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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6. 기밀
27. 맞서다
28. 최후
29. 처음부터 끝까지
30. 새로운 다짐
26. 기밀
테이블 위에는 줄리안의 연구논문 외에도 스크랩된 기사며, 오래된 소책자 같은 것들 또한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게이트 발생의 원리>
<비정기적/비유형적 포털의 활용법>
개중 태라의 눈길이 멈춘 곳이 있었다.
<보도 금지 지침 :　대외비 ? 극비사항>
“!”
태라의 손이 파들거리며 얇은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표지의 배경에 멋들어진 글씨체로 ‘클럽 파르마키아’ 라고 쓰여진 서류였다.
<……실험에 실패……사망한 에스퍼/가이드의 신체를 변형……크리처화……언데드 상태로……임의의 포털에 보관……>
태라는 빠르게 내용을 훑어내렸다.
자세히 읽지 않았음에도 충격적인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클럽 파르마키아?’ 단순한 제약사가 아니었다는 건가……?”
과연, 함부로 알려지지 말아야 할 비밀스럽고도 추악한 내용들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어……어떻게 이럴 수가…….”
<……클럽 파르마키아의 체어맨들과 헤드마스터의 승인 뒤 일정량 이상 쌓인 실험체들을 방출……게이트 내에서 언데드의 이능 발휘 여부를……> 
‘체어맨에 헤드마스터라니, 게다가……게이트 내에서 언데드의 이능 발휘……? 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이야?’
읽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그에 잠시 혼란에 빠져있던 태라가 곧 정신을 차렸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의 문서들을 되는대로 그러모았다.
그때,
철컥- 
방의 문이 열렸다.
***
센터 타이탄, 곤조의 집무실.
줄리안이 곤조를 방문했다.
막 집무실로 돌아온 곤조가 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줄리안을 안으로 안내했다.
“오, 자네가 직접 왔군. 이번 회동에는 못 온다더니.”
곤조는 샛노란 눈동자로 줄리안을 비딱하게 훑었다.
줄리안의 태도는 오늘따라 겸손해 보였다.
“……클럽 파르마키아의 일이니까요.”
줄리안은 조용히 대답하며, 한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아티팩트를 곤조에게 건넸다.
일전에 그가 줄리안에게 의뢰했던, 광역 세뇌를 위한 기기였다.
그의 부족한 정신계 이능 등급을 채워줄 물건이었다.
그토록 염원해 오던 것을 건네받았음에도 곤조의 낯은 평이했다.
물건을 잠깐 훑어본 곤조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줄리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렇게 금세 가져올 줄은 몰랐는데?”
잠시간 그를 탐색하듯 훑던 곤조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래. 내 이래서 자네가 좋아. 한 번 마음을 정하면 확실하거든.”
곤조는 오늘따라 다르게 느껴지던 줄리안의 분위기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지를 알아챘다.
늘 제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뻣뻣했던 느낌이 없었다.
사뭇 달라진 줄리안의 태도에 곤조가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며 껄껄 웃어댔다.
“결과도 썩 마음에 들고 말이야.”
곤조는 줄리안에게서 건네받은 아티팩트를 서랍 안에 넣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게걸스러워 보이는 곤조의 입가에서 희미한 멘솔향이 풍겼다.
줄리안은 평소처럼 곤조에게 시선을 두는 대신, 눈을 내리깔았다.
“어떻게 다 망가진 물건도 그렇게 살려 놓을 수 있는지, 내 정말 놀랐네.”
두 손을 모은 채로 눈길을 제 발치에 두고 있는 줄리안을 바라보고 있자니, 곤조는 제 안에서 묘한 정복감이 빠듯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줄리안을 향해 상체를 가까이 기울이며 속삭였다.
“자네의 지능계 이능이 꽤나 쓸만한가 봐.”
“…….”
조금 전까지 내내 흡족한 표정을 짓고서는 줄리안을 관찰하던 곤조였다.
그런 그가 돌연 낯빛을 날카롭게 바꿨다.
“나 또한 다음번의 이능 개방은 지능계로 목표해야겠어.”
뱀이 혓바닥을 내밀어 먹잇감을 탐색하는 듯이, 곤조는 집요하게 줄리안의 낯을 훑었다.
“그 좋은 머리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말끝을 흐리며 경계를 세운 데 비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줄리안에게서 곤조는 어떤 실마리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내 가까이 숙였던 몸을 물린 곤조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말했다.
“……아직 내 수준으로는 전혀 짐작이 안 가서 말이야.”
일순 잔인한 빛이 곤조의 샛노란 눈동자에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줄리안은 여전히 유순한 태도를 보였다.
“쯧…….”
동요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곤조가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참, 이거.”
그때였다.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곤조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줄리안에게 건넸다.
“받게.”
곤조가 건넨 것은 바스락거리는 분홍색 포장지에 싸인 알약 형태의 뭔가였다.
“이게 뭡니까?”
“이번에 나온 기호식품.”
시제품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며 물건을 내민 곤조는 번들거리는 미소를 만면에 내어 걸었다.
“자네가 크리스 그 아이 대신 내게 보내준 물건으로 만들어 낸 걸세.”
“아, 그렇습니까.”
줄리안은 조금 전과 같이 여상하게 대답했다.
관심을 거둔 곤조는 줄리안이 가져온 아티팩트를 꼼꼼히 살폈다.
“그…… 각인자가 있었던.”
줄리안이 덧붙였다.
곤조가 미처 보지 못한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불뚝 솟았다 금방 가라앉았다.
“그래 맞아. 제 짝이 이미 죽어서 게이트에 던져졌다고 하니 곧바로 A급으로 성장을 하지 뭔가.”
“…….”
조금 전만 해도 과하다 싶게 줄리안을 경계하던 곤조는 새로운 기기에 완전히 주의를 빼앗긴 상태였다.
“쩝, 조금 더 욕심을 내 봤는데, 너무 약해서 말이야. 그나저나, 이걸 누르면 작동하는 건가?”
곤조가 새로운 장난감을 쥔 어린애처럼 구는 사이, 줄리안의 얼굴에 경멸의 기운이 잠시 비쳤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완전히 주의가 팔린 곤조는 그런 그의 변화를 알아챌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기실, 곤조의 짐승 같던 기감은 전보다 많이 무뎌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다 짜 내도 상품화시킬 정도로는 추출이 어려울 것 같더라고. 그러니 이건…….”
괴물 같은 몸에 대단한 이능력까지 가진 곤조였으나, 그의 추악한 취향은 저도 모르는 새 조금씩 몸을 갉아 먹고 있었다.
“한정판인 셈이지.”
곤조의 누런 이빨이 드러났다.
제 몸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그의 입가가 탐욕스럽게 벌어졌다.
진심으로 재밌다는 웃음소리가 끌끌거리며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 
태라가 문건을 챙기고 있던 방 안에,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 케일론이 비척거리며 들어왔다.
“케이!”
태라는 들고 있던 문서들을 내려놓고 바로 케일론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부축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케이!”
몸이 닿자, 가이드의 미약한 파장이 느껴졌다.
“대체……네 가이딩이……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태라. 얼른, 나……가…….”
케일론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다.
그의 뺨 한쪽에는 손자국을 따라 난 시퍼런 멍이 자리했다.
“게다가 얼굴은 이게 왠……!”
“진짜야, 시간이 없어, 태라…….”
시간이 없다며 초조해하는 케일론의 말은 태라에게 들리지 않았다. 태라는 제 가이드의 처참한 몰골만을 다급히 살필 뿐이었다.
“누가 이런…… 아니, 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분명 케일론을 데려가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이들은 이능을 사용하는 자들, 즉 에스퍼들이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태라의 뇌리에 아까 울렸던 알람과, 그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모두 에스퍼들이었다.
“순간적으로 가이딩 쇼크를 유도하긴 했는데…….”
설명하지 않으면 태라가 움직이지 않을 기세라, 케일론은 결국 간략하게나마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태라의 숙소로 케일론을 찾아온 이들은 곤조의 휘하에 있는 호스맨들 중 일부였다.
“곤조의 밑에 있는 호스맨들 중 일부야. 내 상태가 전 같을 거라 생각하고 방심했던 것 같아.”
“어……어떻게 그런!”
가이아에서 피폐해진 몸을 회복시켜 돌아온 케일론은 전과 같지 않았다.
기회를 보던 그는 제 가이딩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하지만……효과는 얼마 못 갈 거야.”
케일론의 낯빛이 어두웠다.
“어쩌면……지금쯤 깨어나서 이쪽으로 오고 있을지도 몰라.”
에스퍼에게 가이딩은 곧 회복이었다.
순간적으로 가이딩 수용체에 과부하가 걸리더라도 결국 깨어나고 나면 평소보다 더 가뿐한 몸 상태를 얻게 될 것이었다.
“어쨌든……가이딩이었으니까.”
케일론은 본인을 지키고 있던 에스퍼에게 순간적으로 가이딩을 퍼부어 기절 상태로 만들었다.
덕분에 그의 체내 가이딩은 단시간에 고갈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 알겠어. 얼른 이곳을 벗어나자!”
태라는 기진맥진한 케일론을 부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