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동해팀과 오산팀, 특7팀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베이스캠프에 집결한 그들은 대기 중이던 힐러들의 치료를 받고 금방 몸을 회복해 나갔다.
“이런 X발, 갑자기 왜 던전 변형이… 왜 하필 우리야?! 왜 우리냐고!”
고재필 팀장이 울분을 토하며 바위를 연달아 걷어찼다.
동해팀 7명의 헌터 중 3명은 중상, 2명은 실종.
오산팀에서는 1명이 중상, 1명은 실종.
실로 막심한 피해였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으니까.
모두의 얼굴에 암울한 절망이 깃들 때쯤, 구원자가 나타났다.
[긴급재난팀 총원 3명. 게이트 진입 완료.]
햇빛을 등지고 걸어오는 그들은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몹시 여유로워 보였다.
앞장선 탱커는 새까만 투구를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유달리 창백한 피부를 가진 남자는 등에 커다란 롱 보우를 매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서강우 팀장님, 저희 왔습니다.”
우아한 미소를 띤 미모의 여성이 강우의 옆에 다가와 섰다.
“이연우 헌터, 울산에 열린 던전은 공략이 끝났습니까?”
“네. 이제야 좀 쉬겠다 싶었더니 바로 동해로 호출이 뜨네요.”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이번 던전이 끝나면 다음 대기팀과 교대하도록 하십시오.”
“그럴게요. 그런데 팀장님, 이분은…….”
이연우가 강우의 옆에 서 있던 지우를 눈짓했다. 혹시나 강우가 허튼소리라도 할까 싶어서, 지우는 얼른 입을 열었다.
“공백 길드에 소속된 도지우 헌터입니다. 이번 던전 공략대 팀원이에요.”
“반가워요, 도지우 헌터. 저는 긴급재난팀 소속 이연우입니다.”
진한 청록색의 눈동자를 보면 그녀는 긴급재난팀의 구성원답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 듯했다.
“서 팀장님, 처리해야 할 몬스터는 얼마나 됩니까?”
가만히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딜러가 물었다. 눈 밑이 퀭한 그는 당장이라도 공략을 끝내고 던전을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자세한 상황은 저기 고재필 팀장이 설명해 줄 겁니다.”
“네.”
딜러는 강우가 가리킨 방향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검은 투구의 남자마저 그를 따라가자 공터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공백 길드 소속이라고 하셨죠? 신우혁 길드장님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엇, 저희 길드장님을 아세요?”
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연우가 부드러운 말씨로 대답했다.
“네. 저도 긴급재난팀에 오기 전까진 공백 길드 소속이었어요. 길드장 직속팀.”
“우와, 길드장 직속팀이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우연이!”
같은 길드였다고 생각하니 순간 친밀감이 피어났다. 거기다 우연히도 둘 다 던전에서 보기 드문 힐러기도 하고.
“그러면 혹시 유재경 팀장님도 아세요? 저희 팀장님도 전에 길드장 직속팀이었다고 하셨는데.”
“어머, 당연히 알죠! 재경이도 여기에 와 있나요?”
“네! 저쪽 막사에 계신데, 그러면 같이…….”
지우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던 때였다.
“그쯤 하죠.”
강우가 말을 잘랐다. 이어서 싸늘한 목소리가 지우와 이연우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다른 팀원들은 브리핑을 들으러 갔는데, 언제까지 쓸데없는 잡담이나 늘어놓을 겁니까?”
“아, 저는 그냥 반가워서…….”
“이연우 헌터는 던전에 놀러 왔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목례를 한 이연우가 곧바로 사라지고, 뻣뻣하게 굳은 지우만 자리에 남았다.
‘가, 강우한테 이런 모습이…….’
그동안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나 제 앞에선 다정하고 상냥하기만 해서, 이렇게 칼 같은 면모가 있을 줄은.
“지우.”
“아, 네. 네에.”
지우는 꼼짝 못 하고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나, 나도 한 소리 들으려나.’
같은 팀인 이연우 헌터한테도 저렇게 무섭게 말하는데.
나도 같이 게으름만 피웠다고 혼내려는 걸까?
온갖 상상이 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날 때였다.
붉은 입술을 움직인 강우가 말했다.
“질투 나.”
“잘못했… 네? 뭐요?”
“질투 난다고.”
지, 질투?
‘그러니까… 지금 나랑 이연우 헌터 사이가 질투 난단 거야?’
벙찐 지우가 입만 뻐끔거리자, 강우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곤 다른 사람의 시야를 가리며 속삭였다.
“지우랑 가까운 건 뭐든지 질투 나. 그게 사람이든 다른 무엇이든.”
말이 끝나는 동시에 말랑한 감촉이 손등에 와 닿았다.
쪽, 소리와 함께 아득하던 지우의 정신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 사람들이 보는데……!”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 근처엔 인적이 없었다.
“강우, 밖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고요!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어떡하려고!”
지우가 손을 팔랑거리며 새빨개진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차라리 봤으면 좋겠는데.”
“뭐요?”
“그럼 다녀올게, 지우.”
짧은 웃음과 함께 강우가 멀어졌다. 당황해서 오징어처럼 몸을 배배 꼬는 지우를 남겨 두고.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강우는 근처의 마물들을 정리하겠다며 단신으로 길을 떠났다.
그렇게 얼마 뒤.
“지우.”
훤칠한 남자가 막사의 입구를 헤치고 들어왔다.
안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지우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끝났어요?”
“응. 근처에 마물이 얼마 없어서.”
마음 졸인 것치고는 무척이나 간결한 대답이었다.
지우는 강우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데는요? 힐 써 줄까요? 아니면 일단 좀 쉴래요? 여기 침대 이래 봬도 되게 푹신한데, 일단 여기 누워서…….”
“지우, 나는 그거 말고.”
“그거 말고…요?”
“응, 우리 정산해야 할 게 있잖아.”
지우는 눈을 깜빡였다.
정산?
내가 강우랑 그런 거래를 한 적이 있던가?
“미안해요. 강우가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
“잠시만.”
지우의 말을 부드럽게 자른 강우가 두 팔을 뻗었다.
그러곤 말릴 틈도 없이, 지우의 볼에 쪽, 뽀뽀를 남겼다.
“이, 이, 이게 뭐…….”
쪽.
“이, 이, 이…….”
쪽쪽.
“으아아아아아악!”
연달아 세 번의 뽀뽀를 더 받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미쳤어! 미쳤나 봐! 미친 게 분명해!
지우는 비명을 지르며 강우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뺨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려서, 지우는 손으로 양 볼을 감쌌다.
지금껏 뽀뽀를 받은 적은 살면서 딱 한 번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상대도 강우였다. 그는 첫 만남부터 느닷없이 제 볼에 입을 맞췄으니까.
‘뽀, 뽀뽀…….’
차마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얀 도화지처럼 변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우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 순간, 커다란 손이 손등 위를 포개어 왔다.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지우,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며.”
소원?
“아, 그건……!”
지우는 몇 시간 전 동식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강우에게 전해 줘. 지금 공략대가 위험에 처했으니까, 빨리 와서 도와주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지우의 연둣빛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부드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강우의 얼굴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여기 있어, 내 소원.”
쪽, 다시 한번 볼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눈길을 피하던 지우도 이제는 강우를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계속…….”
“보고 싶었어, 정말로.”
황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작게 미소 지었다.
“왜 말도 없이 떠났어?”
투정처럼 이어진 말에 지우가 더듬더듬 입을 떼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아니죠, 말은 했잖아요. 문자로!”
“…….”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우는 황급하게 말을 돌렸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예요? 서울에 있던 거 아니었어요?”
“으음.”
“혹시 동해까지 따라왔던 거예요?”
“지우의 곁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
“동해로 온 건 어떻게 알고요? 아, 설마!”
도희성, 이 자식이 내 출장지를 팔아넘겼구나!
지우가 무릎을 탁 내려쳤다. 강우가 웃으며 지우의 손을 그러쥐었다.
“너무 화내지 마. 지우가 어딜 가든 위치는 늘 알고 있으니까.”
동해까지 출장을 온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단 소리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좀 무서운 얘기였지만 지우는 이제 그러려니 싶었다.
어차피 긴급재난팀은 국내 모든 던전에 대한 정보를 취급하니, 강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특7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터.
‘왠지 화를 안 내더라니.’
서운한 기색이라도 보일 줄 알았는데 강우는 변함없이 다정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