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물질은 나였다 5
이물질은 나였다 5
이물질은 나였다 5
이물질은 나였다 5
목차
21.
22.
23.
24.
이물질은 나였다 5
21.



에드윈의 삐딱한 웃음에 나는 조금 멍해졌다. 그와 동시에 우리 자세가 퍽 묘하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에드윈의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와 그런 내 등을 꽉 끌어안고 있는 그. 아직 수업이 끝나기 전이라 망정이지, 지금이야말로 누가 보면 이상한 오해하기 딱 좋았다.
“외, 외간 남자라니…….”
나는 얼른 그의 허리에 감고 있던 팔을 풀었다.
“조슈아가 어떻게 외간 남자…….”
그리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려 했다.
‘어?’
그런데 왜인지, 등에 얹어져 있는 팔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하여 허둥지둥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토다다닥!
“칫.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라며!”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확 잡아당겼다.
“어, 어!”
덕분에 나는 에드윈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형도 떨어져! 벨제 누나랑 내가 먼저 얘기 중이었거든?!”
나를 빼 준 누군가, 조쉬가 내 어깨를 감싸안은 채 앙칼지게 소리쳤다. 부지불식간에 나를 놓치고 빈손이 된 에드윈이 눈썹을 사납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곧장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게, 오랜만에 형을 봤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아!”
주먹이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전적이 있어선지 조쉬가 나를 놓고 얼른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에, 에드윈!”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그 앞을 가로막았다. 조쉬가 부쩍 건강해지면서 둘 사이도 평범한 형제처럼 변화한 지 오래였다. 자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꽤 거칠어졌단 소리다.
‘둘이 성격이 좀 안 맞긴 하지…….’
평소라면 그냥 내버려뒀겠지만, 그래도 오늘 조쉬는 꽤 큰 고초를 치른 상황. 그렇기에 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에드윈을 찌릿 노려보았다.
“모처럼 다 같이 만났는데, 왜 시비부터 거는 거야? 성격 이상해졌어.”
“허?”
“당장 둘이 포옹하고 재회 인사해. 쓸데없는 걸로 툭툭거리지 말고.”
두 사람을 삿대질하며 포옹하길 종용하자, 에드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조슈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눈살을 와작 찌푸렸다.
“빨리! 공작님한테 다 이른다?!”
눈을 부릅뜨고 엄포를 늘어놓자, 그제야 형제가 미적거리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쳇.”
에드윈이 두 팔을 벌리고 썩은 표정으로 턱을 까딱이자, 조슈아가 정말 마지못해서 한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안겼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힘껏 박수했다.
“귀환 축하해, 에디!”

***

아쉽게도, 금방 다음 수업 종이 울렸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우리는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와 조쉬는 마저 수업을 들으러 갔고, 에드윈은 토벌대의 단장으로서 귀환 보고를 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들렀다고 했다.
우리가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은, 공작의 퇴궁 후 다 함께 저녁 만찬을 들 때였다.
“들자꾸나.”
공작의 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됐다. 공작가의 밥은 매번 황홀했지만, 주방장 아저씨가 평소보다 힘을 쓴 건지 식탁 위가 몹시 화려했다.
‘공작님은 에드윈이 돌아올 걸 미리 알고 계셨나 봐.’
그에 대한 서운함보단 안도감이 더 컸다. 솔직히 이른 아침,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을 들었을 땐 혹시 아카데미의 일을 알고 추궁하려는 건가 싶어 가슴이 덜컹했다. 그런데 그것 때문이 아니라 에드윈 무사 귀환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그렇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갖가지 접시들을 보며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할 때였다.
“조쉬, 벨제.”
거짓말처럼 공작이 우리를 불렀다. 마주 보고 앉아 있던 조슈아와 나는 거의 동시에 어깨를 움찔 떨며 고개를 들었다.
“네, 네?”
“부, 부르셨어요, 아버지?”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공작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아카데미에서 일이 있었다지.”
의미심장한 공작의 말에 조슈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안 그래도 공작에게 들키면 아카데미를 다니지 못하게 될까 전전긍긍하던 그가 아니던가.
모든 것을 아는 듯한 공작의 날카로운 눈매가 내 오금까지 저리게 만들었다. 나는 얼어붙은 조슈아 대신 얼른 입을 열었다.
“그, 그! 일이 좀 있긴 했지만…… 별일은 아니고, 신경 쓰실 일 없게 잘 해결했습니다!”
잔뜩 기합이 든 목소리로 외치자 공작이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에드윈 또한 무슨 소리냔 듯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망했다…….’
한순간 내게 꽂힌 시선에 암담함을 느낄 적이었다. 또 한 번 포도주를 들이켠 공작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추궁했다.
“클라우드 대부인을 호출했다고.”
“아, 그, 그게요, 공작님…… 대부인은, 그러니까…….”
“서운하구나.”
“……예?”
“네 법적 보호자는 나인데, 왜 애먼 남을 호출해서 네 후견인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지?”
“어…….”
“혹, 내가 창피한 것이냐?”
‘창피……?’
나는 예상치도 못한 공작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정작 질문한 당사자는 답을 듣지도 않은 채 씁쓸한 얼굴로 단정 지었다.
“그렇군……. 요즘 애들의 눈으로 볼 때 내 모습이 좀 고리타분해 보일 법도 하구나.”
“…….”
“집사에게 말해, 옷장을 한번 싹 뒤엎는 게…….”
“아, 아뇨!”
나는 공작이 정말 그 말을 실행하기 전, 번뜩 외쳤다.
“차, 창피하다뇨! 공작님, 절대 안 창피하고, 안 고리타분하세요! 절. 대!”
“그럼 왜 클라우드 대부인이 내게 네 대모가 됐으니 그만 후원 서류를 넘기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냐.”
이어지는 공작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경악했다.
‘아니, 그 망할 할머니! 무슨 짓을 한 거야!’
버벅대는 사이 그가 심각한 눈빛으로 덧붙였다.
“보호자로서 아카데미에 참석하는 자리에도 초청해 주지 않고. 너희 둘 다 말이다.”
“초, 초청, 그런 거 아니었어요!”
나와 조쉬를 번갈아 보며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는 공작의 모습에 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아차 싶어 황급히 목소리를 죽였다.
“그…… 대부인은, 아무래도 공작님이 아카데미에 오시기는 좀 어려우실 것 같아서 공작님 대리로 부탁드린 거예요.”
“왜지?”
“네?”
“왜 내가 가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느냐?”
의아하다는 공작의 표정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오늘 중요한 회의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까짓 것, 미루면 그만이지.”
공작이 차갑게 비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아니면 나중에 서면으로 보고받거나.”
“아…… 그런 방법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나는 혼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섭섭하구나.”
그러자 공작이 또 한 번 툭 같은 소릴 내뱉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조금도 생각지 못해서, 나는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슬쩍 조슈아를 보니 그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분명 알면 혼내실 줄 알았는데…….’
물론 다 돌려받긴 했지만, 가문의 재산을 무력하게 빼앗긴 조쉬는 한 소리 들을 법했다. 공작은 두 아들에게 제법 엄격한 편이고 칼리오스의 긍지를 몹시 중요시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섭섭하다니…….’
다시 생각해 보니 공작의 입장으로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 생판 남이 우리 둘의 보호자 행세를 했고, 뒤늦게 그 소식을 접했으니 말이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공작님.”
한결 차분해진 나는 먼저 그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공작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저와 조슈아 둘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또 극성맞은 부인들을 상대하는 일을 겪게 만들기 싫었어요.”
물론 공작이 아는 것을 조슈아가 두려워해서란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나는 신중히 공작의 섭섭함을 달랠 말들을 골랐다.
“그 후에 귀부인들이 떠들고 다닐 말들이야 뻔하잖아요. 괜히 칼리오스의 가주가 자녀 일로 아카데미까지 쫓아온다는 구설수가 생기는 것도 싫고…….”
“…….”
“무엇보다, 공작님께 아카데미에 입학하자마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로 보이기 싫었어요.”
나는 말없이 나를 응시하는 공작에게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부모님께 잘못을 들키고 싶어 하는 자식은 어디에도 없잖아요.”
조슈아의 입장을 포함한 중의적인 말이었는데. 왜인지 딱딱했던 공작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온화해졌다.
“……음.”
고개를 끄덕인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벨제, 너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들었는데. 원인은 따로 있지 않으냐.”
“히끅.”
슬쩍 제게 향해진 공작의 곁눈질에 조쉬가 티 나게 몸을 움찔거렸다. 에둘렀지만 질타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저희는 가족이니까, 조슈아 문제는 곧 제 문제기도 하죠!”
나는 어색한 미소를 걸친 채 황급히 공작의 주의를 내게로 돌렸다.
“그리고, 솔직히 저도 잘한 거 없어요.”
“음?”
공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 생각에, 그는 대략적인 정황만 알 뿐 오늘 총학장실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모를 가능성이 컸다.
왜냐하면 일단 목격자가 몹시 드물었고, 대부인이 알려 줬다 한들 편지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적중했다.
“곰곰도리로 걔네 다 두들겨 패서 불려 간 거거든요.”
“호오.”
한껏 짓궂은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속삭이자, 공작이 감탄한 얼굴로 손뼉을 쳤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범인 댄버스 캠벨을 기절시킨 건 조쉬예요.”
“제법이구나, 조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