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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속 절대 감각 3권
RAS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1
Chapter 1
[흑(黑)의 진영, 플레이어 트리스타나 린이 황좌(皇座)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흑(黑)의 진영에 강화 효과가 적용됩니다.]
내 부름에 달려온 트리스타나가 의자에 앉자마자 이전에 봤던 메시지가 떠오르고, 다시 버프가 온몸을 타고 휘돈다.
다행히 대표자가 앉아야 한다거나 하는 조건은 없었군. 정말 그나~ 마 다행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대의 효율을 뽑을 수 있는 건 역시 원거리 공격 딜러다.
물론 료마도 있지만, 레벨도 그렇고 난전에서의 범용성도 그렇고 트리스타나보다는 료마가 전방에 있는 게 낫다.
“좋아. 트리스타나, 너는 그대로 거기 앉아서 팀원들을 지원해.”
“네.”
“아무리 급박해도 내 명령 없이는 일어나지 마라.”
“…네.”
숫제 산화하라는 듯한 내 명령에 트리스타나가 멈칫한다. 물론 그렇게 둘 수도 있지만, 해결 방법이 있는데 문제를 내버려 두는 건 태만이지.
내 팀에는 움직일 수 없는 원딜러를 지킬 아주 적절한 탱커형 서포터가 있다.
“스미노프!”
“예.”
“너는 여기서 트리스타나를 지킨다. 니가 탈락하기 전에 트리스타나가 탈락하는 일이 있어선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툭툭-
스미노프의 어깨를 두드리며 곁을 스쳐 지나가자니 안도하는 트리스타나의 표정과 그녀를 다부진 표정으로 바라보는 스미노프의 시선이 동시에 포착된다.
이거 이러다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는 건 아닌가 몰라? 공주와 호위 기사는 진부하지만 가능성 높은 커플이지.
뇌리에 떠오른 함께 서 있는 둘의 모습을 가벼운 실소로 지워낸 나는 기다리고 있는 료마를 바라보았다.
“너는 저기랑 저기. 두 군데를 경계한다.”
“네. 적이 등장하면 어떻게 합니까?”
“일단 기습해. 기습하고 나서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
“네.”
“혹여 내 명령이 없으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좋다. 1차 목표는 너의 생존이고, 2차 목표는 적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하는 것이다.”
“네.”
최초에 생각했던 선제 타격이 물론 매력적인 방법이긴 하나, 현 상황에서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그리고 사실 매복전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안정성 면에서는 이게 낫지.
우리가 도망갈 도주로, 즉 아측 통로만 잘 확보하고 있으면 위험할 일도 딱히 없는 아주 효율 좋은 전략이다.
내 몫의 두 통로 사이에 은신하고 있으려니 새삼 통신의 부재가 아쉽다. 어차피 이렇게 매복 방어전을 펼칠 거였으면 최창식까지 데려와도 됐었는데.
하지만 현 상황에서 유일한 연락책은 전령이고, 섣불리 전령으로 누군가를 움직였다가 빈집 털이라도 당하면 낭패다. 이왕 매복전을 선택했으니 지루하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게 옳다.
알아서 잘하겠지.
“쯧.”
내가 혀를 차며 아쉬움을 달랠 찰나, 날카롭게 벼려진 내 감각에 인기척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저벅- 저벅-
선명히 귓가에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되었다.
드디어 첫 번째 사냥감이 덫으로 걸어 들어오는구만. 마침 내가 담당하고 있는 통로 쪽이다.
감각에 걸리는 숫자는 셋. 나는 트리스타나를 바라보며 약속했던 수신호를 보냈다.
적, 출현, 셋.
나와 료마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트리스타나가 그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허공에 번개의 창을 띄워 올린다.
파지지직-
료마는 그 모습을 확인했음에도 제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역시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놈이야.
내가 흡족하게 웃고, 하나둘씩 환영 인사용 번개 창이 늘어나는 사이 입구에 거의 도달한 놈들이 걸음을 멈춘다. 아마 은엄폐한 채 상황을 보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깜짝 선물은 갑자기 줘야 제맛인 법.
“지금!”
나는 신호와 함께 땅을 박찼고, 동시에 트리스타나의 환영 선물들이 통로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끄어억!”
“아악!”
놈들은 선물이 기쁜지 몸을 부르르 떨며 격한 감탄사를 토해내다가.
촤아악-
내가 선사한 메인 선물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흠…….”
생각보다 수준 차이가 심한데?
확 다 뒤집어엎어?
***
촤악-
“끄으으윽…….”
쿵-
나와 트리스타나의 선물 연계에 마지막 네 번째 정찰조가 쓰러진다.
셋, 둘, 다섯, 하나. 총 11명이 무기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탈락한 거다.
한 팀 정도는 대표자가 섞여 있다거나 해서 기브 앤 테이크를 실천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내 생각보다 대표자들이 훨씬 조심스럽게 움직인 것 같다.
아니면 정말 버프로 인한 수준 차이가 그 정도인 걸지도 모르고.
하긴, 원래는 비슷한 시기에 중앙에서 격돌하고 난장판이 펼쳐지는 게 출제자의 의도였을 텐데 미니맵이라는 사기 이능으로 아예 중앙을 선점하고 매복전을 펼쳤으니 이럴 만도 하지.
거기다가 언제 오는지, 몇 명인지까지 미리 파악할 수 있으니 말 다 했다.
료마를 경계로 세울 필요조차 없었을 정도.
지금쯤 대표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정찰조 덕분에 맛있게 손톱을 먹고 있을 거다.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제 움직일 때가 됐다.
나는 잠시 감각을 끌어 올려 더 이상의 접근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천천히 황좌로 발을 내디디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지형이 변화합니다.]
우르릉-
갑작스럽게 나타난 메시지와 함께 지진이 일어난 듯이 사방이 흔들린다.
“……!”
“……!”
팀원들이 뭐라 외치지만 지형이 뒤틀리는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이게 또 하나의 강제력인가. 뭐, 딱히 놀랍지도 않다.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으니까.
돌덩이가 떨어져 내려서 그걸 피해 뛰어다녀야 한다거나 천장이 통째로 붕괴한다거나 하는 정도는 벌어졌어야 놀라지 고작 이 정도로는 뭐.
오히려 미리 공지하지 않고 곧바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더 놀랍다.
[22:30:01]
딱히 시간이 관계된 것 같지도 않고… 그럼 트리거는 생존자 수인가.
우르릉-
“흠…….”
마나와 이능을 통한 초인적인 균형 감각으로 진동을 견디며 주변을 둘러보자니, 그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통로나 본진 쪽에 뭔가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그런 결론에 이를 무렵, 마침내 진동이 멎고 바닥을 나뒹굴던 팀원들이 등을 땅바닥에 붙인 채 숨을 고른다.
“허억, 허억…….”
“하악, 하악…….”
“쯧쯧.”
그 모습을 보며 잠시 혀를 찬 나는 익숙한 복식 호흡으로 크게 외쳤다.
“기상!”
“기상!”
역시 군생활은 구라를 못 친다.
엉거주춤 일어나는 다른 팀원들과 다르게 스미노프만은 몸에 새겨진 대로 복명복창을 하며 일어난다.
아마 2차전 시작 전에 했던 제식 훈련이 그의 군기를 일깨운 것이겠지.
나는 부끄러워하는 스미노프에게 잘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팀원들을 황좌로 모았다.
“스미노프.”
“옙.”
“본진에 좀 다녀와.”
“예.”
“가서 뭐 변한 거 있나 확인하고 별다른 일 없으면 최창식을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군말 없이 본진으로 향하는 스미노프의 등이 듬직하다.
뭐 하러 내가 개처럼 뛰어다녀? 이럴 때 부하 쓰는 거지. 뭐, 대충 예상되는 바도 있고 진현이도 있으니까 문제없을 거다.
료마를 새로운 호위 무사로 배치해 놓고 통로를 경계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길 잠시, 스미노프가 최창식을 이끌고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내 질문에 대상자인 스미노프가 아닌 최창식이 다가와 스케치북을 내민다.
‘최초 공동의 크기가 줄어들었고, 통로가 짧아졌어요.’
스케치북에는 진현이의 전언과 함께 뒤바뀐 지형 정보가 그려져 있었다.
역시 대충 예상한 방향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을 이끈 채 황좌로 향했다.
“어떻게 됐어요?”
“뭐 별다른 건 없어. 그냥 통로랑 본진 크기가 줄어들었어.”
“네?”
나는 트리스타나의 의문을 스케치북을 던져주는 것으로 해결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공격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 선언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료마는 한 발 더 나아가 질문까지 던진다.
“어디를 공격하시겠습니까? 남은 숫자는 셋, 넷, 하나, 다섯입니다.”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데 나도 다 안다, 자식아. 내가 운동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특전사 간 게 아니거든? 안 해서 그렇지 공부 쪽으로 갔으면 서울대 갔을 재능이다, 이 말이야.
“…통로도 짧아졌고 하니 하나 남은 쪽으로 가서 후딱 끝내고 오마. 일단 하나 잡아봐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확실히… 변수는 모두 파악해야죠.”
“네.”
“그래, 여기서 경계하고 있어. 여차하면 본진으로 튀는 거 잊지 말고. 지휘권은 미리 정한 대로 스미노프에게 인계한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