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그 남자의 법칙 1권
끌리는 그 남자의 법칙 1권
끌리는 그 남자의 법칙
1권
끌리는 그 남자의 법칙 1권
차 례
1
2
3
4
5
6
7
8
끌리는 그 남자의 법칙 1권
1
S 대학병원 장례식장 3층.
대한민국 5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트리셀의 남궁호 회장이 지주막하 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건 어제 아침이었다. 그는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다 쓰러졌고, 입주 가정부가 발견해 급히 구급차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비보를 접한 언론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언론은 장례식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S 대학병원 초입부터 들끓었다.
자수성가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사진이 인터넷과 뉴스를 도배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빈소에서 상주로 보이는 여자가 굳은 얼굴로 문상객을 맞이했다. 마른 몸에 검은색 상복을 입고, 긴 머리를 아래로 질끈 묶은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영정 사진 속 아버지 남궁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불과 그제 저녁만 해도 함께 식사하며 웃고, 대화를 나눴던 아버지였다.
“회장님?”
남궁호 회장 곁에서 10년 넘게 많은 일을 담당했던 한 비서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아직 저 회장 아니에요, 한 비서님.”
“죄송합니다. 남궁현 대표가 도착했습니다.”
“아……!”
소식을 들은 그녀의 얼굴이 일순간 밝아졌다.
“곧 올라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다시 영정 사진을 돌아봤다. 밝은 웃음을 짓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녀는 안도했다.
‘다행이에요, 아버지. 현이가 왔어요.’
잠시 후, 빈소 밖에서 웅성거림이 들리자 그녀는 몸을 돌렸다.
1년 넘게 보지 못했던 현이는 핼쑥한 얼굴로 빈소에 들어섰다. 한 비서가 미리 준비한 상복으로 갈아입었음에도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가 상쇄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걸 보니 여기 오는 동안 또 두통에 시달린 모양이었다. 혹은 여기 도착하면서일지도.
“설 누나…….”
“현아…….”
지금껏 담담한 얼굴로 빈소를 지키던 설은 현을 마주하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남은 가족이라고는 이제 남매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지난주에 통화할 때만 해도 분명 건강하셨는데. 농담도 주고받았고.”
아버지의 영정에 눈물로 인사를 마치고 나서 차디찬 바닥에 마주 앉은 현은 이해되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뇌혈관에 기형이 있었는데, 그게 터진 거래. 언젠가는 터질 것이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현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떨리는 설의 손에 쥐여 주었다.
“회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긴급 주주총회로 내가 회장직에 오르게 됐어. 장례식이 끝나면 바로 취임할 거야.”
“그래…….”
“그래서 말인데.”
설이 조심스레 현을 바라봤다.
“네가 한국에 와서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내가?”
“응. 부탁 좀 할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고?”
“기획전략팀 팀장 자리가 비었어.”
설은 현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기획전략팀?”
“그래. 딱 맞지? 네가 잘하는 일이잖아.”
“그거면 돼?”
“응?”
“내가 기획전략팀 팀장이 돼서 누나 곁에만 있으면 되는 거야?”
“응!”
설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한테 믿을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네가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어.”
“…….”
“제발, 현아.”
현의 눈에서 망설임을 읽은 설은 재빨리 그의 손을 잡으며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정말?”
“하지만 오래는 못 있어. 나도 명색이 회사 대표인데 계속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까.”
“그럼, 당연하지.”
“그러니까 딱 6개월만 있다가 다시 런던으로 돌아갈 거야.”
“6개월은 너무 짧은…….”
“오지 말까?”
“아니, 아니야. 반년, 반년만 도와줘.”
“알았어. 장례식 끝나는 대로 돌아가서 정리 좀 하고 올게.”
“응. 고마워, 현아…….”
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서둘러 한 비서에게 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현은 영정 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누나가 저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건 다 아버지 잘못이에요. 아시죠?
대답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눈물이 흐르려는 걸 꾹 참았다.
“아…….”
갑자기 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통증 자체보다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 남은 욱신거림이 더 싫었다.
현은 통증을 꾹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한 아무것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바닥에 놓인 작은 물병 하나를 들었다. 양복바지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물로 약을 삼키고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런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 통증을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걱정이었다.
* * *
3주 후.
“언니!”
도희는 테이블을 닦고 있는 도연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끌어안았다.
“깜짝이야!”
“나 소이 라테 한 잔, 알지?”
“어이구, 알았어.”
도연은 웃으며 카페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소이 라테를 주문했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그녀는 다시 테이블을 행주로 훔쳤다.
“오늘은 어째 일찍 출근하네?”
“일찍 출근해야지, 월요일인데. 오늘 팀장님도 새로 온다고 하고, 인턴도 새로 올 거고.”
도연의 질문에 도희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팀장이 새로 와? 원래 있던 팀장님은?”
“지병으로 퇴사. 원래 이번에 정 과장님이 승진하는 타이밍인데 말이지. 누가 오려는지 아주 사무실 공사하고 난리야.”
“그래? 정 과장님만 안됐네.”
“그러게. 형부는 잘 지내? 못 본 지 꽤 됐는데.”
“그이야 잘 지내지.”
“요즘도 바빠, 형부는?”
“비행 일정이 항상 있으니까.”
항공사 기장인 형부의 얼굴을 떠올리며 도희는 입술을 삐죽였다. 제복을 입어도 곰처럼 생긴 형부의 어디가 좋은지, 도저히 도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외모를 떠나서 남자를 믿는다는 것도 이해 불가였다. 남자를 고르는 기준은 높이 잡아야 하건만, 도연은 선을 보고 반년 만에 형부와 덜컥 결혼해버렸다.
자신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보는 남잔데, 진짜 잘생겼네.”
테이블을 닦던 도연이 아예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감상했다.
“누구?”
“저 남자.”
도연은 계산대 근처에서 진열된 텀블러를 구경하는 남자의 등을 가리켰다. 널찍한 어깨와 잘록한 허리가 근사한 옷발을 만들었다.
“그새 얼굴을 봤어?”
“잘생긴 남자는 바로 눈에 들어오지. 진짜 잘생겼는데, 이따 한번 봐 봐.”
“됐네요. 관심 없거든?”
“관심 좀 가지라고 하는 소리다, 계집애야.”
“흥.”
도희는 콧방귀를 뀌고 카페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뿌연 하늘이 보기만 해도 목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소이 라테 나왔습니다.”
“아!”
도희는 기다리던 커피 소식에 반가운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가 막 나온 뜨거운 커피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누군가 먼저 커피를 집어갔다.
“어?”
손의 주인은 한 남자.
잘생긴 얼굴에 뽀얀 피부까지, 지금까지 도희가 봐왔던 남자 중 최고의 외모를 가졌다. 바로 조금 전 도연이 극찬했던 그 남자였다.
그는 커피잔을 들어 그대로 입에 가져가더니 뜨겁지도 않은지 한 모금을 쉬이 삼켰다.
“어어?”
도희가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놀라자, 그가 컵에서 입을 뗐다.
그는 무슨 일이냐는 듯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거 제 커피거든요?”
“네?”
“그쪽이 마신 그 커피, 제 커피라고요.”
“아……. 이런, 미안합니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어쩌죠? 이미 입을 댔는데.”
“그러게 잘 확인하고…….”
“저기에 제가 주문한 라테가 나왔네요. 오늘은 저거 드시죠. 다음에 제가 커피 한번 사겠습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픽업 대에 막 나온 커피를 가리켰다.
“이보세요.”
“오늘은 제가 바빠서……. 남… 현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