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 좀비 면역자 08권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8권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8
흙과불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8권
차례
Chapter 01. 고척돔 생존 캠프. - 2
Chapter 02. 외톨이.
Chapter 03. 전투 준비.
Chapter 04. 소모전.
Chapter 05. 이 구역의 개들.
Chapter 06. 반격.
Chapter 07. 업보.
Chapter 08. 새 식구들. - 1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8권
Chapter 01. 고척돔 생존 캠프. - 2
“정재홉니다.”
―하아… 무사하셨군요. 박재준입니다.
“……?!”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재호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회의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냉큼 스피커 모드로 변경한다.
그런 뒤에 덧붙인다.
“박재준 사장이랍니다.”
“뭐여?”
“하아…!”
여기저기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정재호는 즉시 자신의 검지를 입술에 댔다.
혹시 모르니 이쪽의 생존자가 얼마나 되고 또 누가 살아있는지 굳이 밝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가 살아있다는 게 반갑지만, 완전히 우리 편이라고 감히 단정할 순 없으니까.
그가 미워서라기보다는 조심하는 거였다.
“박 사장도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후우… 그래,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그러니까… 미국의 특수 부대 쪽에서 기습했습니다. 최 중령님의 부하들이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지요. 해서 지금은 양양 국제 공항에 모두 오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회장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어떻게 고척돔까지 가신 건지… 다들 괜찮으신 거지요?
고척돔에 있다는 걸 알다니?
여기저기서 얕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정재호는 우선 내색하지 않고 대화를 이었다.
“회장님은 다행히 무사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양주 방공호엔 좀비들이 몰려왔고… 아니, 그보다 지금 양양에 있다고 하셨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이곳엔 왜 전화를 한 겁니까?”
―왜… 전화를 하다니요? 그야 걱정돼서… 아… 저를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절대 그런 상황 아닙니다. 육철기 소장님이 죽었습니다. 저를 경호해주던 분도요. 무려 17명이나 죽었단 말입니다.
“끄음… 이쪽은 거의 전멸했습니다.”
―젠장… 지금은 어디가 더 많이 죽었는지가 뭐 중요하겠어요. 현실에 집중해야 하겠죠. CDC에서 방법을 바꿨습니다. 우리가 모두 살기 위해서는 김태훈 씨와 그분의 아이들이 필요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철용과 태훈의 눈에 시퍼런 살기가 피어오른다.
정재호가 냉큼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하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준 사장. 말을 똑바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설마 지금… CDC 측에 김태훈 씨와 아이들을 팔아넘기겠다는 겁니까?”
―하아…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거 자꾸 두서가 없으니 오해만 쌓이는 것 같은데… 일단 벌어진 상황부터 간략하게 설명드릴게요. 얼마 전 용산에 왔다는 에릭이라는 남자. CDC에 있을 때 제 상관이었던 그 사람이….
박재준은 답답함을 최대한 억누르고 차분하고 진중하게 이쪽에서 있었던 일들을 풀어냈다.
지금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김태훈 씨와 그의 아이들의 혈액이 필요하다는 것을 몇 번이나 덧붙였다.
아울러 양희준 전무를 곧 보낼 테니 더 자세한 사항은 그와 만나 알아보라는 것을 끝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배신하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닌 것 같기는 합니다.”
통화가 끝이 난 후 감상을 툭 뱉는 정재호다.
“고척돔에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우릴 손바닥 위에서 올려두고 보고 있다는 건데….”
마철용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제 턱을 쓸었다.
“이번엔 방법을 바꾼 걸까요? 미군이 들이닥치면 반드시 서로 피를 보게 될 테니… 박재준 사장을 설득해서 대화로 풀자는 식으로.”
김태훈이 말했다.
몇몇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몇은 쓴 숨만 내쉬며 얼굴을 감싼다.
“양 전무가 온다고 하면서 체포조가 함께 오는 것일지도 모르지.”
마철용이 다른 의견을 냈다.
“우선은 그에 대비하는 게 먼저겠군.”
“만약 진짜 대화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
마철용이 태훈을 보며 말했다.
태훈은 쓰게 웃었다.
“지금은 별수 없죠. 협조한다고 하면서 뭐라도 받아낼 건 받아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저쪽에서도 믿을 테니.”
“저기… 잠실 말인데. 가케츠 제약이 있는 그곳을 공격해달라는 건… 안 들어주려나요? 우리가 완전히 칼자루를 쥔 게 아니라서 안 되려나….”
기상태 부장이 말했다.
“일단 상황을 보자. 양 전무를 보내는 게 다른 속내가 없이 진짜 대화를 원하는 거라면 저쪽도 조심하겠다는 거니까. 태훈이 피가 좆나게 아쉽다는 거니까 협상을 할 수는 있겠제.”
통화는 끝이 났고 각자 한두 마디씩 의견도 냈다.
어쨌든 양 전무가 와봐야, 그 후에 어떻게 할지 가닥이 잡힐 터.
“우선 준비하자고. 기습이라면 벌집을 만들어버리고… 아니면 좋고.”
정재호의 차가운 말에 모두가 몸을 일으켰다.
.
.
.
1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는 것은.
고척돔의 생존자가 겁먹을 걸 우려했는지 도착한 헬기는 한 대뿐이었다.
고척돔 앞의 도로에 내린 헬기는 양 전무와 로봇 소 4기, 무장한 군인 둘만 떨구고는 인근 빌딩의 옥상으로 날아갔다.
아무래도 뻥 뚫린 도로보다 빌딩의 옥상에서 대기하는 게 안전할 테니까.
양 전무는 왼팔에 석고붕대를 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위성 전화기를 들고 있었는데 다소 긴장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고척돔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마철용과 정재호, 곽 빈 대리였다.
“양 전무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아… 정 사장님!”
양 전무의 눈시울이 금세 젖었다.
정재호는 방공호에서, 양 전무는 용산에서 주로 지내지 않았나.
특별하게 친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지만 그저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이리도 반가운 모양이다.
그만큼 정신적 고통 또한 컸다는 거겠지.
정재호는 소총을 멜빵에 맨 뒤 양팔을 벌려 그를 맞는다.
마철용과 곽 대리는 양 전무 뒤의 무장한 미군 둘을 경계하며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이 동네에 아직 좀비가 많다고 하니… 일단 들어갑시다.”
“흐윽… 예, 예.”
정재호와 양 전무가 먼저 들어간다.
그 뒤로 무장한 군인 둘이 함께 따라 들어오려 하는 때였다.
“어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몰라? 무기는 안 돼.”
곽 빈 대리가 빠르게 통역했다.
무장한 군인 둘은 서로를 보더니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거기 서 있으려고?”
“빅풋 4기는 들이는 게 좋을 거다. 선물이니까.”
둘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는 손목에 전자식 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그것을 벗어 마철용에게 들어 보였다.
“어… 이걸 차면 저 빅풋이라는 기계가 따라오는 모양인데요?”
“하놔… 이런 씹새끼들이.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좆까지 말고 여기 다 내리라고 해. 이놈들 떠나면 그때 찾아가든 할 테니까.”
“예, 선배님.”
곽 대리가 통역하는 그때 마철용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나 들어간다.”
―예, 선배님.
마철용이 들어가고 기상태 부장과 김 군이 튀어나왔다.
세 사람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미군 둘과 저 멀리 있는 헬기를 경계하건만.
정작 미군 둘은 개의치 않고 빅풋 위에 실린 물자들을 바닥에 내릴 뿐이다.
‘좆같은 새끼들이… 그 난리를 치고 먹을 것으로 때우겠다는 거야, 뭐야?!
그들의 복면 너머로 비웃는듯한 모습이 보였으나 세 사람은 꾹 참았다.
안에서 이야기가 잘 돼야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 테니까.
* * *
“빌어 처먹을 새끼들!”
양 전무의 상황 설명을 들은 마철용의 솔직한 반응이었다.
잠실에서 가케츠 제약의 놈들이 생존자들을 잡아다가 더러운 짓을 일삼는 걸 앎에도 그 혜택만 받아먹을 생각이라니.
아무리 세상이 망했다고 하지만, 이 얼마나 슬프고 엿 같은 일이란 말인가.
그것도 남의 나라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박 사장님 말씀이… CDC에 이야기를 해보겠답니다. CDC의 팀장과 직접 소통 중인데 가능하면 구룡의 생존자들을 잠실에서 빼낼 수 있도록 말이죠.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말끝을 흐리는 양 전무. 굳이 뒷말을 잇지 않아도 모두는 알아먹을 수 있었다.
김태훈과 김연우, 김우영.
이 세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
정확히는 세 사람의 혈청이.
“이거 완전히… 외통수구먼. 빼도박도 못하겠어. 클클클클클.”
분통해 미칠 것 같은 마음을 허탈한 웃음으로 해갈하려 애쓰는 마철용이다.
나머지 역시 마철용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애국심이라는 게 단단히 마음먹고 준비해야 생기는 걸까.
글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마음이 그렇다.
이것이 오랜 시간 억압받던 국민성의 자연스러운 DNA 반응인 건지.
우리 국민이. 그것도 하필 일본 제약회사가.
더 열 받는 건 우리나라 서울에서 그런 짓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 좆나게 열이 받고 배알이 꼴리며 피가 끓는 기분이다.
“냉정해 집시다. 우선은…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저와 아이들의 피를 내어줄 테니 최대한 빠르게 일을 진행하시죠.”
김태훈이 말했다.
양 전무는 풀죽은 얼굴로 가만히 고개만 떨어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