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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9장
그로부터 며칠 후.
이른 오후부터 리덴이 호텔에 방문했다. 지난번 내 꾐에 넘어가 단체 예약을 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쪼르르 입구까지 달려가 리덴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백작님!”
“체고우 양. 마중 나와 주시니 정말 기쁩니다.”
“저도 백작님이 와 주셔서 기뻐요. 그런데 할머님은 어디 가시고, 혼자 오셨어요?”
커다란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리덴과 그의 부관뿐이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리덴이 사정을 설명했다.
“할머님께서 어제부터 몸이 좋지 않으셔서요. 주치의가 쉬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헉. 많이 아프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면서도, 또 다른 걱정이 따라붙었다.
‘설마 투숙객이 안 왔다고 단체 퀘스트 클리어가 취소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취소라는 시스템 창이 뜰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리덴을 안으로 안내했다.
“여기 장부에 서명해 주시면 돼요.”
“제 이름만 하면 되나요? 예약했던 모든 객실은 모두 그대로 지불할 겁니다. 편히 쉬려고 왔으니, 누군가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요.”
이게 바로 왕국 금화 기둥의 위세라는 거구나!
걱정이 쏙 들어갔다. 퀘스트가 취소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단체 요금을 냈으면 한 명이 와도 단체지. 암, 그렇고말고.’
“아, 그럼 백작님 성함만 적어주시면 돼요. 부관분께서는……?”
“얘도 돌아갈 겁니다.”
리덴이 부관을 가리키며 태연하게 답했다. 그의 부관은 처음 듣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마차와 함께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니 의문이 들긴 했지만. 사실 내게 그딴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방을 결제하지만, 객실은 하나만 쓴다는 건.
‘내일 청소할 객실도 하나뿐이라는 뜻!’
가뜩이나 축제 준비로 해야 할 게 많았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나는 리덴을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오늘 혼자시니 외롭지 않게 베개 네 개 넣어드릴게요.”
“현명한 배려시군요.”
리덴은 와락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죠? 아무튼, 어서 오세요. 객실 안내해 드릴게요.”
리덴에게 줄 객실은 301호. 바로 그제 개방된 곳이었다.
‘새 단장은 어제 마쳤지.’
축제 때 귀족이 올지도 모르니 좋은 객실이 필요하다는 내 강력한 주장에, 시데온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법사를 불러주었다.
‘덕분에 벽지와 바닥, 가구까지 전부 하루 만에 바꿀 수 있었어.’
301호는 2층 객실과는 확연히 다른, 제법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변신했다.
객실에 들어선 리덴도 만족스러웠는지,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으로 안을 살폈다.
후후, 놀랐지? 제법 괜찮아서?
“젠테 남작의 안목이 상당히 뛰어나신 것 같군요. 방이 무척 멋집니다.”
“그렇죠? 어제 막 새 단장을 마친 방이에요. 그래서 백작님이 이 방의 첫 손님이신 거죠!”
그가 내 너스레에 장단을 맞추듯 양순하게 웃었다.
“두 번 다시 없을 영광이군요.”
“네에, 그렇죠. 이 방, 백작님께 꼭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첫 손님으로 와 주셔서 기뻐요.”
“저 말입니까?”
그 또한 의외라는 듯 리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리덴에게 이 객실을 보여 주고 싶어서, 객실이 개방되자마자 시데온을 조르고 조른 거였다. 당장 마법사를 불러달라고.
나는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히죽 웃었다.
“왜냐하면 백작님께선 구석구석 둘러보시고, 편안히 즐기신 후에 주변 분들께 좋은 말씀을 전해주실 테니까요. 그렇죠?”
그렇다. 목적은 홍보다.
식당도 열었고, 좋은 요리사도 데리고 왔고, 객실도 멋지게 준비해도 홍보가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우리 호텔이 전과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그래야 호텔 축제 때 손님들이 몰려오지!
‘단시간 내에 가장 빠르게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인플루언서의 광고지.’
유명한 사람이 방문해서 좋은 후기를 남기는 것만큼 효과적인 광고는 없으니까.
하여 나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폴을 닦달해서 저녁도 특식으로 준비해 놨지!’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은 리덴이 자기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여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하는 건데…….
“하하하, 체고우 양은 정말 못 말리겠군요. 자나 깨나 이 호텔 생각뿐이시니.”
유쾌하게 웃는 걸 보니, 다행히 괜찮은 모양인가 보다.
‘역시 다정함과 너그러움은 꽉 찬 창고에서 나오는구나.’
나는 리덴에게 호텔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꼭 주변에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저녁에 식사 드셔보시면 깜짝 놀라실지도 몰라요. 저희 호텔 비장의 무기거든요.”
“그렇게 강조하시니, 꼭 먹어봐야겠군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기대하겠습니다. 그런데 체고우 양. 혹시 바쁘신가요? 괜찮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해야 할 퀘스트가 제법 많긴 하지만, 상대는 우리 호텔을 홍보해 줄 리덴이니까.
“없는 시간도 내야죠. 무슨 일이세요?”
“감사합니다.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리덴은 그렇게 말하며 카우치에 놓아둔 짐가방을 열고 자그마한 상자를 꺼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움을 물씬 풍기는 상자였다. 상자를 감싼 매끄러운 천 위로 상점의 문양이 정교하게 금박 되어 있었다.
리덴은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 내게 건넸다. 그 안에는 섬세하게 세공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얇은 금줄과 금으로 만들어진 꽃잎 모양의 펜던트 가운데 연둣빛 보석이 콕 박혀 있었다.
컷팅된 면이 빛을 받아 윤슬처럼 반짝였다. 그럼에도 과하게 느껴지지 않고, 매일 착용하기에 좋을 법한 목걸이였다.
‘페리도트인가?’
와, 나 실제로 처음 봐.
게임 속에서 보석 테마 가구가 나왔을 때나 봤지.
신기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리덴이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예뻐 보이냐는 말씀이세요? 네. 예뻐요.”
“다행입니다. 이걸 체고우 양께 드리고 싶습니다.”
“네에?!”
너무 놀라 흠칫 뒤로 물러났다.
“할머님께 팔찌를 내어드리지 않으셨습니까.”
맙소사.
그건 가짜 헤닐 조개껍데기가 달린 건데! 심지어 싸구려 목걸이랑 합쳐서 두 개에 육 갈라드 주고 산 거였다고!
양심을 팔아먹고 뻔뻔하게 구는 나라도 이건 받을 수 없다.
“받을 수 없어요. 그건 정말 저렴한 거였어요. 그냥 시장 가판대에서 심심풀이로 산 거였다고요.”
“아닙니다. 할머님께서 위험에 처하시거나 난처한 상황에 빠지실까 염려하여 신관 목걸이와 바꿔 주신 거 아닙니까.”
그건 돌발 퀘스트 때문에 그런 거라고!
“체고우 양의 마음은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게 이뿐인지라……. 부디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리덴은 다시 한번 상자를 내 쪽으로 밀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나는 리덴을 이용해서 호텔을 홍보할 생각만 했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리덴을 걸어 다니는 돈 자루 정도로 취급했다.
반짝거리는 보석과 안절부절못하는 연둣빛 녹안을 보고 있노라니, 내 안에 남아 있는 줄도 몰랐던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니요, 받을 수 없어요. 정말 괜찮아요. 이건 진짜 괜찮아요.”
거듭된 거절에 리덴의 처진 눈매가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한껏 추욱 처졌다.
눈치를 살피던 리덴이 조심스레 물었다.
“착용이라도 한번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할머님과 같이 골랐습니다.”
으, 으! 나는 약한 사람에게 약하단 말이야!
간절히 바라는 듯한 눈빛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착용하고 나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거절하자.’
“착용만, 착용만 해 볼게요.”
“예.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할게요!”
앞치마에 손을 슥슥 닦고, 불편한 마음으로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 『일석삼조 페리도트 목걸이』
- 매우 비싼 값을 주고 의뢰한 목걸이로, 페리도트를 볼 때마다 자신을 떠올려 달라는 의뢰자의 염원이 담긴 목걸이다. ( 의뢰자 : 리덴 아르카 )
- 착용 시 획득 경험치 2배 증가, 획득 리프 1.5배 증가, 체력 +30 상승효과가 있다. ]
……이거 코스튬이네?
‘경험치랑 리프, 체력 모두 증가라니.’
코스튬 중에서도 최소 A급 이상이란 뜻이잖아.
“저, 체고우 양?”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시스템 창을 읽고, 또 읽고, 하염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이렇게 세 가지 다 올라가는 코스튬은 진짜 구하기 힘든데.’
랜덤으로 나오는 이벤트 상품 중에 세 가지 모두 올라가는 코스튬을 얻으려고 현질도 정말 많이 했었다.
“체고우 양?”
그런데 이게 호텔 레벨이 20도 안 된 시점에 내 손에 들어왔다고?
“백작님.”
“예.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왜 착용해 보지 않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