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하늘에는 번갈아 가며 낙뢰가 내리쳤다.
번개의 힘은 시간이 갈수록 사그라들기는커녕 더욱 강력해졌다.
그런데 오동혁은 그것을 교묘하게 피하고 다녔다. 그는 피뢰침을 사용하여 낙뢰의 타격을 피하며, 마치 신들린 몸놀림을 보여 주었다.
그가 그리할 수 있는 이유는 생각대로 따라오는 피지컬 덕분이기도 했지만, 보유하고 있는 스킬 덕분이기도 했다.

[강한 몰입력으로 인해 게임 동기화가 발동합니다.]
[폭원의 움직임을 읽어 공격의 궤도를 예측합니다.]

미세한 움직임이지만 폭원은 낙뢰를 떨굴 때마다 지팡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낙뢰가 떨어진다.
폭원을 중심으로 지팡이가 왼쪽으로 움직이면 왼쪽에서 낙뢰가 떨어진다는 것이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에서 낙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팡이가 살짝 빛날 때마다 그것이 낙뢰가 떨어지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콰가가가강!
“넷, 다섯, 여섯…….”
오동혁은 떨어지는 낙뢰의 횟수를 조용히 세어 가며, 폭원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열, 열하나, 열둘…….”
그의 속삭임은 낙뢰의 번쩍임 사이사이에 들렸다.
“스물.”
숫자 세기를 멈추자 순간 고요함이 찾아왔다. 이어 폭원의 지팡이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오동혁은 그것을 보자마자, 미소를 드러냈다.
지팡이에 작은 스파크가 일어났다는 것은 과부하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폭원도 그것을 깨달은 듯이,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드러났다.
오동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사상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시신에 손을 뻗어 트랜스 뮤터 팔찌의 능력을 발동했다.
영력을 금세 회복한 오동혁이 한 손에 산신검을 들자, 검에서는 밝은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가 볼까.”
그는 검을 꽉 쥐고서 폭원에게 내달렸다. 폭원이 다급히 지팡이를 휘둘렀지만, 오동혁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빛의 섬광이 폭원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폭원은 그 강력한 섬광 앞에서 지팡이로 방어 태세를 취했지만, 섬광이 지팡이에 부딪히자 즉시 지팡이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은 지팡이 전체를 감쌌다.
당연한 결과였다.
과부하 상태에 이른 무기는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간다.
그러나 폭원이 받아 낸 공격은 그보다 더욱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 사이에 오동혁은 접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빠르고 경쾌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폭원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의 검이 다시금 빛을 발하며 폭원을 향해 위협을 가했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는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공격에 대기하고 있던 해태가 거대한 물방울을 입에서 발사했다.
그 물방울은 폭원을 향해 날아가며 그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했다.
“크윽!”
폭원은 둘러싼 위기에 몸을 움츠리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당황이 동시에 드러났다.
결국 폭원은 지팡이로 거대한 물방울을 쳐 내고, 오동혁이 해 오는 공격을 대응하려 했지만.
푸욱!
끝내 자신의 살을 파고드는 검을 막지 못했다.
“크헉…….”
폭원은 진득한 피를 입으로 토해 내며, 오동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역적 놈!”
오동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정작 우리나라를 수탈하고 착취하려 했던 자는 눈앞에 있었다.
한데 그는 자신을 독립군이라 여기며 되레 오동혁을 보고 역적이라 말하고 있었다.
오동혁은 과감히 검을 휘둘렀지만 지팡이에 가로막혔다.
양쪽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서려 하지 않으며 강한 힘을 주고받았다.
둘의 이마에서 핏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오동혁은 상대의 눈을 마주 본 채 말을 꺼냈다.
“모습을 감추는 건 그만하지?”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플레이어들은 그의 포악한 외모와 태도 때문에 그를 ‘폭군 원숭이’라 칭했다.
그러나 그 별명이 붙은 이유에는 더 깊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독립문의 영체와 그의 가디언들은 모두 대한민국을 침략한 과거의 침략자들이었다.
특히 폭원은 조선을 침공한 일본의 장수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동혁은 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말을 이어 나갔다.
“모르는 체하겠다면 직접 까발려 주는 수밖에.”
차아아앙!
영력을 주입해 검에 반발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폭원이 뒤로 밀려났다.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던 오동혁은 틈이 생기자마자 상대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놈의 얼굴을 할퀴듯 뜯어내 버렸다.
피부가 벗겨지면서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은 일본 장군의 갑옷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머리카락은 민머리로 바뀌었다.
폭원은 가짜 얼굴을 뜯어내며 곧 미친놈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크하하하!”
주변의 풍경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하늘은 점점 진한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그 붉은색은 누구의 피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농도로 하늘을 뒤덮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피의 향기가 실려 왔다.
아직 살아 있는 삿갓을 쓴 사내들의 옷차림은 일본군의 복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을 신봉하며, 장군에 충성을 다하는 병사들.
변화한 폭원의 눈빛은 교활함과 탐욕을 뚜렷이 드러냈다.
그 앞의 풍경은 점차 그의 기운으로 변모하였다.
오동혁이 주변을 살펴보니, 그곳은 이미 무덤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꿈속의 광경처럼, 수많은 전사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죽음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땅에서는 피 웅덩이가 무수히 생겨나며, 그 피는 땅에 스며들어 깊은 붉은색을 띠었다.
폭원의 발밑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 그 주변에서는 작은 피의 개울이 형성되었다.
그 개울은 끝없이 피의 강으로 변하며, 저 멀리까지 이어져 나갔다.
이내 폭원이 그에게 물었다.
“가짜 얼굴이라는 건 어찌 알았지? 뭐.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죽을 놈이니.”

[돌발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독립문의 영체가 진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당 영체를 정복하고 그 지역의 랜드마크를 차지하십시오.]
[보상: ??]

퀘스트의 시작은 마지막 페이즈에 진입했음을 암시한다.
다른 랜드마크들과 달리, 독립문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영체를 제거해야만 했다.
그 까닭은 영체의 내부에 중심이 되는 코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폭원은 지팡이의 끝을 열고, 빛나는 예기의 검을 꺼내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오동혁은 즉시 김도환을 부르며 그의 도움을 청했다.
김도환은 스킬을 발동시켜 숨어 있는 적의 위치를 파악해 냈다.
“왼쪽이야!”
오동혁은 지체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폭원은 급하게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큭!”
그는 다시금 모습을 감췄지만, 지금의 공격으로는 오동혁을 상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바닥을 보니 피의 흔적이 남았다.
“오른쪽!”
김도환이 위치를 알려 왔지만, 이번에는 피의 흔적을 쫓았다.
검으로 적의 심장을 꿰뚫을 생각이었지만, 폭원도 그냥 당해 줄 생각은 없는지 공격을 피했다.
폭원이 여전히 날쌘 움직임을 보이는 걸 확인하며 오동혁은 거리를 벌렸다.
‘안 되겠어.’
결국 마지막 수를 쓰기로 결정했다.
십여 미터 밖으로 벗어난 그는 검을 거꾸로 잡아 그것을 땅에 내리꽂았다.
폭원은 산신검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원래라면 영력의 불안정으로 스킬 사용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적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예측이 가능하게 만들면 됐다.
산신검에는 자잘한 기능이 남아 있었다.
힘은 원래 하루 동안만 지속되지만, 그 시간을 줄여 힘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동혁은 산신검에 남아 있는 시간 전부를 집중시켜 힘을 증폭하는 데 사용했다.
우우우웅!
진동 소리와 함께 검에서 눈 부신 빛이 방출되었고, 폭원의 영향으로 변해 버린 주변이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산신검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냅니다.]
[산신검의 힘을 유지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폭원은 그 변화를 눈치채고, 방금 전의 입은 상처를 잊어버린 것처럼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죽어라! 죽어!”
보호 스킬을 쓰기엔 영력이 충분치 않아, 오동혁은 순간 두 번의 칼질을 허용하고 말았다.