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4권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4권
목차
76화 호천동 맥주 축제(1)
77화 호천동 맥주 축제(2)
78화 호천동 맥주 축제(3)
79화 호천동 맥주 축제(4)
80화 호천동 맥주 축제(5)
81화 호천동 맥주 축제(6)
82화 남양주 브루어리(1)
83화 남양주 브루어리(2)
84화 정육식당(1)
85화 정육식당(2)
86화 정육식당(3)
87화 또 사업을 확장?
88화 다시 찾아온 기회(1)
89화 다시 찾아온 기회(2)
90화 다시 찾아온 기회(3)
91화 망칠 생각이야
92화 잔으로 뭘 하려는 걸까
93화 맥주 대회(1)
94화 맥주 대회(2)
95화 맥주 대회(3)
96화 맥주 대회(4)
97화 맥주 대회(5)
98화 맥주 대회(6)
99화 맥주 대회(7)
100화 맥주 대회(8)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4권
76화 호천동 맥주 축제(1)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질문을 받은 윤재. 들고 있던 캔맥주를 옆에다 내려놓고는 일어나서 애꿎은 맥아 분쇄기를 발로 툭툭 건드린다.
“글쎄요. 그다음? 그다음이라…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혹시 제 꿈이 너무 소박해서 그러시는 건가요?”
윤재의 그 말에 한유경이 허공에 대고 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꼭 크고 거창한 뭔가여야지만 꿈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뭐랄까… 겔트상사나 정상호프 타도를 사장님 인생의 목표로 삼기에는 지금 그 둘하고 차차맥주 사이에 대단한 격차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윤재. 단순히 그녀 혼자만의 생각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보기에도 윤재는 이미 그가 설정해놓은 그 꿈에 제법 가깝게 다가가 있는 상태였다.
범접할 수 없는 거물로만 느껴졌던 정상대에게서 윤재는 사실 이제 그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한다. 최학수는, 차차맥주에서 주도하는 이 호천동 맥주 축제가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의 겔트상사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일대에서의 입지는 분명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다음은? 뭐가 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되고 싶은 것인가. 차차파전 간판을 내린 이후로 윤재는 이런 한가한 고민에 빠질 겨를 없이 복수만 보고 달려왔다.
‘내가 진정 원했던 꿈은, 하스맥주에 입사해서 남들처럼 승진하고… 로얄 패밀리가 아니니 회장은 무리일 것 같고 상무 정도까지는 달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걸 꿈이라고 하기에는 거기에 그렇게 엄청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던 것 같고….’
머리를 긁적이기만 하던 윤재. 그는 갑자기 자리로 가 바닥에 두었던 맥주캔을 집어서 벌컥 크게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홱 옆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는 유경 씨는요? 유경 씨는 인생의 목표가 뭔가요?”
“엇… 제 꿈이요? 흠….”
이번에는 그녀가 다리를 꼬면서 두 손을 그 다리 위에 올린다. 그러고는 저 멀리 아크릴창 넘어 레스토랑 구역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들었을 때의 윤재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
“저는 사장님처럼 복수 그런 꿈은 없어요. 돈은 그냥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있었으면 좋겠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자신의 핸드폰을 윤재에게 건넨다.
“여기 이거요. 이런 모습이 제 꿈이에요.”
핸드폰 화면 속 동영상을 보던 윤재는 고개를 갸웃하며 유경을 쳐다보고는 다시 동영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꼬리 흔들면서 여유롭게 터벅터벅 걸어가는 하얀 털복숭이 강아지…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강아지가 되고 싶다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개 말고 개 주인이요. 이렇게 큰 사모예드 한 마리 데리고 밤에 여유롭게 한강변을 거닐면서 다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음… 근데 이렇게 큰 개라면….”
“왜요? 사장님은 개 안 좋아하시나 봐요?”
윤재가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살짝 콧바람을 뿜는다.
“흠, 좋아하긴 하는데… 고양이라면 몰라도 개는 키우지는 못할 거 같아요.”
“왜요? 고양이가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요?”
“그런 이유가 아니라요, 개는 외로움을 많이 타니 혼자 냅둘 수가 없잖아요.”
그 말에 유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장님은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은영 사장님하고 지윤이까지 있잖아요. 셋이서 번갈아가면서 케어하시면 되죠.”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게, 저랑 엄마랑 지윤이 셋 다 일을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저희는 다 비슷한 시간대에 집을 비우고. 번갈아가면서 케어를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흐음… 그건 그렇네요. 지금으로선 셋 중 누가 일을 그만두거나 이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의자를 흔들흔들하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고 있던 한유경. 갑자기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더니만 윤재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린다.
“사람으로 따지면요?”
“예?”
“윤재 사장님은 고양이 같은 사람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강아지 같은 사람을 좋아하세요?”
“어… 글쎄요? 둘 다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죠.”
“안 되겠다. 질문을 살짝 바꿀게요. 사장님이 보시기에 저는 고양잇과 같나요? 아니면 강아지과 같나요?”
순간 윤재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크게 요동쳤다.
“글…쎄요… 어떨 때 보면 강아지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고양이 같기도 하고….”
그런 그의 표정이 재미난 듯 그녀가 옆으로 조금 더 바싹 다가가 앉았다.
“에이, 그런 하나마나한 대답 말고. 하나만 딱 정해봐요.”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하기가 좀….”
고개를 숙인 채 빈 맥주캔만 만지작거리는 윤재. 대답을 계속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경 씨도 맥주 다 드셨죠? 편의점에서 좀 더 사 가지고 올게요.”
한유경이 피식 웃으며 일어선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희 딱 한 캔씩만 하기로 했잖아요.”
“안 드실 거면 제 것만 사오고요.”
“그건 좀 야박하다. 알았어요. 딱 한 캔만 더 해요.”
양조장의 미약한 불빛 아래서 끊임없이 반짝이는 둘의 티키타카. 어느덧 시커먼 도화지를 붙여놓았던것만 같았던 창밖으로 주황색 물감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다.
“어, 붉은색이….”
“그러게요. 해가 뜨네요. 대체 우리 몇 시간을 떠든 겁니까?”
“아니, 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저기 모니터에….”
유경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 HMI(설비 조작 장치) 모니터가 붉은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설비에 알람 떴나 본데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을 하고는 윤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HMI로 향했다. 밤사이에 설비에 알람(alarm)이 뜨는 건 종종 있는 일이고, 또 대부분 크게 심각한 알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디 보자. Silo #1 Temperature High, Silo #2 Temperature High, Silo #3 Temperature High, Silo #4 Temp… 아니, 잠깐만… 이거 다 왜 이래?”
HMI의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에러 메시지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맥주가 가득 담긴 모든 사일로에 고온(高溫) 경고 알람이 들어온 것.
“이게 대체 뭐… 프로그램 에러 난 거 아냐? 아니면 갑자기 온도 센서가 다 망가졌나?”
그러나, 이 사일로 저 사일로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는 윤재는 온몸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5도 언저리로 차갑게 유지되어야 할 사일로가 모두 미지근하기 그지없었다. 프로그램 에러, 센서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모든 사일로의 온도가 크게 상승한 것.
“허 팀장님 불러야 하는 거 아녜요?”
“일단 부르긴 불러야겠지만 저 안에 든 강동라거, 그러니까 페일 라거는 열에 가장 취약한 맥주 중 하나입니다. 호천동에 사시지 않는 허 팀장님이 오시기까지 기디라기에는 너무 늦어요.”
“그러면 어떻게….”
윤재는 온 힘을 다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다시 HMI 모니터에 뜬 알람 리스트를 주욱 훑어봤다.
‘온도 트렌드를 보니 4시 경부터 모든 사일로의 맥주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맥주의 비열을 생각하면 쿨링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 온도가 마구 올라가지는 않았을 테니 문제 발생 시각은… 적어도 1시, 아니 12시 정도….’
콧바람을 뿜으며 팔짱을 끼는 차윤재.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한 번, 그리고 바닥을 한 번 보고는 유경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린다.
“저희 계속 여기 있었잖아요. 12시 1시에 누구 안 들어왔잖아요. 그쵸?”
“그렇죠. 제가 빨래 건조기 돌려놓고 11시에 왔고. 그 전에도 사장님은 계속 여기 계셨었고….”
“음… 유경 씨, 혹시 모르니까 일단 CCTV 녹화된 영상 전수조사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12시에서 1시 사이를 집중적으로 볼까요?”
“네, 지금 당장이요. 아, 그리고 허 팀장보다 민규한테 먼저 연락 좀 해주세요.”
한유경은 캔에 남은 맥주를 입에다 훅 털어놓고는 노트북이 있는 계산대로 향했다. 씩씩하게 뛰어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윤재는 모니터에 있는 버튼을 차례대로 눌러보며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유량 조절 밸브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사일로의 온도가 높아진 지금 밸브는 풀오픈(full open) 상태여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열려 있으니까. 그렇다면 문제가 대체 어디에… 일단, 가장 밑바닥부터 다시 훑어보자. 쿨링 워터를 돌리려면 반드시 필요한 건 전기, 그리고 물. 전기는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내부에 설비 전원은 여전히 켜져 있고, 설비가 꺼졌다가 다시 켜진 이력도 없다. 그렇다면 물은… 이 바보야, 물도 당연히 아니지. 수도꼭지를 열면 언제나 곧바로 나오는 차가운 물.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상수도가 끊어졌을 리가… 응?’
윤재의 시선이 자연스레 사일로로, 그리고 쿨링 워터가 지나다니는 배관으로 향했다.
늘 물이 콸콸 흘러가는 스테인리스 배관에는 언제나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시익시익 유체가 금속을 긁는 미약한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었다.
근데, 지금 이 기다린 쇳덩이들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윤재는 저도 모르게 배관을 손으로 잡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귀를 배관에다가 갖다댄다.
“뭐 하세요?”
“쉿.”
그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한유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나 윤재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는 자신의 귀를 파이프에 대고 좀 더 강하게 누른다. 그러더니 손짓으로 한유경을 부르는 윤재.
“유경 씨, 이 라인 뭔지 아세요?”
“허동철 아저씨한테 들었어요. 쿨링 워터 파이프잖아요. 저기 열교환기라는 설비에 들어가는.”
“맞습니다. 이 파이프, 배관으로 물이 24시간 흘러가죠. 당연히 계속 물 흘러가는 소리가 나고 만져보면 떨림도 느껴져야 정상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유경도 배관을 손으로 잡아본다.
“떨림이 없네요. 소리도 안 나고. 그 말인즉….”
“네, 흐르는 물이 없다는 겁니다. 여기에. 근데….”
말을 잠깐 멈추고 윤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수도배관이거든요. 그냥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와야 하는 그런 배관인데 왜 물이 안 들어오는지….”
“혹시 누가 배관을 막은 게 아닐까요?”
유경의 그 말에 윤재가 갸웃거린다.
“그게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을 겁니다. 땅속 깊이 묻힌 배관이에요. 이걸 건드리려면 최소 굴삭기 정도는 들어와야 할 거고 작업 시간도 하루종일 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거창한 작업을 하고 있다면 그 소리 때문에 저희가 모를 수가 없어요.”
“그럼 수도가 막힌 거 아닐까요? 일단 구청에 빨리 물어봐야겠네요. 근데 새벽에다가 공휴일인데 그쪽에 대응 인력이 있을지….”
“정 안 되면 양문경 의원님을 통해보려고요. 사람이 나오지는 못하더라도 지역 축제가 걸린 일이니 최소한 점검이라도 할 포인트는 알려 주지 않을… 아니, 잠깐만… 점검 포인트….”
“···사장님?”
유경의 말을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달려가는 윤재. 미친 사람마냥 고개를 숙이고 뛰어다닌다. 그러더니 건물 뒤편에서 사람 몸 절반만 한 파란 뚜껑을 발견하고는 한 손으로 단번에 그를 확 열어 제꼈다.
뒤따라온 유경이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팀장님…? 그게 뭔가요? 수도계량기…함?”
“네.”
짧은 대답을 남기고 윤재가 뚜껑 밑에 있던 그 깊숙한 구덩이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바닥을 더듬더듬 살펴보더니 수도꼭지 비슷한 무언가를 손으로 힘껏 돌렸다.
그러자, 갑자기 솨아아 물 흘러가는 경쾌한 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선명하게 꽂힌다.
“이제야 물이 흐르네요. 그럼….”
윤재가 손을 털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지난밤에 어떤 놈이 이 밸브를 잠궜어요.”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4권
77화 호천동 맥주 축제(2)
수도계량기함. 말 그대로 수도를 얼마나 썼나 기록하는 수도계량기가 들어 있는 함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아파트나 큰 오피스 빌딩의 경우 수도계량기함은 건물 내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호천동같이 오래전에 형성된 구도심, 특히 애초에 건물을 지을 때 수도계량기의 위치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창고 건물, 차차맥주 브루어리의 수도계량기함은 건물 뒤편 바닥에 잠금장치 하나 없이 그저 파란색 플라스틱 뚜껑 하나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수도계량기함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해서 누구를 비난하고 질책해야 할 일은 전혀 아니다. 고압의 전기 설비처럼 누군가의 손이 닿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장치도 아니고, 또 도둑이 유혹을 느낄 정도로 값어치가 있는 무언가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