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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왕 카르나크 11권
임경배 정통판타지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스트라우스 공성전
심야의 암살자
델피아드의 무왕
광익光翼의 천사
손안의 보물
1
스트라우스 공성전
에밀 스트라우스의 반역은 실로 노골적이었다.
당장 에트리얼 왕가에 보낸 선언문부터가 그랬다.
에트리얼 왕국에 고한다. 스트라우스의 충성을 받고 싶다면 진실된 신, 테스라낙을 섬길 것을 천명하라. 그러지 아니한다면, 우리 역시 올바른 왕을 옹립할 것이다.
사람들은 어이없어했다.
무왕 갤러드는 물론 두려운 존재이고, 스트라우스 공작가 역시 또 하나의 왕국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세력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진짜 왕국은 아니다.
또한 검은 신을 섬긴다고 천명한 시점에서 여신교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만다.
고작 가문 하나가 온 세상을 모조리 적으로 삼은 것이다.
-아니, 진짜 미쳤나?
-왜 저런 짓을 저지르는 거지?
하나 이는 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관점일 뿐.
각국의 정부와 여신교단은 스트라우스의 저 행위가 생각보다 굉장히 까다로움을 깨달았다.
원칙적으로 이런 경우 상황을 제압하는 건 에트리얼 왕국의 몫이다.
문제는 에트리얼 최대의 군사력이 바로 스트라우스 공작가라는 점이었다.
왕국 최강의 검과 방패가 자국에 칼날을 돌렸으니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딱히 에트리얼 왕가가 무능해서라고 탓할 수만도 없었다.
애초에 왕가는 오래전부터 공작가와 혈연으로 굳게 맺어진 사이다.
역대 왕비는 항상 스트라우스 가문 출신이었고 스트라우스의 안주인은 항상 에트리얼의 공주였으니, 둘은 거의 한집안이나 다름없다.
간혹 왕가의 후계자 자리가 비었을 땐 스트라우스의 방계가 왕위에 오른 적도 있을 정도였다.
왜 직계가 왕위에 안 올랐느냐고?
스트라우스의 직계는 이미 왕이었으니까.
무의 극에 도달한 자, 무왕.
왕위에 오른다는 건 왕 노릇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 하느라 무의 길을 등한시하는 스트라우스의 직계가 여태 단 1명도 없었을 뿐이다.
하여튼 이런 이유로 현재 에트리얼 왕국엔 스트라우스의 반역을 막을 힘이 없었다.
그러니 타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이 역시 상황이 영 여의치 않았다.
-스트라우스 가문이 제국과 손잡고 있는 걸까요, 혹시?
-설마요. 제국이 검은 신의 교단을 허락했을 리가…….
-그렇지 않다면 왜 저들이 저런 움직임을 보인단 말입니까?
스트라우스의 반역에 발맞춰 제국 서부 주둔군이 일제히 7왕국 연합과의 국경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핏 제국군이 제국 내에서 이동하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하냐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전쟁 중인 사이가 아닌 이상,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는 행위는 반쯤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7왕국 연합으로서는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덕분에 유스틸 왕국과 아트링겐 왕국의 전력은 발이 묶여 버렸다.
그렇다고 다른 왕국에서 군사력을 빼 오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스트라우스 가문에 병력을 투입하면 그만큼 후방 전력이 비게 된다.
그런데 저들은 검은 신을 섬기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후방 전력이 부실해졌을 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뻔했다.
독버섯처럼 숨어 있던 사교도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겠지.
이렇듯 오랫동안 검은 신의 교단을 상대해 온 각국은 일찌감치 놈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대책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스트라우스 토벌에 너무 많은 전력을 할애할 순 없다.
제국, 그리고 사교도의 준동에도 대비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오합지졸로 스트라우스를 상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저들은 일국에 달하는 막대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기존의 병력 배치에선 한발 떨어져 있는 특수부대가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7왕국은 이미 그런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각국의 킹스 오더였다.
킹스 오더는 기본적으로 비상 전력에 속하는 별동대 개념이다. 비상 전력을 비상시에 투입하는 것이 참으로 합당하지 않겠는가?
7왕국 연합의 킹스 오더 중 비번에 해당하는 이들이 토벌군으로 차출되었다.
덕분에 상당수의 오러 유저들과 마법사들이 병력을 이끌고 모이게 되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들을 과연 누가 이끄느냐는 것.
가장 확실한 명분을 지닌 이는 역시 스트라우스 공작가의 두 번째 후계자, 레번 스트라우스다.
하지만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일천한 그를 일군의 총사령관으로 앉힐 순 없다.
군대의 지휘는 보다 뛰어난, 그래서 모두가 인정할 만한 이가 맡아야 한다.
문제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기존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모인 킹스 오더 중 1명을 뽑아 지휘를 맡길 수도 없었다.
7왕국 전역에서 모인 이들이었다. 은연중 서로 경쟁하는 상대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한데 아우르려면 국경을 초월해 인정을 받는, 상당히 명성이 높은 이가 지휘를 맡아야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저 명성 높은 이가 현재 맡은 일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마저 따라붙지.
“……이런 이유로 당신이 토벌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여신교단이 들고 온 제안에 카르나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네? 제가요?”
처음엔 거절하려 했다.
물론 명성 측면에서 자신이 다른 킹스 오더들보다 월등하다는 건 카르나크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은가?
내용물이야 어찌 되었건 육체 나이는 이제 고작 22살이다. 이런 새파란 애송이 말을 다른 킹스 오더들이 들을 리가…….
“다들 불만 없던데요.”
일단 명분이 확실했다.
“레번 스트라우스 경이 카르나크 공의 기사가 아닙니까?”
경력도 충분했다.
“카르나크 경이 하르톨 시티에서 시민들을 구한 일,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카르나크가 마법사란 점도 현 상황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군대의 지휘관은 전사가 담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마법사는 어디까지나 참모의 역할이지 지휘를 맡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스트라우스 토벌대는 각국의 킹스 오더가 모인 연합군이다. 그리고 킹스 오더는 직무의 특성상, 마법사가 대장을 맡고 오러 유저가 부관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만큼은 마법사의 지휘를 받는 상황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카르나크 경만 한 적임자가 없습니다.”
여신교단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미약하나마 전력을 다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카르나크 제스트라드 남작과 레번 스트라우스를 주축으로 스트라우스 토벌군이 창설되었다.
병력 4,500에 기사 300, 오러 유저가 20에 마법병단 40명으로 이루어진 대군이었다.
세인들은 이들이 충분히 에밀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스트라우스는 물론 강대한 가문이지만 갤러드가 부재중이다. 유폐되어 있는 상태니까.
그리고 에밀이 비록 나이에 비해 엄청난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 봤자 아직 자색급의 경지.
무왕이 없는 스트라우스 반란군은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이것이 착각임을 깨달은 것은 토벌군이 전투를 시작한 지 채 사흘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 * *
원래 스트라우스 가문의 본가는 에트리얼 왕국 중부, 켈리안트 숲 외곽의 평야에 위치해 있었다.
공작가의 대저택답게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상한 건축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아함과 고상함이라는 수식어가 내포하는 의미 대부분이 그렇듯, 결코 전투에 적합한 곳이라 할 순 없었다.
저택은 어디까지나 사교를 위한 장소.
아무리 사교계가 창칼을 쥐지 않은 전쟁터라는 표현이 있다지만, 그래도 진짜 창과 칼을 들고 싸우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에밀 스트라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가문의 전력을 보다 방어에 유리한 곳으로 옮겼다.
델피아드 지방의 중앙 산맥 다마트에 위치한 거대한 성채, 스트라우스.
위대한 초대 무왕의 이름을 그대로 쓴 이곳은 스트라우스가 아직 공작가가 되기 전의 본거지이자 가문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강력하면서도 웅장한 방어 요새였다.
성문과 높은 경사로 너머,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두꺼운 성벽이 산기슭 전체를 왕관처럼 두른다.
마을과 들판을 한눈에 조망하는 거대한 탑은 강철만큼이나 단단한 돌기둥으로 굳게 세워져 있다.
성채 전체가 실로 간결하면서도 효율적인 구조물의 집합체였다.
세인들 중엔 이곳이라면 병사 1명이 100명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진지하게 내는 자도 있었다.
그 웅장한 성채가 지금 전투의 불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으아아아!”
“올라가라!”
“물러서지 마라!”
전의를 고무시키는 용맹한 함성이 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높은 성벽을 넘기 위해 사다리를 걸고 필사적으로 오른다.
물론 적들도 가만 당해 줄 리는 없었다.
계속해서 바위와 화살이 사다리를 오르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를 막기 위해 마법사들이 날아올랐다.
비상 마법으로 허공에 안착한 뒤 저마다 주문을 외운다.
“파이어볼!”
“아이스 애로우!”
“익스플로전!”
화염구가 연신 터지고 얼음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고 성벽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피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현재 스트라우스의 성벽을 지키는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으어어…….”
“우어…….”
신음을 흘리며 좀비들이 바위를 들어 성벽 아래로 던져 댔다.
쿵! 쿠쿵!
바위에 머리가 깨진 병사들이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크억!”
“으아악!”
놈들의 행패를 막기 위해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 비를 날렸다. 온갖 화살들이 썩은 살갗에 우수수 박혔다.
물론, 좀비는 개의치 않았다.
다른 쪽 성벽 위에서는 활을 든 스켈레톤이 나타나 화살을 쏘아 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