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3권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3권
목차
51화 새로운 부지
52화 궁지에 몰린 정상호프(1)
53화 궁지에 몰린 정상호프(2)
54화 궁지에 몰린 정상호프(3)
55화 내가 나서야 할 때
56화 히스토리
57화 1년도 넘게 지난 얘기를 갑자기 왜?
58화 조력자를 흔들어라
59화 나만의 방식
60화 불만을 잠재울 방법
61화 구체화되는 계획
62화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다
63화 영업팀장의 브리핑
64화 그들이 다시 움직인다(1)
65화 그들이 다시 움직인다(2)
66화 축제에 집중하는 사람들
67화 시위(1)
68화 시위(2)
69화 브루어리 개방(1)
70화 브루어리 개방(2)
71화 브루어리 개방(3)
72화 브루어리 개방(4)
73화 하스의 기술자들(1)
74화 하스의 기술자들(2)
75화 하스의 기술자들(3)
맥주 장사로 인생 역전 3권
51화 새로운 부지
‘유경 씨, 곧 점심시간인데 배는 안 고프려나? 그래, 애도 아니고… 계란 프라이든 뭐든 알아서 잘 챙겨 먹겠지. 근데 가만 보면 은근히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단 말야. 아무리 라들러가 0.5도짜리라고는 해도 맥주는 맥주인데….’
브루어리에 두고 온 한유경을 생각하며 미소를 띠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는 둥 윤재의 얼굴에서는 끊임없이 표정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운전만 하고 있던 허동철의 수염이 위아래로 벌어졌다.
“괜찮죠? 사람.”
“예…? 뭐가요?”
“아까 브루어리에 사장님이랑 같이 있던 정상호프 한유경 점장 말예요. 사람 괜찮지 않아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츠러든 윤재는 방어적으로 반문했다.
“글…쎄요. 팀장님 생각에는요?”
“아우, 매력 있죠. 붙임성 좋고, 싹싹하고, 눈치 있고, 늘 밝고 생글생글하고.”
설비팀장의 눈은 똑바로 보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장은 뜨뜻미지근한 말투로 맞장구쳤다.
“예, 뭐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나쁘지 않죠, 유경 씨.”
“제가 듣기로는 만나는 사람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 사장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라나.”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물어볼 정도로 친하지는 않아서요.”
허동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요? 아까 둘이 있었던 것도 그렇고, 난 둘 사이에 뭔가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윤재가 강하게 손사래 쳤다.
“전혀 아닙니다. 아까도 제가 아니라 팀장님 보러 왔다고 했어요. 열교환기 내부 클리닝 작업 구경한다고요.”
“에이, 사장님도 참. 그건 당연히 핑계죠. 지윤 점장이 그러는데 그쪽에서 먼저 사장님 만나는 사람 있냐고 물어봤다던데요.”
짓궂은 표정의 허동철. 그와 반대로 윤재는 난처한 듯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냥 어쩌다 나온 얘기일 거예요. 그리고 전, 유경 씨 개인적으로 만날 생각 없습니다.”
신이 난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설비팀장은 사장의 그 단호한 말에 입을 다물고 앞유리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트럭이 신호에 걸려서 움직임을 멈추자 그는 기어를 P로 옮긴 다음에 조수석으로 고개를, 아니 완전히 몸을 돌려서 물었다.
“왜 그렇게 딱 잘라서 거절하세요? 방금은 괜찮게 생각한다면서요.”
“저희가 업무적으로 만난 관계이지 않습니까.”
“윤재 사장님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가족이고 친구고 다 업무적으로 얽혀 있는 사람밖에 없잖아요.”
“···.”
“설마 브루어리 찾아오는 단골 중에서 짝 고르고 계신 거예요?”
“아뇨, 아뇨. 그 말이 아니에요.”
“그럼요?”
“그 사람이랑 저는 절대로… 어,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엇….”
서울을 벗어나 왕복 4차선 국도를 달리던 하얀색 트럭은 급하게 몸을 틀어 1차선 좁은 길로 들어갔다.
길 좌우로 하나씩 드문드문 나타나는 투박하고 단조로운 성냥갑 모양의 하얀색 콘크리트 2층 건물,평범한 회색 3층 건물들.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남은 거리는 5미터씩 천천히 줄어들었고,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한 중년 남자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푸른 코발트색 정장 차림, 구릿빛 피부에 선글라스를 낀 그가 선글라스를 살짝 위로 올리면서 말했다.
“공장 부지 보러 오신 분들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에게 남자는 익숙하게 명함을 한 장씩 건네주며 치아가 드러나도록 훤히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샘물공인중개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허동철은 명함을 받아 들고는 멋쩍게 웃으며 윤재에게 속닥였다.
“사장님, 우리 대체 명함은 언제 팔 거예요? 비즈니스에는 명함이 기본이라니까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저 바쁜 거 아시잖아요. 팀장님이 그냥 좀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
“뭘 정해주셔야 업체에다 맡기죠. 명함에 회사 로고 크기는? 글씨체는? 제 내선 번호는 있어요?”
“···책임지라고 안 할 테니까 일단 팀장님이 그냥 알아서 해봐요. 좀.”
계속 속닥거리는, 아니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중개인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명함 깜빡하시는 분들 많거든요. 어차피 전화번호는 이미 서로 알고 있기도 하고요. 자, 이쪽으로 오시죠.”
중개인은 다시 선글라스를 눌러 쓰고 자갈이 깔린 주차장 위를 지나 저 멀리 희미하게 철제 연두색 펜스가 보이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차차맥주의 남자들이 그를 뒤따랐다.
계속 앞장서서 걸어가면서도 그는 고개를 반쯤 돌리고 부지런히 입을 움직였다.
“술 빚는 회사라고 하셨죠? 마침 이 동네에 중소 식품 제조 가공업체가 많습니다. 저기는 두부 만드는 공장, 그 반대편에는 유기농 과자 만드는 회사, 저기는 무슨 동물 사료 만든다고 했는데, 고양이였나 강아지였나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아, 둘 다 그게 그건가? 하하. 여튼, 전 공장 운영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주변에 비슷한 업종이 많으니 인허가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제가 전문가는 아니니 절대 제 말만 믿고 덥석 들어오지 마시고 자세한 건 시청에다가 문의해보세요, 하하. 아, 여기까지입니다.”
남자는 펜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서서 양팔을 벌렸다.
“아까 트럭 세워 놓으신 곳부터 이 펜스 안쪽으로 전부입니다. 크죠?”
“정확히 몇 평이라고 하셨죠?”
“2천 평 조금 넘습니다.”
허동철이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2천 평이면 너무 큰데….”
그의 혼잣말에 중개인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선생님, 여긴 서울이 아닙니다. 주변에 오면서 보셨겠지만 여기에 대중교통이라고는 마을버스 딱 한 대예요. 아마 직원분들 출퇴근 생각하면 셔틀 버스, 혹은 전부 자차로 오신다면 차 몇십 대 이상은 넉넉하게 세울 수 있는 주차장 부지도 필요하실 테고요.”
“저희 브루어리 직원이 몇십 명 까지는….”
“들어보세요. 그리고 공장이니 큰 대형 화물도 많이 취급하실 거잖아요? 미래를 생각하신다면, 30톤 트럭처럼 긴 화물차가 들어와 가지고 머리 돌려서 다시 나갈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꿈을 크게 가지셔야죠.”
윤재가 물었다.
“혹시 다른 곳도 있습니까?”
“아, 몇 군데 더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 차로 가시죠. 이건 제가 선생님들한테만 특별히 알려 드리는 건데, 여기 오실 때 우측에 하천 하나 있었죠? 거기 건너편으로 신도시가 크게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10년 뒤에는 땅값이 엄청 오를 수도 있습니다. 목민심서 지으신 정약용 선생 아시죠? 그런 큰 인물이 바로 이 근방에서 태어나셨어요. 동네 기운이 보통 좋은 게 아니라니깐….”
중개인은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으며 이들과 함께 근처에 있는 공장 부지를 30분가량 더 돌아다녔다.
“감사했습니다.”
“감사는요, 이게 제 일인데. 그럼 언제쯤 연락 주실 건가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주세요. 아, 사무실 번호 말고 꼭 명함에 있는 제 핸드폰으로요 부탁드릴게요.”
중개인은 꾸벅 인사를 한 뒤 검은색 고급 세단을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떠났다.
드디어 조용해졌다는 생각에 허동철이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들이 마시고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사장님, 이거 다들 너무 큰데요? 2천 평, 3천 평… 가장 작은 게 아까 얼마라 그랬죠?”
“천칠백. 두 번째로 갔던 곳이요.”
“땅이 아무리 거거익선이라고는 해도… 브루어리 건물은 몇 평으로 올릴지 정하셨어요?”
“아직이요. 부지 모양에 맞춰서 설계가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정해진 게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근데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건가요? 아직 저희 호천동 브루어리에도 설비 들어올 자리는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만. 30미터짜리 사일로라도 들일 생각이신가요?”
윤재는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열어 물을 꿀꺽 마시고 입을 닦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사실 우리 건물주한테서 어떤 방해 공작이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리 대비를 하는 겁니다.”
뜻밖의 이유에 허동철은 잠시 머뭇거렸다.
“건물주…? 정상호프요? 우리보고 나가라고 할까 봐요? 근데 우리가 갑자기 빠지면 자기들 맥주 수급도 크게 꼬일 텐데요.”
“빠지든 안 빠지든 수급은 꼬일 겁니다. 납품량을 줄일 거거든요.”
“예…? 설마 정상호프에서 납품을 줄이라고…?”
“아니요. 아마도 그쪽에서는 곧 늘리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저희도 좀 여유를 가져야죠. 지금은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빡빡하지 않습니까.”
허동철의 담배가 갑자기 빠르게 타들어갔다. 꽁초를 발로 짓이긴 뒤, 그는 빠르게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사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전 도통 이해가 안 됩니다. 정상호프에 들어가는 게 하루에 340리터입니다. 거기에 안 들어가는 만큼의 맥주를 우리가 다 소화할 수도 없는데요.”
“아예 없애는 게 아니라 줄이는 겁니다. 일단은 한 절반 정도. 피할 수 없는 경영상의 기싸움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런 기싸움이야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는 거긴 하지만, 절반도 적은 양은 아니죠. 이건… 공정팀장 불러서 생산 계획을 전체적으로 조절해야 할 사안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언제부터 줄이실 생각입니까?”
“그쪽에서 먼저 공격이 들어오면 대응할 생각입니다. 아마도 제 예상에는… 넉넉잡아 한 달 안.”
“한 달이요. 알겠습니다. 오늘 들어가는 강동라거 뱃치부터 물량 컨트롤 해야겠네요.”
넉넉잡아 한 달. 그러나 그것은 윤재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 * *
“겔트에서 아직도 안 들어왔다고? 우리 이제 오픈해야 되는데?”
정상대는 귀를 의심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겔트상사에서 제 때 술을 가지고 오지 않은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네….”
“겔트에 김영근은 뭐래? 왜 늦는다고 얘기라도 했을 거 아냐.”
“그게, 계속 김영근 대리한테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문자는 답장이 없고….”
정상대는 신경질적으로 펜을 딸깍거렸다.
“아오, 병원 한 번 갔다 왔다고 이게 무슨 난리야 대체? 이러니 내가 자리를 못 비워요….”
그러고는 발밑에 있는 소주짝을 보고 머리를 북북 긁었다.
“겨우 이거 한 짝 가지고 손님을 어떻게 받아? 하아….”
두 손을 모으고 죄인처럼 서 있는 5호점 점장.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겔트에는 내가 직접 연락해 볼 테니까, 애들한테 얘기해서 손님들 오시면 일단 수제맥주 고르게 유도해. 아 근데 이러면 또 수제맥주가 너무 빨리 떨어지는데···.”
그때였다. 창문 밖에서 트럭이 멈추는 소리가 들렸고, 곧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한 턱턱거리는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정상대는 곧바로 계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