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9권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9권
목차
201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1)
202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2)
203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3)
204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4)
205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5)
206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6)
207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7)
208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8)
209화 1위가 되었다(1)
210화 1위가 되었다(2)
211화 상대의 본진을 공략한다(1)
212화 상대의 본진을 공략한다(2)
213화 상대의 본진을 공략한다(3)
214화 상대의 본진을 공략한다(4)
215화 상대의 본진을 공략한다(5)
216화 상대의 본진을 공략한다(6)
217화 더 높은 곳을 향해(1)
218화 더 높은 곳을 향해(2)(완결)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9권
201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1)
“윤재 사장님, 저만 쏙 빼놓고 제주도 갔다 오셨다면서요?”
입을 뾰로통하게 내미는 유경. 그런 그녀를 보며 윤재가 피식 웃었다.
“민규도 그렇고, 지윤이도 그렇고. 하나같이 저만 보면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요. 왜 다들 자기만 쏙 빼놓고 갔다 왔느냐고.”
“그럼…….”
“그냥 저 혼자 갔다 온 겁니다. 누굴 빼놓고 간 게 아니라요. 일 때문에 간 거라서 며칠 머무른 것도 아니고 당일로 갔다 왔어요.”
“일……? 윤재 사장님이 다른 곳도 아니고 제주도에 일을 보러 갔다고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저희 이제 제주도에도 브루어리 하나 짓나요?”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제주도 탐라맥주 브루어리에서 입장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을지 알아보러 갔죠.”
“제주도? 브루어리 입장권……?”
한유경의 눈이 반짝였다.
“아, TV에서 본 적 있어요! 협재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곳 맞죠? 내부가 무슨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던데요.”
그녀는 손으로 허공에 지도를 그리듯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 그런 거 준비한다는 얘기 못 들었는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는 윤재.
“그럴 거예요. 저희는 그 프로그램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왜요?”
“거기 분위기가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맞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별로였어요? TV에서 봤을 때 관광객은 많이 가는 것 같았는데…….”
“사람은 많았습니다. 분위기도 별로…라고까지 할 건 절대 아니었고요.”
윤재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다만 그 맥주집 브루어리 같지 않은 분위기도 그렇고, 또 방문객 대다수가 2030여성이나 젊은 커플 위주로 한정되어 있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저는 저희 차차맥주 브루어리가 혹여라도 그렇게 특정 연령대와 성별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사장의 얘기를 들으며 영업팀장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인다.
“음… 확실히 윤재 사장님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선호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죠.”
“꼭 너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니라도,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브루어리를, 그리고 저희 맥주를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흐으음.”
한유경이 입술을 살짝 다문 채 가볍게 콧소리를 냈다. 하얗고 둥근 이마에는 양쪽 끝으로 희미하게 주름이 잡혔다.
“근데 아쉽긴 해요. TV에 탐라맥주 제주도 브루어리 나왔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희도 브루어리를 새로 리모델링하거나 증축한다면, 탐라맥주처럼 그런 교외에 큰 카페같이 생긴 대형 콘크리트 건물로 지으면 좋겠다고. 멀리서 보면 무슨 예술 작품 같잖아요.”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는 윤재. 그녀가 지금 말하는 그 느낌, 윤재도 제주도 절벽 위에 우뚝 선 탐라맥주 브루어리를 봤을 때 정확히 그대로 느꼈었다.
“저도 처음 방문했을 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것과 완전히 똑같은 건물을 짓는다 해도, 탐라맥주 브루어리 같은 감동을 줄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왜죠?”
“탐라맥주 브루어리는, 거기는 제주도 바닷가 절벽 위라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그런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겁니다. 골목 주변으로 5층 빌라 즐비한 호천동 브루어리나 소규모 공단 한가운데에 위치한 남양주 브루어리… 거기서 저희만 공들여서 예쁜 건물 지어놓아 봤자, 주변과 전혀 어우러지지 않아서 탐라맥주 브루어리 같은 느낌은 절대 주지 못할 겁니다.”
유경은 그 말에 수긍하는 표정이다. 두 브루어리의 주변 풍경이 어떤지는 그녀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
“음, 하긴…….”
“그리고, 건물을 벽은 곡면으로 둥글고 천장은 뾰족하게 예술 작품처럼 만들다 보니, 내부 공간 활용이 전혀 실용적이지 않더라고요. 아마 탐라맥주에서 IPO를 앞두고 있다는 것 때문에, 대외적으로 계속 자사를 홍보하려고 그렇게 겉모습에 힘을 잔뜩 줬을 겁니다. 유경 씨가 TV에서 봤다는 것도, 짐작컨대 비용을 꽤나 들인 홍보성 프로그램일 거고요.”
탐라맥주 조승혁 대표는 IPO로 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자들에게 어필을 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비델스가 세계적인 맥주 회사이긴 하지만, 한국 기업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한답시고 저 멀리 독일까지 투자 요청서를 보내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라이너 비델스는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탐라맥주 입장에서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고작 2만 원짜리 국제 우편은 비델스의 회장을 제주도에 오게 만들었다.
라이너 비델스 말고도 투자 요청서를 받은 다른 기업의 투자 담당자도 탐라맥주에 왔을 것이고, 그중 한두 명만 잡아도 IPO까지 끌고 갈 자금을 어렵지 않게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 브루어리 같지 않은 멋들어지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설비 몇 배는 뽑고도 남는 장사가 될 터.
한편, 유경은 윤재의 말에 수긍한다는 표정을 지은 이후에도, 미련이 남는지 계속해서 핸드폰에 SNS 사진을 돌려가며 탐라맥주 브루어리의 사진을 돌려보고 있었다.
“흐음… 지금 있는 브루어리가 여건이 안 된다면, 나중에 언젠가는 지을 새 브루어리를 이렇게 예쁜 건물로 마케팅 차원에서 준비해 보는 것도… 어?”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이던 유경의 손가락이 멈췄다.
“하스 박병하 회장이 담화문을 발표한다는데요?”
“박병하 회장은 지금… 유경 씨, 뭔가 잘못 읽으신 것 같은데요.”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이는 윤재.
“그 사람은 회장이라는 직함만 남아 있다 뿐이지… 몇 년 전에 쓰러지고 나서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났어요. 우리가 박원우 부회장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도, 사실 회장이 쓰러지고 부회장이 경영에 직접적으로 나서면서부터거든요.”
“저도 그 얘기 들었거든요. 근데…….”
핸드폰을 눈앞에 가까이 갖다 대는 유경. 그녀의 입에서 똑같은 이름 세 글자가 다시 흘러나왔다.
“박원우 아니고 박병하 회장 맞아요. 그 회장이 곧 생방송으로 뭔가를 발표한다는 것 같은데…….”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 소리에 윤재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다시 기울어졌다.
“박병하 회장이… 심지어 생방으로 나온다고요? 누가 낚시하는 거 아니에요? 딥페이크 뭐 이런 걸로?”
“기다려 봐요.”
유경이 곧바로 노트북을 열고 빠르게 언론사 실시간 방송을 검색했다. 윤재의 눈동자도 곧 그를 따라 움직였다.
확실히 그건 가짜 뉴스도, 딥페이크 AI 영상도 아니었다. SBK, CBM 등 여러 대형 언론사에서 똑같은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화면을 가득 채운 하스 그룹 특유의 오션 블루색 벽에는 ‘Hass’라는 하얀색 고딕체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 앞에는 볼이 앙상하게 팬 회장이 휠체어에 힘없이 앉아 있었고, 그의 뒤에서 서 비서가 묵묵히 휠체어를 끌고 화면 중앙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 * *
“생각보다 건강해 봬는데요? 그간 방송에서는 완전히 식물인간인 것처럼 보도가 됐었는데.”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봅시다.”
A4 용지 단 한 장을 손에 든 박병하. 안경을 고쳐 쓰고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스 회장 박병하입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읽는 박병하의 말은 알아듣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목소리에는 백전노장답지 않게 떨림이 있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최근 하스 사태로 많은 분들께서 우려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 말을 마치고 박병하는 고개를 숙였다.
몇 년 만에 카메라 앞에 나타나서 휠체어에 탄 채 휑한 정수리를 보여주는 하스의 제왕의 모습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쇼하는 거 아녜요? 여태 숨어 있다가 회사 무너질 거 같으니까 이제야 나와 가지고. 그런 엄청난 사태를 야기한 그룹 총수라는 사람이, 이제 와서 회사 망할 것 같으니까 사과 한마디로 때우려고.”
유경은 분개하고 있었다. 그 복합적인 감정 중에서 그녀는 분노를 가장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윤재는, 드러내 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녀와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물론 타이밍만 놓고 보자면, 늦어도 너무 늦은 사과였다.
구미 하스전자에서 흘러나온 페놀이 낙동강 전체를 뒤덮고 나서, 정부와 차차맥주 등의 민간 협력에 의해 페놀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하스 부회장 박원우는 그동안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외부의 도움을 받아 사태가 종결된 것에 대해 그 어떤 감사의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사실 박원우는 페놀 사태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스전자와 본인과의 관계를 계속 부정했었으니. 그렇게 사태의 원인에 대해 전적으로 부정을 하면서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메시지를 내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말 그대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니까.
그런 딜레마에 빠진 아들을 대신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카메라 앞에 나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윤재는 약간의 울림을 느꼈다. 회사가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 나온 것 같지만, 어쨌든 박병하는 무언가에 대한 책임감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까 유경 씨는 저게 다 쇼라고 했지. 그럼 나는 쇼에 휘둘리고 있는 걸까? 그게 맞다면,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나만 저 쇼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어차피 이제 하스는 재기 불능…….’
그러는 사이 박병하는 몇 번을 더 혀로 입술을 적시고는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의 떨림을 억누르려고 그러는 건지, 그는 정말 한 글자 한 글자를 힘주어 발음하고 있었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또 하스 그룹을 온전히 지키면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저희는 내부적으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쿨럭.”
박병하가 계속 기침을 하며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자, 뒤에 있던 서 비서가 곧바로 물과 손수건을 건넸다. 박병하는 아주 조금 물을 마시고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조금 더 콜록거렸다.
입에서 손수건을 뗄 때 걸쭉한 침이 손수건을 따라서 주욱 늘어나는 게 보였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저 노인의 다음 대사가,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가 궁금할 뿐.
박병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으로, 저희 하스는 주류 사업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뭐, 뭐라고? 지금 박병하 회장이 뭐라고 그랬어요? 하스가 주류 사업을 매각한다고……?”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9권
202화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2)
“매각한다는 건, 그러니까 하스가 주류 사업을 포기한다는 얘긴데……?”
놀란 건 TV를 보고 있던 윤재와 유경뿐만이 아니었다.
하스 회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면 밑에서 손이 대여섯 개 불쑥 올라왔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에게도 박병하 회장의 발표는 충격적이고,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서 비서가 누군가를 지목하는 시늉을 보이고, 곧 기자 한 명의 뒷모습이 화면 우하단에서 나타났다.
“회장님, 아시다시피 페놀 사태 이후로 하스전자를 비롯한 하스 그룹의 계열사가 대부분 새로운 주인을 찾았습니다. 현재는 하스 주류 사업부가 사실상 하스 그룹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그 주류 사업을 매각하겠다는 말씀, 그건 하스라는 그룹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박병하가 짧게 대답했다.
“하스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을 겁니다.”
언뜻 동문서답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대답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하스라는 이름은 남는다. 하지만 하스 그룹은 사라질 것이다.
“박병하 회장님.”
이번에는 다른 기자 한 명의 뒷모습이 화면 좌하단에서 튀어나왔다.
“그럼 회장님과 자제분이신 박원우 부회장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처럼 계속 하스에 남아서 회장과 부회장직을 유지하시는 건가요?”
당장 대답하기 고통스러운 듯, 노인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러고는 간신히 입을 뗐다.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다만 저 박병하는 오늘 이 회견 이후로 그룹에서 맡고 있는 모든 직책을 내려놓을 겁니다. 제 아들… 박원우 부회장은 오늘 바로 그만두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업무를 인계할 시간도 필요할 거고, 그리고 큰 변화를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모든 자세한 일정은 인수자 측에서 추후 다시 공지할 겁니다.”
또 다른 기자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인수자 측이라는 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카이트입니까? 아니면 혹시 3대 업체 중 하나인 차차맥주 브루어리?”
“아닙니다. 인수 주체는…….”
박병하 회장이 숨을 한 번 들이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비델스입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비델스……?”
“독일 맥주 회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브루어리라고 불리는 거기 아냐?”
“닥치는 대로 인수한다는 거기지?”
“우와, 비델스가 하스까지 먹는다고……?”
술렁이는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멀리서 이를 TV로 지켜보고 있는 윤재와 유경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깔끔한 스포츠형 짧은 흰머리에 정장을 입은 외국인 남자가 앞으로 나와 박병하 회장의 옆에 섰다.
그는 마이크를 입에 대고 ‘안녀하쎄요’라고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고는 활짝 웃었다. 기자회견에 앞서 준비해 온 한국말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