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이 미쳐 날뜀 02권
신입사원이 미쳐 날뜀 02권
신입사원이 미쳐 날뜀
02
드렁큰댕댕
신입사원이 미쳐 날뜀 02권
차례
Chapter 01. 당근으로 안 맞아 봤지?
Chapter 02. 첫 가족 여행
Chapter 03. 첫 번째 칼은 잘 받았어
Chapter 04. 가자. 함께. 멀리.
Chapter 05. 말뚝 박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Chapter 06. 소원권 지금 쓰겠습니다
Chapter 07. 까짓거 칼춤 한번 춰 주지
Chapter 08. 9회 말 2아웃 만루
Chapter 09. 그 꿈 분명 길조일 겁니다
Chapter 10. 네가 왜 여기서 나와?
Chapter 11. 성공은 언제나 목마르다
Chapter 12. 좋은 광고가 우선인 사람이니까
Chapter 13.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
Chapter 14.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Chapter 15. 미친놈 들어왔다고 소문이 자자해
Chapter 16. 군자금 넉넉히 채워서 오겠습니다
Chapter 17. 개꿈으로 판명된 순간이었다
Chapter 18. 마법을 부렸다면서요
Chapter 19. 벼룩 잡으려면 초가삼간 태워야지
Chapter 20. 쉐리부터 은행나무열매침대까지
Chapter 21. 당신의 기억을 가지겠어요
Chapter 22. 당신의 미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Chapter 23.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Chapter 24. 회식은 야근 수당이 안 나오니까요
Chapter 25. 야! 이 미친놈아. 월드 스타라고!
신입사원이 미쳐 날뜀 02권
Chapter 01. 당근으로 안 맞아 봤지?
박기영은 27살에 일등기획 공채로 입사했다.
신입 때부터 일도 제법 잘했고.
동물적인 감각에 가까운 라인 타기 능력으로 팀장에게 인정받아 3년 만에 대리 진급.
대리 때부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술 상무 역할을 하며 브랜드를 섭외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보통은 과장급 이상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까.
그는 남보다 5년 이상 빨리 영업력을 확보한 것이다.
기획력도 괜찮았고 선배들이 시키는 일만 기계처럼 쳐내는 동기들과 달랐다.
알아서 돈이 될 법한 일들을 계속 물어오니 윗선에선 좋게 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대리를 단 지 2년 만에 과장 진급.
과장 2년 차 때 차부장급들도 손을 놓았던 DJ 식품을 직접 찾아가 임원진들을 접대 자리에서 설득한 결과.
2년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때부터였다.
그가 이웅인 상무의 눈에 들어온 건.
다음부턴 승승장구.
라인을 제대로 탄 박기영은 과장을 단 지 2년 만에 일등기획 창립 이래.
최연소 기획팀장과 차장으로 진급.
그리고 또 2년.
평사원이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부장이 되었다.
부장까지 9년.
일등기획에서 일 좀 한다는 사람도 부장까진 15년이 걸렸다.
괜히 그가 40살도 안 돼 기획의 실세인 1팀장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후우.
박기영이 줄담배를 피우며 옛 생각에 잠겼다.
담배 연기만큼 깊게.
그도 처음부터 강철인과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제법 괜찮은 브랜드를 같이 성공시켰고 형 동생 하는 사이까진 아니지만 술도 자주 마셨다.
사이가 틀어진 건 아파트 광고를 맡으면서였다.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프로젝트라 제작팀 에이스 강철인과 기획팀 에이스 박기영을 카운터 파트너로 붙여줬었다.
다들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경쟁 PT를 3일 앞둔 저녁.
쾅.
불 꺼진 회의실.
강철인이 중노하며 기획서를 테이블 위로 집어 던졌다.
“다들 나가 있어.”
모든 팀원이 나가자, 강철인이 소리를 높였다.
“야! 박 팀장. 내가 이번 프로젝트가 중요한지 몰라서 이러는 것 같아? 나도 PT 정말 따고 싶어. 그런데 네가 미는 안으로 가져가서 땄다고 치자. 그다음엔? 이 광고 TV CF로 온에어되면 소비자들 다 등 돌릴 거야.”
박기영은 질세라 강철인이 미는 안을 찢어발기며 천장에 집어 던졌다.
“아니, 강 CD. 월급은 어디 땅 파서 나와? 회사가 돈을 벌어야지. 무슨 자선사업 해?”
하늘에 흩날리는 종이를 보며 강철인의 이마에 실핏줄이 터질 듯 튀어나왔다.
강철인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대노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린 광고인이야. 소비자에게 지금 구라 치자고? 인간적으로 자식에게 쪽팔릴 광고는 만들지 말자. 너 이거 온에어되면 애들 보여줄 수 있겠어?”
박기영도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런 마인드로 일할 거면 유니세프에 취직하지 왜 광고회사에 들어왔어. 진짜 아마추어같이 일할 거야?”
회사 입사 후 처음으로 극대노 초입에 들어선 강철인이 박기영의 멱살을 잡았다.
“뭐라고? 이 건방진 새끼. 너 몇 년 차야? 술자리 몇 번 했다고 내가 친구로 보여?”
박기영도 강철인의 멱살을 마주 잡았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와이셔츠 단추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여기서 몇 년 차가 왜 나와?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팀장이고 차장이야.”
극대노한 강철인이 손에 힘을 주자 박기영의 와이셔츠가 찌지직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강철인이 손에 남겨진 와이셔츠 조각을 박기영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하. 돈에 환장한 새끼. 나는 소비자 우롱하는 짓은 못 하겠으니까. 그 안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다른 CD 찾아봐.”
강철인은 일을 못 하겠다며 손을 놓았다.
이인아가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박기영은 자신이 밀던 안을 신입 CD 하나를 들러리로 세워 PT를 했고.
그의 기획력과 영업력이 더해진 결과 PT에서 승리했다.
1년 매출 300억.
PT에 승리한 박기영은 기획 1팀장과 부장으로 진급했다.
메인 아이디어는 거의 강철인 팀에서 만들었지만, 중간에 포기해 아무런 수혜도 받지 못했다.
기획팀 실세가 된 박기영의 정치질은 더욱 강력해졌고 강철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강철인이 예상했듯 광고가 온에어된 뒤 광고주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거짓, 허위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하지만.
박기영은 모든 책임을 광고주에게 전가했다.
어차피 선택은 그들이 한 것이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하지 않은 이상.
선택한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박기영이었다.
후우우우.
담배 한 개비를 더 문 그가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오늘은 창문도 열지 않아 팀원들이 계속 콜록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임산부가 있었음에도.
그는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힌 뒤 천장에 연신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이것은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순리이자 진리다.
회사원이라면 그 순리를 잘 이해하고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는 직원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숫자로 본다.
저 사원은 간신히 밥값만 한 ‘3천만 원’짜리 사원.
저 대리는 돈 좀 벌어다 준 ‘3억’짜리 사원.
저 과장은 연봉값도 못 한 ‘―1천만 원’짜리 새끼.
인성.
도덕.
법.
그래.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고 치자.
그런데 회사에서 이딴 것들이 돈보다 중요하겠는가?
강철인.
그러니까 네가 그 나이 먹고도 차장인 거야.
나는 부장인 거고.
내가 기획 1팀장까지 올라올 때.
넌 제작 10팀장까지 내려간 거고.
눕다시피 한 의자에서 일어난 박기영이 창문을 열었다.
그제야 팀원들이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창문 밖을 보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고층에서 보는 풍경이 썩 괜찮았다.
난 회사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창가 자리에서. 넌 가장 냄새나는 화장실 앞에서 일하는 거고.
박기영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뒤 내선 전화를 들었다.
“어, 양 팀장. 이따가 장인등심에서 한잔하자고. 오늘은 조용히 둘이. 어. 어. 그래. 내가 말한 진상 광고주 리스트 정리해서 가져오고. 어, 많을수록 좋지. 그래, 이따 보자고.”
* * *
일등기획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장인등심에 박기영이 도착하자 기획 2팀장 양복선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박 팀장님 오셨습니까.”
구두를 벗으며 룸으로 들어가는 박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