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1
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1
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1
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1
목차
1. 어느 날 조카가 찾아왔다
2. 전남친이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3. 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했다고요?
4. 같은 침대
전남친의 조카를 너무 잘 키움 1
1. 어느 날 조카가 찾아왔다



“다시 보지 말자고 했으면서, 먼저 찾아온 건 뭐지.”
“그러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거든?”

전남친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걸 기꺼워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좋지 않게 헤어진 경우에 말이다.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됐고, 시간 많이 안 뺏을게. 너에게 양육권을 포기하라는 말을 하러 왔어. 서류에 사인만 하면 아르테아를 데리고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하지만 예상대로 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아르테아는 내 조카야.”
“내 조카기도 하잖아.”

몇 번이고 했던 이야기가 또 반복되려나.
저번에 한 말 때문에, 순순히 아르테아를 포기할 줄 알았더니 결국 이렇게 나오….

“잠시만 기다려.”
“응?”
“너와 나, 아니, 아르테아까지 모두가 만족할 방법이 있어.”

그러나 에리오스 역시도 무언가를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그의 새하얀 얼굴에 뜻을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벨로나. 나랑 결혼해.”
“뭐?”
“우리 둘 다 아르테아를 양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닌가?”

순순히 양육권을 포기할 줄 알았는데.

“그게 싫다면 너야말로 아르테아를 두고 사라져.”

이 미친 전남친 놈이, 조카를 인질로 잡고 결혼하자는 개소리를 한다!

***

나, 벨로나 소르티스.
좋아하는 건 돈. 싫어하는 건 성가신 일.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었고 인생에 불만은 없었다.
뭐,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생각이지 않나 싶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좀 남다른 점이 있나 보다.

‘뭐, 괴짜 영애? 소르티스의 마녀?’

귀족 영애가 스물셋이 되도록 결혼을 안 했다고 희한한 소리를 다 듣고 있거든.

‘인간이라면, 특히 귀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늦어도 이십 대 초반에는 약혼자가 있어야 한다니?’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던 전생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기 때문인가.
결혼과 출산을 삶의 중대한 의무로 여기는 이 나라의 가치관은 나랑 좀 안 맞았다.

‘사랑해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어도 망설여지는 마당에, 그 귀찮은 걸 내가 왜?’

가문과 가문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를 대며 나에게 결혼하라고 달려들었지만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다.
죽고 난 뒤의 인생은 중요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친자식이 아닌 다른 핏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산은 조카한테 주면 되지.’

난 귀찮은 건 딱 질색이고, 덕분에 신경 쓰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내 조카 아르테아 킬리엣은 그 극소수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르테아의 어머니인 리시아는 내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전생에 이어 현생까지 부모 복은이라고는 없는 내게, 몰락 귀족의 비참한 생활에서 나를 지켜 준 것은 언니였다.
전생의 기억이 있다 해도 조각난 기억이고, 몸과 정신은 어린 나를 보살펴 준 사람.

‘나도 사람인데. 혼자 남은 조카를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형부는 마물 토벌에서 죽었고, 언니는 형부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마차 사고로 죽었다.
함께 마차에 있었던 아르테아는 언니가 온몸을 다해 껴안은 덕분인지 다리를 다쳤을 뿐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성인인 나도 언니를 잃고 난 뒤 한동안 절망에 허우적거렸다.
부모를 연달아 잃은 어린아이인 아르테아는 더욱 힘들 터.

‘잘 지내는지, 찾아가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이는 킬리엣 공작저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 뒤로 본 적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전남친인데 어떻게 찾아가.’

형부가 죽은 뒤로 킬리엣 공작위에는 그의 동생인 에리오스 킬리엣이 올랐다.
형을 능가하는 인물, 서광의 기사, 성검의 주인… 걸출한 인물이랍시고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나로서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나와 좋지 않게 헤어진 전남친이라는 거.

‘이래서 겹사돈은 하면 안 되는 건데. 음, 결혼은 하지 않았으니 겹사돈까진 아닌가?’

어쨌거나 내 언니는 킬리엣 공작 부인이었고.
전남친인 그의 형이 킬리엣 공작이니까 그 비슷한 건 맞다.
우리는 옛 연인인 동시에 사돈이었다.
그러니까 아르테아는 내 조카이자, 에리오스의 조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사감 때문에 조카를 찾아가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본래대로라면 차기 공작은 아르테아가 되었겠지만, 당시 아르테아는 잘 걷지도 못하는 아기였다.
공작의 동생이자 수많은 공을 세운 에리오스가 공작이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르테아는 내가 후계자로서 키우겠다.

에리오스는 분명 모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친자식을 두고 조카인 아르테아에게 공작위를 물려주는 일이 쉬운가?
사람들은 그의 말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내가 사업에 열심인 이유 중에 아르테아의 지분이 높긴 하지.’

가뜩이나 언니가 형부와 결혼할 때 킬리엣 공작가와 비교당하며 얼마나 후려쳐졌는데.
아르테아를 위해서라면 외가가 돈이라도 많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라도 아르테아가 내쳐지면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할 것 아냐.

‘처음에야 고집 센 에리오스 놈이 지키지 않을 말을 내뱉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될 줄 알아.’

에리오스 본인에게야 조카라지만, 언젠가 생길 공작 부인에게 아르테아는 생판 남이다.
제 핏줄이 섞이지 않은 아이가 제 친자식을 두고 공작이 되는 게 과연 기꺼울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일부러 만남 요청을 넣지 않았다.
한때나마 교제했던 여자가, 아르테아를 핑계로 공작저를 드나든다는 인상을 줄까 봐.

‘나중에 공작 부인이 될 사람이 아르테아를 거슬려 할 수도 있잖아. 에리오스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애를 구실로 삼는다고.’

물론… 내가 찾아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르테아를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래 봬도 이름 있는 마도구 제작자란 말씀.
나는 종종 아르테아를 생각하며 장난감을 만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