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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속 절대 감각 7권
RAS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1
Chapter 1
“너 누구야.”
-……?
잠시 당황하는 듯하던 케이는 이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해 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헹, 너만 본인 확인할 줄 알았냐?
“그냥 인공지능 오퍼레이터라기엔 너무 이상해서 말이야. 일단, 이시마리의 오퍼레이터는 어디로 갔지?”
-…빌어먹을 기억상실.
“뭐가 구린가 보지?”
-후우, 아닙니다. 천천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형을 언도하기 전에도 최후 변론 시간은 있는 법.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니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던 케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상황이 급하고 설명할 내용이 길어 저에 대해 인공지능이라 하신 사령관님의 발언에 동의를 표한 점, 사과드립니다.
“그럼 인공지능이 아니란 소린가?”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긴 합니다만, 본질적으로는 다르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은 모든 설명이 끝난 후에 부탁드립니다.
까칠하기는.
내가 동의하는 듯하자 케이는 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일전에 마나석에 대한 설명은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박한 확률로 인간임에도 마나석과 공명하는 파장을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마나석과 공명하는 능력을 적합도라고 칭합니다.
-마나석 적합도를 보이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오퍼레이터 교육을 받게 되며, 사관학교에서의 성적과 적합도,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오퍼레이터로 임관하게 됩니다.
지금 뭐야. 그러니까… 인간이다?
-오퍼레이터로 임관하게 되면 C등급 마나석과 공명 절차를 밟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오퍼레이터는 신체의 제약을 벗고 마나석과 합일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오퍼레이터와 합일을 이룬 마나석은, 영혼석이라 칭해집니다.
“허…….”
아니, 무슨 에밀레종도 아니고 사람을 갈아 넣어서 만든다고? 이게 인륜적으로 말이 되는 짓인가?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한 것이기에, 인공지능이라고 비하하여 부르기도 하지만 현행법상 오퍼레이터는 명백한 인간이며 인간으로서 누릴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용히 울리는 케이의 음성에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 같은.
새삼 지금까지 생각 없이 내뱉었던 인공지능이란 말이, 얼마나 모욕적이었을지 실감하니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미안하다.”
-기억을 잃으셨던 거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작전 중에는 그렇게 대해 주시는 게 불문율입니다. 제가 괜히 K-7153이라고 소개한 게 아닙니다.
그래도 내 사과에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 듯, 케이는 한층 밝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영혼석으로 거듭난 오퍼레이터는 이전과는 다른 공능 하나를 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를 함유한 인간, 즉 사령관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사령관과 연결됨으로써 오퍼레이터는 사령관이 취득한 여러 정보를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사령관의 작전을 보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령관이 사망할 시 오퍼레이터 또한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듣고도 모르면 바보지.
“아… 그래서?”
이시마리의 오퍼레이터는, 그와 함께 죽은 거다.
-그렇습니다. 이시마리 사령관님의 오퍼레이터는 이시마리 사령관이 사망하는 순간 사망했으며, 이스케이프 스파이더는 그가 죽기 직전 심어 놓은 명령에 의거하여 움직인 겁니다.
“…….”
죽는 순간까지도 동료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그 모습은, 정신 교육 시간 늘 들어 왔던 영웅들의 행보와 같았다.
그리고… 육체를 버리고 임관한 오퍼레이터가 그럴 수 있다는 건, 절대 강제적으로 임관한 게 아니라는 소리다.
강제적으로 임관했는데 죽어 가면서까지 발버둥을 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케이도 그렇고, 이시마리의 오퍼레이터도 그렇고 그들에게 연합이란 게, 인간이란 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얼마나 숭고하고 영웅적인 모습인가.
나는 전율로 차오르는 심장을 안고, 흉물스럽게 부러져 있는 기둥에 조용히 경례를 올렸다.
“편히 쉬시기를.”
비록 만들어진 세계일지라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설명해 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그럼 이제 M51D4와 K278M1의 사용법 및 휴대법을 교육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부탁해.”
-전방을 주시해 주십시오.
파앗-
다시금 떠오른 스크린 안에는 한 남자가 정확한 구분 동작으로 두 무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익히 훈련받았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나는 순식간에 그것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철컥-
등에 멘 돌격소총과 허벅지에 달린 리볼버의 무게를 느끼자니, 케이의 제안이 들려 온다.
-이제 디텍터와 시그널폰을 제작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감동은 감동이고. 얻은 정보는 써야지.
“분명 이시마리 사령관의 오퍼레이터가 ‘미리’ 명령을 심어 놓은 거랬지? 이스케이프 스파이더 말이야.”
-맞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렇게 못해?”
절차화된 명령을 입력해 두고 돌아다니는 것. 내가 생각했던 모든 방책을 잡을 묘수다. 그리고 이미 실제 예가 있는데 안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2차 시퀀스가 절반가량 진행되어야 최소한의 기반이 생성됩니다.
“젠장, 얼마나 걸리는데?”
-이미 채집돼 있는 게 상당하여, 반나절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이시마리,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다.
“그럼 진행해. 최대한 빨리.”
-예. 디텍터와 시그널폰 제작 이후 커맨드센터의 발전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위이잉-
이제는 정겹게까지 들리는 기동음과 함께 케이가 침묵하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파트너가 일하는 동안, 물어보지 못한 마지막 비밀 하나를 캐 내 볼 참이다.
과연 나와 파트너는 뭘로 연결돼 있는 걸까?
***
“끼에에에엑-!”
퍼어어엉-
괴수의 흉성과 강철 함대의 포격이 정신없이 교차하는 우주 전장. 그리고 그곳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제17연합군 3군단의 모선, 프레이.
그 거대한 모선의 심장, 함교(艦橋)에 비명 소리가 울려 펴졌다.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을 끝으로, 스크린이 눈을 감는 순간.
함교에 숨 막힐 듯한 기세가 몰아쳤다. 그 주인은 3군단의 지배자이자 모선의 주인.
“끝이야?”
연합군 4성 장군, 프레이.
“예.”
가볍고 친근하게만 대하던 상관의 본모습에, 신임 부관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벌써 세 번째지?”
“예, 그렇습니다.”
17구역의 원수, 이시온의 딸. 태어나면서부터 보인 압도적인 재능으로 고작 서른의 나이에 3군단의 정점에 오른 불세출의 여장군.
자신의 군대와 함선을 너무나 사랑해 같은 이름을 붙여 버린 여자는 한참 동안이나 미간을 찌푸린 채 발을 까딱였다.
“흐음…….”
처음 A타입 여왕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500년 동안이나 발견되지 않고 암약한 A타입 여왕이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했으니까.
그것이 진실로 판명되고, 적의 세력이 드러날 때도 그 크기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금방 멸절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의 군대는, 고작 500년 묵은 구닥다리에게 고전할 만큼 약하지 않았으니까.
함대로 밀어 버리지 않고 강습군을 투입한 건, 신임 장교들의 실전 경험과 자신감을 위한 것이었을 뿐.
우주전을 교착 상태로 이끈 것도 이 전장을 신병들의 훈련장으로 써 먹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강습군 투입 이후 올라오는 보고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언제나 성공만을 해 왔기에 스스로의 실책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그녀는 잠시간의 상념 끝에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라도 강습군을 여단장 중심으로 모아 생존을 도모시키고, 전 함대를 동원해 이상 현상을 보이는 저 여왕괴수를 행성째로 쓸어 버려야 한다고.
“좋아, 이번 작전은…….”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의 실수를 입에 담고, 쏟아진 물을 다시 담으려 할 찰나.
“제독님! 확인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소식만 전하던 수하의 목소리가 기쁨과 의아함이라는 다른 감정으로 물들어 들려 왔다.
“뭐지?”
“바로 스크린으로 띄우겠습니다!”
고작 승리했다는 보고라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리라.
그녀는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스크린을 주시했지만.
-하하하하하하!
괴수의 체액조차 날려 버린 남자가 호탕한 웃음을 토해 낼 때까지, 그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나 스트림을 저렇게 바꾼다고?”
“저게 가능해?”
“대충 봐도 네다섯 가지는 쓰는 것 같은데?”
남색 마나를 다루는 그녀조차 불가능한 기예. 연합군 특급 기밀을 다루는 그녀조차 알지 못하는 특기.
아니, 특기라기보단 이적(異蹟)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불가사의한 능력에 그녀 또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러할진대, 방금까지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함교의 크루들이 기함을 내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중 아주 기특한 인사가, 그 남자의 존재를 파악해 입 밖으로 토해 냈다.
“72여단 1대대 1중대 4급 사령관 강소민 대위? 특기는 없음?”
“4급 사령관!?”
“말도 안 돼…….”
그리고 그 정체가 밝혀지자, 함교는 더한 경악 속으로 빠져 들었다.
전장 상황 속에서의 한계 돌파. 기적이라고까지 보일 법한 특기의 발현. 예상치 못한 원석의 등장에 그녀는 다시 한번 생각을 바꿨다.
“작전은 강행한다. 하지만.”
어린 영웅이 탄생했는데 어른이 나서서 난세를 치워 버릴 수는 없는 법. 허나 한 명의 영웅을 위해 수많은 신병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도 지휘관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72여단장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하겠다. 현 시간부로 현행 작전 계획은 전면 폐기한다. 세부 사항은 내 직접 작성해서 전달하지.”
“예! 제독님!”
크루들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17연합군 3군단의 제독은 다시 함장의 자리에 앉았다.
“아, 그리고 강소민 4급 사령관에게 내가 지켜본다고 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