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 2권
지은이 : 링클릿
펴낸곳 : 필연매니지먼트
E-mail : feelyeon2015@gmail.com
정가 : 2,700원
ISBN : 979-11-7294-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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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
2권
링클릿
목차
ch 4. 위기탈출 셀레나(2)
ch 5. 본능이 경고하는 남자
ch 6. 왕자님의 첫사랑
ch 7. 여름의 요정 선발 대회
ch 4. 위기탈출 셀레나(2)
“이봐, 황녀님이랑 그 망할 후작 영애는 잘 지키고들 있나?”
“예, 도련님.”
“좋아, 혹시 도망치면 안 되니까 잘 감시하라고. 알겠어?”
“물론입니다. 저기, 근데 혹시 언제 데려가실 건지……?”
남자 하나가 굽실거리며 도미니크에게 물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삐딱하게 서서 말했다.
“못해도 내일 안으로 데려갈 거니까 좀만 더 있어 봐.”
“알겠습니다. 상처 하나 없이 데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씁, 그 망할 후작 영애는 좀 상처 내도 될 것 같은데.”
도미니크가 제 턱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셀레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칭하는 말하는 후작 영애가 자신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참나, 자기는 망할 후작 영식이 아닌 줄 아나.’
인성이 망하기로는 저보다 본인이 더하면서.
“안 그래도 저번부터 묘하게 내 계획을 방해하고 있어서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납치도 원래 황녀님만 하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끼어들어서 덤으로 딸려 왔잖아.”
원래 도미니크의 계획은 가브리엘라 한 명만 깔끔하게 납치해서 제가 구출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셀레나가 같이 납치되면서 계획은 어그러졌다.
그가 짜 둔 판이 무너지고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덕분에 수습하느라 쥐가 나도록 머리를 굴리는 중인 도미니크가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필 멍청한 황녀랑 다르게 눈치도 좀 빠른 것 같고. 황녀랑 잘되기만 하면 바로 옆에서 내쫓고 망하게 해 버린다, 진짜.”
“근데 정말 이런 납치극으로 황녀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잔뜩 투덜거리는 도미니크에게 남자 하나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보수에 눈이 멀어 황녀 납치극에 동참하긴 했는데, 정말 이런 일로 차갑게 생긴 황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당연하지. 너희는 황녀가 얼마나 유치하고 단순한지 몰라서 그래. 일부러 극적인 상황을 만들고 왕자님처럼 몇 번 등장하면 뻑 간다니까?”
“오오, 그게 정말입니까?”
“어, 솔직히 생각보다 마음 얻는 게 너무 쉬워서 재미없기까지 해. 날 볼 때마다 사랑에 빠져서 눈이 풀려 있는 게 얼마나 웃기는지.”
도미니크가 낄낄거렸다. 모르는 남자들 앞에서 가브리엘라를 가벼운 여자로 만들어 놓고도 죄책감 없이 비웃고 있었다.
“그 바보 같은 황녀라면, 아마 내가 납치에서 구해 주자마자 고백하거나 결혼하자고 할걸?”
그가 턱을 치켜들고 자만감 넘치게 말했다.
셀레나는 울화가 치밀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밖으로 튀어 나가 이 주먹을 저 뺀질뺀질한 얼굴에 꽂아 버리고 싶었다.
“그럼 도련님께선 황녀님께 마음이 하나도 없습니까?”
“으음, 나도 뭐 마음이 아예 없진 않아. 애초에 얼굴 예쁘면서 내 직위도 상승시켜 줄 여자를 마다할 남자가 세상에 있나?”
“없죠.”
“그러니까, 빌어먹을 형을 제치고 올라설 발판이 되어 줄 여자인데.”
도미니크가 입매를 비틀며 음산한 미소를 흘렸다.
“내가 형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났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황녀를 이용해서 꼭 형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거야.”
다짐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셀레나는 뿌리 깊은 열등감을 느꼈다.
동시에 가브리엘라를 만나기 전에 매번 자기보다 높은 위치의 여자한테만 다가갔던 도미니크의 이력도 생각났다.
‘전형적으로 장남한테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끼는 차남이었구나.’
셀레나가 알기로 딕슨 후작가의 장남은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 동생처럼 이런 어리석고 무지막지한 일을 벌일 만큼 멍청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거기다 황녀는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 주면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구니까 팔자 고치기에도 딱 좋지!”
도미니크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 돌아가기만 하면 황제 폐하든 누구든 일러바쳐서…….’
꼭 엿을 먹이겠다고 맹세하던 셀레나는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 이 같은 진실에 누구보다 화가 날 사람은 다름 아닌 가브리엘라라는 것이었다.
당사자도 아닌 셀레나도 주먹을 부들거리며 분개했는데, 그녀의 뒤에서 마찬가지로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던 가브리엘라는 더했다.
배신감, 분노, 수치심, 원망…….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면서 가늘게 몸을 떨던 가브리엘라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행동이라 셀레나가 미처 막을 새도 없었다.
“지금 말 다 했어요, 경?! 누가 당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해 준다고!”
“화, 황녀님……?”
남자들이랑 노닥거리던 도미니크는 갑자기 가브리엘라의 목소리가 날아들자 깜짝 놀랐다.
그들이 동시에 동굴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씩씩거리는 가브리엘라와 당황하여 뒤늦게 그녀의 팔뚝을 붙잡은 셀레나가 보였다.
“아, 아니, 어떻게…….”
“분명 밧줄로 묶어 놨는데……?”
남자들이 얼빠진 얼굴로 두 사람의 탈출에 당황할 때, 도미니크는 다른 것에 주목했다.
“설마…… 다, 들으셨습니까?”
“그래, 다 들었어! 나쁜 자식, 돌아가면 내가 너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도미니크 앞에서 언성을 높여 본 적 없던 가브리엘라가 악에 받쳐 외쳤다.
셀레나는 서서히 굳어 가는 도미니크의 얼굴을 보며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돌아가면 가만 안 두겠다는데, 누가 순순히 돌려보내 주겠나.
‘아씨, 망했다. 당장 도망가야 해, 이건.’
아직 저들이 섣불리 움직일 생각을 못 하고 있을 때 선수 쳐야 했다.
셀레나는 아직도 노여움에 몸을 떠는 가브리엘라의 손을 잡고 다짜고짜 옆으로 뛰었다.
“가요, 황녀님!”
할 말은 나중에 하시고, 지금은 도망쳐야 할 때예요!
갑자기 동굴 안에서 툭 튀어나오더니, 또 갑자기 숲 쪽으로 쏙 달려가는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미니크와 남자들이 한발 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런 젠장……. 당장 저 둘을 잡아! 당장!”
이대로 두 사람을 놓치면 신분 상승은커녕 목숨을 보전할 수도 없으리란 걸 깨달은 도미니크가 소리쳤다.
셀레나는 가브리엘라를 잡고 죽어라 뛰었다.
사람은 보통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법이었다.
즉,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두 사람을 여기서 처리하고 영영 묻어 버리려고 할 수가 있었다.
“헉, 허억, 여, 영애, 헉, 저 숨이…….”
문제는 이번에도 셀레나의 복장과 가브리엘라의 체력이 발목을 붙잡는다는 것이었다.
거친 숲속을 뛰어다니기엔 셀레나의 옷은 불편했고, 가브리엘라는 납치돼서 쓰러져 있는 동안 체력이 더 떨어진 터였다.
“안 돼요, 황녀님! 조금만 더 힘을……!”
가브리엘라를 필사적으로 달래던 셀레나는 드레스가 툭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휘청거렸다.
동시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지친 가브리엘라가 그녀의 손을 놓치고 헉헉거리며 주저앉았다.
‘미치겠네, 진짜!’
셀레나가 나뭇가지에 걸린 드레스를 휙 잡아당겼다. 부욱, 천이 찢겨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브리엘라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키던 셀레나는 어느덧 지척까지 다가온 남자들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뒤로 슬슬 물러섰다. 가브리엘라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만 해요, 딕슨 경. 더는 후회할 짓 하지 말아요.”
“이미 늦었습니다, 황녀님. 돌이키긴 글렀다고요.”
남자들 사이를 가르고 성큼성큼 다가온 도미니크가 딱딱하게 대꾸했다. 그의 손엔 칼이 들려 있었다.
날 선 칼날의 번뜩임을 본 셀레나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가 황녀를 제 등 뒤로 숨기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어리석게 굴겠다는 건가요?”
“하, 네가 뭘 안다고 날 어리석다고 말하는 거야.”
“감히 황녀님을 상대로 이런 짓을 벌인 것부터 매우 어리석죠. 이건 당신 가문이 멸문당할 수 있는 중죄예요, 알아요?”
셀레나가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책망하자, 도미니크는 발끈했다.
“닥쳐! 그깟 가문 따위……! 내가 형보다 더 훌륭한데, 늦게 태어났단 이유로 나를 냉대했지. 후계자는 나였어야 했는데, 불합리한 대우를 했다고!”
그가 발까지 구르며 한을 토해 내는 것을 듣고, 셀레나는 ‘그래서 어쩌라는?’이라는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을 했다.
본인이 가문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것과 자신들이 무슨 상관이기에 이딴 짓을 벌였단 말인가.
“그래서 황녀님께 일부러 접근한 건가요? 위험천만한 일들을 고의로 꾸며 내면서?”
“황녀님을 해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야. 어차피 황녀님께서도 외로워하셨으니까, 우리가 서로 잘되면 둘 다 좋은 거잖아.”
“개소리로 합리화하지 말아요. 그냥 어필하기엔 본인이 가진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어서. 일부러 위험한 상황을 꾸며 내서 황녀님의 환심을 산 거잖아요.”
셀레나의 날카로운 지적에 움찔한 도미니크가 얼굴을 구겼다.
“입 닥치라고 했지! 애초에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나타나기 전까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아, 예. 혼자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저 신분 높은 여자만 이리저리 찔러 보고 다니며, 신분 상승할 기회만 노리던 게 참 잘 이루어졌었나 보네요.”
“……!”
셀레나가 참지 못하고 빈정거리자 도미니크의 안색이 휙 변했다.
그가 칼을 든 손을 셀레나 쪽으로 뻗었다. 서늘한 칼날이 저를 겨누자 셀레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떡하지……?’
팽팽하게 돌아가던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맞다, 피리!’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지자, 다행히 노엘의 피리는 그곳에 있었다.
이번엔 늦지 않게 피리를 꺼낸 셀레나가 힘껏 불었다.
삐익―!
새된 피리 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남자들을 보며 셀레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피리를 불었다.
삐, 삑, 삐익―!
‘불면 듣고 온다면서요, 공작님!’
숨이 부족할 만큼 피리를 불었지만, 노엘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셀레나는 울 것 같았다.
그사이, 칼을 들고 더욱 가까이 다가온 도미니크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만 이대로 망할 순 없지. 다 너 때문이니까, 너한테 모든 너한테 모든 책임을 묻겠어.”
“헛소리하지 마, 도미니크 딕슨. 네 인생은 네가 망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