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수업 중입니다 (합본)
사랑, 수업 중입니다 (합본)
사랑, 수업 중입니다 (합본)





1권
사랑, 수업 중입니다 (합본)
1장



지후의 입술이 갑자기 다가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하진의 입술이 거칠게 짓눌렸다.

예상치 못한 충돌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아니었다. 그의 숨결이 가까워지는 것도, 입 안을 탐색하듯 밀고 들어오는 혀도, 감정의 흐름 없이 밀어붙이는 이 접촉 전부가, 너무 성급했고, 낯설었으며, 불쾌했다.

하진은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지후의 손이 그녀의 턱을 붙잡고 다시 입술을 찾아왔다.

심장이 요동쳤다. 이건 두근거림이 아니라 분명한 경고였다.

“지후 씨, 잠깐만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이 무릎 위로 닿더니 천천히 허벅지를 따라 올라왔다. 하진은 숨이 턱 막혔다.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그만두세요.”

지후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다시 몸을 기울였다. 하진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양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쳐냈다.

“싫다고 했잖아요.”

그제야 지후는 얼어붙은 듯 멈췄다. 조용한 숨소리만 차 안에 남았다. 무언의 긴장이 공기를 짓눌렀다.

그의 얼굴에 잠시 당황이 스치더니, 이내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

“생각보다 순진하네? 처음이야, 아니면 내가 싫은 거야? 만난 지 세 달이면 진도 뺄 때도 되지 않았어?”

……이번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다 똑같았다. 적당히 잘생기고 돈 좀 번다는 남자들. 어김없이 몸부터 요구하고, 툭하면 잠수. 혹은 톡 한 줄로 이별을 고하거나, 애매하게 다른 여자와 엮이는 식으로 끝을 맺었다.

현아의 소개로 만난 이 남자는 처음엔 거부감이 덜했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점점 불편해졌다. 결국, 또 똑같은 결말이었다.

“죄송해요. 지후 씨와 저는, 안 맞는 것 같아요.”

하진의 단호한 말에 지후의 얼굴은 굳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는 시계를 힐끗 본 뒤 무심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내려. 혼자 갈 수 있지?”

화가 치밀었지만, 하진은 침착하게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먼저 선을 넘은 건 그였으니, 예의를 지킬 이유도 없었다.

하진이 방향을 잡으려 두리번거릴 때, 지후의 차는 그대로 서 있었다. 창문이 내려가고,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하진이 한 발 내디디는 순간, 창문이 닫히고 차는 거칠게 속도를 올려 달아났다.

“…뭐야, 미친 건가.”

손짓은 어쩌면 ‘잘 가라’는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허탈하게도 그 덕분에 하진은 큰길 방향을 알아챘고, 덩달아 속에서 부글대던 열도 조금은 식었다.

입술이 여전히 얼얼했다. 거칠게 짓눌렸던 순간이, 짧은 호흡조차 없이 휘몰아쳤던 그 몇 초가 마치 몸에 찍힌 멍처럼 선명했다. 욕지기가 목 끝까지 올라왔다. 어깨를 털며 하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미친놈이네.”

지후의 차를 떠난 하진은 밤공기를 마시며 몇 걸음을 내디뎠다. 입술 끝이 얼얼했고, 불쾌감이 서서히 뒤따랐다. 정신을 다잡으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저은 뒤, 큰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귀에 거칠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꽂혔다.

“이 새끼, 어딜 그렇게 똑바로 봐? 눈깔 파줄까?”

“얼굴에 칼자국 하나 남기고 졸업시키자니까.”

가로등 아래, 교복을 입은 남학생 하나가 셋에게 에워싸여 있었다. 장난으로 보기엔 분위기가 너무 험악했다.

하진은 한숨을 내쉰 뒤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너희, 어느 학교야?”

단호한 목소리에 셋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 아줌마는.”

하진은 교복을 살피며 걸음을 좁혔다. 명찰은 없었지만 교복 디자인은 익숙했다. 같은 지역 학교임이 분명했다.

“여러 명이 한 학생을 둘러싸고 협박하는 거, 지금 녹음해도 돼? 학교 폭력으로 심의 들어가면 형사 처벌도 가능해. 학생의 안전을 지키는 게 내 일이니까. 괜한 일로 너희 진로 망치게 하고 싶진 않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셋 중 하나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누가 보면 교사인 줄 알겠네. 참견하지 말고 꺼지시죠.”

하진은 미간을 좁히며 똑바로 말했다.

“진짜 교사야. 너희 같은 애들 바른길로 이끄는 직업이거든.”

‘교사’라는 단어에 셋의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이내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신고든 뭐든 해보시지.”

하지만 이내 다시 하진과 눈을 맞추자 미묘하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다.

“같은 학생 상대로 이러는 거, 부끄럽지도 않아?”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결국 셋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슬금슬금 뒷걸음쳤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진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괜찮아? 많이 놀랐지?”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 아래 드러난 얼굴은 놀라울 만큼 또렷했다.

맑고 단정한 이목구비. 그보다 눈에 밟힌 건, 아이답지 않은 눈빛이었다.

슬프고도 차분한, 어른의 눈이었다.

“다니는 학교는 어디야?”

하진의 물음에 그는 잠시 주춤하다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일 커지면 귀찮아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진은 그를 조금 더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름은…?”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멈춘 택시에 아무 망설임 없이 올라탄 그의 뒷모습을 하진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일까. 그 낯선 눈빛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진은 택시에서 내려 현아의 아파트 앞으로 걸어갔다.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데이트 망했어?”

현아는 하진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차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