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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바이킹이 되었다 9권
미래소년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에필로그
1
1장
황제가 제국이라는 울타리를 세워 야만과 굶주림에서 인류를 지켰음에, 마침내 역사와 현실에서 스스로를 죽여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다만 자유의지는 황제의 선물임과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자유를 얻었다고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휘두르면 자기 자신과 더불어 남을 해치는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올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황제가 무책임하게 자유라는 이름 앞에 인간들을 내던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 과거 인간들을 억압하는 존재들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었으며.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력, 무엇보다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과 기본적인 법과 도덕을 가르쳤다.
낳아준 부모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아이를 돌보아야만 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는 것은 순리였으니까.
부모 밑에서 독립하지 못한 성인은 언제까지고 성인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아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아이를 독립시킨 뒤에 한동안 아이를 가까이하지 않기도 한다.
인생에 대한 연륜이 있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행동과 삶이 마뜩잖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관심이 아니라 간섭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가 머나먼 동방으로 떠난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신보다 위대한 철인황제라고 하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 자신이 세운 제국에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애정이 집착이 되기 전에 단호하게 끊어낸 것이었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착을 버린 사람을 괜히 해탈했다 하여 부처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손에 쥔 것을 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고, 그래서 철인황제가 더욱 위대한 것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아직 인류가 황제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제국의 섭정 멀린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인간들은 어리석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며, 은혜는 쉽게 잊고 원한은 뼈에 새기는 배은망덕한 이들입니다.”
“하지만 어린 메릴리누스야, 너 또한 인간이다.”
황제가 절규하며 외치는 멀린을 향해 말했다.
자신 또한 인간이라는 황제의 고백에 이어, 너 또한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멀린은 심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자기 스스로를 인간과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 자신 또한 저들과 다르지 않은 추악한 인간이었다.
멀린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자신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의 하찮음을 자각한 것에서 오는 슬픔과, 깨달음에서 오는 커다란 해방감이었다.
겉으로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제국을 저버리고 떠난 황제를 향해 가지고 있던 원망과 불만이 햇살에 눈이 녹아내리듯 스르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카타르시스가 되어 멀린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황제가 인간의 야만에 희생된 자신의 어미를 보았을 때, 느낀 것은 세상 전체를 지워 버릴 것 같은 커다란 분노였다.
그리하여 인신공양과 식인은 황제의 역린이자 제국의 금기였다.
하지만 이제 와 그를 섬긴다는 귀족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가엾은 여인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살해함에 그가 느낄 것은 과거와 같은 분노였을까?
아니, 오히려 연민과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저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저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죄에 대한 단죄는 단호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황제의 단죄를 대변할 대리인이 있었으니.
“…….”
제국 유일의 대마법사 멀린이 깨어났다.
* * *
쿠단의 불타는 듯한 두 눈이 순식간에 주변의 상황을 훑어 내렸다.
특히 바닥에 누워 배가 갈라진 여인의 모습을 보고 투구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안광이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국이 세워진 지도 벌써 4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제국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황제와 함께했었던 쿠단은 이보다 더한 야만과 폭력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리고 그 야만과 폭력의 시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바로 황제의 전사들이었다.
“황제의 기간투스가 어떻게 여기에! 황제 폐하께서 수도로의 출입을 금하셨을 터인데! 황제 폐하의 명령을 어겼다는 말인가! 폐하의 종들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지금보다 더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수석 요원의 지적은 쿠단에게 있어서 코웃음만 나오게 할 뿐이었다.
“감히 너 따위 하찮은 것들이 그분을 입에 올리는가.”
철컹!
강렬한 쇳소리와 함께 쿠단이 코어 소드를 뽑아 들었다.
불사 시술을 받을 때 이식되었던 그의 코어가 강렬한 에너지를 코어 소드에 전송하자, 코어 소드의 검신에 시퍼런 전광이 어렸다.
“황제 폐하의 명령을 어긴 불경한 거인을 막아라! 저자도 어차피 우리가 무너트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진작부터 쿠단을 조준하고 있던 요원들이 수석 요원의 명령에 일제히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두두두두두두두!
묵직한 총성이 대기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요원들의 시야에서 사람의 눈높이가 아닌 곳에 도깨비불처럼 둥둥 떠 있던 황금빛 안광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길게 늘어졌다.
요원들이 쏘아 보낸 총알은 쿠단의 몸을 뚫지 못하고 지하 감옥 뒤편의 두꺼운 콘크리트벽을 치즈처럼 뚫고 들어갔다.
그나마도 몸에 맞은 몇 개의 총알은 쿠단의 기계수 갑주 표면에 불똥을 튕기며 자국을 남기고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첫 번째 망치 모로미르와 한때는 대장장이 신이라고까지 불렸던 황제가 직접 벼린 셀레스티움 합금은 소형화시킨 레일건의 탄알도 튕겨낼 만큼의 강성을 자랑했다.
“헉!”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쿠단의 모습은, 당하는 요원의 입장에서는 마치 순간 이동 해서 나타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약물과 강화 시술로 보통 인간을 초월한 반사신경을 가진 요원이 반사적으로 쿠단의 공격을 막기 위해 묵직한 라이플을 위로 치켜들었다.
써컹!
하지만 번개처럼 떨어져 내린 쿠단의 코어 소드가 라이플과 함께 통째로, 머신아머를 입고 있는 요원의 몸통을 두 쪽으로 갈라 버렸다.
당하는 요원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번갯불이 자신의 정수리를 관통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금속과 금속이 마주치며 샛노란 불꽃이 튀어 오르고, 두 쪽으로 나뉜 요원이 좌우로 벌어지며 뜨끈한 내장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키이이잉!
요원들이 착용하고 있는 머신아머에서 전기톱이 돌아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오며 그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몇 배나 빨라졌다.
두 쪽으로 갈라진 동료의 좌우에서 번뜩이는 총검이 쿠단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쿠단은 손에 쥐고 있던 코어 소드를 휘릭, 회전시켜 역수로 바꾸어 쥐며 오른쪽에 있던 요원의 정수리를 내리찍음과 동시에 왼손 주먹을 뻗어 왼쪽에 있는 요원의 머리를 타격했다.
철컹!
충돌 직전에 쿠단의 갑주에 잠들어 있던 쿠가라의 날카로운 발톱이 손등에서 뻗어 나오며 요원의 머리통을 파고들었다.
칵! 하는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정수리가 뚫리고 쿠가라의 발톱이 철갑을 두르고 있는 요원의 안면을 밑으로 갈랐다.
“끄아아악!”
단번에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오히려 그에게 더 큰 불행이었다.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져 있는 손톱이 안면을 긁으며 빠져나오자 눈알과 코, 입과 턱이 쟁기에 갈린 것처럼 뒤집어지며 밖으로 몽땅 쏟아져 내렸다.
그 요원은 어린애처럼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무너져 주저앉았다.
“히이이익!”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자리에 있던 요원이 질린 소리를 내며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쿠단은 자신이 안면을 긁어버린 요원의 목줄기를 우악스럽게 붙잡고 전면에 내세워 총알을 막았다.
따다다다다당!
총알이 쇠를 때리는 굉음과 함께 샛노란 불티가 어두운 지하 감옥 안에 흩날렸다.
아군의 사격을 버티지 못한 머신아머가 깨져 나가며 피와 내장이 솟구쳤다.
“죽여! 죽이라고!”
수석 요원의 지시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황제의 철거인을 막아낼 수단이 없었다.
그들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으며, 쿠단의 공격은 그들을 일격에 즉사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20명의 요원들 중 절반이 눈 몇 번 깜빡할 사이에 나자빠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주시오!”
수석 요원이 절규하듯 외치자, 과거 드워프였던 돌브럭, 홀누르, 볼다인 세 명의 사이보그들이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
사실 겉으로 볼 때에는 그들이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도, 인간들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가청 영역이 박쥐의 그것과 흡사한 쿠단은 그들이 은밀하게 나누는 이야기를 모두 알아들었다.
“쥐새끼처럼 뭘 그리 속닥거리고 있는 것이냐. 네놈들이 벌을 받았으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지. 감히 이따위 하찮은 것들과 작당을 벌여 탈옥을 하다니.”
쿠단의 말에 세 명의 사이보그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얼굴을 흉내 내 만든 차가운 금속 마스크에는 아무런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너를 황제의 기간투스로 만들어준 것이 우리라는 것을 잊었는가. 쿠단.”
이에 쿠단이 입꼬리를 끌어 올려 그들을 비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깡통들아.”
쿠단의 대답에 말이 없던 사이보그들이 별안간 발바닥에서 추진체를 뿜으며 그에게 덤벼들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미사일처럼 튀어 나간 사이보그들이 순식간에 가속하여 쿠단을 들이받았다.
불과 심장 한 번 뛸 그 짧은 순간에도 쿠단은 돌브럭의 머리를 코어 소드로 내려치고 홀누르의 몸통을 클러로 찢어발기며 볼다인의 몸통박치기를 몸을 뒤틀어 피했지만, 사이보그들의 대응도 만만치가 않았다.
인간의 눈의 한계는 초당 24프레임에 불과했지만, 사이보그들의 카메라 눈은 1초를 100만 프레임으로 쪼개 사물을 촬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기계장치로 강화된 그들의 두뇌는 시간의 흐름을 10배 이상 느리게 할 수 있는 연산 처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돌브럭과 홀누르는 손목에서 뽑아낸 코어 소드로 쿠단의 공격을 방어해 냈고, 볼다인은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쿠단의 움직임을 연산해, 손바닥에서 추진체를 분사하여 궤적을 틀어냄으로 일반적인 인간은 불가능한 각도로 쿠단의 몸통에 공격을 꽂아 넣었다.
쩌엉-!
금속이 내지르는 거친 비명 소리와 함께 쿠단의 몸이 마치 대포에서 쏘아진 것처럼 거칠게 튕겨 나가 지하 감옥의 두꺼운 콘크리트벽을 허물며 틀어박혔다.
우우웅-.
사이보그들의 심장인 머신 코어가 벌떼가 우는 소리를 내며 회전수를 끌어올리자, 그들의 몸통과 관절 사이사이에서 주황빛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패배를 인정해라 쿠단.”
“우리가 만든 머신 코어는 네가 가지고 있는 고스트 코어 출력의 10배에 달한다.”
“그 출력은 고스트 코어의 원본인 소울 코어에 근접할 정도이지.”
“그리고 우리의 육신은 너의 갑옷과 같이 셀레스티움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은 마치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세 명의 사이보그가 동시에 말하였다.
“너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쿠단이 튕겨 나간 어두운 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수석 요원은 마른침을 집어삼키며 감각을 집중했다.
뭐야, 왜 말이 없어? 설마 죽었나?
그때, 강렬한 폭음과 함께 튕겨 나간 것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쿠단이 돌진하여 사이보그를 덮쳤다.
그런 쿠단의 손에는 다름이 아니라 황제의 천둥망치인 페룬이 들려 있었다.
번쩍 치켜든 망치에서 황제의 신성한 번개가 세상을 찢어발길 기세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황제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