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6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6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6
백원도둑놈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6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6권
Chapter 01.
제르우스가 나에게만 따로 ‘신고식’을 한 후.
다시 신병들의 전권을 잡은 막스가 크게 소리쳤다.
“선두부터 인솔하는 조교를 따라가라! 줄 제대로 맞춰서 가! 너흰 이제 병사다! 여긴 군대고!!”
―따라와!
―너! 빨리 안 따라가나?!
고참급으로 보이는 병사들- ‘조교들’이 윽박지르며 신병들을 인솔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신병들은 움찔했다.
다들 겁을 많이 먹은 것 같았다.
다른 신병들과 달리 나는 딱히 겁이 나지는 않았다. 내가 왕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조금 불편한 건 있었다.
‘……진짜 재입대한 것 같네.’
대부분 대한민국 성인 남자들이 그러했듯, 나도 군대를 다녀왔다. 아직도 그 기억이 조금 남아있는 것 같다.
―야! 거기 금발 애새끼! 너 빨리 안 와?!
앞 사람을 잘 따라가고 있었거늘, 어느 고참 병사가 나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아마 신병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잘못을 했든 하지 않았든 무작위로 갈구는 것 같았다.
‘음…… 저러는 걸 보면 막스를 제외하고는 어떤 병사도 내 정체를 모르는 것 같네.’
숙청 때든 미스티 포트에 다녀올 때든 나는 병사들을 꽤 많이 만났다. 즉위식 때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가렸지만, 평소 생활할 때는 가면을 쓰지 않았기에 내 얼굴을 아는 병사들도 꽤 많다.
그런데 이 훈련장에 있는 병사들 중에 나를 알아보는 병사가 없는 걸 보면…… 아마 내가 ‘평범한 신병’으로 훈련받을 수 있게 제르우스가 조치해둔 것이겠지.
물론 나는 병사들이 나에게 뭐라 하는 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특별 대우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건 나니깐.
‘나중에 언젠가는 내가 왕이라는 걸 밝히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래서 나는 별 불만 없이 신병답게 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생활이 끝―!”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을 고참 병사가 하려던 그때.
헐레벌떡 달려온 막스가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야 인마! 저, 저분…… ‘병사’가 뭘 잘못했다고 소리쳐!”
“……예?”
“이 새끼가?! ‘예’?! 저리 가, 이 새끼야!!”
“아, 알겠습니다!”
막스는 조교가 나를 갈구는 것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하기사……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막스라면 당연한 일이겠지.
나를 갈구려던 조교가 「”오늘 기사님 왜 저러시지?”」 라며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다른 신병들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막스는 나를 평범한 신병처럼 대하기 영 어려워 보인다.
그건 그렇고.
‘아까 제르우스랑 어떤 기사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나?’
신병 입소식을 하기 전, 나는 <미래 일기>를 미리 확인했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한 시간 정도 전에.
내가 일기를 확인한 이유는 신병 입소식이 걱정되어서는 아니다. 그저 그냥 습관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일기를 확인했을 뿐이다.
‘큰 일이 있었으면 일기에 나와 있었을 거야. 그런데 일기에는 별 내용 없었는데…… 흠, 근데 왜 제르우스는 그 기사랑 그렇게 심각하게 얘기했던 거지?’
제르우스가 내 근처에 있었다면 기사와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신병 훈련’에 집중하자. 다른 어떤 일 만큼이나 내가 병사로 훈련받으면서 다른 병사들에게 신임을 얻는 건 중요해.’
그렇다. 내가 신병으로 입대한 건 단순한 몰래 카메라 같은 장난, 놀이가 아니다. 후일 몬스터 군단과의 전쟁에서 병사들이 나를 믿고 따르게 하는 기반을 닦는 것이다.
현시점에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정지!!”
앞쪽에서 막스가 커다란 창고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창고에서 각자 무기와 갑옷 등 보급품을 가져간다! 다들 알겠지만, 이 보급품은 왕가에서 지급하신 보급품이다! 혹여나 잃어버리거나 별 같잖은 이유로 망가뜨리면 각오해라! 알겠나?!”
―예, 예……!
“목소리 봐라……. 이 벌레 새끼들!! 엎드려뻗쳐!!”
―빨리, 빨리 안 엎드려?!
―어쭈, 동작 봐라!
―너 열외! 열외 몰라 이 새끼야?! 뒤로 나오라고!!
―씨, 너 아까부터 어리버리 타던 새끼! 너! 너 인마, 너! 두리번거리는 너!
―저요?
―’저요’?! 이 개새…… 야! 빨리 안 튀어와?!
―왜, 왜요!
―’왜요’?!
신병들이 우왕좌왕하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막스의 얼차려가 또 시작됐다. 조교들이 그에 호응하며 소리친다.
PTSD 온다. 유격 온 것 같다. 조교에게 ‘저요?’ 라고 되묻는 폐급마저, 완벽하게 내 PTSD를 자극한다.
‘……첫날부터 만만찮게 굴리는구나. 그리고 이 세계의 신병이든, 내 원래 세계의 신병이든 어리바리한 건 매한가지네.’
과거의 나였다면 엎드려뻗치는 게 정말 부담됐을 것이다.
하지만 멸망의 황무지와 미노타우로스 던전에 다녀오면서 여러 훈련을 하고, 항상 건강 목걸이를 차고 있던 덕분에 나는 상당히 체력이 강해졌다. 힘도 강해졌고.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띄지 않는 거지.’
나름 ‘군대’를 다녀온 짬이 있다고, 나는 뭐를 해야 하는지 대충 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 새끼, 신병이 목걸이를 차고 와?! 이거 돌아이 아니야?!”
아까 나에게 소리쳤다가 막스한테 혼난 조교가 내 앞에 서서 말했다. 그의 군화에 연병장 모랫바닥이 긁히고, 내 얼굴에 모래가 튄다.
“너, 금발 머리! 기상!”
“예!”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 * *
하급 기사이자 훈련 교관인 막스.
그는 아까 그 병사 놈이 또 레오나르도를 갈구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 목걸이 뭐야!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신병이 멋을 부려?!”
조교의 망발에 막스는 식은땀이 흘렀다.
‘저, 저 미친 새끼가 진짜……! 쟤 왜 저러는 건데?!’
아까 분명 저 ‘금발 머리 신병’은 건들이지 말라고 눈치를 줬거늘.
저 조교는 눈치가 참 없는 놈이었다.
타타탓―!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막스가 재빨리 레오나르도에게 달려갔다. 만에 하나 병사가 레오나르도의 뺨을 때리거나 정강이를 차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야, 야! 그만―!”
막스가 말하던 그때.
조교보다 키가 한참 작은 레오나르도가 병사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예의와 절도를 분명히 지키며 말했다.
“이건 멋을 부리려고 찬 목걸이가 아닙니다! 왕국을 지키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 주신 유품입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차고 있을 뿐입니다!”
“……?”
“만약 신병이 목걸이를 차는 게 군법에 어긋나면 벗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런 군법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목걸이를 차는 것은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레오나르도를 갈구던 조교, 샘이 흠칫 놀랐다.
‘……이 새끼 뭐지?’
아주 오랫동안 신병 조교를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샘은 나름대로 경력 있는 조교였다.
그런 샘에게도 이렇게 또박또박 조교에게 말대꾸하는 신병은 처음이었다.
‘열 받은 걸 참지 못하고 갑자기 소리치는 놈들은 가끔가다 있었는데…… 이놈은 대체 뭐지? 군법? 나도 모르는 건데?’
그 뿐만이 아니다. 이 금발 머리 신병은 자신과는 다른 ‘품격’이라는 게 느껴졌다.
자신은 조교고 저 녀석은 신병이거늘, 저 녀석이 상관 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 금발…… 뭔가 눈에 익숙하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같은 금발은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샘이 조금만 기억을 잘 더듬어보면 신병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이 신병으로 들어와 있다’라는 그것 자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머지, 샘은 신병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너 이름이 뭐지?”
“나르입니다!”
“나르? 이상한 이름이군.”
“죄송합니다!”
“아니, 뭐…… 이름이 죄송할 건 없지.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걸 텐데.”
샘이 헛기침을 하며 계속 말했다.
“좋다, 나르. 아버지의 유품을 차는 걸 허락해주겠다. 하지만 내가 너를 지켜볼 거다. 왕국을 지키다 돌아가셨다던 네 아버지처럼 네가 이 왕국을 지킬 수 있는 병사가 될 수 있을지.”
“예, 알겠습니다!”
“만약 내 눈에 거슬리거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각오해라. 내가 아주 특별히 다뤄줄 테니깐.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얼굴에 안 어울리게 대답은 시원시원하군. 그럼 다시 엎드려뻗쳐라.”
탓―!
금발 머리 신병이 바로 연병장에 손을 대고 엎드려뻗쳤다. 다른 신병들은 그걸 구경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신병들과 조교들이 각자 속으로 금발 머리 신병에 대해 평가했다.
―’저 자식…… 배짱이 대단한데?’
―’조교한테 저렇게 말하다니.’
―’아버지를 따라 입대했다라, 멋진 놈이네. 나는 밥 벌어먹으려고 입대한 건데.’
―’역시 저 녀석은 내 동생한테 소개해줘야겠어. 저놈이라면 내 동생의 남편이 될 자격이 있다!’
그러던 중.
“큼!”
샘을 말리려던 막스가 헛기침을 하며 크게 외쳤다.
“그, 그럼 순서대로 장비 지급을 시작하겠다! 순번을 기다리는 놈들은 조교의 구령에 맞춰 기초 체력 훈련을 시작한다! 이건 얼차려가 아닌, 너희들의 정신과 육체를 무장하기 위한 훈련이다! 장비 지급이 끝나면 각자 알아서 갑옷으로 갈아입고 완전 군장 연병장 달리기를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 봐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막스가 원래의 근엄한 교관다운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그러고는 또 헛기침을 하며 레오나르도에게 말했다.
“큼! 너, 너…… 나르라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