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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시어머니가 나를 너무 예뻐한다 4
지은이｜그레이필
펴낸곳｜루시노블
투고 및 문의 | lucy@sybook.kr
ⓒ그레이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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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흑마법사의 후손
(1)
“읏!”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의외로 빛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살짝 눈을 뜬 나는 에피가 끌어안고 있는 걸 보며 흠칫 놀랐다.
[선물이야!]
“선물?”
[응!]
“……?”
에피는 작은 씨앗 같은 걸 껴안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작은 씨앗인데, 에피가 들고 있으니 크고 무거워 보였다.
성장했다고는 해도 에피는 조그마한 요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씨앗이니?”
[응, 이그드라실의 씨앗이야!]
“이그드라실?”
에피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세계수 이그드라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세계수라고 불리던 신화 속 나무인데, 여기에도 있었나?
에피는 식물의 요정이니, 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닌데.
그 나무의 이름이 이그드라실이라니. 나는 떨떠름한 음성으로 물었다.
“엄청 귀한 거 아니니?”
[그럴걸? 인간들은 없어서 못 구할 테니까.]
“그런데 나한테 줘도 되는 거야?”
[응! 어차피 우리는 이미 커다란 이그드라실 나무가 있으니까! 클로에한테 하나 줄게!]
“허어…….”
정말 이렇게 넙죽 받아도 되는 건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얼어붙어 있던 카시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해? 어서 받아!”
“하지만…….”
“저건 황제도 못 구하는 거라고!”
카시안의 채근에 나는 얼떨결에 이그드라실 나무의 씨앗을 받았다.
손바닥에 놓인 자그마한 씨앗을 가만히 바라보는 내 주변을 에피가 날아다니며 조잘거렸다.
[클로에라면 잘 키울 거야! 먹이는 마나를 주면 충분하니까.]
“나무 먹이가 마나라고?”
[응! 요정을 성장시킨 마나라면 이그드라실도 분명 좋아할 거야!]
“그렇구나.”
나무의 성장 요건이 토양과 물, 햇빛이 아니라 마나라니.
역시 특별한 나무라서 그런가 보다.
나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 클로에. 혹시 나무가 자라면 나한테도 재료 좀…….”
“알았으니까 너무 달라붙지 마세요.”
“고마워! 정말 고맙다!”
실험 생각만 하면 광인이 되어 버리는 카시안이 허리까지 숙이며 난리를 피웠다.
그를 겨우 진정시킨 나는 제인에게 부탁해 씨앗을 화분 안에 넣게 했다.
아무리 마나를 먹으며 자라는 나무라고 해도 흙은 필요하겠지.
그렇게 선물을 정리한 나는 겨우 마탑으로 떠날 수 있었다.
* * *
마법사들의 꿈과 이상인 마탑.
제국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역에서 재능 있는 마법사들이 소속되고 싶어 하는 낙원이자 이상향이다.
평생 세속에 관여되지 않고 마법 연구만 해도 되고, 마법 연마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꿈의 직장.
본래 마탑 본부는 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는데, 제국이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된 후에는 수도로 본거지를 이동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마탑주가 제국의 귀족이니, 본부를 옮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터다.
“어서 오십시오, 카시안 님.”
마탑은 의외로 평범한 건물처럼 생겼다.
하지만 입구만 그럴 뿐, 안에 들어가면 진짜 마탑으로 이동한다고 카시안이 말해 주었다.
“오랜만이야, 랜들.”
안에 들어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카시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대로 마탑의 문지기를 맡은 사람이라고 한다.
세월에 따라 모습이 달라져도 이름은 똑같이 쓴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평범한 외양이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흘렀다.
신기함을 느낀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분이 카시안 님과 동행한 분이시군요.”
“그래, 그 유명한 대공자의 약혼녀다.”
“아직 약혼식은 치르기 전이지만요…….”
“청혼서에 도장만 찍었으면 됐지, 뭐.”
심드렁하게 말한 카시안이 랜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마탑주는 안에 계신가?”
“…….”
그는 마치 자기 집에 온 듯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대마법사 아리시엔타의 후손인 그가 마탑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그리고 마탑을 나온 지금도 그 위치가 여전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오자마자 마탑의 주인을 만나는 걸 저렇게 자연스럽게 생각하다니.
오히려 카시안을 따라온 내가 안절부절못했다.
“저, 그게…….”
“왜? 무슨 일 있나?”
그런데 랜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그를 보며 카시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곧 랜들의 입이 열렸다.
“마탑주께서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신 지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뭐야, 은둔형 외톨이냐?”
“…….”
지금 자기소개를 한 건가?
나는 드미트리를 비웃는 카시안을 차게 식은 눈으로 쳐다봤다.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은 누구도 그분의 방에 허락 없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다만 카시안 님이라면 혹시 가능하지 않으실까 해서…….”
“뭐, 그 정도야 간단하지.”
랜들의 조심스러운 말에 카시안은 코웃음을 쳤다.
마탑에서 카시안의 방문을 허락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드미트리가 두문불출하니 그에 버금가는 마법사인 카시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어.
그만큼 마탑에서 카시안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새삼스럽게 감탄하며 카시안의 자신만만한 옆얼굴을 응시했다.
“걱정하지 마라. 금방 그 녀석을 끄집어낼 테니까.”
“부탁드립니다, 카시안 님.”
랜들은 카시안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나는 기세등등한 카시안의 뒤를 따라가며 작게 속삭였다.
“정말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나만 믿어. 드미트리 그 녀석 술식이야 뻔하지.”
“…….”
그러고 보니 드미트리도 카시안과 마탑 동기라고 했지.
만약 마도구에 미친 카시안이 마탑을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마탑주가 된 사람은 드미트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대단하다는 눈길로 카시안을 훑었다.
이제야 위대한 대마법사의 후손이 친한 지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카시안, 파이팅!”
“후후.”
그렇게 우리는 곧바로 마탑주의 방이 있는 최상층으로 향했다.
입구를 지나가자마자 텔레포트 마법이 발동해서 놀라웠는데,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같은 마도구를 타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로판 세계에서 엘리베이터라니!
마도구의 힘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감탄하며 카시안을 향해 말했다.
“이 정도면 마탑에서도 충분히 마도구 실험 할 수 있지 않아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먼. 이 녀석들은 오직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마도구만 만들어. 나는 그게 싫다고.”
“아아.”
하긴, 마탑도 집단이니까.
개인의 욕구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
카시안의 성격에 간섭을 받으면 싫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에드라이언의 마도구들이 하나같이 파격적이었구나.’
특히 초창기의 마도구는 왜 이런 걸 만드나 싶을 정도였다.
무엇이든 딱딱하고 작은 고체를 액체로 만드는 마도구라던가, 소리를 증폭시키는 마도구라던가, 음식에서 고기 맛을 느끼게 해 주는 마도구라던가.
그러나 결국 그 이상한 마도구들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고체를 액체로 만드는 마도구는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하는 세공사들이 유용하게 썼고, 소리를 증폭시키는 마도구는 귀가 어두운 사람들이 사용했다.
음식에서 고기 맛을 느끼게 해 주는 마도구는 편식하는 사람들이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게 도와주었지.
엉뚱한 생각을 하는 카시안의 상상력이 결국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케이런이라면 카시안에게 이런 걸 만들라고 강요하기보다 원하는 마도구를 만들도록 내버려두는 타입일 테니까.’
결국 카시안이 마탑을 나와 에드라이언 소속이 된 일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케이런과 카시안의 유대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최상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흠, 역시 결계가 쳐져 있군.”
육중하고 고풍스러운 문은 딱 봐도 중요한 인물의 방 같았다.
그 앞에서 작게 중얼거린 카시안은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