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크리처 5권
Copyright 2025. 물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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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물샘
발행처 : 도서출판 윤송 / 도서출판 윤송
등록일 : 2016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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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7258-361-3
정 가 2,600원
5권 - 2부
용병.
매복.
지옥.
물귀신.
용병.
2년 전.
“인류의 멸망, 그것은 항상 제기돼 오던 이슈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구, 언제 멸망하는 걸까요?”
인류학 전공인 김경섭 교수가 수업 중, 학생들을 향한 질문이었다.
“교수님, 인터넷에서 보니까 지구가 멸망하는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 90초 전까지 도달했다고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즉답했다.
“그 말인즉슨, 이제 지구가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겠죠?”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데 지구 멸망이 아니라, 인류 멸망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그거 아닌가요?”
“아니죠. 지구의 멸망이 곧 인류의 멸망이겠지만, 인류의 멸망이 지구의 멸망은 아닙니다. 인류가 없어도 지구는 아무 탈 없을 것이고, 인류가 사라진다면 오히려 지구는 숨통이 트여 더욱 행복해지겠죠?”
“……”
“그렇다면 과연 지구의 나이는 몇 살이나 될까요? 우라늄 붕괴 속도로 가정한 지구의 나이는 60억 년 정도라고 말합니다. 지구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리라 추측되는 달 암석의 절대 연대 측정 결과로는 40에서 46억 년이 나온다고 하죠. 또한 지구에 떨어진 운석의 나이로 볼 때는 45에서 48억 년 즈음으로 계산하기도 합니다.
제가 지구의 나이를 말하는 것은 지구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가요? 700만 년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는 6,000년을 말하기도 합니다. 간극이 무척 심하죠? 하지만 저는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이죠. 45억 년을 지구의 역사라고 가정한다면, 인류가 생활한 기간이 매우 보잘 것 없이 짧다는 겁니다. 집을 지은 후, 45억 년이 지난 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니…. 그렇다면 그 전의 지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떠한 존재가 살고 있었을까요?”
“그냥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의 다른 행성들처럼…?”
“그럴 수도 있죠. 아마도 아무것도 없는 지구는 무척 건강했을 겁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세 들어 살게 된 인간들이 지구가 자기 것인 양 다 망쳐버렸죠. 그래서 자정 90초 전이라는 말이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지구가 망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아까 말했듯 지구가 아니라 인류가 망할 테니까요. 그렇게 인류가 망한 후의 지구는 다시 찾은 행복을 만끽하게 될 겁니다.”
“……”
“이제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 모종의 음모이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순한 음모이론일 뿐이니까 그냥 한 번 재미로 들어봐 주세요. 일단 지구는 말입니다. 자정 능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오염이 되었더라도 스스로 고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지구의 그 자정 능력을 거스르는 걸림돌이 생겼어요.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죠. 더럽히고 또 더럽히고 또 더럽혀서 이제는 방사능 물질로도 도배하려고 합니다. 지구가 자정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놈의 방사능 물질은 독해도 너무 지독하기만 합니다.”
“일본의 오염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포함이지만, 세계 곳곳이 마찬가지입니다. 자정을 해야 하는데, 인간이 그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연적인 자정이 힘들어진다면 지구는 파괴를 선택할 겁니다.”
“혹시 파괴라면….”
“지구를 망치는 존재들을 파괴할 겁니다. 쉽게 말해서 지구 전체가 죽음으로 물들게 되는 겁니다.”
나름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혹시 타노스를 보내서 인류의 절반을 죽이는…. 뭐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잠시 진지했던 학생들의 표정에 웃음이 깃들었다.
“뭐, 지구가 능력자라면 타노스를 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타노스까지 보낼 필요도 없어요. 지금도 그 파괴 현상은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지진이나 홍수, 기근, 태풍, 토네이도, 뭐 그런 종류가 바로 그 현상의 일부입니다.”
“교수님, 그건 자연현상이잖아요. 그런 걸 지구가 사람들을 파괴하는 수단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어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파괴의 한 방편이라고 봅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그레이엄 핸콕’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인류의 문명적 단절기를 주장하는데, 12,800년에 있었던 빙하기를 인류의 문명적 단절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오래전부터 지구가 자정이라는 기조 하에 파괴적 단계를 일삼아 왔다는 뜻인가요?”
“그래서 저는 지구의 자정으로 인한 인류의 멸종이 이미 몇 차례 이루어졌으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현 인류 이전에 어떠한 인류가 과거 지구에 살았을 것이고, 현재 우리가 과거 인류를 볼 수 없는 이유는 지구의 자정 활동에 의한 멸망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역시나 일류 대학의 학생다운 질문이었다.
“예를 들면요. 성경에 등장하는 대홍수의 경우도 문명적 단절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가 있을 거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기독교에서만 대홍수를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는 그들만의 홍수설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홍수를 말한다고 해서 꼭 기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건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핸콕이 말한 빙하기나 제가 말씀드린 대홍수가 지구의 자정 능력의 증거이며, 단절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현생 인류도 곧 멸망할 것이고, 그렇게 멸망한 후 또 다른 인류가 다시 생겨날 수도 있겠네요?”
“리셋 되는 거죠. 다시 처음부터….”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리셋이 되더라도 화석 등으로 인해 우리의 흔적은 어디엔가 남겠죠. 그래서 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크로마뇽인 등의 진화론에 등장하는 인류를 리셋 이전의 인류라고 추측합니다.”
“그 화석들은 진화의 증거잖습니까?”
“진화의 증거라고 말들은 하지만, 중간 중간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생 인류와의 어떠한 연결점도 찾을 수 없는데도 학자들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서 인류의 조상이라고 끼워 맞추는 겁니다.”
“교수님, 그건 인류학자로서 선배들을 모독하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인류학자들의 가장 큰 목표는 인간의 조상 화석을 발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떤 학자는 그것에 목숨을 걸기도 했죠. 하지만, 그게 쉽습니까? 평생을 찾아도 찾을 수 없으니, 결국 조작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조상이라 불렸던 많은 뼈들 중 조작된 경우가 꽤 많았으니까요. 그거 생각해 보셨습니까? 어느 시기에 인류의 조상 화석이 유행처럼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발견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지금의 과학이 더 발달했고, 화석을 찾을 확률이 더 높을 텐데 이상하게 요즘은 그런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진화론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리셋을 더 인정합니다. 자! 그렇다면 제가 인류학자니까 인류학적으로 접근해보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거인족 화석, 여러분들은 거인족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리셋과 연결하면 못 믿을 것도 없겠죠.”
“저는 그 거인들이 리셋 이전의 인류라고 봅니다. 물론 인류의 조상에서처럼 거인에 관련해서도 조작이 많겠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요. 거인족 관련 설화나 신화에 의하면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리셋이 아니라 오히려 현생 인류와 함께 공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성경에서 말하는 네피림, 이런 종류의 거인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서로 다른 종이 함께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대홍수와 같은 리셋이 거인족이 살아남기엔 조건이 매우 안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신장이 작은 현생 인류만이 살아남게 되었을 겁니다. 물론 이건 제 추측일 뿐이라 증명 같은 건 할 수 없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개미의 경우는요. 아주 작은 개미가 있는 반면 그보다 몇백 배는 큰 개미도 있어요. 어때요?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면 볼 수 있는 흔한 개미들이죠? 그러한 개미들처럼 인류도 그렇게 섞여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다 어떠한 대재앙이 초래했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우성의 종만이 살아남았을 겁니다.”
“노아 식구들 8명만 살아남았잖아요.”
“그건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고요. 저는 더 많은 인류가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대홍수로 인해 비교적 덩치가 작은 종류의 인류들이 많이 살아남았다고 거인족이 모두 죽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 얘기가 이해되는 겁니다.”
“그럼 현재 2m가 넘는 사람들은 거인족의 피를 조금이라도 물려받았을까요?”
“글쎄요? 혹시 여러분은 ‘괌’에 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괌이라는 섬의 원주민은 차모로족이었습니다. 그 차모로족이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라는 것도 알고 계시죠? 차모로족은 평균 신장이 2m를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차모로족은 어떻습니까? 아마도 외부 인종과의 혼혈 화 때문이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거인과 소인이 결혼하게 되면서 자녀들이 점점 작아진다는, 뭐 그런 말인가요?”
“우리 숏다리들이 우성일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강아지 중에 웰시코기라는 종이 있습니다. 아주 다리가 짧은 강아지죠. 그 웰시코기와 롱다리 강아지가 교미를 했습니다.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요?”
“교수님 말씀처럼 중간쯤이 나오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 웰시코기가 나옵니다. 그만큼 웰시코기의 유전자가 강력하다는 거죠.”
“그래서 거인들이 점점 작아져 현생 인류화 되었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우성일지라도 아주 적은 확률로 거인이 나올 수도 있어요. 현재도 신장이 2m가 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의 유전적인 요인은 남아 있는 듯합니다.”
“대홍수를 말씀하셨는데, 대홍수에서 거인족 대부분이 죽었고, 그래서 문명이 리셋 되었다면, 피라미드를 만든 이들이 거인족이 아니었을까요?”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대략 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저는 그보다 더 과거에 만들어졌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를 거인족이 만들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4월. 현재.
김경섭 교수는 현재 재앙을 만들어 낸 돌연변이가 대홍수 때 사라졌던 거인족일 것이라 확신했다.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돌연변이가 거인족일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변수교는 소총을 보물 다루듯 하나하나 분해해 정성껏 기름칠하며 말했다.
수교와 경섭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돌연변이에게 죽을 뻔한 수교를 경섭이 구해 줬고, 그 후로 함께 하게 되었다. 잘못 말했다고 생각할지 몰라 거듭 말하지만 경찰 특공대인 변수교가 경섭을 구한 것이 아닌 일개 교수에 불과한 김경섭이 수교를 구했다.
“그런데 교수님, 교수님 말씀처럼 거인족이 지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무엇을 식량으로 삼았을까요?”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죠.”
“아! 거인족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도 빨려 들어갔겠군요. 동물들도 지하 세계에서 번식했을 테니까요. 맞다. 그거 잡아먹으면서 살았겠구나? 그런데 혹시 말입니다. 홍수로 인해 거인족뿐만 아니라 소인들도 많이 빨려 들어갔을 텐데, 혹시 그 소인들을 잡아먹었을까요? 그게 버릇이 되어서 지금도 우리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닐까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대홍수가 언제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몇 천 년 전에 발생했을 텐데, 지금까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정말 궁금해요. 수교 씨 말대로 다른 동물들이 지하에 함께 존재했다면, 그것이 식량이 되었을 수도 있고, 소인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았을 수도 있겠네요.”
“혹시 지하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거나 하지는 않았을까요?”
“돌연변이의 습성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여요.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운 놈들이 설마 가축을 키웠을까요? 게다가 동족도 잡아먹는 무식한 놈들이잖아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농사나 가축을 키우지 않았다면, 동족끼리 서로 잡아먹었을 텐데, 몇 천 년 동안 그게 가능한가요? 아마도 지하 세계에 또 다른 먹거리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먹거리가 있었더라도, 많지는 않았겠죠. 먹거리가 많은데 이렇게 지상으로 미친 듯이 올라왔겠어요?”
경섭은 어마어마한 수의 돌연변이가, 그것도 한꺼번에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이유를 식량난 때문으로 판단했다.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죠.”
“땅 깊이가 20km나 됩니다. 아무리 힘이 좋은 돌연변이일지라도 20km를 맨몸으로 올라온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그럼에도 기를 쓰고 올라왔다는 건, 먹이 부족이 원인이 맞을 거예요.”
“그런데 돌연변이들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맹수의 외모였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진화된 걸까요?”
수교는 돌연변이의 요모조모가 궁금했다. 지피(知彼)를 해야 싸움에서 승리할 테니….
“글쎄요. 안 그랬을 거라고 봅니다. 계속 육식, 그것도 생식만을 했을 거고, 그러다 보니 육식에 걸맞게 치아가 진화되었겠죠. 육식 동물의 이빨은 질긴 음식을 자르기 쉽게 톱니 형태로 뾰족한 경우가 많지만, 초식 동물의 경우는 지금 우리의 어금니처럼 서로 맞물려 있는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지금 돌연변이가 딱 사자와 같은 맹수의 치아를 하고 있어요. 인간의 DNA를 가졌음에도….”
“그럼 털은요? 왜 털이 하나도 없을까요?”
“글쎄요. 털이 필요 없는 환경이라서 그렇거나 유전적인 요인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인류학자시니까 여쭤보는 건데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돌연변이의 약점 같은 건 발견하신 거 없으세요?”
“지하와 지상은 환경이 천차만별입니다. 저는 지하의 괴물들이 지상의 여러 질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멸종할 것을 예상했어요. 하지만, 돌연변이가 아직까지는 풍토병이나 질병 등을 견디는 것 같습니다.”
“아직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은 우리 인간에게도 치명적이겠죠. 천연두 같은 건 진짜 치명적이에요.”
“천연두요?”
“천연두로 지금까지 3억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물론 통계가 그렇지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천연두로 1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천연두를 일으키는 두창 바이러스가 지금은 멸종했습니다.”
“아! 그렇다면 전혀 구할 수 없는 바이러스네요.”
“그런데 완전 멸종은 아닙니다. 지구상에 남아 있기는 해요.”
“지구상에 남아 있다면 멸종이라고 하시면 안 되죠.”
“지구상에 돌아다니는 두창 바이러스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바이러스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CDC 즉, 미국 애틀랜타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바이러스 및 생명공학 연구소, 이 두 곳에 보관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인류학자시라면서 그런 것까지 알고 계세요?”
“인류학자니까요. 그리고 한 번 공부한 건 잘 안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교수를 하시는구나? 역시 저와는 머리 구조가 완전 다르십니다.”
수교의 칭찬에 경섭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대신 경장님은 전투 실력이 훌륭하시잖아요. 경찰 특공대시니까.”
받았으니, 돌려줘야 했다.
“천연두를 구할 수 있으면 돌연변이에게도 치명적일 텐데요.”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도 치명적입니다.”
“돌연변이에게만 그 바이러스를 사용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천연두에 걸린 돌연변이에게 접촉하지만 않으면 될 테고, 접촉하더라도 감염돼서 전에 찢어져 죽을 거 아닙니까? 사용해 봐도 좋을 듯싶은데…. 하긴, 미국이나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으니… 없던 얘기로 하시죠.”
“연락이 되더라도 미국이나 러시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왜요?”
“자기들이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특히 출혈성 천연두에 걸리면 6일 안에는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 해요. 그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대재앙일 게 뻔합니다. 물론 백신을 맞긴 하겠지만,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 넘어요. 그 사람들을 다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은 자국이 피해 보지 않는 선에서 대한민국만 망하는 걸로 끝나기를 바랄 거예요.”
“휴전선이 오히려 그들을 살리는 도구가 되었네요.”
북으로 넘어간 돌연변이는 아직 없었다. 휴전선의 철조망을 인식하지 못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휴전선 부근에 하수관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게다가 철책선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어찌 어찌해서 한 개가 뚫린다 해도 또 다른 철책이 가로막고 있어, 돌연변이의 진입이 쉽지 않은 구조였다. 참고로 대한민국만 해도 두 개의 철책선이 존재한다.
또한, 만일을 대비한 모든 화력이 철책에 집중되어 있었다.
강원도 지하 벙커.
“이 자식들은 같은 인간인데도 측은지심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김세준 대통령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번에도 거절입니까? 대통령님!”
외교부 장관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이 자식들이, 병력을 파견하겠답니다.”
“오! 그러면 다행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냐고요? 공짜는 없으니까요.”
“무슨 황당한 조건이라도 내걸었습니까?”
“하아….”
대통령이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만만한 조건이 아닌 모양이었다.
“자치구를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