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영애 자리는 사양합니다
공작 영애 자리는 사양합니다
공작 영애 자리는 사양합니다 4
<목차>
13-2.
14.
15.
16-1.
공작 영애 자리는 사양합니다
13-2.
“공작님은 사실 이미 너를 후계자로 삼기로 하셨다는 말이야.”
난데없는 말에 엘레노아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비비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정작 비비안도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었기에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비비안이 말이 없자 그녀는 공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당연히 공작 역시 비비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기에 아무 말이 없었고, 엘레노아는 다시 비비안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작 아버지는 전혀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 말은…….”
비비안이 서둘러 수습하려 했으나 무엇이 그녀의 심기에 불을 붙였는지 엘레노아가 저돌적으로 공작을 보며 물었다.
“아버지가 말씀해 보세요. 비비안한테 그런 말씀 하셨습니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구나.”
“그렇다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점차 화가 나는 듯 짜증스럽게 말하는 엘레노아를 보며 비비안은 헛소리를 내뱉은 조금 전의 자신을 질책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속으로 남몰래 한숨을 쉬며 머리를 핑핑 굴리던 비비안은 눈을 다시 뜨더니 또박또박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말대로 공작님께서 너를 후계자로 하겠다고 직접 말을 하신 적은 없어.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사실은 공작님도 너를 후계자로 인정하고 계신 것 같아. 스스로도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비비안의 말에 엘레노아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한 시선으로 보았다. 그건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비비안이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왜 공작님은 네가 집을 나가고 나서도 계속 너에게 영지 업무를 보게 하시는 걸까. 왜 대외적으로 네가 공작가의 후계자가 더 이상 아니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는 걸까. 줄곧 생각했거든. 이상하지 않니?”
비비안의 말에 잠자코 듣던 엘레노아가 조금 우습다는 듯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별로 이상하지 않은데. 우선 첫 번째, 내가 영지 업무를 보기 시작한 지가 벌써 3년이 넘어. 이제 와 당신이 맡으시려니 피곤하시겠지. 게다가 당장 영지 업무를 아버지께서 보신다고 해도 내가 기존에 해 두었던 게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쓰실 것도 많을 테고. 그도 아니면 그저 거기까지 생각을 안 하셨던 걸 수도 있고. 그리고 두 번째, 대외적으로 말을 하지 않은 건 아직 애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아무리 당장 후계자를 바꾸고 싶으셔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상대로 뭘 하실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지.”
“물론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생각해 봐. 만약 정말로 후계자를 바꿀 생각이 있으셨다면 무언가 행동하셨을 텐데, 정작 공작님이 하신 건 그저 말뿐이었어. 실제로 뭔가 행동으로 하신 적이 없었잖아. 나는 그게 공작님이 속으로는 너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겉으로는 다르게 말을 하셨지만, 그건 다른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비비안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공작의 행동을 둘러 둘러 해석하며 이야기했다. 그 말에 엘레노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썼으나, 비비안의 이러한 말은 사실 뜻하는 바가 있었다.
사실 이 문제는 공작이 약속을 어긴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딸이랑 약속해 놓고 치사하게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긴 공작의 행동은 치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작의 절절한 사랑이나 조세핀의 사정이야 안타까운 것이었지만, 그것과 엘레노아는 아무 관계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비비안이 대놓고 공작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공작의 사정이 이해가 되거나 안타깝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놓고 공작을 비난하다가 그가 진짜 심기가 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후계자를 누구로 정할지는 공작의 마음이었고, 그렇다면 최대한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비안이 침착하게 공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신은 공작의 깊은 뜻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말이다.
“공작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시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비비안이 조심스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물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아니라고 말하진 못하겠지.’
만약 여기서 공작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공작은 딸과의 약속도 어겼으면서 귀찮다는 이유로 딸에게 영지 업무도 미루는 뻔뻔한 사람이 된다. 의붓딸이 새아버지에 대해 잔뜩 기대하고 있는 앞에서 기대를 산산이 부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비비안의 말에 공작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바닥을 응시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침묵을 지키는 공작을 보며 비비안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달리 가식 없는 진심을 담아 말이다.
“물론 그건 제 착각일 수도 있죠. 공작님이 어떤 뜻으로 그러시는지는 공작님 자신만 아실 테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조금이라도 엘레노아를 생각하신다면, 이제는 솔직히 말해 주셨으면 해요. 진짜 공작님의 속마음이 어떤지 말이에요. 저와 이야기할 때에는 솔직히 말씀하셨으면서 왜 엘레노아에게는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시나요.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말고는 별개잖아요. 적어도……, 적어도 엘레노아에게 공작님이 이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많이 걱정하고, 미안해한다는 건 말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시잖아요.”
비비안이 기나긴 말을 끝마치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공작은 여전히 무슨 생각일지 모르는 얼굴로 조용히 바닥을 응시했다. 그 얼굴이 그간 본 적이 없는, 조금은 차가운 표정이라 비비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공작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동안 나의 모호한 태도가 여러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 것 같구나. 그래, 그건 나의 잘못이지. 그럼 네 말처럼 솔직하게 말하마. 나는 엘레노아가 차기 멜버러 공작이 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아까 말했듯 엘레노아가 그저 평범한 귀족 영애처럼 살길 바랐으니까. 게다가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라면, 아들에게 작위를 물려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단다. 하지만…….”
공작이 말을 잠시 멈춘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과연 지금의 엘레노아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을지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란다. 아마 그렇지 않을 거란 생각이 더 많이 들기도 하고. 비비안 네 말처럼 어쩌면 나는 엘레노아가 차기 멜버러 공작에 가장 적합하다는 걸 이미 인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계속 영지 관리를 맡기는 나의 행동이 설명이 안 되니까.”
조용한 음성 속에서 확실히 드러나는 믿음과 신뢰에 엘레노아의 두 눈이 커졌다.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한 아버지의 진심이 그녀를 당황스럽게 했다.
“어쩌면 엘레노아의 말처럼 귀찮아서일 수도 있겠지. 이제 와서 다시 귀찮은 일을 떠맡기 싫어서, 그래서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고 싶구나. 그냥 내 딸을 믿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
“네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개인적인 고집과 생각이 나를 합리화시켰던 것 같아.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이게 태어날 아이와 너,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구나. 미안하다.”
공작의 덤덤한 사과에 엘레노아가 입을 달싹이다가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해 본 적 없던 아버지의 사과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새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날을 세우고 소리를 쳤던 미움과 원망이 차마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그렇게 있던 엘레노아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뭔가요. 마음속으로는 너를 인정하니까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게 아니다, 그저…… 내 솔직한 마음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뿐이란다.”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 다른 의도가 있으신 건지.”
엘레노아는 여전히 공작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차갑게 말을 했다.
“그래, 그렇겠지.”
“만약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약속해 주세요. 그때 그 약속을 지키시겠다구요. 더는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그래, 그러마.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이해해 다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걸 인정할 수는 없다는 걸.”
그 말에 다시금 엘레노아가 매서운 시선으로 공작을 보았다. 배신감에 젖어 가는 시선에 공작이 서둘러 변명하듯 말했다.
“알다시피 네 새어머니는 후계자 자리에 집착하고 있단다. 요즘 들어 전에는 하지 않는 행동까지 하며 더욱더 말이야. 내가 공식적으로 너를 인정한다 해도 그 사람은 멈추지 않을 거란다. 오히려 무슨 짓을 더 할지 모르지. 나는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단다. 알다시피 그 사람은 지금 홑몸이 아니잖니. 그러니 이해해 주렴. 그래 줄 수 있겠니?”
“……저에게 그저 아버지의 말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기나 한가요?”
“…….”
자신의 물음에 공작이 답을 하지 못하자, 엘레노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으니, 더 할 말이 없으시다면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네요.”
“그래, 그러마.”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기 어려운 분위기에 공작이 자리에 일어나 응접실을 나갔다. 나가기 전 말 한마디만을 남긴 채 말이다.
“오늘 나와 줘서 고맙단다. 정말로.”
공작이 나간 응접실에는 알 수 없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공작이 나가고 난 응접실에서 비비안은 엘레노아를 힐끔 보았다. 화가 난 건지 아니면 기분이 상한 건지 알기 힘든 얼굴로 가만히 있는 의붓자매를 보며 비비안은 방 안을 조용히 나섰다.
방 밖에서는 멜버러 공작이 가만히 서 있었다.
“저……, 공작님. 괜찮으세요? 제가 괜한 소리를 해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비비안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사과를 하자 공작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다. 언젠가는 했어야 하는 이야기였으니. 오히려 네 덕분에 내 진심을 알 수 있었던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공작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해 보여 비비안은 연신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엘레노아도 곧 마음을 풀 거예요. 공작님께서 진심을 말해 주셨으니까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너는 그만 들어가 보렴. 가서 엘레노아의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구나. 마음이 아직 복잡할 테니까.”
그러고는 비비안을 내려 보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엘레노아에게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진짜 자신을 위해 주는 가족이 생겼으니까.”
그 말만을 남기고 공작은 돌아갔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그 모습을 보다가 비비안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여전히 엘레노아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공작님은 가셨어.”
“……그래?”
엘레노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 옆자리에 앉으며 비비안은 조심스레 물었다.
“기분은 좀 괜찮아?”
엘레노아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괜찮은지, 아닌지.”
“…….”
“상황이 나아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아. 아버지가 나를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여전히 미워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 이제 와 그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감정을 하나로 정의 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엘레노아를 보며 비비안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말을 조심스레 골랐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
“오늘은 그냥 공작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자. 다른 건 잊고.”
비비안은 고민하고 고민하다 조심스레 엘레노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토닥토닥 어색한 접촉을 하자 엘레노아가 무슨 짓을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비비안을 보았다. 비비안이 어색한 표정으로 웅얼웅얼 대답했다.
“이건…… 그냥. 위로 겸 응원 겸…….”
어딘가 경직된 듯 어색한 몸짓이 웃겨 엘레노아는 피식 웃었다.
“위로할 거면 제대로나 하든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기분이 나빠 보이기는커녕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모습에 비비안이 의아하여 되물었다.
“……내가 허락 없이 손잡았는데도 기분 안 나빠?”
엘레노아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묻는 비비안의 얼굴을 보더니 대뜸 소파에 편하게 기대며 말했다.
“글쎄, 평소라면 좋아할 만한 행동은 아니긴 한데…….”
“…….”
“지금은 그다지 나쁘지 않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라서 그런가.”
답지 않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낯간지러운 소리를 참 태연하게 한다 싶어서 비비안은 웅얼웅얼 중얼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언제는 내가 눈만 마주쳐도 피하더니…….”
“그래, 그럴 때도 있었는데 말이야.”
엘레노아는 그런 때도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비비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고마워.”
“……뭐가?”
“내가 자꾸 밀어냈는데도 받아 줘서.”
“…….”
“오늘만 해도 너 아니었으면, 아버지한테서 평생 그런 소리는 못 들어 봤을 거야. 네 덕분이야.”
“됐어. 뭐 큰일 했다고……. 아무튼 좋게 끝났으니 된 거지.”
“그래서 말인데,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그게 무슨 말이야?”
비비안이 조심스레 묻자 엘레노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자상해 보이지만, 그래 보여도 이 나라 고위 귀족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야. 심기를 거슬렀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이번에는 다행히 잘 끝났지만 다음부터는 나랑 아버지 사이에 함부로 끼어들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라는 거야. 지금이야 너를 아끼시지만,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말만 두고 보면 협박이나 경고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명백한 걱정이라는 것이 잘 느껴졌기에 비비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할게.”
비비안이 엘레노아처럼 소파에 편하게 등을 기대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일어나 물었다.
“그러면 너 집에 다시 들어오는 거야?”
“아니, 당분간 브래드포드 공작저에 계속 있을 거야. 아직은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니까.”
그건 그랬다. 공작한테 사과도 듣고 인정도 받았지만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여전히 세상 사람들에게 엘레노아는 자리가 위태위태한 상황이었고, 당장 공작과 나눈 대화는 아무도 모를 터였다. 그리고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공작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공작님이 일단은 마음을 바꾸신 거니까 어쩌면 문제가 쉽게 풀릴지도…….’
비비안이 앞으로 있을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응접실 문이 열리더니 집주인인 해밀턴 공작이 들어왔다.
“어떻게, 이야기는 잘 끝났습니까.”
“네, 그럭저럭 잘 끝난 것 같아요.”
대답 없는 엘레노아를 대신하여 비비안이 답하자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맞은편 의자에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클로드의 물음에 엘레노아는 비비안을 힐끔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그다지 바뀔 건 없어요. 계획대로 하면 되니까.”
‘무슨 계획 말하는 거지?’
모르는 이야기에 비비안이 눈치만 보자 클로드가 입을 열어 의문을 풀어 주었다.
“공작 부인을 공격하는 계획입니다.”
클로드의 말에 비비안이 잠시 멈칫하다 더듬더듬 물었다.
“……해치거나 그러는 건 아니죠?”
“상해를 입히느냐고 묻는 거라면 당연히 아닙니다.”
그 말에 비비안이 안도할 새도 없이 클로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게 공작 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요?”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