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 4권
지은이 : 링클릿
펴낸곳 : 필연매니지먼트
E-mail : feelyeon2015@gmail.com
정가 : 2,700원
ISBN : 979-11-7294-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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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
4권
링클릿
목차
ch 12. 셀레나의 선택
ch 13. 공작과의 계약 연애
ch 14. 사랑의 형태
ch 15. 둘만의 여행
ch 16. 함정
ch 12. 셀레나의 선택
다음 날 오후, 셀레나에게 두 통의 편지가 동시에 도착했다.
하나는 조이 맥켄지, 하나는 에밀리 브라이튼이었다.
용건도 둘이 똑같았다. 만나서 티타임을 가지자는 것.
‘음, 같이 만나면 안 되려나.’
셋 다 사교계에 친구가 별로 없는 편이니 만나서 친목을 다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행히 두 사람의 반응도 긍정적이라, 어빙 후작저에서 셀레나의 주최로 세 사람만의 티 파티를 열기로 했다.
“휴우, 내가 직접 티 파티를 여는 건 처음이야. 두 영애가 마음에 들어 해야 할 텐데.”
셀레나는 보통 다른 사람의 티 파티에 참석하며 인맥을 유지했지, 먼저 초대한 적은 없었다.
첫째로 귀찮고, 둘째로도 귀찮고, 셋째론 그만큼 친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랬다.
그리하여 대망의 첫 티 파티 날,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이와 에밀리를 기다렸다.
후작가 정원 퍼걸러 아래 티 테이블을 두고, 차와 디저트로 장식해 놓은 채 앉아 있자 곧 두 사람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조이 맥켄지예요.”
“아, 안녕하세요. 에밀리 브라이튼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셀레나 어빙이에요. 왠지 저도 자기소개해야 할 것 같아서 해 봐요.”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수줍게 웃었다.
루시는 아가씨들의 잔에 차를 따라 주면서 ‘꼭 셋이서 소개팅하는 것 같네’하고 생각했다.
쿠키를 집던 조이와 에밀리가 손을 부딪치고 얼굴을 붉혔다.
한 명은 맨날 마법 연구만 하고, 한 명은 맨날 일만 하고, 한 명은 맨날 공부만 한 결과.
서로 쑥스럽고 서툴러서 어쩔 줄 모르는 중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어빙 영애? 저는 알버트와 정식으로 약혼했어요.”
큼큼, 목을 가다듬은 조이가 자신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셀레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정말요?”
“네, 간택전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얼른 했죠. 양가 부모님들께서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졌다가 다치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축하받았어요.”
조이가 환히 웃었다. 황비 간택전 덕분에 그간 망설여 온 약혼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게 간택전의 순기능일까.
셀레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간택전 때문에 약혼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브라이튼 영애는 괜찮아요?”
간택전 후보로 거론된 영애 대부분은 수도 출신이다.
비록 에밀리는 수도 출신이 아니지만 그래도 지방 유수의 귀족 가문 여식이었다. 혹시 후보로 뽑혔을지도 몰랐다.
“아, 저는 아카데미 소속 학자라서 괜찮아요. 폐하께서 학자들은 피해서 고르셨다고 들었어요.”
에밀리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약혼자가 없는 그녀로선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정말요? 부럽네요, 저는 폐하께서 사업가는 제외해 주지 않으셨거든요.”
그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황제의 눈에 들게 된 셀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힘내요, 영애……! 저어, 최근에 황태자 전하와 데이트하셨다는 소문 들었어요.”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한 에밀 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벌써 퍼졌나요?”
“마탑주님과 라틀리프 공작님을 만나신 것도 들었어요.”
“예상은 했지만 정말 소문이 빠르네요.”
가만히 서서 숨만 쉬고 있어도 관심받는 남자들과 데이트했으니 어느 정도의 소문은 각오했던 셀레나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조이와 에밀리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세 분 중 한 분과 약혼 예정이신가요?”
“……그렇긴 하죠.”
“대답이 왜 이렇게 신통치 않아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마탑 체험 때 셀레나의 참지 않는 면모를 목격한 적 있는 조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셀레나는 그저 소리 없이 한숨 쉬며 고개를 저으려다가 멈칫했다.
조이 맥켄지는 오랜 연인이 있고, 에밀리 브라이튼은 아주 똑똑한 학자였다.
어쩌면 이들에게 조언을 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잖아요, 사실은…… 세 분 중 어느 분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누가 가장 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느 분이 제일 안전한지도 모르겠어요. 두 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제국에서 손꼽히는 세 남자가 대시하면, 당신의 선택은?
조이와 에밀리가 생각에 빠졌다. 두 사람은 매우 진지하게 셀레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에밀리였다.
“으음. 어빙 영애가 안전을 걱정한다는 건, 그분들께 어떤 위협을 받은 건가요?”
“어,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세 분 다 대단하신 분들이니까 혹시 몰라서 걱정하는 거죠.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잖아요?”
물론 자신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인 사건이지만,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
“그럼 그런 사고가 일어날 만한 상황을 가정하고 합리적인 추론과 증명을 통해 상대를 고르시는 게 어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예를 들면 ‘나는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 상대는 매 식사 때 땅콩을 먹는다. 고로 같이 식사하면 알레르기 유발 위험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가정을 한다면―.”
‘상대는 매 식사 때 땅콩을 먹는다’ 부분을 증명하면, 결론 부분도 자연스레 사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셀레나는 땅콩을 먹는 상대를 피해서 고르면 됐다.
대충 어떤 식으로 응용하면 될지 감을 잡은 셀레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아카데미 학자다운 발상이랄까.
그리고 다음은 조이의 차례였다.
“어빙 영애는 세 분 중 누가 가장 마음에 드세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럼 그 세 분께 한 번 다른 사람을 붙여 보는 게 어때요?”
그 생각은 해 보지 않았던 셀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이가 수 없는 밀당 과정을 거쳐 연인을 얻고 장기 연애한 짬밥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알버트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비슷한 방법을 썼었거든요. 다른 여자랑 붙어 있는 걸 보니 질투가 나서 깨달았죠. 제가 알버트를 좋아한다는 걸.”
그러니 셀레나도 똑같이 다른 여자를 붙여 보고, 가장 질투가 나는 사람을 골라 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조이는 말했다.
“다른 사람이 접근해도 흔들리지 않는 분이 가장 영애를 좋아하는 분이기도 하겠죠.”
자신을 정말로 좋아하는 남자를 골라내야 하는 셀레나에게 적합한 조언이었다.
“고마워요, 영애들. 둘 다 너무 좋은 방법 같아요.”
다 시도해 봐야지.
셀레나는 이래서 또래 영애들과 티 파티를 하는 것이구나를 느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세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할 사람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조이는 놀랍게도 그 역할에 본인 동생을 추천하며 소개해 주었다.
수수한 생김새의 언니와 다르게 고양이상 미인인 동생의 이름은 안젤라 맥켄지였다.
“제가 영애의 동생을 이용해도 되는 거예요……?”
“네, 얘가 어빙 영애 팬이거든요.”
안젤라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을 거들었다.
“정말로 팬이에요, 영애! 저만 믿으세요. 평소에 <세레나데>에서 한번 일해 보고 싶었거든요.”
“……진짜 괜찮겠어요?”
“네! 믿고 맡겨 주세요!”
의욕 넘치는 대답에 셀레나는 일단 안도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시키는 것보단 자발적으로 나서는 사람을 시키는 편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이후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셀레나는 핑계를 대서 세 남자를 불러내고, 그 자리에 안젤라를 투입하기로 했다.
첫 번째 순서는 레이몬드였다.
셀레나의 부름을 받아 커피 하우스에 온 레이몬드가 창가에 그림처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철제 가면을 쓰고 있어도 출중한 외모가 느껴졌다.
‘과연 레몬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각또각 레이몬드를 향해 걸어가는 안젤라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셀레나는 호기심에 빠졌다.
저도 어디 가서 미인 소리 듣는 사람이긴 하지만, 안젤라와 저는 분위기가 달랐다.
셀레나보다 화려한 느낌의 안젤라의 접근에 레이몬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했다.
곧 안젤라가 도도하게 레이몬드 앞에 도착했다. 셀레나는 가게 한편에 숨어서 숨죽이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똑똑.
“안녕하세요, 마탑주님. 저는 안젤라 맥켄지예요.”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려 레이몬드의 주의를 끈 안젤라가 싱긋 미소 지었다.
레이몬드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평소 마탑주님의 팬이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말을 걸었어요.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혹시라도 거절의 대답이 나올까, 안젤라는 눈웃음을 지으며 잽싸게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레이몬드의 표정이 미세하게 당황스럽게 바뀌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는지. 혹시 운명일까요?”
“…….”
“마탑주님, 제 이름 한 번만 불러 주시면 안 돼요?”
테이블에 팔을 얹은 안젤라가 턱을 받치고 눈을 깜빡였다.
레이몬드는 다른 두 남자와 달리 괴소문을 몰고 다니는지라, 앞에서 대놓고 들이대는 사람보다 뒤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적인 어필을 받는 것에 면역력이 적었다.
황금색 눈동자가 동요를 보이는 걸 눈치챈 셀레나는 그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꽉 다물려 있던 레이몬드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 자리는 주인이 있으니 일어나십시오.”
“네? 아, 네…….”
생각보다 차가운 반응에 안젤라가 당황하며 일어났다.
하지만 곧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으며 레이몬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차가우신 거 아니에요? 제가 정말 팬인데, 너무해요.”
애교 섞인 말을 건네며 어깨를 쓸자 레이몬드가 움찔했다. 그는 슬쩍 어깨를 틀어 안젤라의 손길을 피했다.
명백한 거부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