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대규모 업데이트
[대규모 업데이트 알림! 지금 당장 데앤데 공식 유튜브 채널로 들어가 트레일러 영상을 확인하세요!]
“이번엔 조금 빨리 하네.”
공성전, 그리고 또 다른 데앤데의 꽃. 대규모 업데이트.
모든 직업의 전체적인 밸런스 조정과 함께 슬슬 재미가 떨어져 가는 유저들을 위한 새로운 던전과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시점.
그 전 길드에 있었을 때는 성적이나 기록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터라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다고 한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고는 했었는데 이번엔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껏 지금보다 한두 달은 더 지나고 나서야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하고는 했었는데, 올해는 유독 빠르게 트레일러 영상이 올라왔다.
수빈은 홀린 듯이 데앤데 공식 너튜브 채널로 들어가 2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트레일러 영상을 클릭했다.
재생과 동시에 화면 가득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전체적으로 짙은 회색빛을 물든 한 숲을 비추며, 차가운 느낌의 배경음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졌다, 그리 믿는 자들이 있었다.
빛과 어둠으로 서로를 끊임없이 나누고, 또 심판하며. 끝없는 전쟁 이후 찾아온 삶에도 진정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신은, 궁금해졌다.
어찌하여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하고 또 갈라서기를 반복하는가?
어찌하여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인가?
이전 업데이트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신비로운 느낌의 더빙과 함께, 주요 마을과 각 직업군의 모습이 비춰졌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마을 위에는 짧은 종소리와 함께 거대한 회색 먹구름이 몰려왔다.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 광장은 곧 끔찍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 오로지 영웅들만이 핏빛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신은 깨달았다.
그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음을.
그들은 죽음을 직접 맞이하기 전까지 결코 욕망을 저버리지 못할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신을 부르며 거짓된 교리를 내뱉는 이들과
영웅만을 기다리며 나태해진 이들
아무렇지 않게 규율을 어기고 죄를 저지르는 이들
맡아낸 임무 대신 제 이익을 위한 행동을 반복하는 이들
대사에 맞춰서 하나둘 NPC들의 추악한 모습이 나타났다.
혼돈.
‘혼돈’이 점차 퍼져 나가고 있었다.
진지한 성우의 목소리와 생각보다도 훨씬 질 좋은 영상 때문인지 다소 중2병스러운 대사들이 전부 웅장하게만 느껴졌다.
수빈은 어느새 눈앞의 영상에 홀린 듯 집중했다.
혼돈에서는, 또 다른 혼돈이.
혼돈은 또 다른 혼돈을 낳고, 새로운 혼돈은 다시 공포를 새긴다.
그리고 공포는
을씨년스럽던 음악이 한순간 뚝 끊기더니 숲 한 가운데가 빠르게 클로즈업됐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독특한 몬스터의 눈이 빠르게 화면을 가득 채우더니 이내 화면이 다시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또다시 신을 믿게 만든다.
“이번에 진짜 제대로 준비했나 보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헛웃음을 터뜨린 수빈은 작게 박수를 쳐 댔다.
트레일러 영상만 봐도 이번 대규모 업데이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새로운 보스 몹이 생긴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장소와 스토리, 보스 몹을 비롯한 부가 몬스터들까지. 고작 트레일러 영상밖에 보지 않았지만, 새로운 지역의 퀄리티도 남달랐다.
매번 대규모 업데이트라는 말만 하고 기껏해야 직업들 스탯을 멋대로 바꿔 놓고, 평소에 보던 몹들과 비슷한 보스 몹들이나 만들어놓던 과거와는 전혀 달랐다.
1초에서 2초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 몹은 아무래도 원래 상대하던 것들과는 생김새도, 전투 방식도 완전히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칼을 갈았네. 칼을 갈았어.”
이 정도는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된다면 이번 업데이트 시즌에 뉴비들도 늘어날 게 분명했다.
유입들이 대거 늘어난다면, 어쩌면 드루이드도 이제는 변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공성전을 계기로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드루이드를 해볼까, 하는 말들이 늘어났는데 유입이 생기면 오죽하겠는가?
드디어 드루이드도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드루이드 스킬이나 업데이트해 주면 좋겠다.”
필요 없는 것들은 조금 없애 버리고, 근접전에 유리한 것들로 더 넣어줬으면.
이번 대규모 업데이트 때야 늘 그랬듯 변할 것 같지 않지만, 중간 패치 때 한 번쯤은 이제 드루이드를 신경 써 주지 않을까.
트레일러를 본 수빈의 심장은 아까보다 조금 더 힘차게 둥둥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해서 보았는지, 뒤늦게 눈의 뻑뻑함이 느껴져 그는 다급하게 인공 눈물을 찾았다.
안 그래도 뻑뻑한 눈이 사막에 온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번 업데이트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업데이트 날짜였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날짜.
‘……이번에는 퍼클이 목적이 돼야 하는 거겠지.’
자신의 일정표를 확인하며 수빈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젠 길드 내에 랭킹 1위를 보유하고 있는,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는 길드의 길드장 신세였다.
다른 길드의 퍼클 영상이나 보고, 공략이나 참조하며 여유롭게 던전 클리어를 노릴만한 위치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2페이즈는 당연히 훌쩍 넘기겠지?”
지난 대규모 업데이트 때 나타난 신규 보스는 생각보다 더 빨리 클리어됐던 기억이 났다.
물론 ‘퍼클이 유독 힘든 게임’이라는 별명이 붙은 데앤데인 만큼 기본적으로 4일은 넘어야지 퍼클을 외치는 길드가 나타났지만.
“저번에는 3일도 안 걸렸으니까 빨리 끝난 편이지.”
적어도 3일 동안 미친 듯이 게임을 하기. 그것도 실시간으로 이리저리 분석까지 해 가면서. 생각만 해도 손가락이 저릿저릿 아파졌다.
퍼클을 도전하려면 해온 혼자서 오더를 내리는 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나마 대규모 업데이트 전 정모를 다녀와서 다행이었다.
서로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규모 업데이트 날짜가 주말이라는 점이었다. 일 못하기로 소문난 주제에 운영자는 유독 업데이트 요일만큼은 모두에게 편하게 맞춰 주었다.
아무래도 유저 층이 전부 회사원 나이대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공성전도 이렇게 해 주면 참 좋으련만.
“토요일. 토요일이라.”
문제는 그 주의 스케줄이었다. 수빈의 회사가 주말에도 사람을 불러내고야 마는 악덕 블랙 기업은 아니었다만,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을 주에 한참 주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될 것 같았다.
하필이면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이끌고 가야 하는 위치였다. 관련 업무 경력도 꽤 있고, 작년에도 했었고.
자칫하면 주중에는 필수적으로 야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죽었다. 생각하고 미친 듯이 해야 하는 걸까?’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수빈은 절대 게임과 회사, 둘 다 놓고 싶지 않았다. 둘 다 최대한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기 위해서는 건강을 잠깐 동안 놓아줘야겠지.
최강 길드
파도다들 영상 보셨어여?
파도우리 퍼클 이번에 따내는 게 목표인 거 아시져??
파도못 따면 명예 실추로 인해 저 눈물 질질 흘리면서 살 거임요
마틀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갑수이번에 근데 퍼클 따긴 해야 햌ㅋㅋㅋㅋㅋㅋ
길갑수우리 네임드 가야지;; 우리 1등 먹어야지
콩콩콩콩콩솔직히 이렇게 게임 잘하는 인간들 다 모아두고 퍼클 못 하면 그것도 나름 문제가 있긴 하죠 ㅎㅎ
샤벳트글킨 하지……;; 우리 비벼볼 만해 진짜~
이성이상우리 이번에 퍼클 못 따면 길드 없애는 방향이 올바르다고 생각해 난.
“다들 심각한데, 게임 중독 치료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복잡한 심경으로 아까부터 부르르 떨어 대던 휴대폰을 확인한 수빈은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역시나 다들 트레일러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본 모양이었다.
최강 길드
왹져웩웩이번에 운영자 칼 갈았다고 ㅠㅠ 저 눈물 나자나요 진쨔 ㅋㅋㅋㅋㅋㅋ
길갑수이번 퍼클 좀 빡셀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
샤벳트적어도 5일은 넘지 않을까 싶은데 ㅋㅋㅋㅋㅋㅋ
샤벳트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깨는 게 맞는 듯?
이성이상나 다음날 아파서 연차 낼 수도 있어 진짜;;
이성이상그치만 괜찮아. 연차 남은 거 많아서ㅎ
파도직장인 불쌍하다. 난 돈 많은 백순데.
이성이상이만 죽어 줬음 해 ㅎㅎ
길갑수이 세상을 떠나 줬음 해 ㅎㅎ
“재수 없다, 진짜.”
사람 얼굴 직접 마주하면 얼굴 보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게임이나 온라인에서는 아주 잘도 날아다녔다.
최강 길드
파도돈 많은 백수 부러우면
파도아이쿠! 다음 생을 노려 바여~~!!
정말 데앤데 회사에서 어떤 마음을 굳게 먹은 건지, 대규모 업데이트에 관한 영상은 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정해진 날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후 4시만 되면 무작위로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는 식이었다. 롱폼부터 숏폼까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대체 난이도 설정을 어떻게 해 놨길래 이러는지 아예 대놓고 보스의 공격 패턴을 보여 주는 짧은 영상도 있었고, ‘혼돈은 영원하다’라는 이상한 자막만 적힌 5초짜리 영상도 있었다.
덕분에 채팅방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친 듯이 불타올랐다.
최강 길드
콩콩콩콩콩영상 떴던데 아예 공격을 보여 주던데여??
콩콩콩콩콩영상에 나온 것만 보면 그냥 어둠 군주 카이론이랑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샤벳트ㄴㄴ그럴 리가 없음. 카이론은 이것보다 데미지가 약했는데? 지금 이거 걍 구라일 수도 있어여
샤벳트약간 사람들한테 우리 이런 거 준비했어요 하고 완전 다른 거 가지고 올 수도?
길갑수테마가 혼돈이라서 어둠 군주 계열은 맞는 것 같긴 한데
길갑수보스 옆에 있는 이상한 식물 같은 거
길갑수생긴 게 누가 봐도 미니미들 튀어나오게 생겼는데;;
길갑수보스는 이번에 적어도 3페이즈까지는 있을지도
길갑수아니면 2페이즈가 엄청 길 수도 있을 것 같음. 다들 장비 진짜 최상으로 맞춰서 아이템도 한가득 가져가야 될 것 같은데?
마틀다ㅇㅇ 그건 확정이져 이번 영상에서 보여 준 패턴은 진짜 극히 일부에 불과할 듯
이성이상우리 저 검은색 줄 같은 거 맞으면 그냥 즉사라고 봐야 될 듯
이성이상즉사기 너무 많은 거 아냐? 힐러 둘 죽으면 답 없을 것 같은데;;
길갑수힐만 넣다가는 다 죽는데 딜 넣다가 힐 놓쳐도 다 죽을 듯
마틀다본격 힐러 수난 시대. 운영자가 미쳤어요!!!
파도혼돈은 계속된다, 이러는 거 보니까.
파도보스 여럿일 수도 있어요.
파도약간 던전 딱히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형식의 레이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파도의외로 저건 1차 보스고
파도2차는 업데이트 전날이나 그쯤 공개해 줄 것 같은데 ㅎㅎ
마틀다;; 망상 자제 좀
마틀다살다 살다 그렇게 끔찍한 망상은 처음 들어봐서 화가 나는데
‘망상은……아니지.’
해온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다들 까먹고 있는 듯싶었지만
최강 길드
한 번 그랬던 적이 있긴 하죠
지금은 패치해서 바꿨지만
전에 한 번 저런 형태의 말도 안 되는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된 적이 있었으니까.
두 번째 대규모 업데이트 때, 사전 안내에서는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었다.
여타 다른 게임들처럼 비슷한 내용이었고, 지금처럼 엄청난 트레일러 영상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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