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에게 사랑을 듬뿍
룸메이트에게 사랑을 듬뿍
룸메이트에게 사랑을 듬뿍
지은이 말랑
발행일 2025년 7월 23일
펴낸곳 (주)테라핀
홈페이지 http://www.copinnovel.com
전자우편 easycontents@terapinstudios.co.kr
등록번호 제 25100-2019-000007호
ⓒ 말랑, 2025
이 출판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할 수 없습니다.
정가 2,800원
ISBN 979-11-7461-122-2 [05810]
룸메이트에게 사랑을 듬뿍
프롤로그
“하, 진짜 죽겠다…….”
패드와 노트북을 번갈아 노려보던 건영이 책상에 이마를 박은 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잘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에 잡지식을 욱여넣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일주일이 넘어 가니 아무리 용을 써도 외워지지 않았다.
끔뻑끔뻑, 두세 개로 겹쳐서 보이기 시작하는 바닥 무늬에 건영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벌써 며칠째 밤샘인지, 눈앞이 빙빙 돌다 못해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몇 시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린 건영이 그새 꺼져 버린 패드의 액정을 가볍게 두드렸다. 3시 56분, 한창 꿈나라를 헤매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교필] 중간 과제 제출
오전 10:00
때마침 울리는 알람에 건영은 실소를 터뜨렸다. 타이밍 한번 예술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제출일인데, 지난번에 마무리를 다 해 놨던가? 과제가 하도 많다 보니 어느 걸 다 했고, 어느 걸 덜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끄흑―”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마자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며칠째 의자에만 앉아 있었더니 찌뿌둥한 몸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가뜩이나 요즘 컨디션도 별로라서 축축 처지는데, 시험까지 겹치니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기분 탓인지 몇 주 전부터 묘하게 몸이 무거운 게…, 여하간 여러모로 안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리포트까지 제출해야 한다니. 아무리 눈씨름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알람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는 건영이었다.
‘이번에 학점 세탁 못 하면 망하는데.’
아무래도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왜 이리 많은지. 챙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리포트부터 마무리하고… 그리고 보던 거 다시 훑고……. 아, 내일 첫 타임인 교양도 봐야 되는데.
“…그래, 잠은 죽어서 자면 되지, 뭐.”
23학점을 들을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귀신에 홀렸던 게 분명했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 어디 화를 낼 수도 없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냥 닥치고 하는 수밖에.
“그 교수님 족보 있는데… 보내줄까?”
실성한 사람마냥 혼자서 중얼거리기를 반복하는 건영을 흘긋거리던 세인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진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건영이 세인을 돌아봤다. 족보라니, 넙죽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어. 그 강의 작년에 수강해서…, 가지고 있어.”
“와, 세인아…. 진짜, 진짜 고마워.”
두 눈을 빛내던 건영은 쑥스러운 듯 목덜미를 긁적이는 세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좁힌 그가 망설임 없이 세인을 끌어안았다. 지금 이 순간 건영에게 있어서 세인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나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네 덕분에 살았어.”
“…….”
“내가 시험 끝나고 밥 살게.”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도 못 한 횡재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솟아났다. 밥이 뭐야, 해달라는 건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족보만 있다면야, 오늘 하루쯤은 맘 편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다행이다, 진짜.”
쿵, 쿵. 맞닿은 가슴 너머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유독 선명하게 들려오는 심장 소리는 왠지 모를 안정감마저 느끼게 했다.
“건영아……?”
커다란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건영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옅게 입술을 깨문 세인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 미안. 졸려서 정신이 없었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건영은 허둥지둥 사과를 건넸다. 세인의 품이 너무 포근해서, 무의식적으로 실례를 하고야 말았다. 편한 사이는 맞지만 이렇게 막 껴안는 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잠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 나 이제 잘 건데…, 너는?”
“나도 누우려고.”
묘한 분위기 속, 이렇다 할 말을 찾지 못하던 건영이 넌지시 물었다. 미련 없이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향하는 세인을 보자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내가 잘 때까지 기다려준 게 틀림없었다.
“나 잘 때까지 기다린다고 매번 고생이네, 미안.”
“아냐.”
군더더기 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길진 않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배려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시험 기간이라지만 너무 늦어지면 뭐라 할 법도 한데. 은근히 기다려주는 게 감동이면서도 미안했다.
세인의 배려는 늘 이런 식이었다. 생색을 낸다거나 싫은 소리를 먼저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찾아보기 드물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투박하지만 다정한 배려, 그래서 세인이 참 좋았다.
“혹시 에어컨 끄고 자도 돼?”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던 세인은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벽에 걸려있던 리모컨을 건영의 머리맡에 놓아주기까지 했다. 갑작스런 요구에 난색을 표할 법도 하건만 껄끄러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고마워, 요새 몸이 좀…, 그래서.”
“괜찮아?”
“응, 심한 건 아니고. 그냥, 무리해서 그런가 봐.”
큼,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두서없이 말을 덧붙이는 건영이었다.
어둠 속에서 걱정으로 물든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지레 찔린 건영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세인이 짐작하는 그런 몸살이 아니어서 그런가.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너무 착한 거 아냐?’
분명 더울 텐데 덥다고 투덜거리기는커녕 걱정부터 하기 바쁜 제 룸메는 착한 건지 호구인 건지.
계절상으론 아직 봄이긴 했지만, 유달리 열이 많은 두 사람에게는 4월 말은 충분히 더운 날씨였다. 매일 에어컨을 틀고 자다가 그냥 자면 답답해서 밤새 잠을 설칠지도 몰랐다. 그걸 알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해해 주는 세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잘 자, 세인아.”
“너도.”
새벽이라 그런지 유독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건영은 이불을 덮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짜 착한 앤데.’
왜 소문이 별로인 건지. 같이 사는 자신이 다 억울할 정도로, 그에 관한 소문은 좋지 않았다.
음침하고 무섭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애.
세인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참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룸메가 세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빙자한 호들갑을 떨었던가.
막상 소문의 출처를 물었을 때 명확하게 답하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인과 제대로 대화조차 나눠본 적 없으면서 왜 그런 뜬소문을 철석같이 믿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엇, 짐 하나도 안 풀었네?]
[어느 쪽을 하고 싶어 할지 모르겠어서…….]
방을 배정받은 첫날. 먼저 와서 짐도 풀지 않고 몇 시간이고 제가 오길 기다리던, 커다란 몸집에 비해 순하기 짝이 없던 애. 그게 바로 세인의 첫인상이었다.
자신은 어느 쪽이든 괜찮다며 기꺼이 더 편한 자리를 내주던 세인은 매사 그런 식이었다.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듯, 항상 저에게 다 맞춰주는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놈.
기본적으로 사람이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긴 했지만 딱히 단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있으면 차분해져서 좋았고, 가끔 같이 맥주 한잔하자고 하면 어색해하면서도 절대 빼지는 않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확실한 건,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이상한 애는 절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음침한지도 잘 모르겠고.
머리가 눈을 가릴 정도로 길고 더부룩해서, 그래서 그런 소문이 도는 건가.
‘…조금만 더 짧게 자르면 괜찮을 텐데.’
같이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 막 씻고 나온 세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몸 좋은 건 진작 알고 있었다만, 얼굴까지 그렇게 훤할 줄은 몰랐는데.
아마 머리 스타일을 살짝만 바꿔도 세인에 관한 소문은 180도로 달라질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다니는 걸 텐데 굳이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말을 얹고 싶진 않았다. 꼭 남들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으니깐.
‘내년에도 같이 살고 싶다.’
기왕이면 졸업할 때까지 쭉 같이 살고 싶은데. 저번에 물어 보니 세인이도 딱히 자취할 생각은 없다고 했고…. 그러면 한창 바쁠 시기에 룸메이트가 바뀌어서 새로 적응하는 것보단 나랑 한 해 더 같이 지내는 게 낫지 않나?
룸메이트 배정은 생각보다 민주적이어서, 서로의 동의만 있다면 몇 년이고 같은 사람과 방을 쓸 수 있었다. 즉, 무엇보다도 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다.
부탁하면 받아주려나.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깐 중간고사 끝나고 천천히 말해 봐야겠다.
“…….”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까 고민하던 건영은, 서서히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걸 느꼈다. 불규칙적이던 숨소리가 점차 고르게 변해감에 따라 흐릿하던 시야는 이내 완전히 암전되고야 말았다.
* * *
“…영아, 최건영!”
“으음…….”
알람이 몇 번이나 시끄럽게 울려도 도통 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없어 보이던 건영은 저를 부르는 세인의 목소리에 마침내 눈을 떴다.
“…미안, 나 또 못 일어났어?”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건영이 지척에 있는 세인에게 물었다. 근처에 있는 걸로 봐선 이번에도 세인이가 저를 깨워 준 것 같았다.
요새 대체 왜 이러지. 술이랑 수면 유도제랑 같이 먹어서 그런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술로는 부족해서 수면 유도제를 꼭 한 알씩 먹게 됐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니 커피를 달고 살고, 그러다 보니 또 자야 할 때 잠이 잘 안 와서 술에 기대게 됐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일단 너무 급하다 보니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부작용인가?’
그래서 그런가. 평소엔 잘 듣던 알람도 거의 못 듣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
아래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에 건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통 적응되지 않는 이 야릇한 느낌은, 요즘 들어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고 있었다.
“…그, 세인아.”
“……?”
“나, 밤에 잘 때 뭐 실수하는 건 없지?”
잠시 망설이던 건영이 용기를 내어 세인에게 물었다. 진짜,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혹여나 밤마다 제가 뭔가 실수라도 하고 있다면 같이 생활하는 세인을 위해서라도 빨리 고쳐야만 했다.
이불을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좀체 세인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건영의 귓가가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응, 없어.”
“진짜지?”
“응.”
하, 다행이다…….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는 대답에 건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어졌다.
요새 아침마다 팬티 속이 축축하게 젖어있을 때가 많아서, 혹시 몽정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세인의 반응으로 보아 그건 아닌 듯했다.
하긴, 몽정은 무슨. 스트레스 때문에 있던 욕구도 사라질 판인데 걱정이 너무 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 먼저 씻어도 돼?”
“응, 상관없어.”
세인의 눈치를 살피던 건영은 슬그머니 바지 앞섶을 가린 채 욕실로 향했다.
‘진짜 아닌 거 맞아?’
세인이가 거짓말을 할 애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밤에 얌전히 잠만 자는 사람치곤, 자신의 팬티는 축축해도 너무나 축축했다.
발목까지 바지를 끌어 내린 건영이 제 아랫도리를 구석구석 살폈다. 흥건하게 젖어 검은색에 가까운 진회색 빛이 된 속옷과 번들번들해진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
쿠퍼액으로 흠뻑 젖은 자지를 가만히 살펴보던 건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번 양보해서 성기가 젖는 건 그렇다 쳐도 불알과 허벅지 사이에서도 물기가 흠씬 묻어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설마 오줌이라도 싼 건가?’
양옆으로 다리를 벌리자 투명한 점액이 기다렸다는 듯이 허벅지 사이를 타고 흘렀다. 경악으로 물든 눈동자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미친, 진짜 오줌인가?
이 정도로 젖은 적은 처음인데. 설마 이 나이에 요실금이라도 생긴 건지, 두려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건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벅지에 묻은 물기를 훔쳐냈다.
“큿…!”
정체 모를 체액의 근원을 찾아 허벅지에서 엉덩이까지 파고든 손이 항문에 닿은 찰나, 건영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 크게 휘청거렸다. 실수로 스친 것뿐인데도 온몸에 힘이 풀릴 정도로 상당한 쾌감이었다.
“이, 이게 뭐―”
퓻, 엉덩이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장액을 알아차린 건영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실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 반대였다.
.jpg)
메뉴
로망띠끄
로그인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