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4권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4권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4
무아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4권
차례
Chapter 01. 수정 - 2
Chapter 02. 촬영장
Chapter 03. 엔딩
Chapter 04. 포스트 프로덕션
Chapter 05. 그 해, 최윤희
Chapter 06. 예능 촬영
Chapter 07. 재인
Chapter 08. 2차 창작
Chapter 09. 희망의 이름
Chapter 10. 미래의 얼굴
Chapter 11. 해외 개봉 - 1
천만 감독이 EX급 리스트를 얻었다 04권
Chapter 01. 수정 - 2
― “그러니까… 목표가 높다고 꼭 힘을 빡 줄 필욘 없잖아요.”
도윤이 방금 던진 한마디가 마음 안에 맴돈다.
녀석의 말대로, 어쩌면 모든 부분에 너무 많은 힘을 쏟으려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내가 세웠던 계획들이 잘못된 계획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주아나 다른 스태프들이 그것 때문에 곤란해진다면 수정의 필요성도 있다는 거다.
도윤이 말한 이야기의 요점도 거기 있을 테다.
“……과거와 현재….”
지금 가장 바로 앞에 직면한 문제는 바로 주아가 친 S.O.S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시 현재와 과거.
시점을 이동함에 있어 그 트랜지션에 대한 해결책.
내가 이번 영화의 컨셉으로 정한 원테이크 방식은 그 선택의 폭을 제한하니까.
“저… 감독님?”
“응.”
“저는 집에 언제 가나요…?”
도윤이 꽤 피곤한 표정으로 묻는다.
제 발로 작업실에 걸어들어왔으면서, 탈출할 생각을 하다니 괘씸하네.
대충 둘러보니 본인이 해야 할 씬 분석은 전부 끝마친 눈치다.
고민에 빠져 있는 나를 보며, 인사하고 나갈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던 모양.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집 갈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 해보인다.
근데 어쩌지.
나는 이 녀석을 보낼 생각이 없다.
“너 오늘 못 가.”
“…네?”
“나랑 이거 고민해야지.”
“이걸 왜 제가……?”
물어오는 목소리엔 순수한 의문과 반항심이 가득하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 방식에 반기를 든 것까진 좋았는데, 강하준 담당 일진으로 돌아온 임도윤은 역시 좀 뺀질 거리는 편이네.
“너 아니면 누가 해? 너 내 조연출이잖아.”
“그렇긴 한데요. 지금 시간이 벌써 10시예요.”
“너 다 큰 성인인데.”
“…….”
“이틀 뒤에 주아랑 회의야. 오늘 해결책 떠올리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짤 거고. 다 끝날 때까지 넌 집에 못 간다고 보면 돼.”
“…….”
도윤의 얼굴에 절망이 서린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도야 뻔하다.
믹서기라던가,
돈 많은 믹서기라던가,
아님 싸이코패스 믹서기라던가.
또 자신을 갈아댄다며 원망을 하고 있겠지.
뻔할 뻔 자인 녀석이라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 해, 도윤아. 가방 내려놓고 앉아야지.”
“와 진짜…….”
“진짜, 뭐?”
“약속 하나만 해주세요.”
“무슨 약속.”
내 되물음에 도윤이 체념한 듯 가방을 내려놓았다.
자리에 다시 앉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온다.
“밤새고 뭐 하고 진짜 다 좋은데, ‘다시.’ 이것만 하지 말아 주세요.”
“다시?”
“감독님 사람 갈 때 하시는 거요.”
“내가?”
“맨날 ‘다시’, ‘다시 해볼까?’, ‘도윤아 다시’. 이렇게 하시잖아요. 그거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들으면 심장마비 걸릴 것 같을 만큼.”
“미안한데 못 들었어, 다시 말해 봐.”
“악!!”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늘 수연 대표한테 자신은 다 큰 성인이라며 어필을 하는 녀석이지만,
놀리면 곧이곧대로 반응하는 모습이 영 다 큰 성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스스로 알려나.
웃음을 터뜨리니 녀석이 울상을 짓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 안 할게. 대신 진짜 같이 불태워보자 오늘.”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아주 긴 밤이 될 예정이었다.
* * *
“음… 도윤아, 다시.”
“…….”
앞머리로 덮여 있는 도윤의 미간에 작게 주름이 잡혔다.
도윤은 생각했다.
‘진짜…! 싸이코패스…!’
분명 ‘다시’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게 방금 전인데!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도 분명히 들었는데!
하준 감독님만의 습관인 건지 뭔지, 아니면 정말 일부러 저러는 건지 자꾸 ‘다시’가 들려온다.
아까부터 반복해서 레퍼런스들만 찾고 있었다는 소리다.
영화 제작에 있어서 조연출이 하는 일이야 간단하다.
그냥 연출자인 감독의 손과 입이 되어 주는 것.
단순히 심부름꾼이냐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고.
감독인 하준이 정말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 것들을 조율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도 하준 감독님은 김주아를 위해 시나리오와 콘티 수정 단계에 들어간 상태였다.
집중해서 해결책을 떠올려야 하니, 그에 참고가 될만한 영화나 장면, 혹은 구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찾는 것은 조연출인 도윤의 몫이었다.
문제는….
“…대체 원하시는 게 뭔데요?!”
하준 감독님이 따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
어떤 종류로, 어떤 느낌으로 찾아달라는 말도 없이 계속 레퍼런스를 요구하니 죽을 맛이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이것저것 모아서 던지는데, 그럴 때마다 무서운 ‘다시’ 소리가 들려오니….
괜히 답답함이 잔뜩 묻은 소리가 나온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윤이 던진 말에, 몰입한 채로 펜을 돌리던 하준의 손이 멈췄다.
“…….”
기분이 상하신 걸까.
괜히 긴장하게 되는 도윤이었다.
그러나.
“…엥, 감독님 왜 웃으세요?”
고개를 돌려 마주한 하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뭐야, 무서워요.”
왜 저러실까.
뭐가 생각났길래 저러시는 걸까.
도윤은 당황스러웠으나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부분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힘들다.
조연출인 자신도 죽을 것 같은데, 감독인 하준은 물론 더 하겠지.
아무래도 피로와 압박감이 쌓여 미쳐버리신 게 아니실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때,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 내가 굳이 너를 여기 남겨 놓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야 저를 갈아버리시려고….”
“맞아. 그건 너무 당연하고.”
“…너무해요.”
원망 섞인 투정을 내뱉자 하준이 말을 이었다.
“너를 갈면 뭐가 나오길래 내가 널 갈려고 할까? 그걸 생각하고 레퍼런스를 모아야지.”
“……저를 갈면….”
“네가 어떤 녀석이었더라?”
“저야 뭐….”
뜬금없는 질문에 도윤의 말문이 막혔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작은 의문.
‘내가 어떤 녀석이었냐고?’
의도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는 질문은, 영화와 관련되었다고 보기엔 너무 막연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가깝달까.
그에 따라붙은 것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