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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왕 카르나크 18권
임경배 정통판타지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새로운 무왕
전황(戰況)
2차 제도 공방전
속은 자와 속이는 자
죽음의 구원자
Epilogue
<작가의 말>
1
새로운 무왕
빛의 궤적이 어지럽게 뒤엉켜 커다란 파괴의 꽃을 피운다.
-크로테리안 소드, 만발하는 장미.
수십 줄기의 참격이 드렐과 디오스의 사방을 에워쌌다. 그렇게 둘의 움직임을 잠시 봉한 뒤 벨티아가 몸을 빼냈다.
“카르나크!”
새빨개진 얼굴로 계속 땅을 박차며 카르나크에게로 달려간다.
드렐과 디오스는 그녀의 뒤를 쫓지 않았다. 오히려 카르나크를 쫓아가게 내버려 두고 반대쪽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움직이는군요.]
[우리도 우리 할 일을 하세.]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베어 가며 벨티아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카르나크도 좌익의 병사들을 운용해 그녀의 앞을 막게 하며 계속 물러났다.
얼핏 일반 병사들을 고기 방패로 사용하는 잔혹한 수법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없었다.
연합군 좌익의 병력 대부분은 황혼교, 그중에서도 언데드 병력인 것이다.
“가라, 나의 종들이여, 그 몸이 부서질 때까지 싸워라.”
카르나크의 언령에 지배당한 언데드들이 몸을 돌보지 않고 벨티아에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박살이 나 흩어졌다.
외곽에선 인간 병사들이 화살을 날리며 안전한 거리에서 최대한 그녀의 발을 묶기 위해 애쓴다.
그러는 동안 세 타락 교황도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물의 뱀과 토석 거인과 불꽃의 새가 거체를 이끌고 전장을 이동한다. 그 앞을 다른 이들이 막아선다.
물의 뱀이 된 발레리아의 앞을 막은 것은 바로스와 밀리아였다.
은빛의 투기검을 겨누며 바로스가 싱글벙글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발레리아. 그쪽은 날 모르겠지만.”
“내가 왜 그대를 모른단 말이냐? 그자의 심복 주제에.”
“응, 모르는 거 맞네.”
레번과 라피셀, 알리우스는 버네빌을 맡았다. 하토바 교단을 멸망시킨 그를 향해 알리우스가 분노를 터트렸다.
“교황을 자처하는 가짜 놈! 이번이야말로 여신의 벌을 내리겠다!”
토석 거인으로부터 싸늘한 비웃음이 돌아왔다.
“가짜라, 이 힘을 보고도 그런 말을 입에 담느냐?”
드렐과 디오스는 도중에 벨티아를 쫓는 걸 관두고 스플렌디아에게로 향했다.
이글거리는 불의 날개를 보며 디오스가 혀를 내둘렀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여신교의 강신술인가?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의외란 표정으로 드렐이 디오스를 돌아보았다.
“정말입니까?”
무려 대마법사의 경지에까지 올랐던 그가 아닌가? 당연히 익숙할 줄 알았다.
디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여신교의 교황들이 저런 짓까지 해야 할 만큼 세상이 어지럽지 않았다네.”
벨티아에게로 향하던 세 타락 교황의 발길이 모두 막혔다. 그 틈을 타 카르나크도 계속해 물러섰다.
그런 그를 향해 붉은 갑주의 여기사가 달려오고 있었다.
“카르나크 님!”
노을의 검을 휘두르며 적진을 꿰뚫는 세라티였다.
다가오는 그녀를 확인한 카르나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군.’
* * *
카르나크가 세운 계획은 이것이었다.
우선 그가 먼저 벨티아를 도발해 전장 안쪽으로 유인한다. 그리하면 세 타락 교황도 그녀를 버리지 못할 테니 어쩔 수 없이 참전할 것이다. 이들을 전장 곳곳에 흩어 놓고 각개격파 한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바로 적절하게 전력을 나누는 것이었다.
시프라스의 무왕은 황혼의 성녀가 쓰러뜨려야 한다. 그래야 그녀의 명성이 온 대륙을 진동시키고 은총 역시 더더욱 강해질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세라티의 능력으로 벨티아를 쓰러뜨릴 수 있느냐인데 솔직히 좀 버겁긴 했다.
아무리 은총의 힘으로 강해졌다 해도 상대는 무려 무왕이니까.
하지만 그라테리아가 마법으로 보조하고, 카르나크까지 합류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세 타락 교황은 남은 일행이 하나씩 맡는다.
누가 누굴 상대하게 될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테니 최대한 전력을 비슷하게 맞췄다.
바로스와 밀리아.
드렐과 디오스.
레번과 라피셀, 알리우스.
이들이 세 타락 교황을 하나씩 맡아서 처리하는 동안, 카르나크는 세라티와 합류해 벨티아를 상대한다. 이리하면 황혼의 성녀를 최대한 드러내면서 벨티아와 세 타락 교황의 도주도 막을 수 있다.
‘아직까진 잘 풀리고 있어.’
결국 카르나크와 세라티가 전장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교차하며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세라티 뒤로 숨는 카르나크의 행태에 벨티아가 치를 떨었다.
“어디까지 도망칠 셈이냐, 이 간악한 놈!”
“간악하다는 점은 차마 부인 못 하겠지만…….”
쓴웃음을 머금은 채 세라티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간 당신이 할 소린 아니에요!”
검붉은 투기검이 이글거리는 불길을 내뿜었다. 벨티아의 검 역시 황금의 섬광을 뿜어 냈다.
두 줄기 검격이 허공에서 교차해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 * *
어지간한 성벽보다도 거대한 토석 거인이 걸음을 옮긴다.
“이놈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대지가 흔들리며 구덩이가 깊게 파인다.
“짓뭉개 주마!”
쿠웅!
내리찍는 거인의 발을 간신히 피한 알리우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으으…….’
시야를 가득 메우는 토석 거인의 위용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고작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인데도 당하는 입장에선 마치 산악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저게 정말 우리 교단의 비전이란 말인가?’
반면 레번과 라피셀은 태연했다.
[확실히 제덱스 때보단 큰 것 같네. 검은 태양이라고 했던가, 그땐?]
[그래도 용 할아버지 원래 몸보단 작은데요.]
[거기랑 비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애초에 급이 다른데.]
그러테리아 덕분에 라피셀도 카르나크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즉, 드디어 그녀도 ‘권속 전용 비밀 마법 전언 멤버’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땐 라피셀도 꽤나 배신감에 떨었다.
-세상에! 그럼 여태까지 저만 빼고 다들 떠들고 있었던 거예요, 카르나크 님?
-미, 미안.
-너무해요! 전 다들 굉장히 심각하게 뭔가를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미안하다니까,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랬지.
다시는 그녀를 따돌리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 내고 나서야 라피셀은 카르나크를 용서했다. 하긴, 속사정을 알고 보면 내내 숨긴 이유도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버네빌을 올려다보며 레번이 재차 전언을 날렸다.
[온다, 라피셀!]
[네!]
중저음의 울림과 함께 거인이 된 버네빌이 오른팔을 길게 휘둘렀다.
“고오오오오!”
은빛 오러로 몸을 감싼 채 두 사람이 몸을 날렸다.
레번이 좌측, 라피셀이 우측으로 뛰며 투기검을 길게 늘인다. 채찍 같은 두 줄기의 은검기가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인의 피부를 연신 때린다.
콰콰콰콰쾅!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버네빌의 전신에서 폭발이 이어졌다.
하지만 파편만 튈 뿐 본체엔 별 영향이 없었다. 역시 상대가 너무 크고 너무 단단했다.
내려친 팔을 거둔 토석 거인이 포효를 터트렸다.
“어림없다, 이놈들!”
거인의 전신으로부터 수많은 바위 조각들이 돋아나 허공으로 솟구친다.
이내 무수한 파편들이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저히 피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촘촘한 폭격이었다.
그럼에도 레번과 라피셀은 전부 피해 냈다.
심지어 레번은 그 와중에 버네빌의 말투를 따라 하며 조롱하는 여유마저 보인다.
“어림없다, 이 양반아!”
너무 카르나크를 오래 따라다닌 탓일까?
비아냥대며 상대의 심기를 흐트러뜨리는 수법이 아주 몸에 익어 버린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또다시 반격.
-델피아드 검투술, 제왕의 일격!
빛의 섬광이 토석 거인의 어깨를 강타했다. 격통과 함께 바위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크으윽!”
예상 밖의 충격에 버네빌은 당황했다.
‘이 시절의 레번 경이 이 정도였나?’
눈앞의 저 청년이 훗날 델피아드의 무왕이 된다는 사실은 버네빌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당장 테스라낙의 권속 중에 미래 레번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아는 레번 스트라우스는 고작 20대 초반에 저런 무위를 보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 나이엔 오러 유저조차 아니었다.
반면 지금의 레번은 무려 실버 나이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전생과 비교하면 거의 10년 이상 빠른 셈이었다.
라피셀은 차라리 이해가 간다. 그녀의 영혼은 엄연히 시프라스의 무왕, 육체가 어려지고 기억을 잃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레번은 순수하게 젊은 시절의 영혼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빨리 강해졌다고?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실은 레번도 꽤나 신기해하고 있었다.
‘내가 제법 강해지긴 했구나.’
내내 일행의 수준 쫓아가느라 벅차다고만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이 나이에 오를 수 없는 경지에까지 올라 버렸다.
아버지인 갤러드나 천재 중의 천재였던 형, 에밀 스트라우스도 20대 초중반에 은검기를 터득하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알고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