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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사거리 무한으로 탑 공략 7권
지은이 : 4R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4R, 2025
※ ISBN : 979-11-7408-474-3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8월 29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성무공
야밤에 들려온 전쟁 소식은 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공포를 심었다.
횃불을 든 장정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작은 민병대를 꾸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전쟁의 신호탄.
마을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전쟁이라니… 갑자기 왜?’
평화롭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니.
성찬은 조용히 창문을 닫고 천마와 프레이를 돌아봤다.
“이게 탑의 임무와 관련이 있는 걸까요?”
“가능성이 높다. 탑은 늘 뭔가를 시험하니까. 이 전쟁도 결코 우연이 아닐 거다.”
천마는 작아진 몸으로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도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
“알림창의 문구가 ‘임무-1’인 걸로 보아, 두 번째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알림창이 뜨자마자 소란이 일어난 것도 수상쩍고요.”
프레이는 심각한 얼굴로 침음을 삼켰다.
“성서에 따르면 악신은 혼란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우릴 시험하려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건 일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해 두는 편이 좋겠어요. 악신의 의도까지 고려하면 복잡해지니까. 무엇보다…”
성찬은 늘어지게 하품했다.
하루종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온갖 잡일까지. 거기에 웬 사당까지 발견했다.
짙은 피로와 긴장감에 성찬의 눈꺼풀이 점차 무거워졌다.
“우선 잠부터 자고 내일 생각해 보죠.”
“동의한다, 은인.”
“현안이십니다, 성자님.”
전쟁이니 뭐니해도, 성찬에겐 그저 탑의 이벤트일 뿐.
중요한 건 하루빨리 탑의 임무를 끝내고 이곳을 나가는 것이다. 세레나도 찾아야 하고.
자고 일어나면 사건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겠지.
바깥이 시끄럽긴 해도 어떻게든 잘 수 있을 것 같다. 성찬은 포근한 이부자리를 턱 끝까지 덮었다.
이 성대한 저택 안에서 부려지는 이는 오직 성찬뿐. 그래서인지 대우가 퍽 나쁘지 않았다.
‘묘하게 신경 써 주는 느낌도 있고?’
성찬은 세레나를 떠올리곤 작게 키득거렸다.
그때 불현듯 저택 바깥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소문 들었소? 구국의 영웅이 우리 마을로 온다던데!”
“구국의 영웅? 그게 누군데?”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사내가 목청을 높였다.
“누구긴? 성무공 장군이시지! 오랑캐를 물리친 전설의 장군. 오랑캐 놈들도 인정하는 구국의 명장이라고.”
“그분이 와주신다면, 적어도 우리 마을만은 안전하겠어? 하핫!”
한바탕 시끄럽게 굴었던 무리들이 사라지자 성찬의 귓가는 단숨에 조용해졌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오는 거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지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성찬은 덕분에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며칠 뒤.
성찬의 예감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성찬이 밤새 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고 있을 때, 웬 거구의 사내가 찾아왔다.
“폐하의 명을 받아 이 마을에 부임한 성무공이라 하오. 마을의 대지주인 부인을 뵈러 왔소.”
묵직하고 낮은 무뚝뚝한 말투와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눈빛. 얼굴엔 전쟁의 흔적으로 보이는 흉터가 깊게 나 있다.
당장이라도 갑옷을 입고 전장을 휩쓸 듯한 무시무시한 분위기.
성무공은 마을에 부임하자마자 마을의 유지인 세레나를 찾아온 듯했다.
‘저 사람이 그 구국의 명장인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이런 시골 마을에?
세레나는 저택 현관에 서서 성무공을 내려다봤다.
“사전에 기별도 없이 아녀자의 집을 무작정 찾아오다니, 무례하기 그지없군.”
구국의 명장이라 칭송받는 장군. 그런 성무공 앞에서조차, 세레나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무슨 용건인가.”
일단 들어는 주겠다는 뜻.
엄연한 계급사회인 이곳에서 일국의 장군에게 할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허나 그래봐야 아쉬운 건 저쪽. 성무공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랑캐들이 이 나라를 노리고 있소. 병력이며 군량미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폐하의 명령을 받아 오긴 했으나, 나라가 무너지면 이 마을도 끝장이오.”
“그래서?”
세레나는 오만한 시선으로 성무공을 내려다보며 굳이 되물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성무공은 자존심이 상한 듯 순간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도와주시오. 대지주인 부인의 힘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성무공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재차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세레나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거절하지. 무례한 불청객의 부탁 따위, 들어줄 이유는 없다.”
세레나는 단숨에 등을 돌렸다.
“무얼 하고 있느냐? 어서 저 무례한 자를 쫓아내지 않고.”
“에… 예?”
성찬은 곤란한 얼굴로 세레나와 성무공을 번갈아 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레나는 저택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결국 성찬은 성무공과 단둘이 남고 말았다.
‘아니,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세상에 이보다 끔찍한 분위기도 많이 없지 않을까.
성찬은 여전히 묵묵히 고개를 숙인 성무공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어, 그… 주인마님께서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니신데요. 요즘 좀 예민하셔서. 그, 뭔 말인지 아시죠?”
성찬은 어떻게든 내뱉어지는 대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성무공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하등 변화가 없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성무공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소지품을 챙겼다. 그리곤 전언을 남겼다.
“같은 시간에 다시 오지. 선약을 했으니, 다음번엔 다른 대답을 기대하겠네.”
“!”
성무공은 전혀 기죽지 않았는지 입꼬리를 씨익 밀어 올렸다.
상대는 전장의 귀재.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고 모욕하는 지저분한 전략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그 후로 성무공은 매일 같이 세레나의 저택을 찾아왔다.
“부인, 부디 이 나라를 구하는 일에 일조해 주시오.”
“관심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시지요.”
세레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거절의 말을 남긴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매번 같은 부탁, 매번 같은 거절.
삼고초려가 무색할 만큼 성무공이 찾아왔지만, 세레나는 단 한 번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오늘도 홀로 남은 성무공의 뒷모습을 보며 성찬은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세레나는 정말로 이곳 사람들을 지키는 데 아무 관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인간 사회에 관여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뭐 그런. 그런 거라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살면 될 텐데. 굳이 이 마을에 있는 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성찬은 세레나가 서 있던 곳과 성무공을 흘끔 훔쳐봤다.
“후우…”
성무공은 오늘도 성과 없이 저택을 나섰다. 그러다 성찬과 눈이 마주쳤다.
“자네는 이 저택에서 일하는 머슴인가?”
“예, 성찬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성무공이라 하네. 앞으로도 자주 볼 텐데, 잘 부탁하네.”
자주 볼 거라니.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가?
성무공은 이 집의 머슴인 성찬에게 스스럼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는 장군인 그가.
성찬은 서둘러 마주 고개를 숙인 뒤 조심스레 물었다.
“장군님, 외람된 질문이오나 어찌 매일 같이 찾아오시는 겁니까? 주인마님께서 도통 부탁을 들어주실 것 같지 않은데.”
성무공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말, 충의에 어긋나는 일이긴 하나… 사실 난 폐하의 미움을 받아 좌천된 몸이네. 마을 사람들도 다 아는 일이지. 부인께서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이나, 내게 단 한 번도 그런 모욕을 하지 않으셨다네. 참 다정하신 분이지.”
다정하다고?
분명 다정하다고 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지금의 저 세레나에게.
성찬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자, 성무공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번 전쟁은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네.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지. 폐하께선 내가 병력을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오해를 하시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지금으로서 내가 도움받을 수 있는 이는 자네의 주인마님뿐이네.”
숱한 거절에도 왜 포기하지 않나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성무공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부인께서 도통 거부하시니… 아무리 나라도 조금 지치는군.”
“만약 주인마님께서 끝까지 거부한다면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성찬이 묻자 성무공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도 전쟁에서 등을 돌린 판국이니… 결국 이 나라의 운명이 여기까지란 뜻이겠지.”
성무공은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 뒤 등을 돌렸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세레나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성찬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포기하지 마세요. 계속 두드리다 보면, 주인마님께서도 어느새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까요.”
성무공은 성찬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적으로, 그의 험악했던 인상이 부드러워졌다.
“고맙군. 부인의 신임을 받는 자네의 말이니, 내 한 번 애써보지.”
며칠 뒤, 성무공은 어김없이 세레나의 저택을 찾았다. 달라진 점은 그때마다 성찬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는 점이었다. 이곳은 명백한 신분 사회라, 고위 관직 사람들은 남의 집 머슴에게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텐데도.
“거절하겠습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오늘도 세레나의 대답은 거절.
성무공은 이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