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CHAPTER 1
조난 1일 차.
‘배고파…….’
꼬르륵 울리는 소리에 마냥 서글퍼졌다.
지우는 고개를 툭 떨궜다.
울적한 마음에 눈꼬리가 축 처지고, 입술이 붕어처럼 삐죽 튀어나왔다.
공기라도 삼켜 보자 싶어 입술을 뻐끔거리던 때였다.
얌전히 지우를 껴안은 채 자고 있던 남자가 손을 뻗었다.
길쭉한 손가락 사이로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한 볼살이 튀어나왔다.
지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왜요? 혹시 아직도 아파요?”
“…….”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찬란히 빛나는 얼굴로 지우를 바라봤을 뿐.
촘촘하게 뻗은 속눈썹 아래, 꿀이 뚝뚝 떨어질 듯한 황금빛 눈이 곱게 휘어졌다.
이어서 매끈하게 조각된 콧대와 탐스러운 그의 붉은 입술이…….
쪽.
부, 붉은 입술이…….
쪽쪽.
지우에게 입을 맞췄다.
그것도 세 번이나!
도장을 찍듯 뺨 위에 꾹꾹꾹!
“아아악!!”
[숨겨진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System
칭호: ♥첫 뽀뽀를 빼앗긴 모쏠♥
적용 효과: 모든 몬스터와 호감도 +100
순간 지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
그건 시스템에 떠오른 충격적인 ‘첫 뽀뽀’도, 수치스러운 ‘모쏠’도 아니었다.
나한테 뽀뽀를 한 저 남자!
그래, 지금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아 오는 바로 저 남자!
“이… 이……!”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잘생기고 몸 좋으면 다야?
응? 다냐고!
지우는 주먹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숨겨진 업적을 완료했습니다.]
System
업적: ★몬스터와 뽀뽀하다★
경이로운 업적의 효과로 스킬이 해금됩니다.
Skill
[우리 집에 어서 와(SSS)]
=던전 내 안전 구역을 생성한다.
“…어?”
지우는 갑작스레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냥 존잘남과 뽀뽀를 했을 뿐인데.
멍하니 볼을 매만지는 지우를 보며 남자가 속삭였다.
“이제 집으로 갈까.”
“집이요?”
“응, 우리 신혼집.”
아이처럼 말갛게 웃은 그가 지우의 쇄골에 코끝을 비볐다.
그 모습이 꼭 사랑에 빠진 신혼부부 같았지만…….
‘대, 대체 누구신데 저한테 이러는 거죠?’
사실 지우가 이 남자를 만난 건 오늘이 처음!
남들보다 몇 배는 따뜻한 남자의 품 안에 갇힌 채, 지우는 손을 덜덜 떨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머릿속에 그동안 벌어진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남자와의 첫 만남은 10시간 전.
E급 힐러인 자신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였다.
* * *
‘힐러요? 아, 뭐야. 저리 가세요!’
‘저희 팀은 포션 많은데요? 필요 없어요.’
‘글쎄, 나중에 자리 나면 연락 줄게. 근데 우리 이쁜이는 몇 살이야? 핸드폰 번호는?’
던전 대기소에서 공략팀을 구한 지 1시간.
그동안 지우가 들은 대답은 ‘힐러는 필요 없어요.’뿐이었다.
처음부터 힐러가 이렇게 천대를 받았던 건 아니었다.
대헌터의 시대가 열린 지도 벌써 30년!
갑자기 현실 세계에 생겨난 던전.
터져 나오는 몬스터들과 비정상적인 힘을 가지게 된 초인들.
그중에서 같은 헌터를 치료하는 힐러는 어딜 가나 환영받는 인기 직업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한 대기업에서 치료 아이템 ‘포션’을 개발해 낸 후, 힐러는 지나가는 멍멍이만도 못한 존재가 됐다.
왜냐고?
하급 힐러 한 명을 고용할 바에는 포션 10개를 챙기는 게 훨씬 싸게 먹혔거든.
사람보단 돈이 대우받는 시대.
최상위급 힐러들은 여전히 하늘의 별처럼 귀한 존재였지만, 하위급 힐러들은 달랐다.
D급 이하의 힐러들이 대규모로 실직하고 지우도 직격타를 맞았다.
오랫동안 몸 담았던 길드에서 제 발로 나와야만 했으니까.
‘지우야, 진짜 미안하다. 요즘 우리 길드 사정이 좋지가 않아.’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건 아니었다.
그래도 길드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힐러가 지우였다.
퇴사하라고 어찌나 눈치를 주던지.
‘마지막엔 사무실에서 내 자리만 쏙 들어다가 화장실 앞에 옮겨 놨었지.’
결국 복도에 굴러다니던 짐을 보고 지우는 사직서를 내밀었다.
“…그냥 헌터를 때려치워야 하나.”
시무룩해진 지우는 핸드폰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잔액: 8,000원]
국밥 한 그릇도 20,000원이 넘어가는 험난한 세상.
대체 8,000원으로 또 어떻게 한 달을 버티지?
‘당장 이번 달 희성이 병원비도 없는데.’
던전병을 앓고 있는 지우의 동생은 꼭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참 망설이던 지우는 집주인에게 집을 내놓아 달라는 문자를 남겼다.
코딱지만 한 집 보증금을 빼서라도 병원비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에휴, 어디서 집 한 채만 뚝 떨어지면 좋겠네.”
그럼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한숨을 내쉰 지우는 터덜터덜 대기소를 벗어났다.
발밑에 광고지가 버려진 채 굴러다녔다.
지나가는 당신! 혹시 내 집 마련을 꿈꾸고 계신가요?
앗!
지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광고지를 주워 들었다.
이어지는 뒷면에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게 훨씬 빠르답니다~^^
쉽게 이루어지면 그게 꿈이게요?
못 이루는 내 집 마련 대신
현실적인 고시원으로!
헌터 월세 상담 1588-0000
‘이런 망할 XXXX XX!’
지우의 입에서 거친 말들이 쏟아지려던 때였다.
“저기요!”
누가 옷소매를 잡아챘다.
뒤를 돌아보니, 곰같이 우직하게 생긴 남자가 지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힐러시죠, E급?”
“네? …아, 네. 맞기는 한데요.”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내가 힐러인 건 어떻게 안 거지?
‘혹시 신종 스토킹?’
지우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이 자식, 감히 헌터를 노리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여차하면 머리를 내려치고 도망가려는데.
“조금 전에 다른 팀이랑 대화하는 걸 들었습니다. 혹시 공략팀 구하셨어요?”
엇, 설마?
혹시 이거 스카우트?
지우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뇨, 아직이요! 저 오늘 공략 일정 비어요!”
“그럼 혹시 저희랑 같이 안 가실래요? 사실 포션을 넉넉하게 못 챙겨 와서요. 판매소는 이미 품절이라 그러고.”
꺄아아아아악! 땡잡았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역시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군요!’
지우는 속으로 광란의 댄스를 추었다.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환한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일급은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호갱… 아니, 고갱님?”
협상은 대성공이었다.
기본 수당 외에, 던전 부산물 수익을 나눠 받기로 한 것!
지우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찔끔 터져 나왔다.
하루에 라면 하나만 먹고 버틴 것도 벌써 일주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