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검은얼굴 미국의사 02권
검은머리 검은얼굴 미국의사 02권
검은머리 검은얼굴 미국의사
02
세상밖으로
검은머리 검은얼굴 미국의사 02권
차례
Chapter 01. 미국―콜레라의 시대 - 2
Chapter 02. 정직한 변호사
Chapter 03. 선지자들
Chapter 04. 돈복사버그
Chapter 05. 비극적 서막
Chapter 06. 과학적 대발견
검은머리 검은얼굴 미국의사 02권
Chapter 01. 미국―콜레라의 시대 - 2
시밤 쾅!!
“세상에!!”
“주님! 맙소사!!”
분명히 폭발이 있을 거라고 공지했다만, 사람들은 기겁하며 개미새끼마냥 쪼르르 흩어졌다.
“대포라도 쐈나?”
“아니야! 우물이 없어졌어!”
“분명히 작은 통 하나 던져둔 거 아니었나?”
다이너마이트로 날려버린 우물의 잔해만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곳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도로 몰려들었다.
언제 저 돌덩어리들을 하나하나 들어내고 파헤칠 건가 고민하던 인부들은 검은 속살을 드러낸 땅에 삽을 대고 파기 시작했다.
“이, 이게 그… 뭐라고?”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저희, VnG 컴퍼니가 개발한 신형 화약이죠.”
눈이 휘둥그레하게 떠진 셔먼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다이너마이트, 다이너마이트, 몇 번 입 안으로 중얼거린 그는 허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구형 화약과는 위력이 차원이 다르군 그래.”
“예. 니트로글리세린을 써서 기존 흑색화약들에 비해 훨씬 강력합니다. 단가야 뭐… 제법 있지만요.”
하지만 저 정도 양으로 땅을 뒤집고 돌을 깨 놓는 위력이면 안 쓰는게 손해다.
사람의 노동력도 비용이고, 건설 시간도 비용이다. 철도를 깔기 위해선 땅을 파야 하고, 나오는 암반을 치워버려야 하는데 그걸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파내자니 돈이 억수로 깨진다.
흑색화약은 위력이 약하고, 관리도 어려운 반면 다이너마이트는 관리가 쉽고 위력도 흑색화약의 몇 배는 된다.
“니트로글리세린? 그건 건드리면 터져서 못 쓰는 물건 아니었나?”
“다이너마이트의 비결이죠.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정화시켰습니다.”
아까도 폭약을 파묻으며 툭툭 건드리는 걸 봤던 셔먼은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뭐, 이미 다 실험을 하면서 안정성을 테스트해봤기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만 아마 저게 니트로글리세린인 걸 알았으면 사람들은 감히 가까이 오지도 않았을거다.
아무튼 이제 인부들은 사람들의 눈 앞에서 석재 포장재가 벗겨진 땅을 파헤쳐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 뭔가가 있습니다!”
“윽! 냄새….”
웅성웅성.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썩은 시궁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코를 부여쥐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주 의회가 파견한 '중립적' 감사관은 입을 비죽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뭔가? 우윽….”
“에… 땅에서 시커먼 물이 스며나오고 있습니다. 수맥과 연결된 것 같은뎁쇼?”
“그 시커먼 물이 나오는 쪽을 파 보게!”
수맥 아래로 시커먼 하수물이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희석되어 잘 몰랐을 뿐. 소호 가의 거주민들은 저런 걸 우리가 마시고 있었냐며 기겁을 하고, 인부들은 시궁내를 막기 위해 얼굴에 천을 두르고 구슬땀을 흘리며 땅을 더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 들어가기를 한참. 이미 인부들의 모습은 땅 아래로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궁시렁거리며 대체 이게 무어냐고 소란을 피웠다.
텅!
삽이 뭔가에 부딪혀 금속성을 냈다. 한 명이 그래도 공기가 맑은 지상으로 뛰쳐 올라나와 외쳤다.
“저, 저기 안쪽에 뭔가… 뭔가 있습니다!”
“뭐가 있길래 그러나?”
“쇳덩어리 같습니다만… 주변을 좀 더 파보겠습니다.”
시커먼 물이 스며든 흙이 잔뜩 쌓이고, 감사관은 이제 인부들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를 따라 신시내티 시와 오하이오 주의 주요 인사들이며, 사태를 검증하기 위해 초청된 각종 명사들이며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코를 싸쥔 채로 투덜거리며.
“…이건… 정화조 아닌가?”
“예! 이 아래쪽이 부식되어서 오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 일단 그 오수를 채취하도록 하게.”
“저 물이 우리가 마시는 우물물에 섞이고 있었다고? 하느님 맙소사!”
정화조에서 나온 더러운 물은 졸졸졸 흘러 우물이 있던 자리 쪽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굳이 우기자면 우물이 먼저 오염되고 정화조가 나중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는 있겠지만, 분노한 군중들에게 그 정도의 증거면 충분했다.
누군가, 아마도 노회한 휘그당 정치인이 미리 섞어둔 바람잡이가 고함쳤다.
“이게 다 민주당 때문이다!”
“맞다! 저 놈들 때문이야!!”
“아, 아니, 이게 왜…?!”
“본 감사관은 소호 가의 우물이 정화조에서 나온 오수로 오염된 상태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 그럼 이만…!”
진동하는 악취에 감사관은 코를 싸쥐고 도망쳤다. 아니, 흉흉해진 군중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콜레라 유행으로 가족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눈 앞에서 ‘왜’ 를 알아버렸다. 이제 ‘누구’ 를 찾을 차례다.
그 위에 바람잡이가 기름을 끼얹고, 마침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물을 다이너마이트로 발파시키며 나온 돌멩이들이 길바닥에 널려 있었다.
“휘이이익!! 다, 다들 진정하십쇼!!”
누군가 한 명이 땅바닥의 돌멩이를 집어들었다. 그걸 본 보안관과 보안관보들이 달려와 사람들을 저지했다.
“너희들 때문이야!!! 네놈들 때문에…!”
“그만!! 멈추십쇼!!!”
돌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어윙 시니어는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침착하게 아들과 몸을 피했다. 피르호 교수님과 개틀링 선배는 양 옆에서 혹시나 휘말릴 수도 있는 나를 몸으로 지켜주며 사람들을 헤치고 오수가 든 통을 소중히 든 채 빠져나갔다.
보안관의 호각 부는 소리, 사람들의 성난 아우성, 돌에라도 맞았는지 터져 나오는 비명.
수십 명이 우르르 달려들어 공무원과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몰매를 놓았다.
“억!! 살려주십쇼!!”
그 중에, 지난번 내가 시 청사로 찾아갔을 때 어디서 깜둥이 새끼가 기어들어오냐며 얼굴에 침을 뱉은 놈이 끼어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와 친분을 맺은 늙은 정치인이 만면 가득 미소를 띄고 있어서일까.
그도 아니라면 저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몰매를 맞게 되어서일까.
혹은 다이너마이트를 세상에 선보였다는 쾌감 때문일까? 전율이 흐른다. 그동안 느껴볼 일 없었던 시원한 전율이.
* * *
“그 놈들의 마지막 기회는 그 우물 앞에서 끝났어.”
토마스 어윙은 단언했다.
부서진 소호 가의 우물 앞에서 일어난 소란은 일대 소란으로 끝나고 말았다. 몇몇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시장을 비롯한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공격하긴 했지만 보안관 등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제지로 결국 별 문제없이 빠져나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분노한 시민들 몇몇이 보안관과 그 보좌역들에 의해 흠씬 두들겨 맞고 체포되었다.
대다수는 1850년이나 올해의 콜레라 유행에서 가족 친지 친구들을 잃은 사람이었다.
“소호 가의 분위기는 완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네. 다음 선거에서 최소한 신시내티가 민주당을 찍는 일은 없을것 같군.”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우리 휘그당이 대선을 이길 일은 없을 거야. 휴우… 뭐, 내 아들놈이 신시내티를 지역구 삼아 하원에 진출할 수는 있겠다만….”
늙은 정치인은 이제 조금 더 늙어 보였다. 이미 상원의원과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하원의원에 다시 출마하기는 격이 안 맞고, 이번 사태에서 같이 이름을 올려 법률 소송을 주도한 어윙 주니어를 젊은 나이임에도 하원에 진출시켜서 휘그당에 한 자리 올려두겠다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까?”
나는 솔직히 이 시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들어도 전혀 감이 오는 게 없다. 링컨 이전의 대통령이 누군지 한국인이었던 내가 알 게 뭔가.
아마 지나가듯 현대의 뉴스에서 공화당이 ‘링컨의 당’ 이다가 트럼프의 당으로 전락했다고 해서 링컨이 공화당인걸 알았지, 아니었으면 그마저도 몰랐을 거다.
그런데 공화당도 없고, 그나마 민주당은 21세기에도 민주당이라 그 반대편에 있는 휘그당이 공화당으로 어떻게든 진화한다는 것만 간신히 추측할 뿐이다. 신문지상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은 사실 이미 정당사나 역학관계를 알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고, 그마저도 내밀한 이야기들은 알기 어렵다.
하여 이 늙은 거물 정치인은 내게 자신의 지식을 베풀어 주었다.
“지난 1850년의 ‘대타협’ 으로 우리 휘그당은 연방을 사수하긴 했지만, 도덕적 정당성을 잃어버렸네. 자네도… 아마 알겠지?”
“아, 그… 도망노예 추적법 말씀이십니까?”
젊은 어윙 주니어는 이미 다 알고있다는 듯 어깨만 으쓱거렸지만, 피르호 교수님과 개틀링 선배, 그리고 나까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윙은 옛날이야기를 푸는 할아버지같이 사람들을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맞네. 뭐, 캘리포니아는 자유주, 텍사스는 노예주, DC에서는 노예 거래의 중단, 새로 편입되는 주에서는 주민 주권에 의한 자유―노예주 결정… 그리고 도망노예 추적법은 강화. 우린 연방을 지키기 위해 이 타협을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
도망노예 추적법(Fugitive Slave act of 1850) 은 상당히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도망노예를 추적하기 위해서라면 자유주에서 추노꾼들이 가택수색을 할 수 있고, 도망노예를 반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액의 벌금을 물릴 수 있었다.
노예에 대한 노예주의 주권이, 그렇다면 자유주에 사는 자유민들이 가지는 인신의 자유에 우선하는가? 연방이 노예주에서 노예제를 철폐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고 자유주에서 시민의 집을 마음대로 수색하게 허가할 수는 있는가?
휘그당은 이 모순되는 법률을 결국 받아들였다. 미국이라는 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연방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연방을 더 느슨하게 분열시키는 선택을 한 결과는 당의 내분이었다.
나는 이제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군요….”
전선이 ‘주의 주권’ vs 연방의 권리 로 짜여 있으니, 당연히 개별 주의 주민으로서 정체성이 미국 시민으로서 정체성보다 강한 이 시대의 미국인들은 전자를 지지한다.
그러면 휘그당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연방이 대체 뭐길래 내가 가지고 있던 권리들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궁색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치적 여론의 전선이 주의 주권 vs 사악한 노예제의 전면적 폐지로 간다면?
그럼 그때는 후자가 승리한다.
내가 법이나 정치 같은건 잘 모르긴 해도, 누가 봐도 사악한 행위, 예컨대 살인을 주에서 합법화 시켰다고 그게 정당화될 수 있을리가 없다. 노예제도 마찬가지다.
다만 휘그당의 정치인들은, 노예제의 전면적 폐지 주장이 나라를 정말 두 조각으로 갈라 놓을까봐 감히 대놓고 전면 폐지를 들고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노예제에 목숨을 건 민주당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항상 아쉬운 쪽이 지는 거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미봉책으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고 한들 계속 평형추가 흔들리는데 그게 가능할 리 없다.
북부의 시민들은 대부분 노예제에 반대한다. 미국이 가만히 있는 나라라면 모를까 계속 이민이 쏟아져 들어오고, 주가 추가된다. 평형추가 한번 흔들릴때마다 불안한 약속으로 붙들어 놓는 게 영원히 가능할 리가 없다.
답안은 알고 있는데, 풀이과정만 모르는 느낌이다가 이제 풀이과정을 알게 되자 어쩐지 가슴이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언제 이 문제가 속시원하게 해결될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흐하하하하!! 그런가?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대담한 소리들을 해서 좋다니까?”
노정객은 껄껄 웃었다. 나도 마주 웃어 주었다.
이 할아버지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걸 가져다주었다. 의사이자 의학자로서의 명성도, 미래 거물이 될 장군과의 인맥도, 그리고 다이너마이트의 공개 시연 기회와 판로까지!
난세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날이 기대가 되었다.
그 날이 오면. 세상이 뒤집어지고 유색인종의 굴레가 끊어지는 날이 온다면…!
검은머리 검은얼굴 미국의사 02권
Chapter 02. 정직한 변호사
어윙과 셔먼은 우리가 보여준 다이너마이트를 보고 제법 감명을 받은 듯 했다. 즉석으로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더니, 철도 회사의 고문 변호사에게까지 연락해 판매 계약을 주선할 정도로.
“미니를 도와 준 대가라고 생각하게. 물론 이 정도로 입을 씻으려는 건 아니네만은…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노회한 정객은 킬킬 웃으며 굳센 손아귀로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동안은 유색인이 열등하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던 셔먼도 미안하고, 고맙다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무례를 용서해 주겠나?”
“이미 잊은 지 오래입니다. 자식을 위해서인데 의심 좀 할 수도 있지요.”
앞으로 출세할 사람을 알아두는 것만 해도 대단한 기회인데, 이렇게까지 대해준다면야 내가 감사할 노릇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서쪽 일리노이 주에서 어윙의 소개를 받았다며 웬 키다리 양복쟁이 한 명이 도착했다.
“계십니까?”
“어! 사이먼. 이제 온 거야? 바빴나보네.”
“예. 그래도 다이너마이트를 판다는 데 제가 안 올 수는 없지요. 흐흐흐.”
작은 실험실 한 구석에서 반응식을 끄적거리던 날 불러낸 개틀링 선배는 실험실 한켠의 의자에 앉아 이미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공간이 좀 누추하기는 하여도 아랑곳않은 양복쟁이는 구석구석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둘러보다가 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이… '다이너마이트' 의 재고는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니트로글리세린으로 하면 1천 파운… 아니, 크흠. 대략 500kg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