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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장


뇌조의 낫은 냉장고의 자석처럼 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이 일은 제아무리 네놈이라고 한들…… 결코 좌시해선 안 되는 일이다.”
뇌조가 말은 저렇게 해도 와중에도 나는 왠지 시험하는 거 같은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는 상황.
‘왠지 뭐라도 보여 달라는 거 같은데.’
뭐 하나 확실하진 않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고 있긴 했다. 그러나 타고난 성정으로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뇌조도 날 속일 수가 없나?’
십수년을 속고만 산 사람이라면 신수라고 한들 속내를 알아챌 수 있는건가란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저 애가 로키의 장난에 놀아난 거란 거 알잖아.”
하여 뇌조의 물음에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원하던 답이 아니었는지, 낫에 푸른 뇌기가 휘감겼다.
땅에 떨어져야 할 낙뢰가 코앞에서 머무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란 것이냐. 마에 종속된 것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거늘.”
“그렇다고 다 똑같진 않아. 저 애처럼.”
나도 알 수 있는 걸 뇌조가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저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마에 종속되길 바란 것이었다면……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그런데 지금 뇌조랑 말씨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젠 몸이 못 버티는 건가.’
마인화된 학생의 몸이 바스러지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이대로라면 로키가 별생각 없이 꾸린 판대로 들어가는 거잖아.’
텁!
결국 난 말씨름을 끝낼 심산으로 뇌기에 휘감긴 낫을 손을 뻗어서 틀어쥐었다.
그야말로 쏠 거면 쏘라는 태도였다.
‘이거 아니야?’
그런데 뇌조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린다.
일단 나는 낫이 낚싯바늘처럼 생기기도 하고, 살랑거려서 시험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파- 지지지직!
와중에도 낫을 쥔 순간 푸른 뇌기가 내 손바닥에 빈틈없이 자상을 박아 넣었다.
‘이야…… 이건 많이, 아픈데?’
다행인진 몰라도 피는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즉시 기화되어 붉은 안개가 된 거여서 다행이진 않았다.
“당장 놓거라!”
뇌조가 낫을 이리저리 흔들어도 난 낫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정도는 처음인데.’
엄마에게 등짝 맞는 게 애교로 느껴질 정도의 고통이었다. 근데 여기까지 온 상황에 내 가슴 속 승부욕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여 나 역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길들일 수 있어.’
내 팔에도 뇌조의 이능이 깃든 문양이 그려져 있다. 더구나 뇌기를 직접 만지고 있으니 어떻게든지 도움이 될 터였다.
내심 승기를 붙잡은 거 같은 마음에 내 가슴속 승부욕이 더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래 이것도 승부라면 승부가 맞지.’
“이 미친 새끼가 당장 안 놔!”
뇌조의 성격이 개차반이란 걸 안다. 전쟁에 미친 호전광이니까.
그래도 미친 새끼는 좀…….
“……그건 상처야.”
“크흠, 그러게 놓으라니까.”
손바닥에만 머물렀던 뇌기가 이젠 팔을 통해 전신으로 번지려던 찰나였다. 그에 따라서 길목을 막고 있던 문양이 자연스럽게 뇌기로 물들었다.
‘어?’
그러자 지금까지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던, 뇌조의 문양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저 푸른 불빛을 난 놀랍게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네……?’
바로 웨어울프를 잡을 때였다.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기억이 덧씌워지며, 생생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될 거야.’
하여 의지를 굳세게 머금었다. 작렬하는 통증 덕에 손을 보호하겠단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뇌갑(雷甲).”
별안간, 뇌조의 문양이 뇌운(雷雲)으로 변모했다. 뇌운은 자신이 머금고 있던 뇌기를 원 없이 뿜어냈다.
낫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 서서히 반투명한서도 푸른 뇌기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이젠 내 손에서도 푸른 번개가 쉬지 않고 작렬하고 있었다.
“오, 됐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름 고대하던 순간이었기에 성취감이 만연했다.
뇌조가 칭찬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적당히 혼내고 알려 주려고 했더니만, 낫을 쳐 잡아서 깨우칠 줄 이야. 뭐, 어차피 곧 쓸 수 있었던 모양이다.”
말투는 여전히 거칠지만, 뇌조의 표정이 풀려 있었다.
‘원래 해결하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본래 계획은 마인화된 학생을 사람으로 돌려놓고, 이능에 대해서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다.
‘누가 떠먹여 주는 것보단, 이게 낫긴 하지.’
근데 이건 이거고, 일이 마무리된 건 아니다.
“해! 얼른.”
“……네가 놔야 하든 말든 하지! 고얀 놈.”
딱-!
뇌조가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교관과는 또 다른 맛이다. 새삼 뇌조와 말씨름하고 명령조로 말했던 현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괜찮아. 없던 일인 것처럼 넘어가면 될 거야.’
나는 딱밤에 정신을 차린 뒤에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낫에서 손을 뗐다.
“……이제 와서 무슨.”
뇌조가 말을 끝내는 순간, 낫으로 마인화 된 학생을 가리켰다.
“……여전히 내키진 않지만, 이 아이에게 감사하라.”
뇌조는 그 말을 끝으로 허공을 향해 가볍게 낫질했다. 소용돌이치던 뇌운에서 한 줄기 낙뢰가 학생에게 떨어졌다.
귀찮은 듯한 성의 없는 뇌조의 한 수였다.
‘……정화되고 있어.’
그러나 뇌기는 집요하리만치 스며든 마기만을 쫓아서 찢고 태워 버렸다.
그 과정에서 학생의 바스러지던 몸도 어느 정도 수복되고 있었다.
“더는 토 달지 말도록.”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저 정도는 아카데미의 의료 시설의 힘으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의 나로선 가늠조차 할 수 없어.’
내가 발만 동동 굴렀던 일이 뇌조에겐 평범한 낫질 한 번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당장은 과분한 생각일지 몰라도 뇌기는 같으니까.
나는 뇌조에게 물었다.
“조금은 뿌듯하지 않아?”
뇌조의 성향상 죽였으면 죽였지. 이처럼 정화 시켜 준 적은 처음일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불필요한 감정을 잊은 지는 오래다.”
뇌조는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
‘솔직하지 못하긴.’
척!
뇌조가 레바테인을 향해 손짓하자 손아귀로 레바테인이 날아들었다.
“……여전히 장난이 지독한 작자로군.”
뇌조는 혼잣말을 툭 뱉더니 팔짱을 낀 채,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으면서 말했다.
“투전승불(鬪戰勝佛)의 긴고아라…… 어인 일로 인계를 들렀나 했더니, 너를 보러 온 것이었군.”
“응.”
“하면 삼매진화도 투전승불이 줬을 것이고, 이제야 애새끼가 왜 토라졌는지 알겠어.”
“애새끼? 아, 홍해아…….”
호칭도 호칭인데, 홍해아가 토라질 줄이야. 저기 위도 나름 신수 사는 곳이란 건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어쨌든 이왕 삼매진화가 나온 김에 말했다.
“삼매진화는 다루기 힘들더라.”
뇌조가 코웃음을 쳤다.
“당연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말거라. 더구나 너의 것은 좀 다르다. 투전승불의 기운이 꽤 많이 깃들어 있으니까.”
어쩐지 두억시니의 팔을 잡아먹을 때의 화염이 두드려 패는 것처럼 보였긴 했어.
‘나는 정말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구나.’
난 뇌조를 향해 상체를 숙여 고마움을 전했다.
“고마워, 배려해 줘서.”
내 뇌기는 뇌조와는 달리, 뚜렷하지 않고 반투명했다. 그렇다 해도 내 몸엔 어떠한 부하도 걸리지 않았다.
원래부터 내 힘이었던 생각도 들 정도로.
뇌조는 불편하단 것처럼 잠시 고개를 돌렸다. 내심 훈훈한 분위기에 내가 말을 이었다.
“구반다가 알려 줬어. 네가 날 많이 아낀다고.”
그 순간 하늘에서 천둥이 치기 시작했고, 낙뢰가 발작하듯 내리쳤다.
“네 몸에서 말 대가리의 이능이 느껴졌음에도, 구태여 입에 담기 싫어 애써 무시했건만.”
이번엔 어떤 기류도 읽히지 않았다.
‘너무 진심이잖아.’
“또다시 내 앞에서 말 대가리를 언급한다면…… 죄를 물어 단죄겠다.”
“응.”
너무 진심인지라 이번만큼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쯤하고.”
뇌조가 쥐고 있던 레바테인을 물끄러미 보다가 부러트릴 기세로 움켜쥐었다.
치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