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6권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6권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6
무아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6권
차례
Chapter 01. 흥행 보증 수표
Chapter 02. 차기작
Chapter 03. 뉴 페이스
Chapter 04. 차기작 집필
Chapter 05. 주연의 얼굴
Chapter 06. 꿈의 모양은
Chapter 07. 마음에 흐르는 선율 위로
Chapter 08. 일상의 구원자
Chapter 09. 아파트 사이에 피어난 장미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6권
Chapter 01. 흥행 보증 수표
미국 LA의 한 레스토랑.
잔뜩 갖춰 입은 사람들의 저녁 식사가 한창인 이 시각.
식당의 입구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
그를 보며 식당 내부가 한번 술렁였다.
남자에게 따라붙은 소문 때문이었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톰?”
“그렇대. 나도 SNS에서 얼굴을 봤어.”
“소문이 진짠가 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군.”
“그러게.”
맞은편에 앉아 수군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영화 제작사 ‘B36’의 대표 제리 하워드가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군데?”
그러자 맞은편의 두 사람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톰 카터를 몰라?”
제리 하워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어?”
제리 하워드다운 제스처였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면 알아봤지 자신이 먼저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제리 하워드를 바라보며 맞은편의 친구 한 명이 설명했다.
“수입사 ‘원더랜드’의 말단 직원이었던 톰 말이야.”
“원더랜드면 제임스가 운영하는 그 수입사?”
“그래. 그 원더랜드.”
영화 수입사 원더랜드의 대표 제임스는 제리 하워드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적당히 부자인 아버지 돈으로 회사를 굴리고 있댔지 아마.
영화엔 별 관심도 없던 자식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그렇고, 대표인 제임스면 제임스지 말단 직원 톰에 대해 자신이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워드의 표정에서 그 감정이 드러났는지 친구가 얼른 말을 이었다.
“제임스랑 저 유명한 톰이랑 대판 싸우고 갈라섰잖아.”
“그런데?”
친구의 말을 들을수록 어째 더 답답해진다.
대표와 직원의 싸움이 뭐 하루 이틀 일인가?
싸워서 살인이라도 일어나지 않은 이상 그가 유명해질 이유는 없었다.
“싸운 이유가 톰이 해외 마켓에서 사 온 영화 하나의 판권 때문이었대. 제임스가 생각할 땐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서 계속 핀잔을 준 모양이야.”
“대표 입장에선 당연한 거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영화에 큰돈을 쓴 직원을 나무라는 건 당연하지.”
하워드의 대답에 맞은편의 친구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 영화가 대박이 났다면?”
“……응?”
듣고 있던 하워드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좀 재밌어진다.
“제임스가 하도 갈구니까 톰이 못 참고 자신의 연봉과 퇴직금까지 모두 반납하고 판권만 받아서 독립했대. 그런데 그 영화가…….”
뜸을 들이는 친구를 바라보는 하워드의 눈빛이 꽤 간절해졌다.
보고 있던 친구의 웃음이 터졌다.
“하하. 야. 너 아까랑 너무 표정이 다른 거 아냐? 하여튼 돈 얘기에 환장한다니까.”
“그 영화가 뭔데? 제목이나 말해 봐.”
“뭐겠어?”
“응?”
“최근에 해외에서 수입해 와서대박 난 영화가 하나밖에 더 있어?”
“……?”
잠시 생각하던 하워드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그래. 그 영화가 강하준 감독의 <재인>이야. 덕분에 톰은 돈방석에 앉았고.”
하워드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강하준 감독의 <재인>이라니.
그 영화를 수입했다면 단순한 대박이 아니다.
말 그대로 초대박.
물론 <재인>은 오스카에서도 국제 영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그보다 상업적인 흥행 스코어가 더 도드라지는 영화였다.
“와… 제임스 속이 좀 썼겠는데.”
“앓아누웠단다.”
“나 같아도 그렇겠다.”
“아무튼. 그 영화 하나로 톰은 대박 난 거지. 말 그대로 인생 역전.”
“…….”
친구의 말에 하워드는 생각에 잠겼다.
오늘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사무실에서 읽었던 시나리오 한 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나리오의 연출을 누가 맡아야 할지, 그 주인을 찾고 있었는데.
어쩌면 적당한 후보가 머리 안에 들어온 듯했다.
* * *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사 ‘B36’의 사무실 안.
“강하준 감독은 어때?”
“강하준 감독? <재인>을 만든 강하준 감독이요?”
“응. 왜?”
하워드가 곧 제작에 들어갈 시나리오의 감독 후보로 강하준을 거론하자 직원이 되물었다.
직원의 놀란 듯한 어투에 하워드가 이유 물었다.
직원이 대답했다.
“아뇨.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하워드가 그 이름을 말하니까 이상해서.”
“뭐가 이상해?”
“하워드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외국 감독들은 후보로 고려하지 않잖아요.”
“…내가 그랬나?”
직원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사실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워드가 영미권 감독을 고집하는 이유가 인종차별 같은 도덕적인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는 인종이 다르더라도 영미권에서 자란 배경을 가지고 있는 감독은 늘 후보로 두고 고려했다.
그가 외국 감독을 꺼리는 이유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문제였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당연히 그 안에 깔린 사고방식이나 문화 또한 다르다.
제작사 B36은 할리우드의 상업영화를 제작한다.
다른 문화권 배경을 가진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면 리스크가 크다.
아무리 이미 쓰여있는 시나리오로 제작을 들어간다 해도 영화에는 연출을 맡은 감독이 향유하는 유머코드나 농담 같은 것들이 자연스레 묻기 마련이고,
그게 미국 내의 관객들의 정서와 어긋나있다면 흥행이 삐끗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로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영화의 흥행.
그러니 늘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하워드에게 외국 감독은 고려 대상이 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하워드의 입에서 강하준의 이름이 나오다니.
직원 중 한 명이 신나서 물었다.
“하워드도 <재인>을 인상 깊게 봤나 봐요?”
“훌륭한 영화지.”
“오, 감독을 맡겨보고 싶을 만큼?”
“아니, 사실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어. 다만 어제 저녁을 먹는데 식당에 톰 카터가 들어오더군. 너희도 톰 카터를 알아?”
“알죠. 강하준 덕분에 부자가 된 남자잖아요.”
“정말 나만 몰랐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하워드를 보며 직원이 물었다.
“음, 그럼 하워드가 방금 한 말의 의미는 뭐예요? 후보로 고려한 건 단순히 톰 카터를 보고 강하준이 떠올라서?”
“단순히 그 이유는 아니지. <재인>이 그 정도로 훌륭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제 그 이름을 듣고도 너희에게 제안하진 않았을 거야. 물론 톰 카터의 이야기가 내 호기심을 조금 더 자극한 건 맞아.”
“음… 그럼 하워드는 강하준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본 적이 없고요?”
“응.”
하워드의 대답에 직원의 표정이 곤란해졌다.
“그럼 제안이 어려울 수도 있겠는데요?”
직원의 말에 하워드의 눈썹이 미세하게 치켜 올라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소문에 의하면 강하준 감독 성격이 만만치 않대요. 하워드가 전작을 다 본 것도 아닌데 자신에게 감독 제안을 한 걸 알면 별로 내켜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니, 나도 분명 <재인>이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니까?”
하워드는 진심이었다.
<재인>은 분명 훌륭한 영화다.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게 판단했을 거다.
흥행 수치와 수상 이력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직원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하워드. 하워드가 할리우드의 다른 감독들에게 제안을 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 어떻게 해요? 제안을 할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살펴보고 정성스러운 제안서를 보내잖아요.”
“근데?”
“강하준 감독의 영화는 <재인>만 봤고, 또 더 볼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