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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도무지 이 상황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왜?’라는 의구심만 가득했을 뿐, 어떠한 충격을 받는다거나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
너무 믿을 수가 없어서.
너무 피하고 싶은 현실이라서.
그래서 화가 났다.
순하고 착한 하나뿐인 오빠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아닐 거라는 말만 되뇌며 한걸음에 달려왔을 때, 이미 사랑하는 오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축 늘어진 팔과 뻣뻣하게 굳은 몸.
구급차에 이송되는 오빠를 보며 그녀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 * *
텅 빈 장례식장.
이틀 내내 잠 한숨 못 잔 얼굴로 멍하니 자리를 지키던 수인이 고개를 들었다.
[故 이수형]
영정 사진 속 활짝 웃고 있는 수형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젠 그만 울어도 될 것 같은데, 너무 많이 울었다.
처참한 몰골로 흐느끼던 그녀에게 친구 혜원이 다가왔다.
“그만 울어, 수인아. 응?”
“……혜원아.”
“너 이렇게 울면, 수형 오빠가 마음 편히 떠나겠냐? 진정해. 응?”
“혜원아. 나 이제…… 어쩌지?”
입에서 꺽꺽 소리가 날 정도였다.
세상 천사 같던 오빠. 다정한 오빠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했던 걸까.
수인은 한편으로 수형이 원망스러웠다.
평소 내성적이었던 수형은 친구도 많지 않았다.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다.
부모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고, 수형과 수인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밖에 없었고, 수인에게 있어 수형은 아버지이자 오빠였고, 친구였다.
대학 시절, 수인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수형은 많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수형보다 월등히 공부를 잘했던 수인은 가끔 장학금을 받기도 했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수형이 안쓰러워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왔고, 그럴 때마다 수형은 수인을 기특하게 여기며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동생 자랑을 하곤 했다.
「야, 이수형! 여동생이 진짜 한국대 언론정보과야?」
「응.」
「이야…… 대박이다. 예쁘냐?」
「그럼. 당연히 예쁘지.」
「나 소개해줘.」
수형은 주변 사람들이 수인을 칭찬하거나 대단히 여길 때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때론 부모 없이 자란 수인이 안쓰러워 그녀에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스스로도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곤 하지만 여동생만큼은 절대 불행하게 살게 놔두지 않을 거라며 오히려 더 열심히 살았다.
그랬던 그가 자살이라니.
처음엔 모두 믿지 않았다.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 *
한 줄기 빛마저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그녀가 눈을 뜬 것은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 때문이었다.
수인은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않아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다.
몸을 사방으로 비틀며 진동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핸드폰 화면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떠있었다.
“……여보세요.”
-수인아, 문 좀 열어. 나야!
혜원이었다.
수형의 장례식 이후, 수인은 세상과 단절하다시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던 혜원이 참다 못해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수인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야위고 야위어 가죽만 남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혜원은 속이 타들어 갔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거라도 먹자.”
혜원은 오는 길에 사 온 죽을 꺼내 수인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 주었다.
“조금이라도 먹자. 응?”
“…….”
“다 먹으라는 말 안 해. 죽지 않을 만큼이라도 제발 먹자. 이러다 너까지 죽어.”
수인은 한숨을 푹 내리 쉬었다. 손에 숟가락을 쥘 힘도 없었다.
조금씩 죽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던 그녀는 겨우 몇 입 떠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미안해. 안 넘어간다.”
“휴…… 뭐라도 마실까? 집에 우유 있니?”
“…….”
“죽도 안 넘어가면 그거라도 먹자. 내가 우유라도 사올게.”
“혜원아.”
지갑을 챙겨 나가려던 혜원이 멈춰 섰다.
“나 괜찮으니까 얼른 집에 가 봐. 지효는 어떻게 하고 여길 왔어?”
“어머님한테 맡겼어. 남편도 오늘 일찍 퇴근해서 괜찮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혜원의 가방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수인은 장례 이후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안절부절못하던 혜원이 수인의 눈치를 보자 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거봐. 지효는 엄마가 제일 필요할 거야.”
“내가 전화하지 말라 했는데…….”
“괜찮아. 나 있다가 네가 사온 죽도 먹고, 잠도 푹 잘 테니까 걱정 말고 가.”
“너 내가 확인 전화 수시로 하고 영상통화 걸어서 검사한다. 죽 꼭 챙겨 먹어!”
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원아!”
신발을 신던 혜원이 수인의 부름에 그녀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고마워.”
“못난 년. 몸이나 잘 챙겨! 간다!”
혜원이 밖으로 나갔다. 수인은 현관에서 손을 흔들다가 돌아서며 휘청거렸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어지럽고 속이 좋지 못했다.
가까스로 겨우 물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비좁은 거실 옆을 지나 나란히 마주한 방.
형제의 다정한 사이처럼 그들의 방 역시 마주하고 있는 구조였다.
수인은 수형의 방문을 열었다. 꽤 오랜만에 들어가 보는 그의 방이었다.
불을 켜고 수형이 앉아 있던 책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쓰던 스탠드 불도 켰다.
깜빡깜빡.
스탠드의 불이 깜빡거렸다.
무의식중에 그녀의 손끝이 스탠드의 스위치를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이곳에서 수형은 책을 읽고, 컴퓨터를 하고,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때론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공상했을 것이다.
수인은 수형의 빈자리가 크게 와닿았다.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아야 했다.
이제는 정말 그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코를 훌쩍거리던 그때였다.
책상 서랍을 열었던 그녀의 손에 무언가 잡혔다.
“……뭐지?”
빽빽하게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세심한 오빠는 나이 서른에 일기를 써왔나 보다.
그녀는 한 장, 한 장 일기를 넘기며 읽어 나갔다.
[수인이가 언론정보과에 입학했다. 너무 기쁜 날이다.]
[이수인 장학금 받은 날!]
[첫 월급을 받았다. 수인이 옷 사줘야지.]
[수인이랑 치킨 먹은 날. 아빠 엄마 보고 싶다.]
[수인이랑 여행 가야지.]
수형의 일기엔 온통 그녀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수인은 괜히 코끝이 찡해지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착한 오빠는 아버지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렸다.
그런데 조금씩 일기의 장이 넘어갈수록, 수인의 이야기는 쓰이지 않고 있었다.
“……손주화?”
일기장 속의 주연이 수인에서 낯선 이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장이 뒤로 넘어갈수록,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날의 진실.
수인이 몰랐던 오빠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 * *
“대박. 진짜 잘 어울리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