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천검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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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검성
11
말하는토템
역천검성 11권
차례
제43장. 금천. - 2
제44장. 청성 방어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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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 금천. - 2
어떻게든 천마와 싸워야 한다는 것.
그러니, 단순하게 생각을 고쳤다. 간격부터 천천히. 수를 나누다 보면 답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깊게 들이켠 호흡을, 천천히 나누어 뱉는다. 크게 뛰는 심장의 박동을 가다듬고 간격을 재었다.
간격을 너무 길게 잡을 순 없었다. 암기는 한 번 방향을 정하면 쉬이 벗어나질 못하고, 천마는 그 투로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고강하니.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보다 더 짧은 거리를 잡아야 했다.
천마의 주변으로 퍼지는 마기를 억지로 밀어내며 한 보 내디딘다. 줄어든 간격은 그의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검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
서로 한달음에 급소를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다. 그러나 이 정도의 거리가 아니라면 천마의 급소에 암기를 박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되었소?”
그렇게 물어오는 천마의 목소리는 메말라 있지 않았다. 색다른 감정 하나, 짐작되는 것은 흥미 또는 기대감.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그 목소리에, 조용히 입을 닫은 채. 오른손에 든 암기를 고쳐잡았다.
“약조해 주시오.”
“무엇을 말이오?”
“내가 이기면, 물러나 주시오.”
물러나라는 말. 천마가 그 속에 들어 있는 말을 모를 리 없었다.
당돌하게 뱉은 말이 우습다는 듯, 입가를 손으로 잠깐 가렸던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를 여기서 죽이면 마교는 이대로 청해를 너머, 저 신강까지 물러날 것이오.”
대답을 들었으니. 여기서 이 이상, 천마와 말을 나눌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천마를 죽이면 이대로 전쟁이 끝나는 것이고. 천마를 죽이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니.
죽을 각오도, 죽일 이유도 명확해졌으니.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시작을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그저 오른손에 든 대침을 손가락으로 퉁겨 천마의 심장을 향해 던져냈다.
이 한 수에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동시에, 왼손에 든 비도는 아래로 던지며 천마의 움직임을 봉쇄하고자 했다.
시작부터 많은 암기를 던지지 않은 것은 암기를 아끼는 의미도 있었지만, 암기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명확하게 상대의 허, 사각을 찔러 급소에 암기를 찔러 낼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많은 암기를 던졌다고 하더라도, 똑같았을 테니까.
파공성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 짧은 간격에서 암기가 날아갔음에도, 천마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소매에서 손을 꺼내지도, 왼 허리춤에 찬 검을 꺼내 들지도 않았다.
그저, 소매에 마기를 흘려 넣은 채로 날아오는 대침은 쳐내고. 발을 향해 떨어지는 비도는 가볍게 왼발을 움직여 피해냈다.
그 짧은 동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저 암기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천마와의 전투에서 우세를, 아니 공방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확실하게 암기가 들어갈 수 있을 틈을 만들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암기를 찍어내야 했다.
그러니, 간격을 조금 더 줄였다.
한 발짝. 서로의 주먹이 명치에 닿을 정도로 짧은 거리. 비었던 오른손 소매를 움켜쥐며 비도를 역수로 꺼내, 강하게 틀어쥐며 상대방의 턱을 향해 올려 치는 동시에.
비었던 왼손에 대침을 쥐고 명치를 향해 찔러 냈다.
천마가 뛰어난 검수라는 것은 검성이 죽은 그날, 연무장에 새겨졌던 흔적에서 알 수 있었지만.
검이 길게 느껴질 정도로 짧은 거리의 교전에도 익숙할까?
암왕이 던져낸 두 방향의 질문.
천마는 그 질문에 너무나도 쉽게 답했다.
왼쪽 소매에 마기를 집어넣고 부풀려, 방패처럼 명치를 찔러 들어오는 대침을 막아내고, 오른손 손날로 위로 올려 치는 암왕의 비도를 막아냈다.
검수라기보다는 무투가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막아낸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오른손에 쥔 비도에 새겨진 강기를, 오른 손날에 강기를 피워 막아냈다는 점이었다.
권각술을 따로 익힌 걸까. 아니면 별다른 형을 취하지 않고도 그저 마기를 모아낸 것만으로도 강기를 피워낼 정도로 많은 양의 마기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일단, 생각을 멈추고 다음 행동을 취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손에 잡히는 암기를 섬세하게 조절했다.
왼손에 든 대침은 눈과 인중. 비도는 비어 있는 왼쪽 어깨를 향해 던지면서 간격을 순간적으로 조금 벌려내면서 다시 왼손과 오른손을 채워냈다.
날아가는 대침과 비도는 큰 폭을 가지고 있기에 한 번에 막아내기 힘들었음에도, 천마는 왼손을 크게 움직이면서 펄럭이는 소매를 이용해 날아오는 비도와 대침을 한 번에 쳐냈다.
하지만, 크게 움직인 왼손 소매 때문에 가려진 시야 때문에 생긴 틈. 놓칠 이유는 없었다. 가려진 시야에 숨어서 발을 뻗어 간격을 좁혔다.
왼손에 든 소검은 복부의 중심을 향해 찔러 들어가며 시야의 사각을. 오른손에는 비도를 던져 소매에서 빠져나오는 천마의 눈을 노렸다.
그러고는 방심하지 않고 다시 오른손에 다음 비도를 쥐며 천마의 대응에 따라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수에 속아 놀아날 정도로 천마는 무르지 않았다. 복부를 찌를 것이라 예상한 것처럼, 왼팔을 크고 빠르게 움직여 복부로 향하는 소검을 다시 소매로 막아내고.
오른손을 들어 눈앞으로 날아오는 비도를 낚아채 오른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아래로 비도를 찍어내며 내 오른손에 들린 비도가 노리는 공격을 공중에서 막아내었다.
“쯧.”
순간적으로 생겨날 틈을 찌르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마쳤건만. 수를 읽어낸 것처럼 완벽한 대응.
비도와 비도가 부딪친 순간, 암왕은 손목을 크게 젖혀 비도를 던져내면서 뒤로 한 발짝을 물러났다.
비도끼리 맞닿는 것 자체도 경계해야 했다. 단순한 내공 싸움으로 끌려 들어갈 기회 자체를 주면 안 된다.
조금 더 신중하게. 하지만 과감하게.
계속해서 수를 던지지 않으면 천마의 움직임을 유도할 수 없으니,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빈 암왕의 손에 다시금 기다란 대침 세 개가 채워지면서, 차례로 던져졌다.
이마, 눈, 인중. 하지만 다시 걸음을 내딛지는 않았다.
간격을 좁혀 들어가는 것 대신, 다시 오른손과 왼손을 채워내면서 위에서 아래로 손을 내리그어내며 대침을 던져냈다.
양쪽 어깨. 심장, 명치. 양쪽 팔뚝과 허벅지, 종아리까지. 한정되어 있는 비도를 아낌없이 던져내면서 보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천마가 뒤로 물러나는 것.
지금까지는 억지로 던져낸 암기를 받아쳐 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이대로 간격을 유지한 채 수중에 있는 비도를 던지기만 한다면 시간을 끄는 것은 문제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친 순간을 경계해야 했다. 모르는 것보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판이 더 위험하니까.
천마가 여기서 비도를 막아내면서. 짧은 거리라 하더라도 뒤로 물러나 주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대로 간격을 줄이지 않고 품속에 들어있는 암기가 메마를 때까지 던지며 억지로 시간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천마는 내가 원하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생각을 읽어낸 것처럼 오른손에 들고 있던 비도를 떨어트리는 동시에, 왼쪽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비도가 날아가는 그 짧은 순간, 시간을 갈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손을 뻗어, 왼 허리춤에 놓인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단숨에 검을 꺼내어 들었다.
대침이 날아가고, 다음 수를 준비하는 그 짧은 순간에. 그가 뽑은 검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먼저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검의 재질이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색은 분명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부서진 듯, 천마가 뽑은 검에는 조각조각 난 듯한 무늬가 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무늬는 검지 않았다.
철의 질감과는 사뭇 다른, 황금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광택이 부서진 듯한 무늬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완전히 조각난 검을 다른 재료를 넣고 황금을 녹여 이어 붙인 것처럼.
하지만, 시선이 검에 쏠린 것은 독특한 형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뽑혀 나오는 그 순간부터 검에 쌓여 있는 거대한 마기에 때문에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을 휘감고 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검을 중심으로 마기가 퍼진 모양이, 검 위에 거대한 대검을 씌워놓은 것처럼.
마기로 된 대검이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저 무식하게 크기만 한 대검이었다면 그 움직임이라도 둔했을 텐데. 거대한 마기로 이루어진 대검은 둔하지 않았다. 대침이 날아가는 그 찰나의 순간. 시간을 쪼개어 움직이는 것처럼, 단순하게 뽑혀 나오며 몸을 중심을 향해 그어지는, 일섬.
그 한 번의 움직임에, 지금까지 암기를 던져내면서 수를 계산하고, 틈을 만들어내려던 행동의 의미가 사라졌다.
철 조각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날아가던 모든 암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한 수에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다음 수를 바로 던질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있던 공방은 그저 장난에 불과하다는 듯, 검을 뽑아낸 천마의 기세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마기의 기세는 피부를 날카롭게 찔러 냈고, 들이마시는 호흡에는 마기의 독기가 서려 속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물에 잠긴 것처럼 순간적으로 주변의 공간이 무거워졌다. 단순하게 기세를 뽑아 올렸을 뿐인데. 느껴본 적 없는 강대한 압력이 온몸을 내리눌렸다.
드디어 전력을 드러내는 걸까.
“윽.”
마주 기운을 뽑아, 기세에 대항하며 간격을 줄이기 위해 시선을 들어 올리고 천마를 바라보는 순간.
내 시선에 비친 천마의 눈동자엔, 그 속에 들어 있던 흥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날카롭게 시선을 찔러 내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지워지지 않던 웃음도 완벽하게 지워진 채. 무표정한 얼굴로 나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놀음에 불과한 듯 그저 웃으며 마주하던 것과 달랐다.
그러니, 이젠 꺼내 들어야 했다.
천마가 먼저 나를 존중했으니, 나도 그를 존중해야 했다. 대침과 소검, 비도만이 꺼내지던 내 소매 속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독특한 모양의 암기가 나타났다.
나비 모양의 암기, 접(蝶). 모든 암기를 다루는 당가에서도 다루기가 어려워 몇몇만 겨우 소화하는 암기.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오랜만임에도 손에 착 달라붙어 왔지만, 이전에 접을 꺼내 들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암기였지만, 오늘은 가슴이 무겁게 내리 앉을 뿐.
불안한 감정을 억지로 모른 척 지워내며,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오른손에 쥐어졌던 나비 모양의 암기가 허공을 너울거리며 날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걸까. 신기한 장난감을 보는 아이처럼, 천마는 왼손을 뻗어 공중에서 낚아채려고 했지만, 접은 천마가 뻗어낸 팔과 반대 방향으로 크게 선회해 꺾어 들어가 품 안으로 파고들어 가슴팍을 그어냈다.
하지만, 그저 옷소매만을 베어내었을 뿐. 천마의 가슴팍에 자그마한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허.”
순간적으로 생겨난 독특한 움직임에 천마는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빠르게 간격을 좁혀들어갔다.
틈. 아니 틈이 벌어지지도 않았음에도 움직여야 했다.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저 거대한 검을 마주해야 할 텐데,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접을 믿고, 먼저 움직였다.
접은 독특한 암기였다. 급소에 박아 넣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틈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특화된 암기였다.
다른 암기와 달리, 순간적으로 생겨난 흐름에 따라 크게 방향을 틀어내어 적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움직였기에.
적의 움직임을 유도하거나 엇나가게 만들 수 있었다.
천마를 상대로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왼손에 든 접을 천마의 얼굴을 향해 던지고 간격을 좁혀들어가며 오른손에 소검을 잡아내었다.
간격을 줄이는 그 순간, 얇은 줄을 타는 것처럼. 온몸에 긴장을 둘렀다.
한 번.
천마의 검에 단 한 번이라도 적중되면 죽는다. 그건 확실했다. 저 무거운 마기를 막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그러니, 한 번도 맞지 않아야 했다. 그건 당가의 무인에겐 자신있는 일이었다.
억지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며, 던져낸 접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여기서 크게 휘어져라.
평생 다루어왔던 나비는 내 마음을 읽어낸 것처럼, 막아서려는 천마의 검 앞에서 크게 휘어지며 그 품으로 파고들었다.
“쯧.”
두 번이나 암기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며 왼손을 뻗어내며,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를 잡으려는 그 움직임.
* * *
이대로는 틈을 만들 수 없으니, 다시 한번 더. 흐르며 시선을 끌어라.
가볍게 접혔던 나비의 날개가 흐르는 바람을 그대로 타고 흐르며, 검을 뻗어내는 오른팔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그 덕에 천마의 왼팔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움직여 오른쪽으로 치우쳤다.
그 작은 틈. 그 사이를 노려 오른손에 쥔 소검을 복부 깊숙히― 단전을 향해 방향을 잡은 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틈이 너무 짧았다.
천마의 좌수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여 방향을 바꾼 접을 잡아채곤 그걸 강하게 쥐었다. 뭉개지며 나비의 형태를 잃고 그대로 툭, 떨어지는 암기.
이대로 소검을 찔러 들어가면 이길 수 있다는 판단보다 먼저, 차가운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흐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시하고 공격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전장에서 생겨난 그 예리한 감각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대로 오른손에 든 소검의 방향을 돌려 심장을 향해 던지며 크게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숙이며 빠르게 천마의 움직임을 쫓으니, 분명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천마의 검이 이미 휘둘러진 상태였다.
소검을 찔러오는 나를 그대로 반으로 잘라버리려는 듯 허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천마의 대검.
하지만 천마도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소검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는지. 그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둘러지던 검을 조금 더 위로 올리며 소검을 부숴 버렸다.
마기의 대검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도 놀고 있을 순 없었다. 허리가 숙어진 순간 오른손으로 땅에 떨어진 접을 주워냈다.
하지만,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간격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