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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클로저 3권
치킨살해범 스포츠 장편소설
목차
뉴욕의 밤
사막의 방울뱀
1년 중 가장 슬픈 날
Again 2001
따뜻한 겨울, 다가오는 봄
봄은 레벨 업의 계절
뽑기의 제왕
고난의 첫 등판
연장전의 사나이
원 클럽 플레이어 (1)
1
뉴욕의 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NL 승률 1위인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챔피언십 시리즈 승리! 2001년 이후 두 번째 월드시리즈 진출!]
[디비전 시리즈-챔피언십 시리즈까지 포스트 시즌 무자책을 기록한 한유석,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쳐내며 존재감을 과시한 잭 리와 챔피언십의 시리즈 공동 MVP 선정!]
[데뷔 첫해에 챔피언십 시리즈 MVP를 수상한 한유석, ‘운이 좋았다. 사실 내가 아니라 소니가 MVP를 받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라며 안면 가득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해…….]
[한유석과 공동 MVP를 수상한 잭 리, ‘기분이 어떠냐고? 당연히 죽여주지. 월드시리즈에서 뛸 수 있게 되었는데 기쁘지 않은 선수가 대체 어디에 있다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 워싱턴 내셔널스, 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브렛 필립스 감독의 경질 발표!]
[내셔널스 단장, ‘브렛 필립스 감독은 상대 감독에게 먼저 모욕적인 언행을 저지른 후, 언론에 대놓고 거짓말까지 했다. 우리 팀에 거짓말쟁이 감독은 필요 없다.’]
* * *
“안녕하세요.”
“예, 한유석 선수. 어제는 잘 쉬셨습니까?”
“네, 아주 푹 쉬었습니다.”
K 스포츠의 박성기 특파원은, 단독 인터뷰에 앞서 오늘따라 유독 푸근한 인상을 짓고 있는 한유석을 보았다.
워낙 자주 인터뷰를 해온 탓인지, 박성기 특파원은 지금 이 선수가 평소와 달리 굉장히 느긋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평소 지켜본 한유석은, 운동할 시간도 모자란다며 자기 할 말만 딱 하고 끊어버리는 등 인터뷰 자체를 굉장히 귀찮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평소 친절한 듯하면서도 막상 겪어보면 과연 이 사람이 친절한 사람인지 의문이 드는 사람이다.
‘한유석은 메이저리그 정복을 위해 조립된 정교한 기계 같은 느낌의 캐릭터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은 한유석의 한국 언론 전담 채널로 K 스포츠를 지정해 둔 상태다.
이 말은 즉, 박성기 특파원은 한유석의 인터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그의 일정을 구단에 물어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한유석의 일정은, 이 사람이 정말 많은 돈을 버는 메이저리거가 맞나 싶은 수준이었다.
‘데뷔 후 클럽이나 술집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심지어 유명 인사들의 파티 초대에도 응한 적이 없지. 술도 무알코올 맥주만 사서 마시고, 파티는 오히려 자기 집에서 닭갈비로 파티를 여는 사람이니…….’
메이저리거들은 기본적으로 높은 소득을 자랑하기에, 연방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화이트칼라 직업으로 손꼽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경기에서 오는 막중한 스트레스를 돈을 펑펑 써대는 방식으로 풀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대도시마다 괜찮은 술집이나 물이 좋은 클럽은 메이저리거들이 제일 잘 안다는 소리가 있을 지경이니까.
하지만 한유석은 그런 유흥 같은 걸 아예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오직 집과 숙소, 구장만 오가는 그의 삶은 거의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다.
“기분이 굉장히 좋으신 모양입니다?”
“아, 당연하죠. 우리 팀이 챔피언십 시리즈를 우승했고, 또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됐으니까요.”
“음, 그게 전부인가요?”
“메이저리그 선수가 이거 말고 또 기쁠 일이 뭐가 있나요.”
“하하, 아무튼,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 MVP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한유석은 기분이 매우 좋았기에, 평소보다 훨씬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이브 성공, 300pt를 획득했습니다.]
[챔피언십 시리즈 MVP, 10,000pt를 획득했습니다.
- 보유 포인트 : 21,800
‘아름답다…….’
사실 한유석도 포인트가 걸린 훈련 때문에 재미없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본인이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포인트 자본주의의 표본으로 참 재미없게 살아가는 와중에,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대박이 터졌다.
이 정도로 대박이 크게 터져 버리게 되면, 사람이 여유를 찾아서 느긋하고 친절해지기 마련이었다.
“자, 인터뷰 시작해 볼까요?”
“예, 궁금한 건 죄다 물어보셔도 됩니다. 오늘은 브래드 베이커 감독님이 훈련을 취소시켜서 시간이 남아돌거든요.”
“…아.”
오늘은 평소보다 친절해도 너무 심하게 친절한데.
고개를 갸우뚱하던 박성기 특파원이 인터뷰를 시작했다.
Q : 어제 클럽하우스 파티에서 한유석 선수와 대화를 나누던 폴 스미스와 훌리오 몬데시가 펑펑 울었다. 이 두 선수와 무슨 사연이 있나?
A : 폴은 과거 신인 시절, 디비전 시리즈에서 송구 실책을 저질러 다 이긴 경기를 엎어버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Q : 탬파베이 시절 말인가?
A : 그렇다. 폴의 송구 실책 이후 탬파베이는 연패를 거듭하다가 탈락했고, 그게 폴의 마지막 포스트 시즌 경력이다. 아무래도 월드시리즈에 나가게 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 훌리오의 이야기는 비밀이다.
Q : 지난 9월에 데뷔한 후 아직도 무실점 행진을 진행 중이다.
A : 운이 좋았다. 이게 다 야수들과 폴의 리드 덕분이다.
Q : AL의 챔피언십 시리즈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둘 중 어느 팀이 올라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나?
A : 아무래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레드삭스가 올라오는 쪽이 편하다. 레드삭스는 우리 팀보다 승률이 낮기에 월드시리즈를 홈에서 시작할 수 있다.
Q : 사실 팬들은 Again 2001시리즈를 기대하고 있다. 이쪽이 조금 더 사연이 있고, 또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A : 안 된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무조건 레드삭스가 올라와야만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박성기 특파원이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저번에는 양키스 타자들의 전력 분석을 하고 있다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왜 태세를 전환한 거지?
“저기, 한유석 선수? 혹시 뉴욕 양키스에 대해서 큰 부담을 느끼거나 하시는……?”
“음…….”
한유석은 잠깐 인터뷰를 멈추고, 자신의 앞에 뜬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그가 보스턴 레드삭스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 이유가 있다.
[안내, 마지막 42번의 후계자인 마리아노 리베라는 뉴욕 양키스에서 데뷔하고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따라서 해당 버프는 오직 뉴욕 양키스를 제외한 팀을 상대로만 발동함을 알려 드립니다.]
[뉴욕 양키스와의 대결에서는 마지막 42번의 후계자가 발동되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평생을 양키스에서 뛴 전설적인 선수의 버프가 그의 팀을 상대로 제대로 발동이 될 리가 없으니까.
“…저는 옛날부터 레드삭스의 오랜 팬이었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 팀과 꼭 붙어보고 싶네요.”
“…방금 발언, 기사 나가도 됩니까.”
“음, 네. 좋습니다. 이래야 제 몸값이 올라갈 거 같거든요.”
“아…….”
* * *
[10월 19일, AL C/S 결과]
※ NYY (3승 3패) 3 : 2 BOS (3승 3패)
[AL 승률 1위 뉴욕 양키스와 와일드카드의 다크호스 보스턴 레드삭스, 챔피언십 반지와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얻기 위한 벼랑 끝 7차전 돌입!]
[한국 언론의 단독 인터뷰, 한유석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오랜 팬이었다? ‘그 팀과 꼭 월드시리즈에서 붙어보고 싶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레드삭스의 팬 사이트 운영자, ‘레드삭스의 단장은 뭘 하고 있나? 당장 내년 스프링캠프 때 트레이드를 진행해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데려와야 할 선수다. 금액은 얼마라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한에게 장기 계약을 안겨라. 그가 어떻게든 레드삭스와 사인하게 만들어야 한다.’]
[디백스 팬 사이트 운영자, ‘닉 스튜어트 단장은 뭘 하고 있지? 왜 한유석의 장기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는 건가? 이대로 레드삭스로 떠나는 한유석을 보고 싶나?’]
[10월 20일, AL C/S 결과]
※ NYY (4승 3패) 5 : 3 BOS (3승 4패)
[뉴욕 양키스, AL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레드삭스를 제압하고 월드시리즈 진출 확정!]
[현실이 된 Again 200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뉴욕 양키스의 두 번째 월드시리즈 맞대결!]
“…….”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를 확인하던 나는,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눌러 버렸다.
…젠장, 결국 월드시리즈에 뉴욕 양키스가 올라와 버렸다.
“유석아, 오늘은 왜 저기압이야? 오늘 아침밥 혹시 맛없었니?”
“…아니, 아니에요.”
사실 나는 승리 토템 버프가 없어도 다른 버프들이 있으니, 경기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이게 팀 전체의 집중력 상승 문제와 직결된다는 게 문제다.
아, 훌리오 아저씨한테 마지막 시즌 우승 반지를 선물해 줘야 하는데.
양키스 이 자식들 더럽게 센데, 과연 팀 버프가 빠지고도 이길 수 있을까.
“…슬슬 출발해요.”
뭐 아무튼, 마침내 아메리칸리그의 챔피언십 시리즈도 끝이 나면서 우리 팀 역시 본격적인 월드시리즈 일정에 돌입했다.
월드시리즈의 첫 경기는 매년 10월 22일에 열리게 되는데, 상대 팀인 양키스가 AL 승률 1위인지라 1, 2차전은 적진인 양키스타디움에서 먼저 열릴 예정이다.
이 때문에 우리 팀의 선수단과 구단에서 초청한 가족들은, 내일 치를 1차전을 위해서 전날 일찌감치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유석아.”
“예, 아버지.”
“여기서 뉴욕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냐?”
“어디 보자, 오전 11시 50분에 출발해서 도착은 저녁 7시 40분이요.”
“…….”
내 말을 들은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창백해졌다.
물론 비행기에 타고 있는 시간이 진짜로 7시간 가까이 걸리는 건 아니고, 실제 비행 시간은 4시간 40분 정도다.
이게 서쪽에서 동쪽으로 대륙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면서 생기는 시차가 하필 우리 휴식 시간을 까먹는 게 문제지.
뭐 어쨌든, 이 무지막지한 비행 시간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정말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하셨다.
“여보.”
“왜요.”
“우리 그냥 집에서 중계로 볼까?”
“…….”
물론 어머니는 대답 대신, 아버지의 등에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리셨다.
* * *
마침내 달력의 날짜는 10월 22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드디어 올해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우승팀을 가리는 월드시리즈 1차전이 열리는 날이 온 것이다.
“이곳은 데릭 지터가 지은 집, 양키스타디움입니다. 이번 가을의 마지막 우승자를 가리는 대망의 월드시리즈가 곧 시작됩니다.”
챔피언십 우승팀 중 승률이 더 높은 팀부터 먼저 홈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는 월드시리즈는, AL 승률 1위 팀인 뉴욕 양키스의 본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망의 월드시리즈 1차전이 곧 시작됩니다. 1회 초 공격에 나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타순을 살펴보도록 하죠.”
[Line-up]
1. 토니 워커 (CF)
2. 랄프 쉬퍼스 (2B)
3. 잭 리 (1B)
4. 로이 칸 (DH)
5. 글렌 벤튼 (RF)
6. 릭 맥과이어 (3B)
7. 브라이언 앤스버그 (SS)
8. 팀 오웬스 (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