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천검성 0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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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검성
09
말하는토템
역천검성 09권
차례
제38장. 청악. - 2
제39장. 장사회의.
제40장. 암중모색.
제41장. 혈교.
제42장. 사천행. - 1
역천검성 09권
제38장. 청악. - 2
“쯧쯧, 한발 늦었군. 한발 늦었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보다 앞서 나가 불타는 객잔을 확인하던 이가 혀를 차는 남자의 앞에 달려왔다.
“객잔은 이미 전소(全燒)했습니다. 아래에 있는 도박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도….”
쯧. 혀를 차는 소리에, 보고하던 목소리가 끊어졌다.
“청악은?”
“이곳이 만나기로 한 곳입니다. 그리고 저곳이.”
“비켜.”
“예.”
남자는 심기 불편한 기색으로 다시 혀를 차며, 직접 앞으로 나아갔다.
그 덕에 나무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산의 중턱쯤에서 저 아래에 있는 통도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옷차림은 너무나도 평범해 누구의 시선을 끌 만한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검은 무복 차림. 그러나 드러난 얼굴은 지나가는 이들의 눈을 전부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의 고운 얼굴이 찌푸려졌다. 별다른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날카로운 기세가 흐르며 사방에 긴장감이 팽배했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객잔은 이미 완전히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잔불만이 남아 자그마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을 뿐.
저렇게 큰불이 났으니 무조건 도박장을 벗어났을 터. 이 시간까지 이곳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은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틀렸군.”
그의 말에 그를 따라 움직이던 보좌가 입을 열었다.
“계획이 흘러 나갈 구멍은 없었을 텐데, 저들은 어떻게 알고 이렇게나 빨리 청악을 처리한 걸까요?”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들이 알았든, 모르든 상관없다. 실패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경계를 바라보던 이는 객잔이 전소한 터를 한 번 훑어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몸을 돌리자, 그의 주변에서 긴장한 채로 경계를 서던 이들 또한 전부 맞춘 것처럼 깔끔하게 돌아섰다.
그렇게 한 발짝 걸음을 내디딘 그가 문득 발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아, 그렇지. 천주에 대기시켜 놓았던 모든 병력을 크게 물려라. 이젠 더 이상 호남으로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어디까지 물리라고 이를까요?”
그 말에 일말의 틈도 없이 답이 나왔다.
“려파로 움직여야 하겠지. 나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말고 려평을 통해서 려파로, 흔적을 감추며 움직이라 일러라.”
“그리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대답이 나왔음에도, 멈췄던 발걸음은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와 모두를 긴장시켰다.
“그리고 이번 일을 준비했던 놈들을 모두, 정리해라.”
냉혹한 명령이었지만, 그 명령을 내리는 이의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명령을 듣는 이는 그만큼 냉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부하들이기 때문일까. 주먹을 꽉 쥔 채 그의 앞에서 눈을 감고 질문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회주님,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 그들의 입에서 이번 명령이 새어나갔다는 근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회주의 걸음이 다시 멈췄다. 그러자 간곡한 부탁을 입에 담았던 이는 제 말을 들어준다 생각했는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래도 모두 정리해야 합니까?”
“그래서.”
회주의 손가락이 앞을 가리켰다. 누구를 지칭하지도 않는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지목당한 이는 몸을 떨면서 회주의 앞으로달려나왔다.
마주하는 시선, 회주와 마주한 이는 그 날카로운 시선을 잠시도 마주하지 못하고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확신할 수 있느냐?”
“이 어리석은 놈은 회주께서 어떠한 것을 물으시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여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비굴하게 말하는 그에게 회주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 목을 걸고, 네 부하 중에서 입을 놀린 놈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그건.”
잠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속을 명확하게 들여다보는 방법이 없으니 배신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정말로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가 제 자리를 탐해 뒤통수를 치기도 했고. 금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소중하다고 말하던 가족도 팔아먹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가족을 위해서 정보를 넘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을 꺼낸 자신도 그렇게 사람을 압박하고 협박해서 정보를 얻어냈었던 경험이 많지 않나. 그러니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회주는 그런 그를 보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따뜻한 태양과도 같은 미소였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이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무겁고도 무섭게 다가왔다.
“그렇지? 확신할 수 없겠지.”
“……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몸을 떨던 남자는 결국,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키웠던 너조차 네 목숨을 걸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회주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짙어졌다.
“나는 어떻게 그들을 믿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뭐라고 대답하려던 말이 회주의 말에 막혔다.
“그만.”
회주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오른손을 휘둘렀다.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서 있던 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땅바닥에 눕는 즉시, 몸을 바로 세웠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말이었다.
“네가, 직접 목을 치거라. 네가 키워낸 아이들 아니냐, 마지막 정리도 네가 하는 것이 순리에 따르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는 회주의 얼굴에는 아직도 웃음이 가득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겨우 일어나 무릎을 꿇고 있는 이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 차가운 눈 속에 들어있는 것은 냉정한 계산으로 포장되어 있는 광기였다.
“예.”
다시, 힘없이 떨어지는 남자의 고개.
회주는 제대로 된 반응이 없자, 재미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선을 돌렸다.
멈춘 와중에 다시 확인한 등 뒤. 피어오르던 연기가 천천히 사그라들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불이 꺼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청악이 형산파와 부딪쳐서 피워낸, 호남에서 거세게 타오른 불은 이곳에서 꺼졌지만. 그 불이 틔워낸 불씨가 바람에 날려 다른 곳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사파의 전체가 군침을 흘리고 있던 호남. 하지만 청악의 죽음은 무림맹이 호남으로 진출하는 사파의 세력을 더 이상 두고보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았으니.
그 선언을 들은 사파의 승냥이들은 드러낸 이빨을 다시 숨긴 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섬서를 지키고 있던 무림맹의 병력을 호남으로 남하시킨 것도 모자라, 전장인 호남으로 무림맹의 수장인 맹주까지 직접 그 무거운 몸을 움직였으니까.
무림맹, 아니 정파에서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호남을 가지고자 한다면 무림맹의 병력과 직접 마주하라고.
그리고 현 사파에서는 무림맹의 병력과 부딪치고 멀쩡하게 호남을 가질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잘 쳐준다고 해 봤자 동귀어진. 대부분은 호남에 진출하는 즉시, 무림맹의 병력에 의해 분쇄되겠지.
천운이 따라서 호남에 진출하는 것이 성공하더라도 병력 대부분을 잃었을 테니. 그 과실은 뒷짐을 진 채 상황을 관망하던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 명확했다.
그러니 아무도, 호남에 먼저 손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멍청하기는 하지만 판세를 잃지 못하는 놈은 없으니까.
하지만 호남으로의 진출이 불가능해졌다고 해도, 호남으로 나가기 위해 힘을 키우고 있던 사파의 세력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터질 정도로 큰 힘이 쌓여 있는 상태였으니까.
소모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 자명했다. 그러니 곧 그들의 눈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동업자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은 자연스러운 일.
거기다, 다른 사파를 잡아먹기에는 지금이 가장 최적의 순간이었다.
빼앗긴 청해와, 상처 입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섬서.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등 뒤에 가만히 두기에는 너무나도 무서운 적인 마교.
호남을 손에 넣었으나, 아직 사파의 잔당을 완벽하게 몰아내지도 못했으니 한동안 무림맹의 병력은 형산파와 함께 호남을 청소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터.
그것은 무림맹의 병력이 먼저 호남의 경계를 넘어올 수는 없다는 말과 같으니. 눈엣가시와 같던 무림맹을 신경 쓰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나로 단단히 뭉쳐져 있는 무림맹과 싸우는 것은 무리지만.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이인자를 포섭해 옆에 있는 사파 놈들의 뒤통수를 친다면, 큰 힘을 들이지도 않고 다른 지역을 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상황이 달라졌으니, 짜두었던 계획도 달라져야지.
회주는 고운 아미를 찌푸린 채, 오른손으로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다시 생각을 처음부터 밟아나갔다.
청악을 쥐고 신녕에서 패배한 병력을 흡수한 뒤 그걸 명분으로 삼아 호남으로 전진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으니.
호남은 일단 버려두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병력을 움직일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등 뒤의 사천에 자리를 잡은 한 가문과 두 문파는 마교 때문에 움직일 수 없고, 호남에 있는 형산파와 무림맹은 내부를 안정시키고 숨어있을 잔당을 소탕한다고 바쁠 테고, 섬서의 공백을 메우고 갑자기 생길 수 있는 기습을 대비해야 할 테니 다른 문파나 가문은 움직일 수 없을 테고.
지금은 호남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릴, 놓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절호의 기회.
그렇다면 당장 움직여야지. 다른 놈이 이 기회를 낚아채기 전에.
빠르게 머리를 굴려 오류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 회주는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쯧. 혀를 차던 회주는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무림맹의 깃발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지만. 북동쪽에서 고개를 돌렸다.
사천에 있는 놈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 나뉘어 있는 저 병력을 먹어 치웠다면 더 많은 것을 더 빠르게 이뤄낼 수 있겠지만
청악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저기 통도에 들어 있을 테니 일단은 자중해야 했다.
“가장 크게 이득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놓쳤지만 그렇다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
회주는 그렇게 말하며, 뺨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던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주변에 서서 경계를 서던 이 두 명이 일어나, 그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어디로 모시면…….”
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주가 말을 끊어냈다.
“일단 귀양으로 돌아가자. 지금은 다른 것보다 먼저 확실하게 내부를 정리해야 할 때다. 나아갔을 때 발목을 잡히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를 돌아볼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때 크게 발을 뗄 수 있을 테니까.”
“예.”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입에서 질문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질문을 꺼내어 회주의 웃음을 상하게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저, 매번 해왔던 대로. 그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테니까.
* * *
신녕에 있는 사파의 세력을 밀어내는 것은 힘겹지 않았다.
적들의 우두머리인 청악은 꼬리를 말고 숨어버렸고, 인원수는 많았지만 무림맹의 병력에 비하면 오합지졸에 불과한 적들. 거기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에 높아진 사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렇기에, 전장의 상황은 압도적이었다.
“살고 싶으면 검을 내려놓아라. 무림맹의 이름을 걸고 무분별한 살인은 없을 것이라 맹세하겠다.”
무림맹의 무사들은 전장을 휘젓고 다니며 자신이 평생 이룩한 무공을 마음껏 뽐냈다.
그렇게 반나절.
전장에는 무릎을 꿇은 이들과, 도망가는 이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통제하는 이들로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맹주는 전장의 주변에 있는 작은 언덕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정리되어 가던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맹주가 움직인 것은 무림맹의 일반 무사가 입고 있는 흰 무복을 입고 있는 이가 천천히 다가왔을 때였다.
원래라면 맹주의 옆에 있는 호위대장이 그가 맹주의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막았겠지만. 호위대장은 얼굴을 힐끗 바라보고는 자신을 지나가도록 놔두었다.
호위대장을 지나친 무사는 천천히 걸어 맹주의 등 뒤에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하지만 맹주는 예를 받지도 않고, 언덕 아래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역천검성 09권
제39장. 장사회의.
“찾았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