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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시어머니가 나를 너무 예뻐한다 1
지은이｜그레이필
펴낸곳｜루시노블
투고 및 문의 | lucy@sybook.kr
ⓒ그레이필, 2025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출판권자로부터 서면에 의한 허락 없이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재가공할 수 없습니다.
1장. 가문을 지켜라
(1)
“클로에!”
“…….”
“클로에 헤티시아!”
저택 안을 날카롭게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분한 얼굴로 씩씩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 시치미를 떼며 남자에게 물었다.
“어머, 숙부. 여기까진 또 어쩐 일이세요?”
“클로에, 너……!”
“……?”
나에게 숙부라고 불린 남자는 여전히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보면 참으로 순진하고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네가 감히……! 헤롤드 자작에게 그딴 식으로 굴어? 응?”
“헤롤드……. 아아, 그분이요?”
“너 때문에 잘 진행되던 혼사가 엉망이 되었어!”
“저런…….”
마치 남 일이라는 듯이, 나는 안타깝다는 것처럼 혀를 쯧쯧 찼다.
숙부라는 인간은 그런 나를 보고 더욱 노발대발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응? 좋은 혼사를 물어 와도 네가 이렇게 망쳐 대는데! 돌아가신 형님을 뵐 낯이 없다, 내가!”
“정말 죄송해요…….”
“젠장!”
“…….”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남자는 나의 숙부, 노아 웨일스.
천하의 개새끼다.
나는 고개를 숙여 눈을 내리까는 척하면서 얼굴을 구겼다.
소설에 빙의한 지 어언 3개월. 이제 슬슬 저놈도 질려 나가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참 끈질기다.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는 소설에 단 세 줄 나오는 엑스트라에 빙의했다.
클로에 헤티시아.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서브 남주의 여동생이다.
헤티시아 백작가는 아주 부유하지는 않지만, 대대로 황제의 측근을 배출한 유서 깊은 충신 가문이었다.
그런 헤티시아 백작가에 불운이 찾아온 건 5년 전, 백작 부부가 마차 사고로 명을 달리했을 때였다.
서브 남주인 크리스와 그의 동생인 클로에만 남기고 백작 부부가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백작의 동생 웨일스 자작이 나타나 가문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당시 크리스는 저택에 없었다. 교칙에 따라 성년이 되기 전까진 아카데미를 떠날 수가 없어, 부모님의 장례만 겨우 치르고 돌아갔다.
게다가 가문을 물려받을 후계자들은 무조건 상급 아카데미까지 졸업해야 한다는 망할 제국법 때문에 그 후에도 한동안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백작가에 홀로 남겨진 클로에는 속수무책으로 숙부에게 휘둘린다.
서브 남주인 크리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아카데미를 조기 졸업하여 백작가에 귀환했을 때, 클로에는 이미 요절한 뒤였다.
나는 원작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크리스 헤티시아에게는 소중한 여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아카데미를 서둘러 졸업하고 돌아온 그를 기다린 건, 싸늘하게 식은 동생의 시신이었다.
이 단 세 줄. 아무리 소설 내용을 떠올려 봐도 생각나는 건 저 문장들뿐이었다.
차라리 주인공들과 아무 상관 없는 엑스트라에 빙의할 것이지, 서브 남주의 요절하는 동생 포지션은 뭐란 말인가.
클로에에게 빙의한 당일, 나는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빙의하고 한 달, 나는 그저 멀쩡하기만 했다. 도무지 곧 죽을 것 같은 몸이 아니었다.
어쩌면 원작의 클로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몸이 약해진 걸 수도 있었다.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숙부가 나타나 집안을 휘저어 댔으니. 멘탈이 약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거겠지.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클로에의 돌아가신 부모님은 진짜 내 가족도 아니고, 숙부가 찾아와 잔소리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생에서 10여 년간 진상 손님들을 대처하며 생긴 스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숙부라는 작자는 나를 가문에서 쫓아내기 위해 술수를 쓰기 시작했다.
바로 결혼이었다.
이제 막 성년이 지난 클로에는 결혼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래서 나를 내쫓는 데에 혈안이 된 웨일스 자작은 온갖 곳에서 선 자리를 알아 와 나에게 들이밀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선을 본 놈팡이는 헤롤드 자작. 무려 나이 70이 넘은 노인이었다.
돈은 많지만 사생활이 지저분해서 부인들에게 이혼당하고 세 번째 부인을 들이는 거라 하던가. 기가 차지도 않았다.
이대로 변태 할아버지와 억지로 결혼할 수 없었던 나는 선 자리에서 깽판을 쳤다.
미친X처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찻잔 몇 개 깨트리고, 소리를 지르니까 그 노인네가 사색이 되어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다 나온다니까.
“너 지금 웃어?”
“아, 아뇨…….”
이크, 하마터면 웃고 있는 걸 숙부에게 들킬 뻔했다. 나는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 응? 헤롤드 자작이 너를 뭐라고 했는지 알아? 미친 망아지 같다고 했어!”
“망아지라니, 생각보다 귀여운 동물로 말씀하셨네요.”
“넌 지금 이게 장난인 거 같아?”
“…….”
숙부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러다 조만간 거품을 물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걸 들키지 않으려 손을 들어 입술을 가렸다.
그리고 최대한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흑…… 제가 어머니,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해요. 저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숙부님. 흑흑흑…….”
“윽…….”
내가 우는 척을 하니, 숙부 놈도 더는 나에게 화를 내기 애매해졌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용인들의 눈초리가 좋지 않은 걸 눈치챈 것이다.
숙부가 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내가 그런 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클로에. 그러니 어서 빨리 너에게 안정적인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게 아니겠니.”
“저는 그냥…… 집에서 오라버니를 기다리고 싶어요.”
“네 오라비도 가문을 이어받으면 결혼을 하게 될 거다. 그럼 너도 더 이상 이곳에 있기 힘들어지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네가 먼저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게 좋지 않겠니.”
“…….”
웨일스 자작의 말은 언뜻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서 사라져야 백작가를 차지하기 쉬우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였다. 그런 주제에 클로에를, 아니, 나를 위하는 척 말하는 꼴이 역겨웠다.
나는 절대로 백작가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가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가문을 지키고 있을 거니까.
그게 바로 나도 살고 크리스도 흑화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주먹을 꽉 쥔 내가 다짐하며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어쨌든 이번 혼담만큼은 너도 어찌할 수 없을 거다! 그 벨리아드 대공가에서 요청한 거니까!”
“……네?”
순간 무슨 말을 들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벨리아드라고? 내가 아는 그 벨리아드가 맞나?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숙부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의기양양해하며 말을 이었다.
“폐하께 너의 딱한 사정을 아뢨더니, 곧장 벨리아드 대공가와 연결시켜 주셨다! 너 같은 게 대공자비가 될 기회가 흔한 줄 알아?”
“…….”
빌어먹을 황제 같으니.
그 새끼는 돈에 눈이 멀어 웨일스 자작 같은 간신배를 곁에 두는 멍청한 놈이다.
원작에서도 고구마 담당이었지. 독자로서 실컷 욕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하……하하. 제가 어, 어찌 감히…… 벨리아드 대공가에 시집을 가겠어요?”
“네가 집안이 한미한 것 빼고는 빠지는 게 뭐가 있니? 얼굴 예쁘지, 성격도 참……. 흠흠, 아무튼.”
“…….”
자기는 자작 가문이면서 클로에의 가문을 무시하는 꼴이라니.
주제도 모르고 헤티시아 백작가를 은근히 낮추는 숙부를 흘끗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벨리아드만큼은 안 된다.
“네가 입만 좀 다물고 있으면, 대공자도 너에게 홀딱 반할 거다. 그러니 이번엔 제발! 응? 이상한 짓 좀 하지 말고!”
“하아…… 그래도 벨리아드는…….”
“내일모레 대공자께서 직접 너를 만나러 온다고 하셨으니, 그때까지 잘 준비하렴! 알겠지?”
“자, 잠깐…… 숙부님!”
망할 숙부 놈은 내 말도 듣지 않고 쌩하니 응접실에서 나가 버렸다.
나쁜 놈이 제 할 말만 하고 가 버리다니. 게다가 벨리아드라는 폭탄까지 터트리고 말이다.
‘거긴 안 돼! 절대 안 된다고!’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경악했다. 소설에 나온 벨리아드 대공가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비명을 삼켰다.
벨리아드 대공가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인 에이단 벨리아드의 가문이다.
아직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시점이니, 에이단은 지금 대공이 아닌 대공자일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원작 소설에 대해 떠올렸다.
원작 소설 ‘시어머니가 구박해도 남편 얼굴이 복지입니다’는 척박한 시월드에서 남주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발랄한 여주의 이야기다.
남주를 만나 첫눈에 반한 여주는 스토커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이내 결혼까지 성공한다.
마침 남주가 대공위를 이어받으려면 적당한 여자와 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약에 가까운 결혼을 한 두 사람이지만, 그 후에도 여주의 앞길은 결코 꽃길이 아니었다.
바로 무시무시한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남주의 어머니, 율리아 벨리아드.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 가문을 물려받은 여걸이었다.
나약한 황제가 남쪽에서 밀려 들어온 야만족들과의 전쟁에서 밀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당시 북부의 공작가였던 벨리아드가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총사령관인 율리아 벨리아드의 놀라운 통솔력과 능력으로 연전연승을 이뤄 냈다.
구국의 영웅, 찬란한 겨울의 지배자.
이 모두가 율리아 벨리아드를 칭송하는 말이었다.
그때 율리아의 활약으로 가문이 대공으로 승격했으며, 북부는 자치권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북부 자체가 한 나라인 셈이다. 지금도 황제는 율리아 벨리아드의 말이라면 설설 길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여주를 아주 싫어했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율리아는 여주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사건건 여주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물론 햇살 여주는 그에 굴하지 않았고, 나중엔 결국 대공이 된 남주가 율리아를 저택에서 쫓아내 해피 엔딩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