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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녹로 7권
지은이 : 원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원, 2025
※ ISBN : 979-11-7408-452-1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8월 22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7권
고작 한 시진 전만 하더라도 이곳엔 팽정혁과 석원징 그리고 나까지 셋뿐이었다.
“키에에엑!”
“키아아아악!”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이지를 잃은 강시들이 산 자의 살점을 물어 뜯고 있다.
“끄아악! 미쳤는가? 대체 왜…컥?!”
“그, 그만! 멈추란 말이다!”
“으아악! 살려… 살려줘!”
석가인들과 팽가인들 모두 다급히 전서조를 날리더니만 어느 순간부터 양측의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에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케에엑!”
“캬아아악!”
“캬하악!”
어느덧 이곳에 불어난 백여 명의 사람들 중 이지가 남아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고작 열 명 안팎.
“키에엑!”
“캬아아아악!”
듣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게 하는 괴물들을 물리치는 것… 아니, 괴물들로부터 살아남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석가와 팽가의 무인들 중 살아남은 자들이 고수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저, 정혁아! 정신 차리거라! 정신을 차리고 네 애비를 알아보란 말이다!”
“석원징 네 이놈! 아무리 정신이 빠졌기로서니 어찌 숙부에게 검 끝을 겨눈단 말이더냐! 제발 정신 차리거라! 제발!”
그들 중 가장 무공의 경지가 높은 팽구호와 석원균은 어느덧 포박에서 풀려난 제 아들과 조카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했다.
상대가 아무리 죽어도 죽지 않는 강시라 하더라도 고수의 반열에 오른 팽구호와 석원균이 저렇게 숨을 헐떡이는 것은 제 아들과 조카에게는 본 실력의 반의 반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미련하구나. 이미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그 진실이 눈에 훤히 보일진대.’
저들이 오기 전에 내가 팽정혁과 석원징을 제대로 포박할 수만 있었다면 상황이 지금처럼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미 이토록 파국으로 치달은 것을.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겠군.’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지를 잃고 굶주린 짐승처럼 오직 살아있는 자만을 향해 달려드는 저들을 피해 달아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기척을 지우고 숨어있는 수밖에 없었다.
저들의 덧없는 희생에 탄식이 새어 나왔으나, 풀숲에 숨어 지금 광경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정보도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살점을 뜯기며 비명을 내지르는데 이걸 가만히 바라보며 관찰하는 나를 미친놈이라 손가락질하지 말아라.
나는 의원.
어떤 병이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그 원인과 진행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키에에에엑!”
“끄아악! 꺼, 꺼져라!”
우선 내가 파악한 몇 가지 사실을 구분해서 파악해볼 수 있었다.
우선 강시의 신체적 특성을 살펴보자면 첫째, 강시는 경직된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강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더라도 마치 강시가 되면 관절이 굳어 있는 것처럼 팔다리가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만 움직인다.
또한 팔은 마치 앞 사람을 잡고 싶다는 듯이 쭉 뻗은 형태로 종종 폴짝폴짝 뛰는 기묘한 형태로만 이동한다.
둘째는 죽지 않는 신체다.
제 아무리 대단한 경지에 오른 고수더라도 팔다리가 잘려 극심한 출혈이 발생한다면 과다출혈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사람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나 마찬가지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 강시는 신체 절단으로 인한 극심한 출혈이 발생했음에도 움직임에 변화가 없다.
‘아니, 극심한 출혈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질려도 죽지 않지.’
세상 만물 중 그 어느 것도 심장을 잃고서 움직임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인데도 강시들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원으로서 결코 믿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쩌겠는가.
스승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의학은 늘 새롭게 바뀌어야 하며 옛것만을 추구하는 의학은 죽은 지식이라고도 하셨지.
강시의 신체적 특성 중 마지막은 강력한 신체 능력일 테다.
“키에에엑!”
“캬아아아악!”
얼어붙은 듯이 경직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강시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무인 셋이 달려들어도 쉽게 뿌리칠 정도의 기괴한 힘을 말이다.
“끼에에에엑!”
“캬하학!”
그리고 생물학적 특성으로 구분하자면 첫째, 흡혈 본능이 있다.
사실 실제로 피를 마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몸을 숨긴 채 유심히 놈들의 특성을 관찰해 보니, 강시의 공격을 피하다가 생채기가 나거나 하여 피가 흐르면 그 사람을 향해 다들 미친 듯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맹수처럼 말이다.
둘째로는 감염성이다. 강시에 물리면 피해자는 무공의 고강함과 관계 없이 강시로 변화한다.
‘그것도 상당히 빠른 속도야. 반 다경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변한 것을 보면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 생물학적 특성.
그건 냄새다.
“캬아악!”
“키에에엑!”
강시의 모습으로 변한 지 얼마 안 된 저들한테서는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강시로 변한 지 며칠 되지 않은 팽정혁과 석원징에게서도 별다른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
하지만 동굴 안에 내게 달려들었던 강시들 중 몇몇은 분명히 그 냄새… 아니, 악취가 풍겼다.
코를 찌르는 시큼하고도 역겨운 신맛, 마치 오래된 음식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농도 짙고 강렬한, 한 번 맡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지독한 향취 말이다.
이내 코 속 깊숙이 파고드는 썩은 고기 특유의 역한 냄새.
단순히 상한 고기에서 나는 것보다 훨씬 더 진하고, 썩은 계란 같은 유황 냄새도 섞여 있어 독특하면서도 맡는 즉시 기분마저 극도로 불쾌해지는 냄새.
바로 시체의 냄새였다.
“캬아아아악!”
“키에엑!”
그나마 다행인 건 강시가 되면 지능이 완전히 퇴보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인간일 때 사고가 가능하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복잡한 사고가 불가능해 보였고,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기본적인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 만을 보였다.
“키헤에에엑!”
다만 애석하게도 간단한 도구 사용이나 장애물의 회피 등은 가능했다.
그렇기에 강시들의 지능이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강시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고만은 볼 수가 없었다.
“각주님! 이제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제 정말 퇴각하셔야 됩니다!”
강시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면 마치 다른 강시들도 그 소리에 반응하듯이 집단행동을 하며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놈들에겐 마치 맹수처럼 사냥 본능이라는 게 있어서 살아있는 인간의 피와 살을 목표로 하고 한 번 목표로 정한 상대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제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
“단주님! 저희도 도망쳐야 합니다! 더 이상 퇴로를 유지하기가… 끄악!”
그렇기에 두 자리에 이르렀던 석가장과 하북팽가 양측의 생존자들의 수가 이제 다섯도 채 남지 않게 된 것이겠지.
서걱- 퍼석-
그렇다고 하여 강시들이 무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자기를 진주언가의 후예라고 밝혔던 흑의인이 데리고 왔던 강시들과 달리 목이 잘리면 저들은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까.
다만 목이 잘리는 것 외에 심장이 관통되거나 팔다리가 잘려 출혈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죽지 않았기에 무조건 목을 쳐야만 했다.
다만, 그게 통하는 것은 지금 이곳에서 서로에게 전염되어 강시가 된 자들뿐.
단언컨대 이곳을 지옥도의 모습으로 바꾼 두 강시, 팽정혁과 석원징은 흑의인이 데리고 왔던 강시들과 마찬가지로 목이 잘리더라도 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팽구야. 아무래도 정혁이는…”
“닥쳐라! 내 아들에 관해 뭐라 하기 전에 네 조카 놈의 목부터 치거라!”
다만 어찌 된 것인지 흑의인이 데리고 왔던 강시들은 지금 내가 정리한 강시들의 특성과 전혀 달랐다.
“키헤엑!”
“캬하악!”
놈들에게 물려 강시가 된 이들처럼 입에서는 짐승과도 같은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팽정혁과 석원징은 이지를 잃고 경직된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저렇게 콩- 콩- 거리며 겅중겅중 위로 뛰어오르며 공격을 하지 않았다.
비록 제 아비도, 숙부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지만, 원래 인간일 때의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무공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끔찍했다.
그렇기에 가경단을 먹거나 마룡이가 돕지 않는다면 쉽사리 제압하기 힘든 팽구호나 석원균 같은 고수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는 쉽사리 팽정혁과 석원징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것일 터.
‘…안타깝구나.’
팽구호나 석원균을 마냥 미련하다고 욕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내 스승님이 강시가 되었다고 한다면 내 몸이 물어뜯기고 갈기갈기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감히 스승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제 때가 된 듯하구나.”
하지만 아무리 안타깝다고 한들 더 이상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팽구호와 석원균이 제 아들과 조카의 공격을 막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땅을 가르고 나무를 베어내는 강력한 살초를 이어내며 자신들을 향해 계속 달려드는 강시들을 괴멸시켰다.
하지만 거칠게 숨을 내쉬는 모습으로 보건대, 점점 그들에게 한계가 다가오는 게 명확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저들 둘마저 강시가 된다면 남은 건 오직 나뿐일 터.
비록 지금은 마룡이가 뿜어내는 염화로 내 몸에서 나는 채취를 모두 태워내 자취를 감추고 있다지만 어제 나까지 위험해질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장내에 개미떼처럼 득실거리는 강시들이 이곳을 벗어난다면 하북은… 아니, 어쩌면 중원 전체가 삽시간에 지옥도로 변모할지도 모르는 일.
“마룡아.”
“프스! 프스스!”
“움직이거라.”
“프스!”
그렇기에 나는 내 몸에 감겨있던 마룡이를 밖으로 쏘아냈다.
프화아아악!
활 시위에서 벗어난 화살처럼 튕겨진 마룡이가 마치 몸에서 용암을 뿜어내듯 거친 염화를 뿜어내며 강시들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거센 염화로 만든 테두리를 쳤다.
그것을 보고 팽구호와 석원균도 그리고 강시들도 잠시 마룡이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돌렸으나, 마룡이는 홀로 스승님과 녹림왕의 합공을 막아냈을 정도로 강인한 존재.
저들 모두 마룡이의 움직임을 쫓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었다.
팽구호와 석원균이 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이제 얼마 안 있어 제 아들과 조카에게 당해 이지를 잃은 괴물이 될 터.
그렇기에 최대한 강시들이 이곳을 벗어나지 않게 불의 장막으로 된 울타리를 치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하던 그때.
아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