 나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우리 애는 이미 저 위에서 편안하게 안식하고 있을 거라고.”
엘로이는 헤이즐라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설마 저렇게 어린아이를 그냥 쫓아내라고 할 건 아니잖아요?”
헤이즐라가 내리깔았던 눈을 다시 엘로이에게 향하며 물었다.
“헤이즐라, 당신의 뜻이 정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하지만 그 아이가 후계 자리에 오르지는 못할 거야. 사용인들의 차별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고. 당신도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에요. 그저 이 아이가 잃어버린 엄마 대신 날 엄마로 따라 줬으면 해요.”
“당신은 정말… 자비롭고 덕이 많은 사람이야. 정까지 많아서 문제지만.”
엘로이는 작게 한숨을 쉬며 헤이즐라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러자 헤이즐라와 같은 곳으로 시선이 닿았고, 작은 바구니에 잠들어 있는 새끼 친칠라가 보였다.
“정말 작군.”
엘로이가 작게 속삭이듯 말하자 헤이즐라가 즐거워하며 말했다.
“그렇죠? 이렇게 작은 생명체가 존재한다니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요. 맹수 수인은 이런 아이가 없잖아요. 이 아이가 자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요?”
“헤이즐라, 난 당신처럼 그렇게 정이 많지 않아.”
“알아요. 그래도 당신도 허락한 거예요.”
헤이즐라가 살포시 웃으며 엘로이의 얼굴에 머리를 기댔다.
“응. 일단은 두고 보지.”
엘로이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대답했다.
가문의 다른 수인들에 비해 몸이 약한 헤이즐라는 신체 활동에 제한을 많이 받아서 할 수 있는 취미나 유흥 거리가 별로 없었다. 치유 계열이었지만 자가 치유는 불가능했고, 몸이 약해 페로몬을 많이 사용할 수도 없어 엘로이와 함께 전쟁에 나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것도 무리였다. 아주 극심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즐길 거리가 없던 헤이즐라는 홀로 실내에서 적막을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엘로이는 그런 헤이즐라에게 조금이라도 보람과 즐거움을 주는 게 있다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 * *
자고 일어나 보니 주변이 조용하고 어두웠다.
바구니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금방 어둠에 적응된 눈이 달빛이 비치는 방 안을 훑었다.
커다란 창에는 하얗고 예쁜 레이스 커튼이 달려 있었고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잠들기 전 보았던 하얀 여자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잘 잤니?”
“…….”
나는 여자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 바구니를 잡고 선 채로 멀뚱히 여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