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찾으러 왔단다 3권
꽃 찾으러 왔단다 3권
꽃 찾으러 왔단다
3권
꽃 찾으러 왔단다 3권
차 례
1. 각자의 욕심.
2. 최악의 전개
3. 마침내 돌아온 기억
4. 꽃 찾으러 왔단다.
5. 꽃길만 걷자.
꽃 찾으러 왔단다 3권
1. 각자의 욕심.
“읏챠- 누워봐.”
“꺄! 완전 아늑해!”
하준이 슬을 위해 강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는 좋은 그늘에 해먹을 설치해주었다. 나무 하나와 직접 심은 기둥을 연결해서 설치한 것인데, 위치도 몹시 좋았고 튼튼하고, 또 아늑했다.
슬은 그곳에 누워 기분 좋다는 듯 두 손을 깍지 껴서 하늘로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더니, 별안간 하준에게 말했다.
“나 있지. 파티하고 싶어.”
“파티? 웬 파티?”
“왜, 지난번에 다 같이 바비큐 파티했던 것처럼!”
“아…… 한스랑 혜승 누나랑 같이했던 거?”
“응! 두 사람도 불러서 같이 파티하자!”
“그래.”
슬의 제안을 하준은 곧장 실천에 옮겼다. 하준은 한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 먹으러 오라고 말하며 장까지 봐오라고 시켰다.
-야! 데이빗! 나는 네 Slave가 아니라고!!!
수화기 너머에서 한스의 짜증이 슬에게까지 들려와 슬이 큭큭 웃어댔다. 혜승에게는 슬이 전화했다. 네 번째로 쓰게 된 집 전화가 이젠 슬슬 편해지기 시작했다.
-네. 국선변호사 이혜승입니다.
“언니! 슬이에요.”
-어머! 슬아. 잘 지내지? 밥은 잘 먹고 있고? 안 그래도 휴가 끝나기 전에 한번 놀러 가려고 했는데!
“오늘 오실래요? 우리 같이 지난번처럼 파티해요.”
-그럴까? 오늘 일정 미룰 수 있는지 체크해 보고 갈게!
파티 준비는 순조로웠다. 한스는 툴툴거렸으면서도 하준이 말한 모든 것을 준비해왔고, 미옥은 지난번엔 갑작스러워서 해주지 못했던 꼬치나 샐러드 같은 다른 음식들을 정갈하게 준비해주었다.
슬은 미옥을 일찍 퇴근시켜 주었고, 미옥이 퇴근하자마자 도착한 혜승이 과일과 와인을 잔뜩 사 들고 들어왔다.
지난번보다 더욱 친해져 있던 터라 파티의 분위기가 훨씬 좋았다.
“이거 와인은 누가 사 온거야? 엄청 맛있어!”
화장실에 다녀온 혜승이 마시던 와인 잔을 다시 들고 마저 마시며 말했다. 그러자 슬이 말했다.
“어? 그거 한스가 마신 던 잔인데?”
그러자 혜승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이 마신 와인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거 아니었어?”
하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푸핫 웃더니 놀려대듯 말했다.
“간접 키스다!”
“뭐? 퉤퉤!”
혜승이 불결하다는 듯 손끝으로 자신의 입술을 격하게 닦아댔다. 자신을 더럽게 여기는 것 같아 불쾌한 건지, 한스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혜승에게서 자신의 잔을 휙 빼앗았다.
그러더니 혜승의 입이 닿았던 곳을 찾아, 굳이 그곳에 입을 대고 남은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주 보란 듯이.
“어… 음…….”
“헐. 대박.”
혜승은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고, 하준의 짧은 탄식만 있을 뿐이었다. 이후엔 한동안 정적만 흘렀다. 그러나 한스는 개의치 않는지 태연했고, 잘 익은 꼬치구이를 혜승의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
“먹어.”
“어? 어…….”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했던 분위기는 금세 누그러졌고, 이 일은 금방 잊히는 듯했다. 그것은 쿵쾅쿵쾅 뛰어대는 심장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 함께 움직이자 뒷정리도 금방 끝이 났다. 정리가 끝날 무렵 하준이 제안했다.
“날도 더운데 거실에서 다 같이 자는 게 어때요? 에어컨 켜면 거기가 제일 시원한데.”
“난 좋아! 재밌겠다. 히히.”
혜승은 몹시 반겼지만, 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돼. 남녀칠세부동석이야.”
“참나. 그런 말은 또 어떻게 안대? 하여간 한국말 잘하면서 지 불리할 때만 못하는 척이야. 그럼 너만 위에 올라가서 자던지! 하준아. 슬아. 우리는 거실에서 시원하게 자자!”
“이봐, 슬. 너도 싫잖아.”
“전…….”
한스가 슬에게 화살을 돌렸다.
“우리처럼 privacy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아뇨. 전 좋아요.”
한스의 속도 모르고 슬은 해맑았다.
“이렇게 누구랑 다 같이 자 본 적 없어서요. 저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도 못 갔거든요.”
“어머. 왜?”
“집에서 못 가게 해서요. 어차피 저 친구도 없었고…….”
“저런…….”
혜승은 슬을 곰 인형 끌어안듯 꼭 끌어안았다.
“못 해봐서 아쉬웠던 것들, 지금부터라도 실컷 하면 돼. 슬이 너 그거 알아?　너, 나보다 10년이나 젊다! 내가 네 나이였으면 후……. 나 진짜 막살았다!”
혜승이 슬을 위로해주려 한 말이었지만, 하준은 눈치 없이 대꾸했다.
“와, 누나, 아니. 누님! 새삼…… 연배를 실감하네요.”
“뭐? 우씨.”
슬은 크게 웃었고, 한스는 유치하다는 듯 쯧쯧거렸다.
“자, 일단 이불 깔자!”
혜승의 명령에 거실엔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네 명의 이부자리가 나란히 깔렸다. 한스는 싫다고 했으면서 가장 끝에 있는 이부자리를 자기 자리로 찜해두었다.
“짠! 이게 뭔 줄 알아? 이 어린 양들아.”
혜승이 가운데에 판판한 담요 하나를 더 깔더니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플라스틱 갑을 꺼내 보였다.
“맙소사.”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린 건 한스뿐이었다. 혜승이 갑에서 빨간 그것들을 꺼내 담요 위로 촤악 흩트려 놓았다.
“이게 바로 화투라는 거다. 우리 고스톱 치자.”
슬은 신기하다는 듯 화투장을 하나씩 하나씩 어루만졌다.
“우와. 저 실물 처음 봐요. 영화에서나 봤어서…….”
“어때? 배워볼래?”
“오늘은 구경만 해볼래요.”
“하준! 너는?”
“누나. 나 기억상실증이에요. 원래의 나는 타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흐음…… 괜히 가져왔나.”
좀 기대했었는데, 실망해선 시무룩해진 혜승이었다. 그러자 구세주처럼 한스가 그녀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Come on. Bring it on!”
자연스럽게 패를 휘휘 저어서 섞어가며 도발하는 한스에, 혜승은 되려 당황했다.
“뭐야. 너 할 줄 알아?”
한스는 대답 없이 패를 돌렸고, 그렇게 희대의 맞고 한 판이 성사됐다.
“사실 명절에 가족들끼리 할 때는 점당 100원 정도에 하곤 했는데 말이야. 한스 너나 나나 명색이 변호사인데 돈 내기를 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딱밤 맞기로 하자. 콜?”
혜승의 제안에 한스는 정말 가소롭다는 듯 진심을 담아 피식 웃었다.
“난 여자라고 안 봐줘.”
“풉. 어차피 넌 나 못 이기거든. 이건 한국의 민속 게임이다, 이거야. 외국인인 너는 나한테 안 된다고.”
“그래, 콜.”
역시나 선을 잡은 것도 혜승이었고, 첫 판부터 패가 짝짝 붙었다. 혜승은 더욱 우쭐했다. 세 번째 판이 돌 때까지도 한스는 피만 2장 먹었을 뿐이었다.
흥미진진한 정도도 되지 못하는 뻔한 싸움인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네 번째 판에 도래했을 때, 혜승이 방심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한스의 눈빛이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한스의 앞엔 패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짝.
짝짝.
짝짝, 짝!
어찌나 소리도 찰지게 짝짝 달라붙는지 혜승은 당황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다음 판에 먹으려고 준비해둔 패는 한스가 앞서서 싹 쓸어 갔고, 혜승은 계속 빈 패만 내놓아야 했다. 이대로면 진다는 걸 알면서도, 손 쓸 도리가 없이 허무하게 계속해서 빼앗겼다.
이미 한스는 4광에, 청단, 초단까지 점수가 났고, 혜승의 피박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래서 혜승은 마지막으로 솔 한 장을 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제발 광박만 면하자.’
아직 솔광이 남아있으니, 이 패가 따닥으로 솔광만 떠준다면 광박도 면하고 피도 더블로 먹을 수 있었다.
“젠장!”
하지만 그대로 판만 깔아준 후, 절규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당연히 남은 패는 모두 한스가 싹 쓸어 갔다.
“5광에, 청단, 광박에, 피박에…….”
한스가 암산으로 점수를 계산하는데 혜승이 눈치를 보며 슬쩍 말했다.
“100…… 102점?”
“Nope. 여기 고도리. 너 멍박. 그러니까 더 올라가지.”
“아아아악!”
지켜보던 하준이 슬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야…… 슬아. 이거 한국 민속 게임이라고 하지 않았냐?”
“으응……. 맞아.”
“한스 저놈은 외국인이고.”
“응. 그러게…….”
아니나 다를까 혜승은 머리를 쥐어뜯다가 씩씩거리며 담요를 뒤집어버리며 외쳤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진짜 여권 까봐! 당장 여권 까!!”
“총합 212점인데, 큰일이네. 할부되나?”
혜승이 열심히 씩씩거려봤자 이미 정해진 결과엔 승복해야 했다.
“야. 좀 봐줘라! 무식하게 200대 다 때리면 그건 폭력이다.”
하준의 말에 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좋아. 점당 한 대씩 맞기로 한 것도 아니니. 승과 패, 그렇게만 해서 딱 한 대로 치지.”
본디 혜승의 자존심으론 봐주는 걸 절대 허용하지도 않았겠지만, 솔직히 저 덩치의 남자가 200대의 딱밤을 때리는 건 좀 무섭긴 했다. 그래서 냅다 수긍했다.
“맞아, 그랬지. 우리 점수대로 맞기로는 안 했지. 그래.”
그러곤 손으로 앞머리를 고정시키고 이마를 내밀었다. 너무 무서워서 절로 눈이 질끈 감아졌다.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에이, 설마 진짜 때리겠어?’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퍽!
진짜로 가을 녘에 잘 익은 알밤 떨어지는 소리 같은 찰진 소리가 났다. 저 덩치로 힘 조절을 하지도 않은 건지 혜승이 뒤로 밀려 나가떨어졌다.
“와…… 씨.”
진짜 때릴 줄이야. 여자를, 그것도 이렇게 자비 없이.
혜승은 왈칵 짜증이 몰려와서 자기도 모르게 옆에 있던 베개를 들어 한스를 때렸다. 진심으로 분노가 담겨 매몰찼다.
오리털 베개인지라 조금도 아프진 않았지만, 한스는 묘하게 수치스러웠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수모에 그의 미간엔 팔(八) 자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