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第六章 사리도생(死裏逃生)
第七章 급모귀가(及暮歸家)
第八章 서녀비가(庶女悲歌)
第九章 시차(視差)
第十章 고적지인(孤寂之人)

第六章 사리도생(死裏逃生)
스슷! 스스스슷!
암대 대원들은 최대한 조용하게 강을 따라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강물은 차가웠다. 햇볕 아래서 비늘처럼 반짝이는 물결이 미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밑을 흐르는 물은 암대의 발목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었다.
수풀 사이를 지날 때는 질척한 땅과 물렁물렁한 습지가 그들의 발목을 붙들었다.
상류로 올라가는 편한 길이 있기는 하다.
작은 소로지만 길이 잘 닦여 있다.
하지만 그 길은 암대가 사용하지 못한다.
오직 검각 수비대에게만 허용된 그들만의 길이다.
암대 대원들은 서로 눈으로만 의사를 전달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숲속의 그림자처럼……환한 강물이 그들의 움직임을 아주 조금 그려냈다.
“수비대 놈들 나타날 때가 됐는데.”
지마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지금 상황이 안 좋아. 우리가 주군을 마천에 버리고 온 것과 뭐가 달라. 검각 수비대와 마주치는 건 최대한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추상이 주위를 쓸어보며 말했다.
“맞는 말. 놈들이 하는 말 따위는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조차 없다.”
화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암대의 임무 수행은 주로 마천 땅에서 벌어진다. 그러니 수시로 마천과 검각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그때마다 지나야 하는 것이 검각 수비대인데……
검각 수비대는 암대를 무시하고 멸시한다.
검각 수비대뿐만이 아니라 검각 모든 무인이 암대를 임시로 쓰다가 버릴 용병 집단으로 여겨진다.
돈만 주면 검각을 버리고 마천에 달라붙을 존재들.
이런 대우는 암대가 초기에 용병으로 시작했던 것과 암대 무인들의 출신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암대 무인 중 검각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어중이떠중이 삼류 무인으로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소소녕이 검제의 얼녀라는 측면이 그녀가 창설한 암대까지 비하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검각은 초창기부터 암대를 조롱하고 멸시하더니 이제는 아예 쓰레기 취급한다.
- 또 강 넘어가냐? 이번에는 아주 가는 거야? 왜? 마천이 돈 더 준대? 웬만하면 오지 마라. 검각 물 흐리지 말고 그냥 찌그러지라는 말인데. 하하하!
암대는 수비대의 조롱이 귀에 거슬렸지만 참고 견뎠다.
검각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임무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주치기만 하면 조롱을 던지는 게 썩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렇다고 맞서 싸우면 소소녕의 입지가 곤란해진다.
그러잖아도 꼬투리만 생기면 암대를 해산시키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스스로 해산 동기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이래저래 검각 수비대와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강물에도 물결이 일었고, 수풀은 부스럭거렸다.
암대 대원들은 더욱더 집중했다.
“어떻게 된 게 내 집에 들어와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냐. 이건 확실히 정상이 아냐.”
지마가 중얼거리면서 앞으로 나섰다.
검각 무인들과 마주친다고 해서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조롱과 멸시는 듣지만 싸움은 걸어오지 않는다.
출신이야 어쨌든 암대도 검각에 붙어 있는 부속 조직이다.
지마가 강을 유심히 쳐다봤다.
집중! 지마는 집중했다.
그의 눈은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물살의 흐름, 바람의 방향, 그리고 강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강가에 찍힌 작은 동물의 발자국을 찾아냈다.
“혈견(血犬). 제길!”
지마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혈견? 왔다 간 지 얼마나 됐는데?”
화우가 급히 물었다.
“발자국 깊이로 보면 대략 반 시진. 이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커. 큭큭! 오늘도 울화통 몇 번 터지겠는데.”
지마가 포기하듯이 말했다.
검각 수비대는 투견(鬪犬)을 전문적으로 양성, 활용한다.
마천에 천응이 있다면, 검각에는 혈견이라고 부르는 투견 부대가 있다.
이들이 수색과 추격을 담당한다.
검각 수비대를 피한다고 은밀히 이동했지만, 하필이면 혈견이 물 마시러 다시는 길목으로 들어선 것이다.
“할 수 없지. 혈견에 발견되는 것은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되면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 수밖에.”
화우가 말했다.
* * *
탁! 부스럭!
숲의 어두운 구석에서, 나뭇잎들이 부스럭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미세한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며 움직이는 것처럼 들렸다.
바람이 아니다. 인기척이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숲에는 많은 사람이 숨어있다.
암대는 그 소리에 즉시 반응했다.
그들은 일제히 멈춰서서 날카롭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추측으로는 검각 수비대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마천 혈마대일 가능성도 놓지 못했다.
혈마대 삼천 명 중 특수하게 선출된 이백 명은 암대처럼 검각 땅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지금도 그들이라면 뒤를 쫓아올 가능성이 충분했다.
휘이이잉!
숲에서는 고요한 바람만 불어왔다.
스읏! 슷!
암대 대원들이 병기를 고쳐잡았다.
그들의 눈은 긴장감으로 부릅떠졌다.
두 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확대되어 들리는 듯했다.
숲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주시했다.
스읏!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그림자는 조금씩 움직이며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 나갔고, 깊은 숲 그늘 속에서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기어이 부딪쳤네. 뱃속 좀 뒤집히겠는데.”
지마가 중얼거렸다.
낯선 자들의 등장은 암대를 바싹 긴장시켰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이 그들의 잔영을 더욱 뚜렷하게 비춰주었다.
깊은 숲에서 검각 무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숲의 그늘에서 갑자기 빛이 나타났다.
숲의 기운이 일제히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검 한 자루, 오산검객(吾山劍客)이다.
오산검객은 오산검문(吾山劍門) 문주다.
검각 구십구 검수 중 일인이며, 죽음의 검이라고 불리는 잔명십팔식(殘命十八式)의 대가다.
검각은 검제(劍帝)와 구십구검(九十九劍)으로 대변된다.
구십구검은 검제의 휘하에 있지만, 자신만의 문파를 세울 수 있고, 제자도 문주의 판단에 따라서 제한 없이 거둘 수 있다.
물론 반드시 제자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파를 건립하지 않은 검수도 열네 명이나 된다.
검제는 아흔아홉 개의 검문을 거느린 황제인 셈이다.
검각은 구십구검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마천처럼 서열을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십구검 중에도 분명히 상중하는 존재한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분류된다.
오산검객은 하(下)로 분류된다.
서열을 매기면 칠십 위에서 구십구 위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일성(一省)의 패주가 되고도 남을 사람, 죽음의 검술을 펼치는 강자, 잔명십팔식을 터득한 살인검수가 하로 분류될 정도로 검각의 고수 층이 두텁다.
오산검객이 나타나자 주변의 모든 풍경이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초점이 맞춰졌다. 큰 키, 단단한 체구, 손에 들고 있는 검이 압도적인 위엄을 뿜어낸다.
아니, 아니다. 그의 모습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한 자루 검만 눈에 들어온다.
오산검객의 들고 있는 검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하다.
휘이이잉!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부드럽게 흔들어 댔다.
바람이 나뭇잎을 쓸어내는 소리와 오산검객이 내뿜는 가는 숨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제길! 오산검객이 직접. 뭔가 일이 잘못됐나?”
지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대는 오산검객과 처음 마주쳤다.
검각 수비대와는 종종 충돌했지만, 오산검객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혹시 주군 신상에 무슨 변고라도!”
화우가 낯빛을 굳히며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추상에게 질책을 당하고 말았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럴 리 없어.”
“오산검객이 직접 나타났으니 하는 말이지.”
화우가 말끝을 흐렸다.
오산검객 정도 되는 사람이 겨우 암대에게 조롱이나 하자고 나섰을 리는 없지 않은가. 이 정도 되는 사람이 직접 나설 정도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그때, 오산검객이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려서 천천히 가슴 앞에 댔다.
검을 잡은 손이 정확하게 심장에 닿았다.
그리고 오산검객이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가장 정중한 인사, 검례(劍禮)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슬쩍 훑어내렸다.
“뭐지?”
지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오산검객이 한낱 암대에게 검례를 보내?
소소녕이 있다면 몰라도 그녀조차 없는 암대에게 구십구검 중 일인이 머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해?
정녕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한데, 검각 수비대가 곧바로 오산검객을 뒤따라서 일제히 검례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