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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고, 집착하고 1권
김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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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고, 집착하고 1권
지은이/ 김규령
발행인/ (주) 삼양씨앤씨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단글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114길 28, 광성빌딩 7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an_gul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7306-491-3 (05810)
(주) 삼양씨앤씨 - 단글의 서면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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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외딴 바다, 낯선 남자
2장. 고요한 폭풍
3장. 다시, 조명 아래
1장. 외딴 바다, 낯선 남자
「패륜녀, 다시는 TV에 나오지 마라. 보기 싫다.」
「연예계에서 퇴출시켜라! 아무리 친모가 아니더라도 먹여 주고 키워 주기까지 했는데 은혜도 모르는 후안무치한 사람이 연예인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면서 어떻게 장애인 동생 병원비를 안 대 주냐? 너무 악독해서 소름 끼침.」
출연했던 드라마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유경은 이른바 ‘패륜 스캔들’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인기 배우 한유경이 스타가 된 뒤 키워 준 계모를 나 몰라라 하고, 장애를 가진 동생의 병원비도 대 주지 않는다는 게 스캔들의 요지였다.
“나는 못 믿으면서도 어떻게 그 여자가 하는 말은 철석같이 믿는지.”
유경은 자조 섞인 말투로 한탄했다.
사실은 계모야말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자신은 물론 친딸마저 버리고, 재산만 챙겨 도망친 여자였다.
여태 의붓딸과 친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본인 욕심만 채우고 살았던 계모다.
그런데 그녀의 말 몇 마디에 자신이 아픈 동생과 계모를 버린 패륜아가 되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아무도 그녀를 믿어 주지 않았다.
대중들의 비난, 막대한 위약금, 동생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매 순간순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유경은 자신의 목을 조이는 서울에서 탈출해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남해의 작은 섬으로 내려왔다.
그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 * *
“푸하아―!”
새파란 바닷속 깊이까지 내려갔다 온 유경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남해안 해안 도로를 따라 쭉 가다 보면 긴 비포장도로가 있고 그 길 끝에는 육지와 연결된 작은 섬이 있다.
간조 때는 육지와 연결되지만 만조 때는 바닷물이 차올라 육지와 고립되는 마법 같은 섬에서 유경은 학생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계모가 도망간 뒤, 이 섬에 살던 외할머니가 유경은 물론 친손녀가 아닌 유나까지도 거두어 주셨기 때문이다.
여태껏 살아오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낸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서 유경은 이 섬으로 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역시 오길 잘한 것 같아.”
해방된 기분에 유경은 더 멀리 헤엄쳐 나갔다.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그 안은 너무나 아늑하고 고요했다.
오랜만에 평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건너편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그것은 유경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바다 상어는 아니겠지?’
순간 차오르는 공포심에 온몸이 서늘해진 유경은 재빨리 반대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유경에게 다가오는 형체는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뭐야, 사람인 것 같은데……!’
무인도의 바다에서 갑작스레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사람이란 바다 상어만큼이나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맞닥뜨린 유경은 당황했고 급하게 수면 위로 올라가다가 그만 코에 물까지 들어갔다.
고통과 공포 속에 빠져 있는 와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기어코 유경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단단하고 긴 팔로 유경의 몸을 휘감고는 수면 위로 완전히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육지 쪽으로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당신 누구신데……콜록! 팔 좀 놔주세요.”
“입 닥치고 따라와.”
자신의 몸을 옭아맨 남자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에 유경은 너무 지쳤고 몸 상태도 안 좋았다.
유경은 일단 순순히 남자가 끌고 가는 방향으로 몸을 맡겼다.
우선 몸에 힘을 축적한 뒤 혹시라도 남자가 이상한 짓을 하면 배라도 걷어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육지 위로 올라서자 유경을 옥죄고 있던 팔을 순순히 풀어 주었다.
그 덕에 유경은 남자에게서 떨어져 처음으로 자신을 끌고 나온 남자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여배우치고는 키가 큰 편인 유경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장신이었다.
입고 있는 흰 티셔츠가 바닷물에 젖어 남자의 탄탄한 가슴팍과 선명한 복근에 달라붙어 있었고, 유경을 단단히 붙잡았던 팔에는 힘줄이 솟아 있었다.
고개를 좀 더 올리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곧은 눈썹, 반듯한 이마와 날카롭게 솟은 콧대.
배우로 데뷔한 뒤 외모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을 질릴 정도로 봐 온 유경도 순간 넋이 나갈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당신 죽고 싶어?”
조각같은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사나운 말투에 유경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곧 남자가 자신이 죽기 위해 물에 들어갔다고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죽으려고 한 적 없어요. 그저 수영을 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도와주려고 하셨던 건 감사드려요.”
“도와? 누가 누구를?”
남자가 입가에 비웃음을 띤 채로 유경에게 말했다.
그 웃음에 유경은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그 적대감이 오해가 덜 풀린 데서 비롯된 거라 생각해 다시 해명하기 시작했다.
“저를 도우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 아닌가요?”
“아니. 나는 그쪽이 내가 머무는 텐트 앞바다에 송장이 되어 떠돌까 봐 그게 싫었을 뿐이야.”
“소, 송장이라니. 살아 있는 사람 앞에서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송장이란 말이 심하다는 사람이 송장 될 일은 서슴없이 하는군.”
“하, 어이없어서. 분명히 말하겠는데 나는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쪽이 억지로 끌고 나온 거라고요. 그래도 그쪽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고맙다는 말을 한 건데, 뭐? 송장이요?”
유경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다시 한번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여기는 바다가 잔잔해서 과거에는 애들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수영하며 물질하던 곳이라고요. 게다가 내가 안전 요원으로 몇 년이나 일했는데…… 그런 내가 바다에서 수영 좀 한다고 왜 송장이 되는데요?”
“그거 잘나셨군.”
“맞아요. 나 잘났어요. 됐나요?”
유경은 바로 맞받아쳤다.
그러자 서늘한 얼굴로 유경을 보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쪽이 안전 요원이었든, 과거에 아이들이 여기서 수영을 했든 상관없어. 그래 봤자 지금 여기는 해경을 불러도 골든 타임에 도착하지 못할 무인도 앞바다일 뿐이야.”
어이없어하는 유경에게 남자는 쐐기를 박듯 한 마디를 더했다.
“뭐, 좋아요. 어차피 난 이곳에 일주일 정도만 머물 겁니다. 그러니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이 바다에 뛰어들 생각 말아요. 송장이 되든 물고기 밥이 되든 그 뒤에 하라고.”
남자는 그렇게 명령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을 던져 놓고는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뭐야, 저 인간은. 자기가 뭔데 저렇게 함부로 말하는 거야?’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유경이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이봐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당신이 뭔데? 당신이 이 섬 주인이라도 돼요? 아앗―!”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는데 갑자기 유경의 종아리 근육에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며 안 쓰던 근육을 쓴 데다, 갑자기 남자가 나타나 놀란 바람에 경련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너무나도 아팠지만 일단 이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내밀던 순간.
“아악!”
다시 찾아온 고통에 유경은 그만 백사장 위로 넘어졌다.
젖은 몸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러다가 몸이 잘못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더는 못 견디겠어.”
아직 유경의 시야에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유경은 치솟아 오르는 수치심을 한껏 억누른 채 남자를 향해 외쳤다.
“저기요! 저기 잠깐만요.”
재차 부르는 유경의 목소리에 남자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제가 지금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요.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수치심도 자존심도 다 내버리고 외쳤건만 남자는 유경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유경은 결국 어금니를 꽉 물고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그쪽은 바닷속의 송장만 싫고 백사장 위의 송장은 아무렇지 않아요? 지금 제가 너무 아파서 이대로 있다가는 그쪽이 싫어하는 송장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건너편에서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 * *
“아앗!”
무릎 위로 빨간색 소독약이 부어졌다.
상처가 난 위로 소독약이 지나가면서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마구잡이로 부어지는 소독약에 혹시 이 남자가 소독을 핑계로 복수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흘러내리는 소독약을 닦아 내고 반창고를 붙이는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팔 움직여 봐요.”
까딱 까딱.
넘어졌을 때 움직이지 않았던 팔도 정상적으로 움직여졌다.
아주 약간의 통증만 남아 있는 걸 보면 부러지거나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건 근육 이완제예요. 다리 경련이 또 올 수 있으니 물이랑 함께 먹어요. 먹고 나면 좀 졸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생수 한 통과 작은 약상자를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