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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세가 전생랭커 2권
산보 신무협 장편소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
1장
一
“크윽!”
방 안에 고통에 찬 신음이 울려 퍼졌다.
백운각주 도진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 운기조식에 열중하고 있었다.
“후우.”
잠시 후, 내기를 모든 혈도 곳곳에 순환시키는 대주천을 끝마친 도진우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한데 보통 무인이 운기토납을 끝마치면 외견에 활력이 내비쳐야 하건만, 도진우의 낯빛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고통이 갈수록 심해지는군.’
파랗게 질린 얼굴로 도진우가 시선을 내리자 자신의 손이 고뿔에 걸린 환자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침통함이 내려앉았다.
그에게 원인 모를 내상이 생겨난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내공을 일으키는 것이 힘들어짐과 동시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남몰래 백방으로 치료 방법을 찾았지만, 결국 원인조차 찾지 못했다.
그저 주군을 잃은 심병으로 인해 주화입마가 든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자칫 자신의 상황이 세간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백운표국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임을 익히 알기에 그는 이것을 비밀로 함구하고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국주님. 조금만 더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그가 먼저 떠난 평생의 주군에게 간절한 바람을 빌어 보던 그때.
문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호운각주 노대웅이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품새를 단정히 정돈한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들어오시지요.”
말이 끝나자마자 노대웅이 거대한 풍채를 드러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도진우의 안색을 확인하곤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노대웅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을 꺼냈다.
“더 안 좋아지셨군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노대웅은 표국 내에서 도진우의 이상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도진우가 애써 밝게 웃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허허, 수련에 열중하느라 저녁 끼니를 걸렀더니 그런 것 같습니다.”
“……하아, 그때 너무 무리하신 탓입니다.”
노대웅이 말하는 그때란 금부흑웅과의 싸움이 있었던 시점을 말하는 것이었다.
완치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최소한의 힘만을 사용하라는 노대웅의 당부에도 도진우는 유신운을 지키기 위해 모든 진력을 끌어 올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 도진우의 몸은 악화일로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노대웅의 말에도 도진우는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일말의 후회도 없어 보였다.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었다고, 그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노대웅이 제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휴, 탓하여 무엇 하겠는가. 필히 나 또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도진우가 슬며시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부각주가 표행을 떠난 지도 벌써 사흘째군요.”
노대웅은 금세 그런 도진우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해 주며 놓여 있던 의자에 걸터앉았다.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하긴 일 공자가 도통 자신을 만나주질 않는다며 칭얼대는 투정을 안 들은 지 딱 그 정도가 된 것 같군요.”
부각주란 노대웅의 아들인 노건호를 일컫는 것이었다. 그는 사흘 전 표행단을 꾸려 의뢰인과 함께 출타 중인 상태였다.
“걱정되지는 않으십니까?”
“걱정은요. 이제 녀석도 홀로 큰 표행을 이끌어 보아야 할 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무심한 듯 보이는 말투와는 달리 노대웅의 눈빛에는 자그마한 염려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노건호의 무위는 각주들을 제한다면 백운표국에서 가장 뛰어났지만, 자식을 향한 아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또르르.
맞은편에 자리 잡은 도진우가 노대웅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도착지까지의 거리가 멀다고는 하나, 정기적으로 해 오던 의뢰이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크흠, 곧 무탈하게 돌아오겠지요. 한데…….”
말을 멈춘 노대웅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그가 도진우와 시선을 맞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결정은 하신 겁니까?”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백운표국의 후계자로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했냐는 것이었다.
도진우의 대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역시.’
노대웅의 표정이 사뭇 복잡해졌다.
침묵만으로도 그는 도진우의 대답을 유추할 수 있었다.
금가장과의 사건이 있은 후로 도진우는 달라졌다. 중립의 위치에서 벗어나 줄곧 유신운에게 힘을 실어 주는 행동과 언행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백운표국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그의 행보에 백운표국의 식구들은 더욱 흔들리고 있었다.
“이 공자의 심성과 자질이 부족함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 공자에 대한 확신 또한 서지 않습니다…….”
노대웅의 말에 도진우가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도 노대웅이 굳이 말하지 않고 생략한 뒷말을 알고 있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의 일 공자를 생각해 본다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노대웅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진우는 조용히 고심에 잠겼다.
‘……게다가 힘이 없는 자는 결코 자신의 권좌를 지킬 수 없음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실 도진우라고 왜 모르겠는가.
유신운과 유진상의 대결이 이미 승패가 나 있는 싸움이라는 것을 말이다.
간부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미 적운각이 지닌 힘만으로도 나머지 세 개의 각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격차는 많이 벌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금까지 힘으로 자리에 오르지 않은 것은 오로지 정당한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것보다 더욱 힘든 사투였다.
하지만.
‘……어찌하여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는 것인가.’
도진우는 유신운의 눈빛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하나가 자꾸만 결정을 내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청운전의 회의에서.
금부흑웅과의 전투에서.
우연히 볼 수 있었던 유신운의 눈빛은 그에게 한 사람을 연상케 만들었다.
그건 바로.
유호열.
너무도 그리운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주군이었다.
방 안에 침묵이 길어지던 찰나, 노대웅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적운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각주.”
그런데 그 순간.
벌컥.
느닷없이 닫혀 있던 방문이 활짝 열렸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불청객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오, 잘됐군.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어.”
“……?”
“일 공자?”
유신운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하더니, 유신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두 사람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일 공자를 뵙습니다.”
“오셨습니까. 기별을 하고 오셨으면 미리 다과라도 준비를 하였을 것을.”
먼저 정신을 차린 노대웅이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인사를 건넸고, 도진우 또한 싱긋 웃어 보이며 유신운을 반겼다.
하지만 도진우는 웃는 얼굴 뒤편에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혹여 자신의 병환이 들킬까 혈색을 찾기 위해 무리해서 기운을 끌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어느새 외견으로는 조금의 티도 나지 않고 있었다.
분명 그럴 텐데.
‘……뭐지?’
유신운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도진우는 당황하여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유신운이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괜찮소, 다과는 무슨. 단 것은 이제 영원히 사절이오.”
“……허허, 그러십니까. 자, 상석으로 자리하시지요.”
도진우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유신운을 자리로 인도했다.
한데 무슨 이유에선가 노대웅의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허, 방 안에서 두문불출한다고 하더니. 순 거짓말이었군.’
뒤늦게 유신운의 행색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동굴에서의 수련을 끝마치고 곧바로 이곳으로 온 유신운의 옷은 거의 넝마가 되어 있었다.
백운표국의 식구들은 유신운이 자신의 방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죄다 거짓이고 실상은 바깥에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그동안 무얼 하다가 왔는지 안 봐도 훤하군.’
노대웅의 눈에 실망한 빛이 떠올랐다.
과거에 유신운이 저런 꼴로 표국에 돌아왔을 때는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도박판에서 잔뜩 돈을 잃은 뒤, 고주망태가 되어 땅바닥에서 노숙을 취하고 왔을 때였다.
저런 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니.
도진우가 불쌍할 따름이었다.
노대웅은 노기로 인해 몸이 떨려올 정도였다.
그가 화를 꾹 참으며 유신운에게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