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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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3
목차
9. 파시스 후작가의 여름 무도회
10. 사냥대회
11. 변화
12. 추모식
13. 두 사람만 함께하는 밤
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3
9. 파시스 후작가의 여름 무도회



“모두가 기대가 많답니다. 파시스 후작가의 여름 무도회는 티켈론 제국 최고의 연회로 손꼽히잖아요.”
“가, 감사합니다….”

호호, 웃는 다정한 대화 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파시스 후작 부인은 떨리는 입꼬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아니, 아직. 아직은 무너질 때가 아니었다.

“혹자는 선대 후작 부인께서 워낙 대단하셔서 부담스러울 거라고도 하는데….”
“그런 말 마세요. 사교계의 꽃이 개최하는 여름 무도회는 훨씬 더 대단하겠지요!”
“호, 호호호.”

파시스 후작 부인은 욕이 나오려는 것을 속으로 삼켰다.
시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명망 있는 여름 무도회를 개최한 것은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일이었다.
존재감이 애매하던 파시스 영지가 귀족들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꾸준히 언급되는 것도 그 덕분이었으니까.
연회에 들렀다가 별장을 짓겠다고 한 귀족들을 시작으로 휴양 산업이 발달한 것도.
파시스 영지에서 하던 요식업이 초반부터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연회에 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신록의 이미지 덕분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어쩜 그 파시스 후작가의 새로운 안주인으로 사교계의 꽃인 쥬느비에브 영애가 오셨나 몰라요!”

그 무도회를 이어서 개최하는 후임이 본인이라는 게 문제였다.

‘사교계의 꽃이니까 잘할 거라고? 부담을 주는 건지, 격려를 하는 건지!’

상대가 상대니만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아까부터 대단하다며 자신을 추켜세우는 눈앞의 여자는 베아트리스 파렐 백작 영애.
백작가의 영애라고는 하지만 황녀와 친분이 두터운 인물.
최근 그녀가 사라진 사교계에서 중립을 지키는 파시스 후작가를 황가에서 못마땅해한다는 소문이 돈 뒤였다….

“파시스 영지는 후작저 근처의 호수부터 시작해서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끝이죠!”

묘하게 날이 선 듯한 말투.
이게 과연 기분 탓일까?

“말씀 감사드려요.”

어쨌거나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한 대로 따라 할 수도 없잖아!’

선대 후작 부인이 여름 무도회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영지가 가지고 있는 천혜의 풍경을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야외에서 무도회를 열며, 후작저 주위의 수채화 같은 풍경과 어울리는 야외 장식을 연출했는데….
문제는 그게 수십 년이었고.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소재였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한 대로 비슷하게 하면 나올 소리야 뻔했다.

-야외 장식이 예쁘긴 하지만…. 새롭지는 않네요?
-선대 후작 부인이 한 거랑 달라진 게 없어요.
-사교계의 꽃이라고 기대했는데. 시어머니만 한 며느리는 없나 봐요.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존재다.
그것이 눈 높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귀족들이라면, 그리고 새로운 인물이 여는 무도회라면 더욱더!
그렇다고 기존 무도회와 다르게 새로운 모험을 하자니.

-선대 후작 부인이 한 것과 너무 다르네요.
-솔직히 실망했어요. 파시스 후작가의 여름 무도회를 기대하고 왔는데….
-사실 시어머니가 한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요?

다르게 가면 또 그건 그거대로 욕을 먹을 게 뻔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
어찌나 파시스 후작 부인이 힘들어했던지 그 남편이 나설 지경이었다.

-어머니도 여름 무도회의 명성에 힘들어하셨어. 이제는 없어져야 할 때가 왔다고 봐!
-자, 잠깐만!

그녀를 아끼는 남편은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쓸 거 없다며, 여름 무도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하려 했으나….
그건 파시스 후작 부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파시스 후작과 결혼해서 그렇지, 이름난 연회를 개최하는 건 제 야망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그래도 사교계의 꽃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던 어느 날.

-여보. 킬리엣 공작저에서 초대가 왔는데?

복덩이가 굴러들어 왔다.

“예의 여름 무도회처럼 야외긴 한데. 딱히 다른 점은 모르겠네요. 야외 장식도 특이하지 않고….”
“전통을 지키려는 거겠죠.”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칭찬만을 건넸다.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명성에 비하면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얼굴에 ‘내가 너무 기대했구나.’라는 게 쓰여 있었다.
그녀와 친한 사람들 몇몇이 분위기를 띄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남이 연 무도회에 와서 어디서 품평질이야?”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자격을 두는 건 어때요?”

하지만 파시스 후작 부인은 느긋하게 그들을 말렸다.

“괜찮아요. 아직 연회에 준비된 모든 것을 본 게 아니잖아요.”

예의 여름 무도회와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그러나 단 하나, 전에는 전혀 보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다.

“무도회 중앙에 못 보던 게 있는데요?”
“저게 뭘까요?”

회장 중앙에 둔 네모난 것이 신기했다.
사람의 키를 넘기는 커다랗고 하얀 물체.
단단해 보이는 껍질을 가진 그것은 용도조차 짐작되지 않았다.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 몇몇이 신기해서 질문해 왔지만, 파시스 후작 부인은 바로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만 눈을 찡긋할 뿐이었다.

“이게 이번 무도회의 하이라이트거든요.”
“오오, 하이라이트라면 대체?”
“힌트를 드리자면, 저 안에는 요리가 있어요.”

파시스 후작 부인의 대답에 웅성거림이 번져 나갔다.

“네? 저 상자는 무도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는데, 이미 상하지 않았을까요?”
“트집을 잡으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이 여름이어서….”
“걱정은 감사하지만, 그럴 필요 없으세요.”

사람들의 우려에도 파시스 후작 부인은 시원하게 웃었다.

“제가 여태까지 여름 무도회에서 본 적 없으신 ‘음식’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다 이 물건 덕분이거든요.”
“저 물건이 뭐길래… 너무 자신만만하신 거 아닌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이잖아요.”
“그럼 내기 하나 할까요? 곧 이 상자를 만든 분과 함께 음식을 대접할 건데, 안에 든 요리가 정말 상했나 한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