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물드는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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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물드는
2권
검게 물드는 2권
차 례
5장
6장
7장
8장
9장
에필로그
검게 물드는 2권
5장
고작 열여덟 남짓 살아온 인생이지만, 현해는 자신의 삶을 순탄하다고 평가했다.
언론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유명 병원의 지규선 교수. 그를 아버지로 둔 덕에 현해는 단 하루도 가난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다섯 살 터울의 형은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의대로 진학하였고, 그로 인해 현해에게 오는 압박은 한풀 꺾였으니.
현해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볼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현해는 그다지 의욕이 없었다. 모든 건 흘러가는 대로. 공부가 학생의 본분이라 하니 적당히 하는 정도.
그런 현해가 처음으로 흥미를 가진 게 바로 음악이었다. 우연히 접했던 무명 밴드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던 현해는 그 즉시 어머니 혜경에게 고가의 장비를 부탁하였다. 혜경은 흔쾌히 장비를 마련해줬고, 현해는 방 안에 틀어박혀 낯선 장비를 조작하기 바빴다.
재능이 있었던 건지 현해의 실력은 일취월장이었다. 처음엔 어설프게나마 비트를 찍어냈지만, 몇 달 뒤엔 짜임새 있는 곡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17살, 현해는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곡을 누군가에게 팔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력이 끊길 때면 작업 중인 곡을 떠올렸다. 또래보다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자연스레 현해의 곁엔 사람들이 몰렸고, 그는 구태여 그들을 내치지 않았다.
옆에 두는 건 귀찮았지만, 내치는 건 성가셨다. 주위에 사람이 들끓는다고 욕보는 일도 없었다. 현해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호감을 표하는 사람을 적당히 구슬리는 법도 쉽게 터득했다.
그래도 점심시간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좋아하는 게 뭔지, 시간은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질릴 대로 질렸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바로 제2 과학실이었다. 이제는 그저 빈 교실로 전락한 곳.
늘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가사를 끄적였다. 그게 평탄하고 지루한 일상 중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노트를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강렬한 햇빛 탓에 창가 쪽에 앉은 걸 후회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살짝 열린 문틈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흡.”
“…….”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막는 모습. 이젠 점심시간에도 편히 있지 못하는 건가. 그건 싫었다. 현해는 소문내지 말라 부탁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 애는 말을 붙여오지 않았다. 오히려 꽁지 빠지게 도망갈 뿐.
“……뭐야?”
모두가 다가오려고 애를 썼지, 저렇게 부산스럽게 도망가지는 않았다.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현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서 있다가 돌연 소리 내어 웃었다. 조금 전 도망친 여자애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다.
그 표정을 잊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에, 그 애를 찾아내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 * *
그 애는 여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날 처음 본 게 다인 여자애였지만 그 이름이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현해는 여름의 이름을 곱씹으며 정처 없이 복도를 거닐었다. 그사이 말을 거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이 넘어갔지만, 현해는 그중 단 한 명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안 한 게 맞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며칠 전 알아낸 여름의 반 근처였다. 이 근처까지 온 적이 있던가. 조금 더 배회하다 보면 여름을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현해는 느릿하게 복도를 걸어다녔다.
그리고, 정말 여름이 나타났다.
여름은 현해를 보고 어깨를 흠칫 떨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걸어갔다. 현해는 그 모습에도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태평한 척하려 해도 눈동자가 심히 요동치고 있는 게.
“안녕.”
그래서 충동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나?”
“응. 오여름 맞지?”
여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저번에 훔쳐보던 애, 너 맞지? 궁금해서 알아봤거든.”
일부러 훔쳐봤다는 표현을 쓰니 여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눈에 봐도 부끄러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눈동자는 현해가 지겹도록 봐온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여름이 현해의 흥미를 유발한 건 유독 소극적인 태도였다. 여타 사람들과 다르게 여름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참 특이한 애였다. 현해가 고개를 미세하게 비틀었다.
“난 지현해야. 앞으로는 인사하고 지내자.”
상체를 숙인 채 인사를 건네자 이젠 목까지 붉어졌다.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여름 앞에 선 현해는 마치 초식동물을 노리는 육식동물 같았다.
“다음에 또 보자, 여름아.”
현해는 미련 없이 여름을 지나쳐 반으로 돌아갔다.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그 자그마한 애는 간만에 찾아온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 * *
3학년에 오른 두 사람이 같은 반이 되자 현해는 적극적으로 여름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해의 호의에 익숙해진 여름이지만, 그래도 훅 좁혀오는 거리엔 여전히 면역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앞에 서면 얼굴을 붉히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좋아하는 티를 여실히 내면서도 결코 제 옆자리를 욕심내지 않는 애. 현해는 그게 못내 마음에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현해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 탓에 마땅히 친한 친구랄 게 없었다. 자신을 낱낱이 잘 아는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가족 관계, 핸드폰 번호, 하다못해 생일까지.
남들이 아는 거라곤 유명한 저의 부친, 화려한 뒷배경 정도. 고작 그 정도만 알면서 호감을 표해오는 사람 따위,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해는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배는 조심스러운 여름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주제넘게 달려들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저 애는 옆에 둬도 귀찮진 않겠다. 함께 있어도 지루하진 않겠다. 그게 현해가 내린 여름에 대한 평가였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고 저 지고지순한 마음을 숨길 건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늘 철두철미한 현해답지 않게, 그 계획은 한순간에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 부모님이 너 보고 싶대.] 오후 10시 8분
졸업식 당일, 예진에게서 온 문자 한 통. 현해가 얼굴을 구겼다.
예진의 부모는 예진과 똑같았다. 딱딱한 말투에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성격.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주고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고작 인사 한 번을 피하는 것도 애매한 상황에 현해는 애꿎은 핸드폰만 교복 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졸업식이 끝나자 저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었다. 현해도 옆에 선 친구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는 예진을 찾아 나섰다. 빨리 얼굴이나 비추고 남은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고 싶었다. 아쉬움에 울먹일 여름의 표정도 내심 궁금했다.
“지현해.”
예진은 으레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옆엔 예진의 부모가 나란히 서 있었다. 현해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고는 생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그래. 현해도 많이 컸구나. 키가 더 자란 것 같은데.”
어색한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샌가 현해의 부모도 가까이 다가왔다. 양가 부모의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말들이 오갔다. 현해는 피곤한 티 하나 없이 잔잔히 웃고 있었다.
“둘은 아직도 친하게 지내지?”
뜬금없이 예진의 아버지가 질문해 왔다. 현해는 당황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예진이가 공부도 잘 알려주고 있어요.”
“그렇지? 내가 저번에 둘이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라고 돈 좀 쥐여줬거든.”
“맞아요.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현해가 어른들의 말에 맞장구를 칠 동안 예진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딱딱한 얼굴 그대로 현해의 옆자리를 지킬 뿐.
“오랜만에 이렇게 모인 거, 같이 식사라도 하는 건 어때요?”
“그거 좋죠. 원장님, 오늘은 시간 괜찮으세요?”
“오늘은 괜찮죠. 그나저나 저번에 정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현해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계획이 어그러지려 한다.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고 돌아가려 했건만 식사라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얘기들만 늘어놓을 게 뻔했다.
“왜. 두 사람은 따로 먹고 싶은 거야?”
혜경의 말에 네 명의 어른들이 일제히 흐뭇하게 웃었다. 현해는 저 미소 짓는 얼굴들이 싫었다. 아무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예진도 덩달아 거슬렸다.
“우린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예진이랑 천천히 주차장으로 와. 너무 늦진 말고.”
저 말인즉슨, 예진과 짧게 인사만 하고 곧장 차로 오라는 뜻이었다. 현해의 부모는 적당히 부드러웠고, 상당히 강압적이었다.
결국 강당 입구 쪽에 현해와 예진이 남겨졌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오가는 틈에 껴 있으니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현해가 가지런히 정돈된 머리를 거칠게 털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그만 가자. 할 얘기도 없고.”
“3년 동안 수고 많았어.”
“……그래, 너도.”
예진은 짤막한 인사를 건네며 어딘가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강당을 벗어났다. 주차장에 다다르고 나서야 현해는 잊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오여름이 울먹이는 거, 보고 싶었는데.
“현해야, 안전벨트 맸니?”
“……네.”
곧이어 차가 출발했다. 현해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무료하게 하늘만 바라보았다.
식사는 예상대로 체할 것만 같았다. 현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 온종일 억지로 웃고 있었으니 피곤해지는 건 당연했다. 이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다 불현듯 여름의 잔상이 떠올랐다.
인사도 못 했으니 연락 한 통이라도 해볼까.
그러나 현해는 충분히 지쳐 있었다. 고된 몸으로 연락을 넣을 만큼 여름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았다.
분명 여름은 내일이고, 모레고 먼저 연락해 올 것이다. 그때 연락을 받아줘도 늦지 않을 것이다. 현해는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현해는 수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여름을 까맣게 지워 버렸다.
* * *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음악에만 열중하고 싶은 현해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등쌀을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 학교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기복 없던 인생이 더더욱 지루해졌다. 배우는 건 많아도 즐겁지 않았다. 틈틈이 작업을 해서 곡을 파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지루하지 않은 일이었다.
“현해야,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정문 앞에서 맥주 한잔하자!”
“죄송해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오늘도 안 돼?”
오늘도 어김없이 술 한잔하자며 들러붙는 선배들을 뿌리쳤다. 현해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대학에 와서도 끊이질 않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 호감을 적재적소에 이용할 궁리를 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귀찮기만 했다.
“도대체 언제 되는 거야? 뭘 하길래 그렇게 바쁜 거냐구.”
말꼬리를 늘리며 붙어오는 같은 과 선배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죄송해요.”
“……나중엔 꼭 같이 마셔줘야 해!”
그래도 오늘은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현해는 멀어지는 선배의 뒷모습을 싸늘하게 응시하다 자리를 떴다. 받아주는 것도 이만하면 됐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거절할 요량이었다.
* * *
점심은 웬만하면 혼자 먹으려 했다. 그건 현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켜온 혼자만의 규칙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홀로 학생 식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한 여자가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뒤에서 비켜달라는 말을 들은 건지 화들짝 놀라며 그제야 자리를 뜨려 했다. 제법 눈길을 끄는 모습에 현해가 인상을 찌푸리며 시야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현해는 그 여자가 누군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멍한 눈으로 제 쪽을 쳐다보는 것도, 자그마한 일에 크게 놀라는 것도.
줄에서 벗어나 곧장 여자에게 다가갔다. 얇은 손목을 약하게 쥐어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오여름?”
어쩐지 오늘부터 더위가 몰려오는 것만 같더니, 정말 여름이 찾아온 거구나. 현해는 어린 시절에나 했을 법한 순수한 상상을 했다. 간만에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 * *
여름은 변함이 없었다. 현해만 보면 방실방실 웃으며 달려오는 것도 여전했다. 나란히 걷다가 손등이라도 스치면 귓불을 붉히면서도, 절대 좋아한단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한편, 고등학교 때까진 제법 너그럽던 규선과 혜경의 간섭이 점차 심해졌다. 음악 활동을 허락한다는 빌미로 미래의 일부분을 저당 잡고자 하는 부모에 현해는 날이 갈수록 지쳐갔다.
이러한 현해의 상황을 알 턱이 없는 주변인들은 끊임없이 그를 귀찮게 했다. 간혹 선을 넘는 때엔 현해도 드물게 표정을 굳혔다. 워낙 날카로운 인상 덕에 손쉽게 위압감을 자아낼 수 있었다.
현해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마다 여름을 찾았다. 여름은 매 순간 현해의 기분을 우선시했고, 남들처럼 성가시게 구는 일도 없었다. 그녀를 만나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점차 풀렸다.
하루는 본가에 들른 날이었다. 대리석 깔린 바닥을 밟으며 고풍스러운 부엌으로 들어섰다. 이미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에 현해가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불편한 식사 자리였다.
“학업은 어떻게 되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 아무리 음악을 한다 해도 공부를 포기하면 안 되지. 네 형은 요즘 바빠서 집 올 시간도 없어. 그땐 다 그런 거야.”
규선의 고리타분한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현해가 고개만 주억거리는데, 돌연 혜경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예진이랑은 잘 지내고 있지?”
정예진. 워낙 총명했던 예진은 어릴 적부터 의사라는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의대에 진학한 예진 역시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예진이가 워낙 바빠서 말이에요.”
“그래도 네가 자주 연락도 넣고 그래. 앞으로 쭉 붙어 있을 사인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현해의 황당한 목소리에 부엌은 다시금 수저와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두어 번 헛기침을 한 규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정 의원, 사람이 참 괜찮아. 예진이도 제 아빠 닮아서 인품이 훌륭하고.”
딸을 의사로 키우고 싶은 정 의원은 규선과 만날 때마다 늘 예진과 동참했다. 현해와 예진이 성인이 된 후엔 은근슬쩍 두 사람의 혼인을 언급하며 집안의 관계 발전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규선은 안 그래 보여도 귀가 얇은 편이었다. 이미 정 의원의 언사에 넘어간 눈치였다.
“너도 네가 하고 싶은 음악, 마음껏 하는 대신 이 부분만 아비 말 들으면 되고.”
“그래도,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무슨…….”
“손해 볼 건 없다. 네 형이 내 밑으로 들어올 거긴 해도, 예진이까지 며느리로서 함께 병원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
“아버지.”
“내가 너 닦달하지 않은 거, 네가 더 잘 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