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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고, 집착하고 2권
김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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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고, 집착하고 2권
지은이/ 김규령
발행인/ (주) 삼양씨앤씨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단글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114길 28, 광성빌딩 7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an_gul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7306-492-0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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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4장. 흔들리는 숲길
5장. 무너진 틈
6장. 사랑의 함정
7장. 무너진 신뢰
4장. 흔들리는 숲길
“왜 이렇게 안 오지? 슬슬 배도 고픈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유경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내내 밭일과 집안일을 하고 있으니 배가 안 고플 수가 없었다.
초코바라도 하나 먹을까 생각하다가 유경은 마음을 접고 다시 설거지를 했다.
그때 유경의 뒤로 갑자기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낚시조가 돌아왔나?’
유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유경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낚시조가 아니었다.
먼발치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신의 남자가 여러 명의 사람과 함께 촬영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유경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의심했다.
어째서 이 장소에 있는지 의문이 가는 남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름 아닌 권태주였다.
오랜만에 보는 태주는 너무나 완벽해서 오만하고 차갑게까지 보였다.
모두가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당황하고 있는 사이 태주는 유경의 근처로 다가와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설거지 혼자 합니까?”
“아, 그게……”
유경이 다른 이들은 낚시를 하러 갔다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그보다 태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빨랐다.
“콩쥐가 따로 없군.”
태주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같이 온 직원들과 함께 촬영장을 떠났다.
다행히 그 짧은 말로 자신과 태주가 어떤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곳엔 왜 온 걸까?
슈트를 갖춰 입은 사람들과 함께 온 것을 보면 일로서 이곳에 온 것은 분명한데.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유경의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반대하는 그와 그토록 심한 말다툼을 했는데도…….
유경은 다시 한번 자신이 태주를 꽤나 깊이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고야 말았다.
* * *
“뭐? 그 여자 보고 콩쥐 같다고 그랬다고요?”
아영은 지금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혼자 집안일을 다하고 배까지 쫄쫄 굶고 있을 유경을 생각하며 신나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그사이 태주가 이곳을 들렀다 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설거지하는 유경을 보며 꼭 콩쥐 같다는 말을 남긴 뒤, 숙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초밥 도시락까지 돌렸다.
“아니, 횟집에서 마주쳤을 때 같이 왔으면 될 텐데 왜 우리랑 같이 안 오고 따로 왔냔 말이야! 도대체 왜!”
아영은 태주가 과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을 비롯한 배우들과 피디, 스태프들을 횟집에서 마주친 뒤 곧바로 숙소에 가서 혼자 설거지를 하던 유경을 보았으니 말이다.
그가 숙소에 보낸 도시락 메뉴가 초밥이어서 아영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하필 한유경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가다니.”
불같이 화를 내는 아영의 모습에 바짝 위축되어 있었던 VJ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무가 자기네 소속사 연예인이 혼자 설거지하는 장면을 보고 갔는데, 그 장면이 방송에 안 나오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잠깐이라도 내보내야 될 것 같아요.”
“좀 닥치고 있어요! 지금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것도 아니고 내 화를 돋우고 싶어서 그래요?”
“아니, 저도 앞으로 먹고 살길은 마련해야 되니까요. 혹시 이게 문제가 돼서 제 일이 끊기면…….”
“내가 먹고 살게 해 줄 테니까 당장 영상 삭제해요! 설거지 장면 방송 나가기만 해 봐요, 어디. 그땐 내가 당신 밥줄 끊어 놓을 거야!”
아영은 꼴 보기도 싫은 유경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낚싯배에서 다른 출연진들이 멀미도 하고 힘들게 물고기를 낚으려는 모습을 먼저 내보낸 뒤, 유경은 지금 집안일을 하고 있어 이 자리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경이 집안일을 하는 장면은 결코 방송될 일이 없을 터였다.
그때쯤 인터넷에 제작진을 가장하여 유경이 방송 내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는 글을 써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혼자 설거지하는 영상을 방송으로 내보내라고?
어림도 없었다. 아영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장면이 방송되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은데, 싫어서 죽겠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어.”
정작 유경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영은 유경에 대한 미움으로 불이 끓는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 * *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아무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완공 날짜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예,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완공 날짜보다도 더 이르게 공사가 완료될 것 같습니다.”
태주는 아쿠아 스튜디오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현재 지어지고 있는 아쿠아 스튜디오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수중 콘텐츠는 모두 선우 아쿠아 스튜디오를 거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아쿠아 스튜디오 옆에는 일반적인 실내 스튜디오와 야외 세트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원스톱 제작이 가능한 이곳의 또 다른 특이점은 바로 아쿠아 스튜디오와 붙어 있는 워터 파크였다.
최대 수심의 다이빙 풀이 갖춰진 워터 파크는 촬영 스튜디오이면서 동시에 테마파크로도 활용될 예정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는 테마파크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스튜디오 만드는 김에 테마파크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촬영 스튜디오로서도 테마파크로서도 완벽한 장소를 만들 생각입니다.”
“네, 상무님.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워크숍 일정을 계속 진행해 보도록 하죠. 다음 일정은 산행이군요. 산에 올라가는 건 오랜만입니다.”
“상무님은 등산하는 걸 좋아하십니까? 미국에서 여러 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뭐,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아, 그럼 무척 잘 올라가실 것 같은데요. 사실 저희 팀에도 등산 마니아 한 명이 있거든요. 고진규 팀장이 주말마다 등산을 하는 마니아입니다.”
“그렇습니까? 승부욕이 생기는데요?”
태주는 몸을 써서 하는 것들은 다 좋아했다.
원래부터 운동 신경이 뛰어났고, 승부욕도 있었기에 운동을 좋아할 만한 자질을 타고난 것이다.
게다가 촬영 장소로 널리 쓰인다는 스튜디오 부지 안의 산은 위로 올라갈수록 꽤 험하다는 말이 있어 태주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태주는 간단한 채비를 하고 본격적인 등산을 위해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산 입구에서 <산속의 배우들> 촬영팀과 마주쳤다.
게다가 이번엔 유경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유경은 그 안에서 겉돌고 있었다.
유경은 다른 배우들과 꽤 멀리 서 있었고 표정도 다소 굳어 있었다.
패륜 스캔들의 주인공이자, 권민규와 모종의 관계가 있던 여배우.
그리고 자신에게도 당당하게 억대의 계약금을 요구하던 여자가 왜 이렇게 가련하고 안쓰럽게 보이는 걸까.
그런 여자가 아님을 익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때 <산속의 배우들> 촬영팀 조연출이 갑자기 태주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고진규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저, 이렇게 마주친 것도 인연인데 잠깐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 주시면 안 될까요? 시찰 나온 상무님 일행과 저희가 산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걸로요. 회사나 스튜디오 정보도 넣어서 홍보가 되도록 잘 찍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상무님.”
잠시 고민하던 태주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요, 그럼.”
* * *
“내가 어떻게든 태주와 함께 있게 해 줄 테니까 나머지는 아영이가 잘해 봐. 똑똑한 아영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믿고 있어도 되겠지?”
혜숙은 아영이 촬영을 떠나기 전 찾아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태주와의 만남을 내내 기다렸음에도 겨우 우연히 횟집에서 한 번 마주치고, 자신이 없는 촬영장에 다녀간 게 전부였다.
아영은 매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었다. 바로 산행이었다.
혜숙으로부터 아영은 태주가 산에 오를 일정이 있다는 것을 전달받았고, 피디를 졸라 산에서의 촬영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이렇게 산행을 하러 온 태주네 일행과 마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태주 일행과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 여섯 명의 배우들은 각자의 VJ들과 산속으로 흩어졌다.
산속을 돌면서 숙소 선택권이나, 다음 미션 선택권, 음식 선택권 등 지내는 데 필요한 카드를 찾아내는 게 이번 촬영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영에게 중요한 건 그런 선택권 따위가 아니었다.
“안내 표지판 오른쪽으로 돌아 쭉 직진하시면 휴게소가 있는데, 그 휴게소 왼쪽으로 다시 직진하면 상무님이 계실 겁니다. 아마 내려오실 때도 같은 길로 내려오실 테니 천천히 올라가셔도 마주치실 수 있을 겁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여러 길이 있었다.
비교적 오르기 쉬운 둘레길이 있었고, 또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 있었는데 태주는 후자로 향한 것이다.
안전을 위해 연예인들은 대부분 둘레길 코스를 VJ와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아영은 일부러 태주가 있는 쪽으로 갔다.
태주와 만나기 위한 전략을 짜면서도 아영은 유경을 잊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잘 가고 있지요?”
― 네. 그런데 이래도 될까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그래요? 그냥 잠깐 골려 주려고 하는 거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아영은 유경을 촬영하는 VJ에게 그녀를 가파른 암벽길로 인도하라고 했다.
꽤 높은 곳까지 등반하게 한 다음 VJ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또 당한 건 안 갚아 주고는 못 참는 성격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