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7권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7권
목차
151화 PPL(7)
152화 PPL(8)
153화 PPL(9)
154화 PPL(10)
155화 PPL(11)
156화 한한령
157화 업계를 살릴 방안(1)
158화 업계를 살릴 방안(2)
159화 업계를 살릴 방안(3)
160화 업계를 살릴 방안(4)
161화 업계를 살릴 방안(5)
162화 업계를 살릴 방안(6)
163화 업계를 살릴 방안(7)
164화 업계를 살릴 방안(8)
165화 업계를 살릴 방안(9)
166화 편의점 진출(1)
167화 편의점 진출(2)
168화 편의점 진출(3)
169화 편의점 진출(4)
170화 편의점 진출(5)
171화 다시 PPL(1)
172화 다시 PPL(2)
173화 다시 PPL(3)
174화 다시 PPL(4)
175화 Big3(1)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7권
151화 PPL(7)
“입찰 대응 TF에서 최종 입찰가를 분당 900만 원으로 정했네?”
“예, 너무 높죠? 지난번에는 500만 원이었는데요. 한 번에 80%를 올리는 건 좀…….”
“괜찮아, 괜찮아.”
서 비서의 걱정스러운 말에 박원우가 별 대수로운 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스맥주, 슬라우드, 이슬처럼 지금처럼만 중국에다 많이 팔면 그 정도는 금방 뽑아. 그리고 이번에 낙찰받고 나면, 우리 하스 그룹에서 CBM 8시 뉴스 전후로 넣고 있는 중간 광고도 다 빼버릴 거니까 거기서 세이브 되는 금액으로 퉁친다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부회장님, 8시 뉴스 전후로 저희가 광고 넣는 이유가 CBM에 함부로 기사 쓰지 말라고 주는 돈인데 갑자기 그걸 다 빼버리면 CBM 보도국에서 보복성 기사를 내보낼 수도…….”
부회장이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볼펜을 손 위에서 천천히 돌린다.
“서 비서, 너 CBM이 1년에 얼마 버는지 알아? 공영방송, 공영방송 하니까 뭐 대단해 보이지만 이놈들 매출 규모만 따지면 그냥 일개 중견기업이야. 그런 중견기업에서 그나마 회사 돈 좀 벌어다 준다는 예능국 최대 고객을 건드린다? 아니지. 이상한 기사라도 나온다 치면 우리가 뭐라고 시키기도 전에 그 예능국 놈들이 알아서 달려들걸?”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비싼 건 문제가 아니야. 난 오히려…….”
박원우가 볼펜을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듯 쓸어 넘긴다.
“차차맥주에서 이 정도 가격은 절대 못 들어온다는 거, 확실한 거야?”
“TF팀에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답니다. 뒤에를 보시면요…….”
서 비서의 말에 따라 박원우가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에는 차차맥주 브루어리의 현 재무 구조 및 예상 입찰가의 범위를 분석 정리한 추가 자료가 첨부되어 있었다.
작은 비상장 법인인 차차맥주 브루어리는 매출이나 순이익 내역은 공표되지 않는다. 따라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TF팀은 일부 신용평가사들이 가지고 있는 차차맥주 브루어리에 대한 신용분석 내용을 토대로 그들이 배팅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을 유추했다.
“분당 900만 원. 한 회차 노출은 대략 5분. 그럼 한 회차당 4,500만 원. 그럼 한 달에는…….”
“1억 8천 정도입니다. 1년 계약하려면 21억 조금 넘고요. 차차맥주 브루어리가 아무리 잘나간다고 한들, 아직 설립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 현금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고 TF팀에서는 판단한 것 같습니다. 혹 여유 자금을 정말로 그만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작 PPL 하나에 그렇게 모든 돈을 쏟아붓진 못할 거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썩 개운하지 못한 박원우의 표정.
오직 나 혼자서 산다 PPL 입찰 건 하나만 원 포인트로 처리하라고 그룹 부회장이 직접 불러보았던 입찰 대응 TF팀. 하스 그룹 내에서 꽤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댔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차윤재…….’
여러 번 마주쳤던 차차맥주 브루어리의 젊은 대표는 늘 박원우 저 자신이 예상했던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TF팀에는 수고했다고 전해줘. 고과하고 성과금도 그룹 규정상 최대치로 반영시키고.”
“예.”
그렇게 TF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부회장은 TF팀이 올린 결재안에 서명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결재 파일을 덮었다.
“……?”
서 비서는 눈만 껌뻑이며 부회장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얘기를 하느라 서명을 까먹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근데 차차맥주 브루어리, 내가 이제 이놈들을 좀 알잖아. 여기는 예상을 하고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식으로 대응하면 안 먹히더라고.”
부회장은 서명을 까먹은 게 아니었다. 정예 TF팀이 만들어낸 분석 결과도 그의 불안한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그 빈칸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박원우가 말을 이었다.
“특히 차윤재 그놈은 뭐랄까. 동물적인 감각이 있거든.”
“동물적인 감각이요?”
“그래, 어딘가 어설픈 것 같으면서도 나보다 딱 한 수를 더 내다봐. 지금까지 늘 그랬어. 운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뭔가가 있단 말이지, 그놈한테는.”
서 비서는 눈만 껌뻑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상대를 치켜세우는 저 부회장님께서, 그렇다고 붙어보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하겠다는 얘기는 아닐 텐데.
서 비서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진 않았지만 부회장의 대답은 완전히 예상 밖.
“그럼 수를 안 내면 되잖아.”
“예, 예?”
미간을 찌푸리는 서 비서.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줄 알고 고개를 돌리며 귀를 갖다 댄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부회장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으니.
“수가 아예 없으면. 그럼 그놈 입장에서도 한 수를 더 내다본다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거 아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수가 아예 없다는 말씀이 대체 무슨 뜻인지 전 도무지 이해가…….”
박원우가 고개를 들어 서 비서를 바라보았다.
“입찰 어디서 해?”
“여의도 CBM 사옥 12층 대회의실에서 합니다.”
“내가 직접 간다. 투찰도 내가 할 거야.”
그러더니 커다란 서랍을 열어서는 안에서 A4 용지 하나를 꺼냈다.
“CBM에서 보내온 입찰 봉투 있지? 거기에 이거 넣어서 가지고 와. 동봉은 하지 말고.”
A4 용지를 받아 든 서 비서가 당황한 표정으로 부회장을 쳐다본다. 부회장이 건넨 A4 용지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말 그대로 백지였으니까.
“대표님, 이건…….”
“왜?”
“이건 그냥… 종이인데요. 여기에 입찰서 양식하고 입찰가 인쇄해 오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아니. 내가 말했잖아.”
박원우가 피식 웃으며 펜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이번엔 수를 아예 안 쓰겠다고. 그래야 한 수 못 내다본다고.”
“그럼…….”
“그래, 입찰가를 아예 안 적고 들어갈 거야.”
“예?”
“최종 입찰가는 입찰 마감 3분 전에 결정한다. 분위기 보고. 내가 직접.”
“하지만 부회장님, CBM 입찰 공고에 보면 입찰가를 절대 수기로는 적지 말라고…….”
수기 작성 금지, 인쇄된 입찰가만 수용하겠다는 CBM의 입찰 공고는 사실 그리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입찰. 특히 이번과 같은 최고가 입찰의 경우,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토대로 입찰 직전까지 검토하고 또 계산을 하면 할수록 유리하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수기로 입찰가를 작성하게 하면 입찰 현장에서까지도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데, 큰 금액이 달린 경우에는 이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못해 몸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게다가 수기로 작성을 하면 입찰가 공개 시 논란이 또 한 번 더 생긴다. 심사관은 8이라고 보고 발표했는데 누구는 8이 아니라 숫자 가운데 어쩌다 볼펜 똥이 묻어 번진 것뿐이고 사실은 0을 썼다고 하고, 또 누구는 3처럼 보인다고 하는 둥 판정 시비도 흔하게 일어난다.
현장에서의 그런 의미 없는 분란을 피하고자, 상당수의 입찰에서 수기 작성이 아닌 입찰가까지 인쇄된 입찰서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고자 나온 게 전자 입찰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는 일에 대해서, 그게 아무리 이론적으로 공정하다고 해도 섣불리 신뢰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수많은 입찰, 특히 프로젝트 규모가 큰 경우에는 현장 입찰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제법 규모가 큰 이번 나 혼자서 산다 PPL 입찰도 평범한 현장 입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그런데 박원우는 수기로 쓸 수도 없는 입찰가를, 프린터 인쇄가 필요한 입찰서를 마감 3분 전에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3분 전에 인쇄하면 되잖아.”
“CBM 12층 대회의실에서 한다는데 어떻게요? 건물 밖에서 뽑아도 시간 내에 가져가기 빠듯합니다. CBM에다 FAX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박원우가 의자를 한껏 젖힌다. 당황한 비서와 달리 부회장의 표정은 제법 편안해 보였다.
“내가 거기 가봤거든. CBM 대회의실. 그 대회의실이 사실상 CBM 사옥 12층 전체를 써.”
“근데…요?”
“그래서 대회의실 안에 화장실도 하나 붙어 있거든.”
“화장실……? 부회장님, 갑자기 거기 화장실은 왜…….”
어리둥절해하는 서 비서를 보며 박원우가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 * *
입찰 당일. CBM 여의도 사옥.
삼성동 하스 본사에서 출발한 검은색 세단이 올림픽대로를 따라,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한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굽이굽이 올림픽대로를 따라가던 차는 여의도로 들어갔고, 곧 CBM 사옥 현관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뒷좌석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하스 그룹 박원우 부회장.
“수고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할까요?”
문을 닫으려다가 박원우가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아냐. 넌 들어가. 갈 때는 서 비서가 운전해서 갈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쾅 하고 문을 닫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입찰 장소를 알리는 화살표가 바닥과 벽면에 붙어 있었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똑바로 12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이미 CBM 대회의실에 몇 번 가본 경험이 있기에 길을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시 문이 닫힌다.
2층, 5층, 9층, 12층.
‘후우.’
구형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에 심호흡을 크게 네 번.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곧바로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계단식 대회의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나 혼자서 산다 PPL 입찰 장소임을 알리는 짧고 간략한 안내문이 회의실 문과 벽 등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박원우가 서 있는 곳 정확히 반대편, 대회의실 저 끝 연단 위에 하얀색 입찰함이 보인다.
그 근처로 진행을 맡고 있는 사람들 몇 명. 그 사이에서 짙은 남색 정장을 입고 있는 익숙한 얼굴의 젊은 남자. 그가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본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박원우는 그가 누군지 기억해 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얼굴이기에 기억해 냈다기보다는 저절로 이름이 얼굴 위에 떠오른다.
‘차윤재.’
먼저 와서 이주원 PD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차차맥주 브루어리 대표 차윤재였다.
박원우가 턱에 핏줄이 설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차윤재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별일 없이 잘 지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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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PPL(8)
CBM 사옥 12층 대회의실.
넉넉하게 입찰 마감 한 시간 전에 도착한 윤재가 대회의실 안에 들어와서는 주변을 둘러본다.
마감이 겨우 한 시간 남았는데도 이제야 낑낑대며 입찰함을 들고 들어오는 진행요원 둘. 별 의미도 없이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현수막.
입찰이라는 걸 많이 경험해 보지 않은 윤재가 보기에도, CBM의 입찰 준비는 어딘가 엉성해 보인다.
‘입찰을 받아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겠지. 박원우는… 아직인 것 같군.’
“차윤재 대표님.”
그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반갑다는 표정으로 걸어오는 이주원 PD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