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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속 절대 감각 4권
RAS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1
Chapter 1
푸욱-
너무 많이 만나고 죽여서 이제는 지겨워진 몰골의 좀비들이 내 칼날 아래에 쓰러진다.
하지만, 레벨은 이번에도 오르지 않는다.
“으음…….”
“안 올랐어요?”
“네. 소피아 씨는요?”
“저도요.”
“흠.”
벌써 일주일째 정체다.
우리 셋 모두 6레벨에 도달한 뒤, 그 누구도 7레벨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경험치 요구량이 많다고 치더라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간간이 등장하는 특이 개체들도 빠짐없이 사냥했음에도 이렇다. 즉, 시스템적 제한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나를 다루는 건 불가라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죠. 이제 더는 시간낭비 같습니다.”
“네.”
디데이가 임박했음을 느끼며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굉음이 하늘을 떨어 울렸다.
지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 그러나 모를 수가 없는 정겨운 소리.
타아앙-
“……!”
“총!?”
그와 함께 주변에 숨어 있던 괴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그어어어.”
셀 수 없이 많은 하울링이 모여 거대한 울림을 토해낸다.
이미 석양이 지기 시작한 시간. 지금 복귀하지 않으면 밖에서 하루를 보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총을 포기할 쏘냐.
결정을 내린 내가 소피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연다.
“가죠.”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우리는 바람처럼 내달렸다.
이미 주변은 우리가 정리를 해놓았기 때문에 장애물은 없었다.
그리고.
타아앙-
정리하지 않은 지역의 장애물들은 총소리에 이끌려 제자리를 이탈했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손쉽게 소리의 진원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들이댔다간 좀비들의 어그로를 끌게 될 터.
“위로.”
정찰이란 모름지기 위에서 보는 게 최고지.
서서히 몸이 하늘로 떠오르고, 주변 모든 것이 발아래에 놓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거리에, 한 남자가 좀비 떼를 피해 미친 듯이 달리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어어어.”
“꺼져-!”
타아앙-
그 남자의 손에는 끝이 뾰족한 쇠꼬챙이와 검은색 리볼버 한 정이 들려 있다.
한국에서 리볼버라… 경찰인가? 이때까지 잘도 숨어 지냈군.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총은 분명 강력한 무기이긴 하지만, 엄청난 소음이 발생한다. 그리고 소음은 좀비를 부른다.
따라서 총은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닌 한, 아니, 절체절명의 위기더라도 사용하면 안 되는 무기다. 좀비의 이빨이 박혀 끝이 예정되어 있으면 또 모르지만.
저 남자도 지금까지 열심히 참아 왔겠지. 하지만 결국 악수를 두고 말았다.
“으아아아아-!”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리볼버에서 연신 애처로운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쓰러지는 적은 고작 한 발에 한 마리뿐. 그마저도 머리를 맞히지 못했는지 두 마리는 곧장 일어나서 다시 제 식욕을 드러낸다.
“시바아아아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남자가 욕설을 뱉으며 리볼버를 바닥에 던진다. 그리고 쇠꼬챙이를 치켜들고 짐짓 결의를 다진다.
“들어와!”
과연 긴 시간 좀비 밭에서 목숨을 지켜낸 생존자답게, 남자는 용맹하게 싸웠다.
푸욱- 푸욱-
쇠꼬챙이에 머리를 찔린 좀비들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그어어어.”
남자가 쓰러뜨린 건 겨우 한 줌뿐. 그것에 수십 배는 되는 좀비들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끄아아악-!”
결국, 용맹했던 전사의 피가 차갑게 식는다.
“얼마나 유지 가능합니까?”
“…5분?”
“블랙홀 잠깐 쓰면요?”
“그럼 1분도 안 돼요.”
“쓰죠. 저기 옥상으로 갑시다.”
우웅-
내가 가리킨 건물 위에 검은 구체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우리는 그 인력을 바탕으로 허공을 날아 옥상에 착지했다.
탁-
“잠시 기다리죠. 흩어질 때까지.”
“네.”
우리는 난간에 붙어 서서, 좀비들의 만찬을 지켜보았다. 아직 식지 않은 내장이 허공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김을 뿜어낸다.
오래 굶은 것인지 좀비들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씹어 삼켰다. 그리고 먹을 게 떨어지자 자연스레 길거리를 방황하며 흩어지기 시작한다.
핏자국만 남은 자리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마나는 좀 회복됐습니까?”
“네.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는 정도는 가능해요.”
물론 우리는 7레벨에 이르지 못했다. 즉, 마나를 유형화시켜 적을 타격하거나 체내에서 운용하여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등의 행위는 불가능하다. 그저 레벨 업으로 인해 강화된 신체만이 전부일 뿐.
하지만 소피아의 이능과 같은 발동계는 마나를 기반으로 하는 것. 적어도 어디까지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지는 파악이 가능하다.
“그럼 내려가죠.”
우리는 옥상 난간을 넘어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을 향해 천천히 하강했다. 그리고 아직 서성이는 몇 마리 좀비에게 휴식을 부여한 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쇠꼬챙이와 리볼버를 챙겨 들었다.
촤르륵-
약실에는 단 하나의 탄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야 여섯 번의 총성이 울렸으니 당연하겠지만.
나는 곧장 피 웅덩이 속을 헤집어 남자가 입고 있던 옷과 메고 있던 가방을 찾아냈다.
설마 정말로 여섯 발만 가지고 있진 않았겠지.
그리고 내 기대는 충족되었다.
“이 정도면 소기의 성과는 거둔 것 같네요.”
내가 피에 절은 탄 박스를 들어 보이자, 소피아 또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우리의 성과를 축하하듯이 작은 하울링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그어어어…….”
그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탄 박스를 열자, 스무 개쯤 되어 보이는 탄환이 고개를 든다.
복무하면서 여러 가지 무기를 써봤지만 리볼버는 사용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촤르륵- 촤르륵-
나에게는 만능 감각이 존재하지.
손에 감기는 리볼버의 감촉이 나와 동고동락했던 K-1 소총보다 편안하다. 외팔로도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쏠 자신이 있다.
“이것 좀 삽탄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소피아에게 리볼버를 건네 삽탄을 지시했다. 한 팔로는 삽탄할 수가 없으니까.
“네, 그럼요.”
물론 총은 사용하면 안 되는 무기가 맞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라면? 더 이상 뒤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이 스테이지를 끝내는 순간이라면?
그때는 총 본연이 가진 기능 그대로 아주 위력적인 무기가 된다.
내 보조를 받아 순식간에 삽탄을 마친 소피아가 다시 내게 리볼버를 건넨다. 나는 그것을 받으며 나머지 탄환을 바닥에 버렸다.
지훈이는 리볼버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테고, 나는 난전 중에 장전할 수 없다. 고로 여섯 발이면 충분하다.
“그럼 이제 잘 곳을 찾아보죠.”
“소민 씨가 총에 정신 팔려 있을 때 제가 봐뒀어요. 이리로 가요.”
소피아가 짐짓 핀잔을 건네며 앞장서서 길을 걷는다. 물론 우리의 움직임을 포착한 좀비들이 파티가 다시 열리는 줄 알고 달려들지만.
콰직-
겨우 내 프라이팬도 넘어서지 못할 뿐이다.
좀비들의 간절한 악수 요청을 거절하며 5층 건물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옥상에 도착했을 때.
“꺄악-!”
예상치 못한 생존자와 마주쳤다.
***
“그랬… 군요…….”
“유감입니다.”
내가 전한 부고에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아까 좀비 배 속으로 들어간 남성의 부인이란다.
예상대로 남성은 경찰 출신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외면하며, 나는 옥상을 둘러보았다.
각종 잡동사니로 막혀 있는 문, 꼬질꼬질한 텐트, 조악한 살림살이.
아마 옥상에서 문을 막고 버티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 거고.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선, 흔한 일이겠지.
“남편분의 희생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갑자기 나온 내 질문에 여성이 눈물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봐 온다.
“혹시 지금까지 특이한 일을 보거나 듣거나 겪은 적 있으십니까?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여성이 고개를 젓는다.
“없어요. 저는 거의 여기서만 지내서…….”
“그렇군요. 정말 없으십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네, 정말로…….”
그 대답에, 내 눈짓과 함께 여성의 뒤에 서 있던 소피아가 움직인다.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