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6권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6권
목차
126화 2차 맥주 축제(3)
127화 2차 맥주 축제(4)
128화 2차 맥주 축제(5)
129화 2차 맥주 축제(6)
130화 2차 맥주 축제(7)
131화 2차 맥주 축제(8)
132화 2차 맥주 축제(9)
133화 2차 맥주 축제(10)
134화 2차 맥주 축제(11)
135화 소독약 냄새(1)
136화 소독약 냄새(2)
137화 소독약 냄새(3)
138화 소독약 냄새(4)
139화 소독약 냄새(5)
140화 우리도 수출을 하자고요(1)
141화 우리도 수출을 하자고요(2)
142화 우리도 수출을 하자고요(3)
143화 우리도 수출을 하자고요(4)
144화 우리도 수출을 하자고요(5)
145화 PPL(1)
146화 PPL(2)
147화 PPL(3)
148화 PPL(4)
149화 PPL(5)
150화 PPL(6)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6권
126화 2차 맥주 축제(3)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최학수가 유독 호천동이나 차차맥주라는 단어만 나왔다 하면 뭔가 숨기는 낌새를 보인다는 걸 박원우도 진작부터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감추고 있는 그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까지는 모르지만, 부자연스러운 전후 사정으로 보건대 아마도 작년에 호천동에서 있었던 맥주 축제와 꽤나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작년 맥주 축제에 공을 들이다 개망신을 당한 고상만 전무와도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다.
‘고 전무는 이미 그룹 내 모든 영향력을 잃은 사람. 그런데도 끝끝내 아무 얘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선배도 그 일에 일정 부분 관여를 했기 때문이겠지. 입에 올리고 싶은 않은 무언가를…….’
한번 싹튼 의심의 씨앗은 빠른 속도로 커져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최학수는 정신없이 받아치느라 온 신경을 세 치 혀에 집중하고 있었다.
“둘이 라운딩도 꽤 많이 돌았었죠?”
“그거 뭐… 여러 명이 같이 돌았지. 단둘이 본 거는 두어 번… 아니, 서너 번… 아니, 대여섯 번이었나…….”
“만나면 주로 무슨 얘기 합니까?”
“뭐, 주로 가족 얘기지. 전무님은 군대 간 작은아들 얘기 많이 하고…….”
“일 얘기는 안 합니까?”
“뭐, 하스 옛날얘기나… 박병하 회장님 건강 상태라든가…….”
“호천동 맥주 축제 얘기는 안 했고요?”
최학수가 커피로 살짝 목을 축이는 척 숨을 돌린다.
“원우야, 내 얘기 좀 들어봐. 내가 작년 가을에 일이 잔뜩 몰려서 그때는 맥주 축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어.”
“무슨 일이요?”
“…당연히 겔트상사…….”
“저기, 선배님. 겔트상사 일이라는 게, 이 동네에 하스맥주랑 이슬처럼 파는 게 겔트상사 하는 일 아닙니까? 근데도 일이 바빠서 이 지역 맥주 축제에 신경도 못 쓰고 계셨다는 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하… 너도 알다시피 내가 거기 강동구 호천동에서만 장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박원우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거 아세요? 고 전무가 회사 간판에 똥칠해 놓고 감사받았을 때, 그때 그 양반이랑 면담했던 게 바로 저였습니다. 감사팀장이 못 하겠다고 손들었거든요.”
‘…감사팀장 그 친구 입장에서야 고 전무랑 기수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니 제대로 심문이라는 걸 할 수가 없겠다 생각했겠지…….’
“그때 고 전무가 그러더군요. 맥주 축제를 주관하는 지역 브루어리에 공정적인 이슈가 생겼다는 기밀을 전해 들었다고. 소스가 확실해서 무조건 잘될 줄 알았다고. 유통기한 임박한 우리 하스맥주 재고도 한 방에 떨어낼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라 생각해서 밀어붙였다고.”
“…….”
“그때 당시 고 전무가 언급했던 지역 브루어리라는 건 당연히 차차맥주 브루어리일 테죠.”
“그렇겠지…….”
“근데 고상만 전무는 그 내부 기밀을 대체 어디서 얻은 걸까요? 직원 10명 남짓하던 당시의 차차맥주에, 거창하게 스파이라도 붙였던 걸까요? 아니면, 고 전무가 그 안에 직접 들어가서 기밀을 캐냈을까요? 뭐, 거기까지도 어찌어찌 넘어간다고 쳐요. 근데 그렇게 얻은 정보가, 아무리 소스가 확실하다고 해도 말이죠. 바로 근방에서 주류도매 하고 있는 선배한테 그게 사실인지 확인 정도는 한번 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글쎄다…….”
후배의 저 따가운 눈초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슨 일이 있었다고 속 시원히 모든 걸 털어놓는 것.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애써 덮어놓은 치부를 드러낼 생각 같은 건 전혀 들지 않는다. 치부를 감추기 위해 덮어놓았던 거적때기, 돗자리까지 하나가 되어 그 덩어리가 엄청나게 거대해져 있었으니.
‘어차피 박원우 저 녀석이랑 난 한 팀이다. 맥주 축제 끝날 때까지는 대체자 절대 못 찾아. 이거 말고 다른 신경 쓸 것도 많겠지. 이 순간만 버티자. 시간이 답이다, 시간이…….’
마치 몸을 웅크린 채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북이처럼. 그렇게 최학수가 애처롭게 굴수록 박원우는 싸늘하게 몸이 식어감을 느꼈다. 내가 저런 사람 밑에서 일을 배웠었다니, 인생을 배웠었다니.
불현듯 느껴지는 피로감에 박원우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예 고개까지 주욱 젖혔다. 그러고는 저 높이 천장에 드리우는 기다란 햇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하아, 오프닝 행사 얘기나 하시죠.”
“그, 그래.”
“아이지를 세울 겁니다. 노래는 세 곡 정도. 우리가 콘서트를 여는 건 아니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요.”
“아이지… 근데 여자 가수 아니냐? 맥주에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는 원래 소준데…….”
소주 광고에는 여자 연예인, 맥주 광고에는 남자 연예인. 남자 고객이 많은 소주와 여자 고객이 많은 맥주를 감안한 오래된 업계 공식이었다.
박원우가 말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 맥주 축제에 남자가 비교적 많이 왔다고 하더군요. 남자 연예인 몇은 딱히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저들 알아서 찾아왔었던 것 같고요.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 친구가 노래 세 곡 부르고, 그다음에 저희가 준비한 오크통을 무대로 올릴 겁니다. 슬라우드가 든 오크통이요.”
“설마 뮌헨 옥토버페스트의 오 자프트 이스…….”
“대충 비슷하죠.”
옥토버페스트의 본고장인 독일 뮌헨에서는 무대 위에 맥주가 가득 찬 오크통 하나를 세워놓는다. 그러고는 뮌헨 시장이 한 손에는 수도꼭지,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오크통 앞으로 다가가선 그 수도꼭지를 오크통에 대고 힘차게 망치로 두드려 꽂아 넣는다.
하얀 거품을 가득 머금은 황금빛 액체가 수도꼭지에서 줄줄 흘러나오고, 시장이 그 맥주를 유리잔에 받아 마시고는 오 자프트 이스(O Zapft is!)라고 외침과 동시에 그 유명한 10월의 축제 막이 열린다.
“뮌헨도 아니고 강동구 호천동의 맥주 축제, 이게 뭐 역사가 깊고 전통 있는 행사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구태여 인기도 없는 구청장이나 여타 정치인들 올릴 필요 없이 그 아이지가 노래 끝나고 직접 망치질을 하게 할 생각입니다.”
“노래 세 곡 끝나고 직접 망치질을… 그러면…….”
“예, 오프닝 행사는 길어도 30분 안에 다 끝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이틀간 그 호천대로 200미터를 어떻게 쓰는가는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렸고요.”
그때까지 고개를 젖히고 소파에 파묻혀 있던 박원우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말했다.
“선배님께서 내성동 일대의 술집들을 정 포섭하기 힘들면, 그럼 그 광활한 빈 땅에 노점상을 동원해 주세요. 당연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현장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최학수. 그 정도 넓이면 못해도 100개 이상의 노점상을 동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다가 호천역 바로 코앞이라는 최고의 입지. 그 노점가에서 슬라우드를 집중적으로 풀면, 차차맥주에서 뭔 짓을 하든 그 판매량을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말이다.
“원우야, 근데…….”
“네.”
“거기에 그렇게 많이 노점을 동원하면 내성동하고 호천동, 호천대로 양쪽 전부에서 들고일어날 텐데…….”
이것저것 따져가며 들어간 가게에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있는 평범한 상인들 입장에서 보면 노점 상인들은 월세도 내지 않고 장사하는 일종의 무임승차자. 그 무임승차자가 가만히 버스만 타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파이까지 깎아먹는다.
당연히 거센 반발이 일 테고, 당연히 노점을 추진한 누군가에게 그 비난의 화살이 집중될 것이다.
“딱 이틀인데. 이틀만 버텨보면 안 되겠습니까?”
“이틀 지나면 그게 다 기억에서 잊히냐? 그리고 매년 10월에 맥주 축제 할 때마다 그 기억이 계속 다시 살아날 텐데 그럼 겔트상사는 대체 어쩌라고…….”
“흐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박원우가 턱을 매만지며 입술을 주욱 내민다.
“이쪽도 만족시키고 저쪽도 만족시켜야 하는데… 아, 그러면 되겠다.”
“?”
“제가 선배님이라면 전 그 이틀 동안 맥주를 아주 싸게… 아니다, 아예 무료로 풀겠습니다. 업주들한테요.”
최학수가 속이 답답한 듯 가슴을 문지른다.
“…혹시 이번 맥주 축제에 몇 명 정도 올 거 같냐?”
“안 그래도 기조실 시켜서 앙케이트 한번 돌려봤는데요. 대략 20-30만 명? 그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30만 명… 그 사람들이 맥주를 500 두 잔만 마셔도 30만 리터야. 500잔당 5천 원이라 치면, 러프하게 30억. 넌 지금 나한테 30억을 꼴아박으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다.”
“에이, 선배님.”
박원우가 코웃음을 쳤다.
“그걸 왜 최종소비자가로 계산합니까. 겔트상사에서 우리한테 받아 가는 가격, 매입원가로 따져야죠. 알 만한 분이 저한테까지 왜 이러실까.”
“…그건 그렇다 쳐도, 이틀에 30만 리터 유통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장비를 추가로 들여야 하는 줄 아냐? 게다가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노점상 수십 개, 그런 게 자금 없이 동원이 가능할 것 같아?”
“뭐, 돈이 들긴 들겠죠? 일인데. 아참, 선배님. 거기에 플러스 하나 더.”
태연한 표정으로 검지손가락을 치켜드는 후배.
“호천동 로데오거리 위에 덮는 트러스 천막, 거기에 들어가는 천 제작을 저희가 맡았습니다. 양문경 앞에서 꺼낸 얘기라 물릴 수도 없고 해서, 그것도 선배님이 좀 처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3, 4천 정도면 뒤집어쓴다고 합니다. 파란색으로 Hass 로고 꼭 넣어주시고요.”
“…그걸 왜 내가…….”
“이왕 돈 쓰시는 김에요. 하스는 큰 조직이라 볼펜 하나 사는 것도 절차가 번거롭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번거로운 절차.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절차가 부회장에게까지 적용될 리 없다는 것도.
“원우야…….”
“진행 사항 이틀마다 알려주세요. 아시겠죠?”
일방적인 통보. 선배가 가타부타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후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기 책상으로 가 유선전화 수화기를 든다.
“어, 서 비서. 오늘 비행기 몇 시라 그랬지? 하네다 가는 거. 어, 어어. 서둘러야겠네. 차 빼놓으라고 해. 미팅? 다 끝났지. 그래, 지금 나간다.”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책상에 놓인 노트와 USB 등을 가방에 넣는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긴자에서 미팅이 있어서요.”
목을 까딱 숙이고는 부회장은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부회장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선배가 혹여 외로울까 걱정이 되었는지 곧바로 여직원 한 명이 들어온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둔 커피잔을 치우고 헝클어진 소파를 부지런히 정리한다.
마치 빗자루에 쓸려가는 낙엽처럼, 최학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부회장실을 빠져나왔다.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6권
127화 2차 맥주 축제(4)
“소주 하나 주세요.”
“맥주 하나 주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소주요.”
“그냥 맥주요.”
“시원한 거요.”
“아무거나요.”
대부분의 대중들은 하스맥주나 카이트맥주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두 회사에서 내미는 주류의 가격 차이도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 대동소이하다.
그렇기에 음식점이나 호프집에서 무슨 술이 얼마나 나가는지는 전적으로 점주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의 손이 냉장고에 들어가 파란색 병을 잡아채는지, 혹은 흰색 병을 잡아채는지 그 순간에 모든 게 결정된다.
그렇다면 그 점주들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손님에게 줄 맥주를 고를까. 그 점주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건 대체 무엇일까.
가격도 비슷, 품질도 비슷, 생긴 것도 비슷. 유일하게 변별력을 가질 수 있는 게 바로 영업맨의 영업력이다.
붙임성 좋은 성격, 싹싹한 미소, 부드러운 말투.
그 옛날 최학수는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영맨이었다. 거기에 하스맥주 고상만 전무의 전폭적인 서포트까지.
겔트상사를 차리고 단 몇 달 만에 서울 동부 일대의 거의 모든 점포들에 판로를 뚫었다. 이미 다른 주류도매를 통해 하스맥주가 들어가고 있는 술집에도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그렇게 확보한 거래처를 바탕으로 공급처에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 지역 카이트를 죄다 밀어냈다며.
그렇게 공급처에 과시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다시 거래처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새로 나온 신제품을 내가 이 동네에서 제일 빨리 넣어주겠다며.
그렇게 공급처와 거래처, 주류 유통의 양 정점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생기자 그는 곧 돌변했다.
정상호프 정상대처럼 지역에서 규모가 큰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에게 강압적으로 군림했다. 스스로를 지역 영주처럼 여겼기에, 수백 개의 거래처도 고객사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영지에 귀속된 일개 농노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